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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時代의 契會圖 硏究

Title
朝鮮時代의 契會圖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the Paintings of Literary Gathering in the Chosoˇn Dynasty
Authors
河英雅
Issue Date
1993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Keywords
조선시대계회도16, 17세기 작품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兪俊英
Abstract
The purpose of this is to look into the formative characteristics of each painting of literary gathering which had been popular in the early part of Chosun Dynasty by classifying them into two groups; Kiro (literally translated, 60 or 70 years old people) painting and Munin (calligraphic) painting. It is revealed that each group has differently style depending on its nature. Emphasizing the background scenery rather than records of gathering, the Munin paintings have scenes which are expressed as if they had been figures in detail and have similar structures and forms according to the kinds of gatherings. Seemingly, It was because they were produced in harmony with then popular patterns and the patterns had changed in accordance with the development of landscapes produced in that period. Meanwhile, the Kiro paintings totally disregarded background sceneries or, if any, expressed them very simply, but highlighted the characters present at gatherings and parties emphatically. Not only the fine brush technique to draw outlines and to color pictures beautifully but also the perspective green-and-blue scenery are the typical form of every recording pictures including 儀軌圖 whose composition also seems to be similar one another so that they might have some fixed frameworks: For example, a feature in one picture and his or her surrounding furnitures appears to depend on the nature of the Kiro gathering. Therefore, Munin and Kiro paintings seem to have develop their own forms: Especially, the former which emphasized the aspects of recording and background sceneries that were rich in landscapes, are greatly instrumental in studying the landscape styles in the paintings of the Choson Dynasty which have been rarely left. By the end of the 17th century, there appeared poor works comparing to the maturing level of landscape paintings. It tells that the practices of Gatherings had been reduced gradually but changed to the sort of Versification Meeting which thought much of free style and non-formality. It also related with the fact that even the paintings of literary gathering which had been drawn in fixed styles with painting tools became to be replaced with realistic landscapes by painters who did not stick to any rile, a fact which should be further studied in terms of genre paintings.;조선시대는 건국초 부터 중요한 국가정책의 일환으로 유교적 윤리도덕에 기반을 둔 耆老政策을 적극추진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바인 유교주의 정치이념을 실현하고 중앙집권적 지배체계를 안정적으로 유지 발전 시키고자 했다. 이에따라 中國의 故事에 그 전거를 두고 이루어진 고려시대 耆老會, 耆英會의 전통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국가제도로 자리잡으면서 太祖 3년(1394)에 耆老所가 설치되었다. 본래 관직을 致仕한 70세 이상의 元老 士大夫들이 풍류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스스로 조직했던 자발적이고 자유로왔던 고려시대의 耆老會가 조선시대에는 朝廷의 지원을 받는 敬老機構로 제도화 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耆老會, 耆英會를 본받아 각종 契會가 성행하였는데 당시 문인들의 풍류적 기질과 부합하여 16세기에 성행하였음을 문인들의 문집에 남아있는 기록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契會圖는 耆老會, 耆英會를 비롯한 문인들의 契會를 기념하고 기록한 그림으로 대부분 화원에 의해 그려졌고 참가계원의 수 만큼 그려서 각자 한장씩 나누었으며 일정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 上段에는 전서체로 契曾의 명칭을 적고 중단의 화면에 산수를 배경으로 契會場面을 圖示하며 下段에는 참석자들의 姓名, 生年, 科擧及第年度, 位階, 官職등의 略傳을 적은 座目을 마련하는 三段의 독특한 형식을 지니는 이른바 契軸形式이다. 이러한 契軸形式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조선 특유의 고안으로서 契會圖 뿐만 아니라 기록을 요하는 기타 궁궐의 행사를 그리는데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契軸形式은 조선중기를 거쳐 후기로 넘어 가면서 보다 편리하게 펴볼 수 있고 기록과 보관이 쉬운 契帖形式으로 바뀌어 가는 경향이 있는데 契帖의 경우도 契會場面을 비롯한 그림과 함께 전서체로 契會의 명칭을 적고 座目과 함께 참석자들의 時文과 序文등이 수록되었다. 또한 후기에는 契帖形式과 함께 屛風形式으로 제작된 경우도 있는데 이 경우에도 한폭에는 제목과 序文, 그리고 座目을 반드시 기록하고 있다. 본 고에서는 계회도를 耆老會圖와 一般 文人契會圖로 나누어 각 작품의 조형적 특성을 고찰해 보았는데 契會의 성격에 따라 양식적 특성이 다르게 나타남을 알 수 있었다. 文人契會圖는 契會의 기록이라는 측면 보다는 배경산수를 중시하여 契會場面은 마치 點景人物에 가깝게 표현되고 있으며 시대에 따라 혹은 契會의 종류에 따라 유사한 구도와 양식을 보이는데 이는 유행했던 패턴이 있어서 거기에 맞추어 계회도가 제작된 것이라고 생각되며 그 유형의 변화는 대체로 조선시대 산수화의 흐름에 따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하여 耆老會圖를 보면 배경의 산수는 완전히 무시되거나 간략하게 그려지는 반면 계회장면과 참석자들의 인물표현이 중점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세필로 윤곽선을 그리고 곱게 채색하는 기법과 원경에 나타나는 靑綠山水등은 儀軌圖를 비롯한 각종 기록화의 전형적인 양식이며 그 구도 또한 耆老會의 종류에 따라 器物과 人物의 배치가 유사하여 일정한 도상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므로 文人契會圖의 耆老契會圖는 契會의 성격에 따라 서로 다른 양식을 형성하면서 발전하였으며 특히 記錄畵이면서 배경산수가 강조되어 산수화적 요소가 풍부한 文人契會圖의 경우는 繪畵作品史料가 빈약한 조선초기의 山水畵風을 고찰하는데 도움을 준다. 17세기 말에 이르면 당시 산수화의 발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준이 떨어지는 작품들이 나타나는데 이는 契會의 풍습이 점차 사라지면서 보다 자유로운 雅會, 詩會등으로 변화하고 이에따라 일정한 형식으로 畵員에 의해 그려지던 契會圖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문인들에 의해 그려지는 眞景山水畵로 대치되는 것과 연관이 있으며 이는 풍속화적인 측면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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