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舊韓末 헐버트(Homer B. Hulbert)의 對韓認識과 그 活動

Title
舊韓末 헐버트(Homer B. Hulbert)의 對韓認識과 그 活動
Other Titles
(The) Thought and Activities of Homer B. Hulbert at the End of Chosun Dynasty
Authors
孫湞淑
Issue Date
1994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Keywords
구한말헐버트Hulbert인식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이배용
Abstract
본고에서는 한국에 20여년간 거주하면서 교육자·선교사·편집자·역사가·한국문화연구가 및 저술가 또한 한국정부의 고문·밀사로서 한미 두나라관계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인물 중 하나였던 헐버트의 舊韓末 對韓認識과 그 活動에 관해서 살펴보았다. 헐버트의 내한은 한국정부가 근대적 교육개혁을 위해 미국에 교사초빙을 의뢰하면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신학교육을 받은 헐버트는 "세계는 文明化되고 基督敎化"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한국에서 敎育·宣敎분야에서 활동하였고 아울러 한국에 관한 많은 저술을 국내외에서 발표하였다. 헐버트는 개항이후 열강들의 각축 속에 있었던 한국에선 가장 먼저 近代化를 위한 改革이 이루어져야 하며 이를 통해 근대화가 이룩된 후에야 비로서 한국은 自主獨立 國家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이와같은 인식 속에서 헐버트는 일찍이 서구화의 길을 걸었던 일본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태도를 가졌다. 즉 새로운 문명국인 일본은 한국의 독립을 유지시키고 근대화를 위한 개혁을 선도해 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고 아울러 기독교 전파와 미국의 극동이익 보호라는 차원에서도 일본의 우위가 더 유익하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와같은 헐버트의 親日的인 情勢認識은 러일전쟁이 시작되면서 일본의 주권침탈은 가속화되고 반면 일본에 의한 어떤 개혁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음을 목격하면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1905년 9월에 일본에 의한 소위 보호정치가 추진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일본이 서구문명국을 대신하여 한국을 근대화시키고 극동에서 미국의 이익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헐버트의 기대는 일본의 제국주의 침략성이 노골적으로 나타나면서 깨어지게 되었다. 헐버트는 더 이상 일본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 없었고 강력한 반일적 인사로 돌아서게 되면서 한국 나아가 극동문제에서 미국이 직접 개입하여 미국의 이익을 수호하고 더불어 한국의 독립을 유지시켜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리하여 1905년과 1907년 고종의 밀사로서 활동하였고 1907년 미국으로 귀국한 후에도 헐버트는 일본의 보호정치의 부당성과 잔학행위 등을 폭로하면서 미국의 한국문제 개입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이미 친일적인 극동정책을 견지하고 있었던 미국정부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개항이후의 정세 속에서 헐버트의 日本에 대한 인식은 변화하고 있었으나, 기본적으로 한국민족과 문화에 대해선 높이 평가하고 한국의 발전 가능성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바라보았다. 즉 헐버트의 對韓認識은 당시 한국은 너무나 부패해서 한국 정부를 통해 갱생할 수 없다고 보면서 적자생존원리에 의거해서 일본의 한국지배를 당연시하였던 친일적인 미국인들의 對韓觀과는 구별된다고 하겠다. 그러나 헐버트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민족적 우월주의 속에서 한국을 후진국으로 간주하여 서구문명국에 의한 문명전파를 당연하게 생각하였고 자국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였다는 점은 지적해야 할 것이다.;This study is to clarify the activity and the thought of Homer B. Hulbert who was a teacher, an eloquent clergyman, a magazine editor, a historian, an auther, an adviser and a secret envoy. In the early fall of 1884, the Korean King's request for three Americans to teach English to his young nobles reached the Department of State. On July 4. 1886, Mr.and Mrs. Gilmore, Homer B. Hulbert and Bunker reached the capital of Korea. Homer B. Hulbert did teaching and missionary work for the purpose of enlightmernt and Christianity in Korea. Also better known to those interested in East Asia than his work in any of these fields were his achivements as a cultural research pioneer. Hulbert was convinced that Korea was essential to reform itself for modernization and then she would be an independent state, So he showed good will toward Japan and believed Japan's interests are compatible with the independence strength of Korea and led her to be reformed for modernization. But his attitude toward Japan begun to be varified because Japan plundered the independence of Korea without any effort for enlightment. He declared that a protectorate over Korea was not necessary to Japanese interests and would be a serious misfortune to the Koreans. So he made his first unequivocal attack on the policy of the Government of Japan itself, by referring to the proposed protectorate as a "death blow to Korean independence". Beginning in late 1905, the use of his personal immunities and resources to help the ordinary Korean in his desperate day to day effort to defend his elemental rights in the fall of rigged Japanese justice. From the fall of 1905 he moved on from these non-political researches to his double task of convincing the world, first, that the brutality and repression practiced by Japan in Korea constituted a denial of elemental justice and opportunity to a whole nation; and, secondly that the Korean people had infinite worth as a historic cultural entity and distinctibe constributions to make to the life of the world community as a free and progressive people. The second of theses efforts was the more important, although oversthadowed in many of his campaigns by the necessary preliminary of "unbluffing the world regarding the true aspect of the militaristic Japan of his day as seen from the position of a subject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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