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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莊館 李德懋의 文學硏究

Title
靑莊館 李德懋의 文學硏究
Other Titles
(The) Study of ChungJangKwan Lee Deokmoo's Literature
Authors
李明珍
Issue Date
1983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Keywords
청장관이덕무문학국어국문학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이혜순
Abstract
Deokmoo Lee was are a listic writer of the Yi-Dynasty of old Korea. He was a concuhinary descendent of the Royal Family of the Yi-Dynasty, so he had two contrary characterstics in his origin. His works contain the various value systems which coexisted at the time of the transition of the value system derived from the doctrines of Sung Confucianism to those of the Modern age. In this article I intend to specify his literary characteristics which adapted him to the circumstances of the changing society which orig inated from the conflict of two antinomic value systems. His life can be classified, irrespective of childhood, into two stages. The first period, which was up t o the age of 38 years old, can be called his "creating age" when he engaged in studying for the government service examination and in writing most of his works. The second period, which was after 39 years' of age, was called his censorship age, when he was active as censor and magistrate of a county, etc, and he accomplished bibliographical works. He found fault with both Confucianists who had endeavoured to count on name and substance in the age of the Han-Tang Dynasties of China, and those who had engaged in studying the "basic principles" and the "atmospheric forces of nature" in the age of the Sung-Yuan Dynasties of China. He thought that the most ideal Confucianism was the "Realistic Confucianism" which combined both of the1 abve mentioned viewpoints. His viewpoint of Realistic Confucianism was to replenish the shortcomings of Confucianism by means of bibliographical study. His philosophy was based on dualism. He made adistinction between the 'basec principles' and the "atmospheric forces" on account that the former is an unchanging unity, but the latter is a changing diversity. He was on a different footing beteen prose and poetry. In the sphere of prose he maintained the rationalistic view that the intentis principal and style is subsidiary but in the realm of poetry he insisted that nothing can exist without the "atmospheric force". So his poetry allowed the "atmospheric force" to act freely apart from the "basic principles". His poetry had features quite his own; he saw Nature as an object of observation, andcomprehended the mysterious cosmos and the natural law through the medium of intuition ; thus he expressed the instantaneous impressions of Nature with sensitive language. The world of his poems is focused on Nature rather than being connected with public morals and tempers as objects of observation. As to the mystery of the universe and principle of all creation, he tries to express an instant impression catched by an immediate perception with sensitive lauguage. His prose can be seen outwardly not to leave the region of "principle", and in fact all his 12 biographies remain those of history in the realms of form and contents; but internally we can see his outstanding writer's consciousness, and that his characteristic aspect is to describe in a different way through ranging over the extensive literature of all ages and countries. In the theory of his poems, he doesn't have prejudice or intervention that might be different from many factors like ages, countries, ranks and characters which were introduced by the introduced by the literature critics. He tries to find merit in the poems written by traitors and thinks that a good poem comes from a good environment or circumstances. He imagines that this world might be compared to an enomorous carvas, that is a creation of a painter; and the phenomena of nature are products of great painting ski11. He thinks that a good poem is a poem whose content is good. He highly appraises SakJang Wang (王士禎) and has a good opinion of the famous men like SukWang Lee (李□光), JeHyun Lee (李薺賢) and YongHyu Lee (李用休). Even though he outwardly shows strong disapproval of novels, he has united both the opinious of approval and disapproval of novels handed down from the whole Yi-dynasty. What he objects to about the modern novel styles is their content contrary to ethics. Elements of his affirmation can be seen in his admiration of the realistic quality and writer's consciousness in the literary style of novels. His ground of Zen together with the circumstances of his life construct a characteristic world of poems as well as giving an opening to the theory of poetry which might have given an impetus to to the theory of those day's poetry that has fallen in either archaic style or Glorius Tang style. As mentioned above, we can understand that the two-sided characteristic beginning of his birth was extended to the world of literature and learning, and that he tried to search for new contents in the midst of traditional form. With affirmative eyes, we realize that he was in a position of intermediator between aristocratic and bureaucratic literature and characteristic literature. He, however, denies both contradictory sides to which he never belonged and which he couldn't help but escape only to his own world that gave a stimulus to both other worlds. Therefore, we can understand that his trouble was, in some meaning, not only a mere problem of his own but also a chronic problem of those days with an eye of magnification and curtails the general phenomenon in those days.;朝鮮朝 英正時代는 中世的 봉건사상에서 벗어나 近代로 移行하는 과도기로서, 實學과 委巷文學의 전성기이며 낡은 사상과 새로운 사상이 혼합된 시대이기도 하다. 實學思想 또한 시대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朱子學과 脫朱子學, 復古主義와 미래지향, 儒學이면서 改新儒學 등의 兩面性을 내포하고 있다. 朝鮮後期의 문단은 크게 載這的 文學觀을 주장하는 官僚文人群과 個性的 文學觀을 주장하는 實學者文人群으로 나뉘어진다. 이 두 文人群은 각각의 일관된 주장은 없고 양편이 다 다른 편의 文學觀을 조금씩 共有함으로써 文學史的 혼란기임을 보여준다. 따라서 이 시기의 文人은 누구나 載道的 文學觀과 個性的 文學觀을 조금씩 동시에 가지고 있어 文學觀의 兩面性을 보이는데, 文人 각 개인에 따라 그 樣相이 각각 다르다. 本稿는 實學者文人群 중 靑莊館 李德懋를 택하여 그 兩面性의 양상을 살펴 보았다. 청장관은 李書九·柳得恭·朴齋家와 詩4大家로 일컬어졌고, 李書九 대신 徐理修를 넣은 4檢書의 1人이기도 하다. 靑莊館은 定宗의 후손이면서 庶族인 점, 39세까지는 여러 계층의 인물들, 특히 燕岩과 交遊하며 文筆生活을 하였으나 그 후반은 檢書官·縣監 등 末職이기는 하지만 官吏로서 일생을 마친 점, 그의 詩論은 中國 王士禎의 神韻說을 도입하여 당시의 詩風을 일변시켰을 만큼 새로운 것으로 인식되었으나 小說을 배격하여 載道的 文學觀을 보인 점 등에서 兩面性을 감지하게 하였다. 청장관의 실학관은 實學의 뜻을 「朱子大全」에서 따온 正祖의 實學觀과 일치한다. 道를 理·性·本·善·유일한 것·불변·사람마다 같은 것 등으로 보고 文章을 氣·末·才·惡하게 하는 것·사람마다 다른 것·改革해야 하는 것으로 보아 朱子學의 2元論을 고수하였다. 그는 儒學을 理氣心性·名物度數ㆍ考證著述로 나누고, 漢唐에서는 名物度數에만, 宋元의 儒者들은 理氣心性에만 치우쳐 유학 본래의 뜻을 잃었다고 보고, 原始儒學의 經典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서 古를 배워 今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中庸」에서의 天을 善性을 命하는 주체가 아니라 일정한 度數로 인식하고, 性을 固然·當然, 命은 至公無私, 率은 自然의 意思에 어긋나지 않음, 敎는 所以然을 밝히는 것으로 조심스럽게 해석하여 朱子註와는 각도가 다른 해석을 시도하였다. 文章을 小技로 보면서 詞人之文과 儒者之文으로 나누었고, 文章을 農事에 비유하여 가장 중요하고 어려운 것은 意思인데 老農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그의 思想 중 朱子學에서 탈피한 면은 詩文學에서 수용되어 妙悟를 時의 本質로 보았고 朱子學을 고수한 면은 그의 「傳」에 수용되어 載道之器로서의 문학으로 표현되었다. 妙悟說은 詩의 세계를 天機의 조화를 얻는 심오한 깨달음의 경지로 보고, 詩人의 靈感이 발휘되어 神妙한 詩的 표현을 이루어 내는 것을 그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는 것으로 해석하려는 詩論이다. 이는 宋代 詩人 嚴羽의 「滄浪詩話」에서 시작되어 明末 王士禎에 의해 神韻說로 발전되었다. 청장관은 31세에 처음으로 王士禎의 「帶經堂全集」을 보고 감명을 받았고, 「淸脾錄」은 神韻說에 입각한 時評이지만, 청장관의 초기작품에 보이는 神韻·妙悟의 경향을 볼 때 「滄浪時話」나 許筠의 詩話에서 상당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詩는 깨달은 바로 근거를 세워, 麻姑와 같은 손톱으로 통쾌하게 造化의 굴속에 있는 것을 긁어내어, 남들이 표현하기 어려운 경지에서 터득된 것을 잘 形容한 것이 좋은 詩라고 보았다. 이러한 표준에 맞는 詩들이 반드시 詩人의 身分·생존시대ㆍ國籍·男女老少·詩人의 性情에 구애되지 않음을 보고 詩가 性情의 발로라는 載道的 文學觀의 견해에 懷疑를 표시하였다. 이는 天ㆍ性 등에서 倫理的인 요소를 제거함으로서, 天地萬物이 事物化하여 각각 物的 本質과 物理的 作用을 드러내게 한 그의 사상과도 통하는 것이다. 「淸脾錄」에 나타난 詩評의 기준은 經書·性情을 무시하지 않았고 用事·聲律을 배격하지 않았으며, 운치 있고 조리 있으며 담백하고 정밀하여 그림같은 詩를 존중하였다. 표현이 적절한 詩語·속태를 벗어난 경지·體物에 공교한 詩도 존중하여 評詩의 공평박아함을 보였고 司空圖의 詩品을 계승하였다. 청장관은 大學之道를 찾아볼 수 없는 散文은 일차적으로 가까이 하기를 경계하였다. 그러나 小說이라는 명칭으로 배격한 것은 근대적 의미에 가까운 小說인 傅奇·演義·人情小說이었고 이들이 道를 해치고 나라를 망치게 될 것으로 보아 배격하였다. 小說에서 文體의 교묘함은 긍정적인 요소로 보았으나 큰 가치를 두지는 않았다. 小說에서 道의 문제를 고려한 것은 詩보다 散文에서 효용성을 찾는 전통적 문학관과, 王族의 혈통으로서 전통성을 고수하려는 의식의 결과라고 보았다. 청장관의 詩世界는 經書·樂府體·畵題·御命에 의한 詩·廻文體·三五七言詩 등이 등장하여 載道的인 詩와 個性的인 詩가 뒤섞여 있다. 이들을 用事·風敎·性情·妙悟와 神韻의 요소로 나누고 用事·風敎·性情은 載道的 文學觀, 妙悟·神韻은 個性的 文學觀의 결과로 보았는데 用事에서는 形容이 잘된 것을 인용하였고 風敎에서는 道德的 규범보다 생명과 직접 관계된 면이 강조되고, 친척간의 恩義없음을 책망한 점등에서 實用性이 강조되었다. 性情은 그의 시세계에 바탕이 된 선비정신이 性情之正을 추구한 만큼 시 세계의 기조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이따금 庶民으로서 받는 차별에 대한 울분을 토로한 것도 있었다. 그의 시세계의 繪畵性·敍景性·感覺性·色彩感 등은 妙悟와 神韻의 특징으로 보았다. 山川草木·蟲魚의 이름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詩經의 風의 정신을 본받은 것이다. 12篇의 傅은 忠孝烈을 드러낸 것으로, 숨은 德을 드러내고 局外者의 입장에 있는 사람이나 미천한 사람의 본받을 만한 점을 기록하는 「史記」列傳의 정신과 「三國史記」의 立傳 意識이 계승되어 있어, 자신이 배격한 것과 같은 小說類에는 속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立傅된 인물의 대부분에 作者의 개인적인 소망이 투영되어 있다고 보이는 점이 그의 傳의 특색이다. 文學史的 意義는 唐과 宋, 宋과 明의 대립되는 요소를 종합하면서 동시에 벗어난 데서 찾아보았다. 宋은 載道的 文學觀, 唐·明은 個性的 文學觀과 연결되는 것으로서 靑莊館의 文學은 性情之正을 추구하는 요소와 妙悟를 추구하는 요소가 같은 비율로 本質로서 존재한다는 데 특징이 있다. 청장관의 文學觀의 兩面性은 문학관을 낳은 사상의 양면성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양면성은 現實과 理想, 物과 神, 知와 行이 일치하는 세계를 지향하였으므로 표면적으로 더욱 두드러진 양상을 드러내었다고 보았다. 그 결과인 작품세계, 특히 詩世界에 있어서 妙悟를 추구한 면은 현대 Imagist의 시세계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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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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