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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리우스의 프린키파투스(Principatus) 연구

Title
티베리우스의 프린키파투스(Principatus) 연구
Authors
이지은
Issue Date
1999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
Abstract
티베리우스가 프린켑스로서 재위했던 약 23년간은 전임자인 아우구스투스 (Augustus)가 확립해 놓은 새로운 정치체제가 지속될 것인지 아니면 과거의 혼란상태로 되돌아가게 될 것인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중요한 시대였다. 전통적으로 티베리우스의 시대는 전반기에는 프린켑스의 위선과 잔인함이 감추어져 있었기 때문에 원로원파의 공정한 관계가 유지되었지만, 후반기에는 세야누스의 몰락, 황실내의 암살, 원로원 의원들의 고발과 처형으로 공포에 쉽싸였다고 서술되어 왔다. 그리고 이러한 타락의 주원인은 프린켑스가 감추고 있던 모든 악덕을 폭로했기 때문이라고 설명되었다. 필자는 이 글에서 위와 같이 티베리우스를 위선자로 평가하고, 그의 치세 말이 공포정치였으며 그 이유는 프린켑스의 타고난 본성이 폭로되었기 때문이었다는 고대사가들의 해석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티베리우스의 원로원에 대한 태도와 정책을 그가 당면한 정치적 기반과 관련하여 고찰함으로써 전시대와의 연속성과 함께 그 차이점을 발견해보고자 한다. 이를 위해 티베리우스와 그의 시대를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들을 고려해봄으로써 재조멍해보려고 한다. 먼저 프린켑스가 되기 전 티베리우스의 활동과 아우구스투스의 계승계획에서 그가 차지하고 있던 위치를 살펴봄으로써 그가 프린키파투스라는 새로운 체제를 어떻게 수용하였는지를 구명해보고자 한다. 다음으로는 A.D. 14년 9월17일의 계승토론 과 티베리우스가 정책결정과정에서 보인 구체적인 모습들을 통해 원로원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계획을 밝혀보려고 한다. 한편 티베리우스 치세 동안 황실내의 갈등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변화되어 갔는지 살펴보고, 이러한 변화가 티베리우스와 원로원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 가늠해 볼 것 이다. 공화정의 명문 귀족가문 출신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체제에 타협하고 협조하였던 티베리우스는 젊은 시절에 로마의 안정과 평화를 위해 성실히 봉사하였다. A.D. 4년에 운명의 반전으로 후계자의 위치에 오르게 된 뒤로는 충실하게 계승의 절차를 밟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정작 A.D. 14년 계승할 당시의 상황은 그에게 유리하지만은 않았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는 전임자의 완전한 지지를 받지 못했으며, 어머니 리비아와 아우구스투스 사이의 타협으로 프린켑스직을 이어받게 되었다는 평판을 듣고 있었다. 더구나 그의 지위에 도전할만한 강력한 경쟁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이같은 치세 초반의 어려움은 티베리우스의 프린키파투스에 대한 계획수립에 영향을 주었다. 티베리우스는 기본적으로 아우구스투스의 체재를 그대로 유지시켜가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티베리우스가 처해 있던 상황은 아우구스투스가 당면했던 현실과는 다른 것이었고 바로 이 점이 티베리우스로 하여끔 전임자와는 다른 면모를 가지도록 하였다. 티베리우스는 지속적으로 견제해야 할 세력을 의식하고 있었고 통치권의 정당성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원로원의 지지와 승인을 위해서는 그들이 용납할 만한 태도를 견지해야할 괼요성을 느졌을 것이다. 그러면서도 프린켑스의 권위와 영향력에 손상을 주지 않는 것으로서 그는 겸손(moderatio)과 시민으로서 행동하는 덕목(civilitas)을 실천하였던 것이다. 그 점은 티베리우스가 실제 원로원 정책에 있어서도 명목상으로는 원로원의 기능을 확대시켜 주면서, 한편으로는 자신의 영향력과 권력행사를 크게 주저하지 않았다는 것으로도 알 수 있다. 위와 같은 체제에 대한 계획은 티베리우스에 의해 전치세 내내 비교적 일관적으로 실천되었다. 그런데 왜 그의 후반치세는 어떤 프린켑스의 통치보다도 전횡적인 것으로 알려져 왔을까. 이는 티베리우스가 처해 있던 정치적 기반과 그를 둘러싼 주변과의 갈등관계를 고찰해 봄으로써 보다 명확한 이유가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치세 전반기에는 후계자를 둘러싼 갈등이 노골화되지 않았다. 정통성과 경험을 모두 겸비한 게르마니쿠스가 살아 있었고, 티베리우스는 그를 위협적인 경쟁자라기보다는 자신의 치세를 안정시키는데 도움을 주는 후계자로 대우함으로써 치세의 안정을 도모하였다. 그의 사망으로 이같은 안정을 파괴하게 될 황실내부의 분열의 기미가 보였으나, A.D. 23년까지 드루수스가 살아 있고, 아직 세야누스가 내분을 악화시킬 만한 세력을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겉으로 보기에는 평온한 상태가 지속되었다. 그러나 게르마니쿠스와 드루수스의 사망은 티베리우스와 황실을 경쟁과 의심의 장으로 몰고 갔으며, 아그리피나와 프린켑스의 갈등심화, 세야누스의 야망과 음모로 상황은 보다 심각해졌다. 아그리피나의 추방과 사망, 세야누스의 처형으로 원로원 사회는 공포에 휩싸였으며, 프린켑스의 카프리 칩거는 분명 그들의 공포를 부추기는 또 다른 요인이었다. 그러나 AD 29년 이후 티베리우스의 행동은 그가 극도의 잔인함을 폭로했다고 평가받을 만큼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세야누스의 물락은 반역혐의 때문 이었고, 그와 관련을 맺지 않았던 원로원 의원들이 드물었던만큼 그 파장이 컸다. 물론 티베리우스토 연루된 자들의 처벌을 원하였을테지만, 그보다 다른 이들을 고발함으로써 자신의 혐의를 감소시켜보려는 자들 때문에 고발사건은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티베리우스는 그러한 상황속에서도 자비롭고 공정하게 사건을 다루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며, 고발과 처형에만 관심을 둔 것이 아니라 제국의 경영에도 전자 다름없는 관심을 유지하고 있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티베리우스 시대 말은 분명 혼란과 공포의 시대였다. 그러나 그 공포의 원인은 티베리우스라는 한 인물의 잔인한 행동 때문만은 아니었다고 보여진다. ; The reign of Tiberius, lasting for about 23 years, was crucial to the future of the political system, so called Principatus which had been newly established by Augustus. Whether Rome would keep its peace and stability or return to the disorder of civil war seemed to depend on how this reign would be well governed. It has been generally agreed that during the earlier era Tiberius had disguised his dissimulation and cruelty owing to his rival, Germanicus and managed to govern the Empire quite well and keep the relations with the Senate good. However, his hidden vices, influenced by Sejanus and the disappearance of constraints, had been revealed in the way of assasinations of imperial family and frequent convictions and executions for senators during his last years. And the primary reason of this decline was attributed to the Princeps himself and his innate character. In this paper the above interpretation on Tiberius and his period will be reconsidered and it will be sought what difference his attitude his attitude and policy on the Senate did have from those of the previous reign. For those aims, the following matters should be dealt with. Firstly, reviewing Tiberius activities before AD 14 and his position in the succession plan of Augustus, it will be proved that he regarded the new system as being maintained and also prepared for inheriting the regime. Secondly, the meaning of accession debate and Tiberius participation in the Senate meetings will be revised in order to show the principle of the relation with the Senate, which Tiberius may have intended to fulfil. Lastly, it is important to examine that the conflict between Tiberius and the members of imperial household, its aggravation as the time went by and how this conflict affected the relations between the Princeps and the Senate. In addition to that, to analyse treason trials and Tiberius attention to them as well as senatorial business since A.D. 26 will help to estimate how much degenerate his last years was. Tiberius, a decendant of the noble family, gens Claudia, was loyal to Augustus and his regime and sincerely admitted to be a successor of Augustus and made an effort to build more favourable surroundings to his ascendency. However, the situation, which he ought to face just after his accession, seemed not to be as favourable as he had wished. Namely, it was suspected that he had not been considered as the best candidate by his predecessor and that he had got the position owing to his mother s intrigue. Moreover, there still existed some rivals, who might challenge his place. It can be suggested that those difficulties might highly influence on his plan for the future of Princeps and the Senate. There is little doubt about that basically Tiberius intended to keep the legacy of Augustus unchanged. Nevertheless, it is highly likely that Tiberius was fully aware of all rivalry that he should continuously check and, because of that, it must be important for him to emphasise moderatio and civilitas as his virtues so as to gain the justification of power through the support and approval of the whole Senate. It could be also assumed that for the same purpose he enlarged the functions of the Senate in appearance and namely elevated its dignity, while he did not hesitate to exert his influence and power on a variety of business, either. Then it can be asked why his last years was regarded as tyrannous and cruel, despite that his attitude towards the Senate seemed not to have been so despotic in principle. We may find the answer in the dynastic politics during that era. It seems that in the earlier years there was less serious discord in the household of the Princeps, because the able and popular successor, Germanicus was living and Tiberius also treated him quite well. Germanicus death caused the stability to be shaken, however, there was not any immediate crisis occurred yet, as long as Drusus, Tiberius son, took over the part of Gemanicus and was on good terms with Germanicus family and Sejanus, the minister of the Princeps, had not started devising a plot. But since A.D. 26 hostility between Agrippina and Tiberius had become evident and much worse and Sejanus had plotted to make it aggravated more actively than before. Furthermore, due to Tiberius seclusion in Capri, the senators felt any advice or decision, sent by Tiberius in the form of letters, more powerful and unchallengeable, thus dared not voice their own opinions. With the ruin of Sejanus, no one was able to feel free from dangers and suspicions that he would be convicted with the charge of treason, only because of the relationship with Sejanus. Therefore, most senators vigorously accused each other for self-defence. Even though it is possible to find that Tiberius and his ability to govern the Empire and his judgement in those cases of treason seemed to be still moderate and quite sound, it could be said the sense of crisis and terror, prevaling in the society of high class, made the situation more fearf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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