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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0年代 美國 黑白 關係에 대한 一考

Title
1880年代 美國 黑白 關係에 대한 一考
Other Titles
(A) Study on Racial Relationship between Blacks and Whites in the 1980's in Georgia
Authors
孔惠貞
Issue Date
1994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Keywords
1880년대미국흑백관계미국Georgia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강철구
Abstract
本 論文의 목적은 1880년대 조지아州의 인종관계를 고찰하는 것이다. 남북전쟁 이후 새로운 시민으로 등장한 해방흑인들의 존재는 新 南部 사회에서 새로운 정치, 사회, 경제적인 변수로 등장하였다. 변화된 사회경제적 관계속에서 격렬한 인종갈등이 표출되었던, 1890년대는 새로운 인종관계의 전환점이었다. 인종 갈등 양상이 두드러지게 표출되는 지역은 흑인인구가 집중하고, 면화경제 체제가 지배하는 딮사우스(Deep South)였다. 本稿는 딮사우스 인종관계의 한 예로서 조지아州를 고찰하여, 1880년대가 '재건시기와 1890년대 사이의 과도기'였을 뿐 아니라, '상대적인 인종관계의 안정기'였음을 증명하려 한다. 1870년대 초에 정권을 장악한 조지아州 부르봉 민주당원들은 자본주의적 이해관계를 가지고, 흑백관계의 조화와 안정을 꾀하였다. 이들의 인종정책의 핵심은 사회적 관계에서의 흑백분리를 실시하여, 불필요한 흑백갈등의 소지를 제거하고, 사회적인 안정과 통합을 도모하려는 것이었다. 新 南部 시기의 정치적인 혼란속에서 조지아州 민주당원들이 정권을 안정되게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백인 우월주의'에 입각한 인종정책과 흑인들에 대한 참정권 제한을 통해서였다. 흑인 참정권의 제한은 부르봉 민주당원들의 세력기반을 안정시켰고, 결과적으로 하층 백인들의 참정권도 제한하였다. 19세기말에 흑인들은 여전히 사회의 최저의 빈곤층이자 최하층 계급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인들은 흑백분리 정책속에서 그들만의 사회를 강화시키고자 꾸준한 노력을 계속하였다. 흑인 인구의 증가는 흑인 사회의 중요한 기반으로 작용하였다. 흑인들의 교육과 종교적인 성장은 두드러진 성과를 보여주지는 못 했지만, 흑인 사회를 이끌어갈 새로운 흑인 엘리트를 배출하였고, 흑인들만의 '자조'와 '자기향상'의 기반을 제공하였다. 이러한 변화는 戰前과는 다른 새로운 것이었고, 사회 조직에서의 흑백 분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의 폭을 감소시켰다. 1880년대에 이르면, 흑인의 대부분은 면화생산에 종사하면서 소작체제에 편입되어 있었다. 집단 노동계제에서 스쿼드 체제를 거쳐 소작제 정착에 이르는 과정은 흑인들에게 이전 시대보다 많은 자율성과 수입을 보장해 주었다. 소작제는 분명히 남부 경제의 효율성의 측면이나 흑인들의 경제적인 성장면에서 낙관적인 제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1880년대에 이르면, 적은 수였지만 흑인지주가 등장하였고, 흑인 전체의 토지 획득량 역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주었다. 흑인들의 자율성의 증가와 경제적인 자조의 노력은 흑백갈등의 새로운 변수로 등장하였다. 1880년대 인종분리책이 조화로운 인종관계를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던 반면에, 1880년의 린치(私刑)는 대립적인 인종관계를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新 南部 시기에 출현하는 린치는 재건시기보다 사회경제적인 성격이 두드러졌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1890년대로 갈수록, 린치를 행하는 집단의 규모와 성격에 있어서, 개인적인 성격보다는 사회 전체적으로 공유하는 양상으로 나타났다. 린치의 성격과 발생횟수에 있어서 지역적으로 다른 양상을 보이기는 하였지만, 계절적으로 면화경제의 주기와 연관되어 있었다. 흑인에 대한 린치는 흑인을 경제적 경쟁자로 하는 하층 백인뿐아니라 백인 엘리트까지도 참여한 사회적인 현상이자, 흑인 노동력에 대한 통제책이었다. 흑인뿐아니라 부르봉 민주당원, 인민주의자와 자유주의자들이 린치를 비난하였고, 이에 저항하였지만 1890년대 이후 등장하는 인종적 극단주의를 막아내지는 못하였다.;The object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relation between whites and blacks in the 1880's in Georgia. After the Civil War, freedmen as new citizens became new variables in new political, social and economical matters. The change in the socio-economical circumstances brought about by the war, led to fierce racial conflicts in the late 19th century. Thus the 1890's was a new turning point in racial relations. It was the Deep South where the most fierce racial relation was revealed. The Deep South was where black population was most concentrated and Cotton ruled the local economy. This study examines the race relation in Georgia as an example of the Deep South. The main purpose of this essay is to show that the 1880's was not only a transitional period between Recontruction and the 1890's, but also a relatively stable period in the relations between the races. In the early 1870's the Republican rule was brought down by Bourbon Democracts in Georgia who had capitalistic interests and sought to stable relations between the races. The core of the racial strategy was to separate the races in society, to remove unnecessary contacts between the races and then to keep the social stability and integration. The key factor to the stability of the Bourbon power during this period was in keeping the principle of White Supremacy and in disfranchising the black. Disfranchising of the black finally kept the lower-class whites from the political power. In the 188O's, Blacks were still the poorest and the lowest class in the society. Nevertheless, blacks tried to make their community stronger under the policy of separation. The black population increased steadily giving strength the foundation of the black community. Although there was not much improvements in either education or religion were not remarkable, the appearence of black elites provided the first stage for self-help and selp-improvement. Although these changes were new circumstances, brought by the separation of races in social organizations reduced the range of mutual understandings. After slavery, blacks who mainly produced cotton entered tenacy which appeared as a new labor system ruled the farming in Georgia. Through gang labor and squads, the settlement of tenacy increased the autonomy and income of the black. Certainly tenancy didn't promise an optimistic future for either the growth of the economy or efficient farming. By the 1880's, however, a few black landlords and their land-ownings increased steadily. The increasing autonomy and effort for self-help of the black became a new variable in the society. Though Separation of the races was for the harmony of racial relationship in the 1880's, Lynch-law gives a good example of underlying the conflicts. The Lynch-law revealed a more socio-economic character in the New South compared to the Reconstruction period. And this character appeared as a more socially-defined form in sizes and in the natures of lynch mobs than before the 1890's. In spite of the variations in the frequencies and natures, lynchings were related to seasonal cycle of the cotton economy. Lynching whose participants consisted of white elites as well as lower-class whites was a socially-shared product and a kind of labor control. Nevertheless, Bourbons, Populists, liberalists as well as blacks condemned and resisted it, noboby could defeat the racial extremists in the 18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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