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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세종조 궁중정재 창사에 나타나는 예악사상(禮樂思想) 연구

Title
조선 세종조 궁중정재 창사에 나타나는 예악사상(禮樂思想) 연구
Authors
김율희
Issue Date
2002
Department/Major
대학원 무용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김명숙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 세종조에 이루어진 무악정책(舞樂政策)과 궁중정재 창사에 나타나는 예악사상(禮樂思想)에 관하여 고찰한 연구이다. 연구방법으로는 정재와 관련된 1차적 자료라 할 수 있는 『세종실록(世宗實錄)』,『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악학궤범(樂學軌範)』 등 원전을 참고로 기존의 연구와 종합하였으며, 예악사상이 대표적으로 설명되어 있는『예기(禮記)』를 중심으로 예악사상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기술하였다. 유교정치내에서의 예악사상은 도덕적, 문화적 교화수단으로, 조선 전기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할 때 그 중요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조선은 고려를 멸하고, 숭유억불 정책을 기초로 성리학적 이상사회를 표방한 유교국가이다. 조선전기는 이러한 유교정치사상의 정립을 위하여 예와 악을 통해 질서와 조화의 개념에 중점을 둔 예악사상을 표출하고자 노력한 시기이다. 이 시기의 예악사상은 악가무가 하나로 일체된 궁중정재를 통해 표출되었는데, 유교정치사상이 정재라는 수단을 통해 표출됨을 알 수 있다. 조선건국의 정당성과 그 공덕을 춤과 노래로서 밝히고자 한 이러한 노력은 세종조에 이르러 정점에 도달하게 된다. 따라서 세종조 창제된 정재의 창사 내용을 분석하면, 정재를 통하여 예악사상을 표출하고자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창제된 「하황은」(荷皇恩), 「봉래의」(鳳來儀), 「보태평」(保太平), 「정대업」(定大業) 정재의 창제 배경과 창사 내용을 살펴본 결과 첫째, 「하황은」은 사대사상이 깊이 내포되어 있는 정재로, 창사 곳곳에서 군신관계로서의 사대의 예를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하황은사에서 조선 임금과 백성들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의 몸가짐으로 명과 명 황제의 덕을 노래와 춤으로 칭송하고 있다라는 사대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예사상의 분(分)의 원리에 기초한 천자국과 제후국 사이의 군신의 예를 정재 창사를 통하여 극진히 표현한 것이다. 둘째, 「봉래의」는 용비어천가를 내용으로 하는 정재로, 용비어천가의 여러 악장을 춤과 춤 사이에 계속해서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봉래의」창사에서 나타나는 내용은 조선건국의 터를 잡은 성군들의 공덕이 영원히 이어질 것이라는 칭송을 담고 있다. 여기에서 나타나는 예악사상은 정치와 음악은 서로 상통한다는 것으로, 좋은 음악과 춤으로 국가의 질서와 조화를 표현하고 있다. 이로써 나라가 태평하며, 온 백성 또한 평안하다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보태평」과 「정대업」은 태조와 태종의 문덕과 무공을 칭송하는 정재로 조선건국의 여러 선왕들의 공덕을 모두 어우르는 건국 찬양가를 위한 세종의 의지로 창제되었다. 그러므로 이 정재는 태조와 태종의 조선건국의 정당성과 그 어려움을 형용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건국의 찬양을 좋은 노래와 춤으로서 받치고자 했던 당대의 노력 즉, 창제과정과 창사의 내용에서 예악사상을 살펴 볼 수 있다. 이상과 같이 조선 세종조는 예악의 제도화를 통해 ‘정재’라는 무악의 한 형식을 빌려 이상사회건설을 위한 예악사상을 표출하고자 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정재 창사를 통하여 조선건국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선왕들의 공덕을 칭송하고자 했던 세종조의 노력과 업적은 어느 시대보다 문화적으로 높은 가치를 평가내릴 수 있으리라 사료된다. 따라서 본 연구는 한국무용사 연구에 있어 큰 발전을 이룩한 세종조의 무용을 유교정치사상중 예악사상을 기초로 고찰함으로서 정재의 개념과 창사의 의미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이루어졌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 This dissertation is a study on the development of the music-dance policy during the King Sejong, Chosun Dynasty, and the Li-Ak thought that is shown in the court music-dance. For the method of study original texts such as the "Sejong-sillok", "Kukcho-oreyei", "Li-Gi", "Akhak-Kwebom" etc were used as reference and synthesized with existing studies. Considering the situation of the early Chosun period, the Li-Ak thought in the Confucian politics is important because it was used as an educational means of piety and culture. The Li-Ak thought during this period was expressed through the court music-dance, and it is clear that the means for Li-Ak thought was court music-dance. The effort to manifest the legitimacy of Chosun s founding and piety through dance and music reaches its height during King Sejong s time. Therefore, when analyzing the court songs of the court music-dance created during the Sejong period, it is clear that court music-dance was used as a means to express the Li-Ak thought. The following are the conclusions drawn from the researches made on the creations origin and the content of the court songs of the court music-dance Hawangeun, Bongraeui, Botaipyung, Jongdaeup created during this period. First, Hawangeun is a court music-dance in which toadyism is deeply rooted, therefore the virtue of submission in the relationship between a sovereign and the subject relationship is described in several parts of the court song. Especially in the Hawangeun-Sa, the Chosun King and people praise through the music and dance in manners revealing their heartfelt respect(禮) for the Ming Kingdom of China and its emperor s piety. Second, Bongraeui is a court music-dance that has Youngbieachan-ga based as its content, and it is characterized by the several chapters of the Youngbieachan-ga repeatedly sung in between the dances. The contents in the court song of Bongrae are the pieties of the good and wise kings that set the foundation for Chosun Dynasty s founding, and the praise that they will go on forever. The Li-Ak thought shown here is based on the thought that music created during peaceful times has a harmonious tone and that the legitimacy of the Chosun foundation and reign of peace can be expressed through such good music. Third, Botaipyung and Jongdaeup are court music-dances praising King Taejo and Taejong s distinguished literary skills and courage. This court music-dance was created by Sejong who indicated that there were no chapters that praised the pieties of the wise kings that founded Chosun, and sought to create an chapter that combined these praises. This court music-dance describes the legitimacy of Taejo and Taejong‘s founding of Chosun and the difficulties that they went through in the process of founding. The Li-Ak thought is clearly shown in the efforts of that time that sought to support its praises through good music and dancing, or in other words, the process of creation and content of court music. As the above, the Sejong period during the Chosun Dynasty, through the institutionalization of Li-Ak, sought to express the thought for the establishment of an ideal society of "Li-Ak" through the court music-dance. In particular, the effort and achievement of the Sejong period that sought to prove the legitimacy of Chosuns foundation and praise the wise kings pieties, can be evaluated highly in the context of cultural history. Therefore, this study is meaningful in that it examined the dance during the Sejong period, which made great advancements in the Korean dance history, from an ideological perspective, and that an in depth examination of the concept and meaning of court music-dance was carried ou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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