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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와 음악의 관계를 통한 프랑스 바로크 세속 칸타타의 연구

Title
시와 음악의 관계를 통한 프랑스 바로크 세속 칸타타의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f French Baroque Cantatas in terms of relations between Poetry and Music: focused on Jean Philippe Rameau's soprano cantatas
Authors
이효진
Issue Date
2007
Department/Major
대학원 음악학부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정복주
Abstract
프랑스 음악에서 18세기는 “위대한 세기”(Grand siècle)로 불리운다. 위대한 세기를 대표하는 다양한 음악 장르 중에서 칸타타는 극 음악 형태와 구별되는 가장 서정적인 순수 음악 형태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그 당시에 프랑스에서 유행하던 음악장르들인 “코메디 발레”(comédie ballet), “서정 비극”(tragédie lyrique), “오페라 발레”(opéra ballet)는 극적인 형태 안에서 화려한 발레와 합창을 포함하며 음악 그 자체보다는 전시적인 효과에 치중하고 있었고 16세기부터 전해져 온 “궁정 가요”(airs de cour)는 단선율을 사용하는 하나의 단순한 성악 형식에 지나지 않았다. 서정 비극을 포함하는 극 음악은 시와 음악의 융합보다 시각적인 효과를 중요시하였고 궁정 가요는 음악적인 내용과 형식에 있어 아직 칸타타의 면모를 갖추지 못했다. 프랑스 칸타타는 이와 같은 장르에 포함된 음악적 특성과 문학적인 비중을 가지고 발전된 실내 성악 음악이다. 바로크 시대의 모든 음악 장르가 이탈리아의 영향과 지배아래에서 모방의 형식을 따른 것은 사실이다. 이 시대는 어떠한 분야에서건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나타나는 국가 간의 혼합이 시대적인 필연으로 나타난다. 이탈리아의 영향은 조각, 건축, 회화 그리고 오페라와 기악 음악에서 나타났으며 그 영향은 프랑스의 격동의 시기를 통하여 변화하였다. 17세기부터 시작된 이탈리아 음악의 유입과 수용 그리고 거부와 논쟁의 형태는 루이 14세의 치세 기간을 거치게 된다. 루이 14세의 통치 기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이미 장려되고 있던 이탈리아 음악의 유입은 루이 14세의 시대에 들어서면서 정책적으로 강력한 거부의 움직임을 보였다. 그것을 주도한 프랑스의 작곡가 륄리(Jean-Baptiste Lully, 1632-1687)는 프랑스 자국의 음악에 독창성을 부여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의도적으로 이탈리아의 음악을 배제하려 했다. 그러나 륄리의 죽음 이후에 이탈리아 음악은 재 유입되었으며 그것은 프랑스에서 이미 확고해진 륄리의 극 음악과의 논쟁으로 확산되었고 이것은 다양한 형태의 글과 비평문을 통해 지속 되었다. 프랑스 칸타타는 루이 14세 정권 말기의 프랑스 왕실의 봉건적인 잔재와 그에 따른 사회적인 모순이 팽배하던 시기에 등장했다. 그것은 이탈리아의 영향을 기원으로 하여 시와 음악 양자에 있어 모두 이탈리아의 외형적 구조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외세에도 불구하고 프랑스는 이탈리아의 시형과 음악적 구조를 프랑스의 고유한 것으로 변모시키는 모습을 보였으며, 장 바띠시트 루소(Jean-Baptiste Rousseau, 1671-1741)와 장 바띠시트 모랭(Jean-Baptiste Morin, 1667 -1745)에 의해 시와 음악의 형태가 각각 설립되었다. 루소는 이탈리아의 칸타타에서 단지 가사 적 기능을 가진 시안에서 야기되는 싯구의 유실에 관해 고심하였다. 그는 그것을 프랑스 언어에 적합하며 시적인 희생을 최소화하여 순수한 시의 외형을 보존할 수 있는 형식으로 변형시키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에 대한 결과로 레치타티브가 칸타타의 중심적인 기능을 갖게 되고 서사적인 형태의 독백으로 나타나며 에어는 레치타티브에서 서술된 내용을 반영하는 감정적인 부분의 표현을 담당한다. 또한 각각의 레치타티브에는 시의 내용을 반영하여 시를 전개시키는 기능적인 역할이 주어진다. 모랭은 비록 프랑스 칸타타를 작곡한 첫 번째 작곡가로 인지되고 있으나 그가 사용한 음악적인 어법은 이탈리아 적이다. 그러나 그의 첫 작품이 루소의 시적 형식을 따라 작곡되었음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동 시대의 베르니에(Nicolas Bernier, 1664-1734), 스툭(Jean Baptiste Stuck, 1680-1755), 캉프라(André Campra, 1660-1744), 몽테클레르 (Michel Pignolet de Montéclair, 1667-1737) 그리고 클레랑보(Louis-Nicolas Clérambault, 1676 -1749)와 같은 주요한 작곡가들은 이탈리아적인 요소 혹은 프랑스 적인 요소를 보이며 프랑스 칸타타의 특성을 발전시켰고 1713년경에는 프랑스 칸타타의 전성기를 맞게 된다. 장 필립 라모(Jean Philippe Rameau, 1683-1764)의 칸타타는 비록 그 근원이 이탈리아 칸타타의 특성에 근거했더라도 루소에 의해 설립된 프랑스 언어에 적합한 시적 구조와 그것을 최상으로 반영하는 그의 화성적인 진보를 통한 섬세한 음악 기법들로 진정한 프랑스 칸타타를 탄생시켰다. 본 논문에서는 라모의 소프라노를 위한 세 곡의 칸타타-“오르페우스”(Orphée, 1721)와 “충실한 목동”(Le Berger fidèle, 1728) 그리고 “성 루이의 날을 위한 칸타타”(Cantate pour le jour de la Saint Louis,1740)-의 분석을 통해 라모의 음악 양식을 구체적으로 살펴보았다. 분석의 범위는 시와 음악의 두 가지 측면에 중점을 두었으며 시의 내용과 형식의 분석 그리고 그것을 통한 음악적 형식과 구성과의 상관관계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러한 분석은 시의 행과 음악의 악구, 시어와 음악의 동기 또는 음정 관계로 분석의 단위를 세분화 하여 논의하였다. 각각의 곡에 나타난 특징 뿐만 아니라 라모의 음악적 양식의 변화를 이해하기 위하여 서로 다른 시대에 쓰여진 세 작품을 연구하였다. 초기 작품에서는 시의 형식과 내용이 지배적으로 음악을 구성하였으나 후기 작품에서는 시와 음악의 조화로운 균형과 음악의 형식도 함께 고려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라모는 프랑스 칸타타에서 나타나는 특징적인 기법인 시행 단위의 내적반복을 그 자신의 특유한 음악 어법으로 재구성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가장 작은 단위의 시어 또한 음악의 동기로 표현됨에 있어 시어의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다양한 선율적, 화성적 요소들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과적으로 라모의 칸타타는 시와 음악의 결합에 있어 이 두 장르의 관계를 더욱 유기적으로 강화하였으며 그의 칸타타에서 나타난 논리적이고 섬세한 시적 배려는 시와 음악의 완벽한 융합을 이상적으로 실행하였다. 따라서 이것은 프랑스 칸타타를 당시의 극 음악과 구별되는 바로크 시대의 순수한 서정 음악으로서의 미학적인 가치를 부여한다.;In French music, the 18th century has been called “Grand siècle” and among many genres of this great period, French cantata was the representative model of the lyric and pure music as opposed to the theatrical genres of the time. Music at this time could be divided into two highly opposite styles. One is the popular theatrical genres such as “comédie Ballet”, “tragédie lyrique”, and “opéra ballet”, including splendid ballet and chorus with dramatic stories, which were more concentrated on the spectacular effect than the music itself. The other was “air de cour”, inherited from the music of the 16th century, which was a simple vocal music with monophony. While neither the theatrical genres nor the simple air de cour could not developed into a mature vocal genres in their relationship between music and poetry, French cantata has developed into a chamber vocal genre that enhanced all of the musical components from these various music genres combined with the pertinent features of literary art.  During the 18th century, under the dominant influence of Italian music and culture, other nations following the politics, society and culture of Italia resulted in mixture of styles and forms in arts between and among nations. These fusion of different cultural and societal characteristics among nations influenced many fields of arts, in sculpture, architecture, drawing art, and opera and instrumental music of France as well. These influences in art were changed and modified through the ages of convulsions in France. Argument and criticism on Italian music inflow, which had been initiated since 17th century, started during the reign of Louis XIV. The composer "Jean-Baptiste Lully (1632-1687)" showed vehement refusal to the influences of Italian music and tried to establish France's own musical styles and genres. After Lully's death, however, Italian music was reintroduced, and this inflow brought a big rivalry with Lully's already established tradition of dramatic music. The arguments between the Italian and the French style were continued through writings and papers. French cantata appeared in the feudal and contradictory state of society around the end of the reign of Louis XIV. It was affected by Italian music from its foundation so had Italian style in both poetry and music. But French cantata showed great efforts to eliminate the Italian influence in order to create its own style. "Jean-Baptiste Rousseau (1671-1741)" and "Jean-Baptiste Morin (1667-1745)" were the founders of French-cantata form in poetry and music respectively. Rousseau took pain over the loss of the poetic verse which caused by having function merely as song text in Italian cantata. And he tried to have pure poetry form in close relation to the French language. As a result of his great effort, recitative being expressive narrative monologue, became the main function of French cantata, while Air carried the emotional part, as reflecting the narrative monologue of the recitative. Each recitative has its functional role of reflecting and developing the poetry. The year of 1713 was the culminating year of French cantata and composers working on French cantatas showed both Italian and French styles in their music. Morin was recognized as the first composer in French cantata but his music closely followed the Italian style. Nonetheless, his first masterpiece followed the poetry form of Rousseau. The representative composers in French cantata at that time were, "Nicolas Bernier (1664-1734)", "Jean Baptiste Stuck(1680-1755)", "André Campra (1660-1744)", "Michel Pignolet de Montéclair(1667-1737)" and "Louis-Nicolas Clérambault(1676-1749)." They all tried to develope unique French cantatas by combining Italian musical idioms with French language. Jean Philippe Rameau(1683-1764) was arguably the true developer of French cantata in employing the French poetic form with more advanced musical characteristics of harmonic idioms and various compositional techniques. He followed the poetic form of Rousseau, yet further optimized it for French language. This paper will examine Rameau's three soprano cantatas of different time period, "Orphée(1721)", "Le Berge fidèle(1728)", and "Cantate pour le jour de la Saint Louis(1740)" in order to ascerta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poetry and music. My analysis will include the contents and form of the poetry, and its relation to musical structure and form. Fragmentation of each poetic verse, then matching with musical phrases, and further poetic words with motivic or intervalic relations in music will be closely analyzed to understand the relationship between poetry and music. My analysis of three compositions will ultimately demonstrate how Rameau created uniquely French Cantatas through various attempts in his life time. In his beginning period, form and contents of the poetry prevailed music, but later, he seriously considered the harmony between poetry and music and the type of music. Rameau restructured the method of repeating poetic verse with musical word setting in his own way, establishing salient features of French cantata. Furthermore, in expressing a poetic word, the smallest unit, to a motive of music, he used various melodic and harmonic components to maximize the expression of each poetic word. As a result, Rameau's cantata maximized connection between the poetry and the music organically and logically. Subtle poetic considerations in his music enabled perfect and ideal combination of poetry and music. Above all, Rameau not only created French its own cantata tradition but also grants its aesthetic value as the genuine lyric genre of the Baroque 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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