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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전기 예악론의 추이와 국문시가론 정립 양상

Title
조선전기 예악론의 추이와 국문시가론 정립 양상
Other Titles
Developments of Yae-ak theory and settlement pattern of Korean Siga theory in the early Chosun dynasty
Authors
길진숙
Issue Date
2000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성기옥
Abstract
This study is intended to find out what Korean Siga Theory originated from and how it has been developed. It is focused on how the Confucian Music Theory was established and rationalized in the culture of the early Chosun Dynasty. Considering the situation and the context of Korean Siga s formation, this study examines realistically accepted and actually applicated aspects than the theoretical sides of the Confucian Music Theory. To catch several viewpoints on the settlement of the korean Siga, chapter Ⅱ deals with other previous subjects. It is referred to "Yae-ak theory(禮樂論), Yu-ak(女樂), and Goryo-kayo(高麗歌謠)" which were argumented enthusiastically in the 15th century. It is considered as well the drift of Sarim School(士林派) who were distinguished in the field of Siga s history in the 16th century. Consequently, this study changes in the previous perspectives that the ideolization and the practice of the 15C music theory is separate from Korean Siga of the 16th century. Additionally the impulse on formation of Korean Siga Theory is practical activities of music theory of the 15th century. Chapter Ⅲ is about the practical logic and the realistically applicated patterns in the 15C music theory. The 15C music originated from the Newly-rising Gentry(新興士大夫) of the late Goryo Dynasty, who recognized the Confucian Music Theory and reviewed the royal court Yaeak . The 15C Confucian Music Theory was indoctrinated nationally. However, it was limited to clarify and justify the confucian doctrine extensively. Political vicissitude was subject to music. In the light of such governmental music theory, the dynasty made the music of the royal ancesters shrine, the court, and the banquet. the Confucian Music Theory was realized through the process. As it aimed at the foundation of the royal court music, the 15C governmental music theory didn t apply to the civilian banquet. It was bound to only the royal court performance. the ideal of the Confucian Music Theory was not accomplished even in the case of the royal court. According to these viewpoints, it was not absorbed and disseminated extensively. Actually, the ruling class acknowleged the various secular musics enjoyed by the common people at that time. Their contradictory attitude didn t lead them to ponder the tides of the 15C popular music, and didn t show the self-consciousness of Korean Siga, especially the secular music. In the chapter Ⅳ, it is described Yaeak was applied generally and Korean Siga Theory had been deep-rooted by Gimyo Sarim(己卯士林) in the 16C Jung-jong(중종) dynasty. Sarim school during the king Jung-jong, who realized the principle of the extremely confucian rule after cruel Yun-san(연산) s tyranny, criticized the women s entertainment(Yuak 여악) in public or the obsene secular music as well as the chronic troubles of the court music. To enlighten the subjects on the principles of the confucianism, they required the confucian music, and recognized the music written by our own language. The 16C Sarim School observed that the music was very effective in controlling the disposition of the people. They pursued the new Korean Siga to purify the nasty secular music. In the consequences, some Sarim explored Siga pattern of self-control, other Sarim concentrated on not only purifiying human emotion but inspiring one s nature. Additionally the 16C Sarim had chosen Gyung-gi-chae-ga(경기체가) and Sijo(시조) as a Siga genre; While Gyung-gi-chae-ga tapered out as a Sadaebu(士大夫) genre, Sijo became Gunja(君子) s music which was Tang-chuk-so-yoong(蕩滌消融) and moved the mind. So Sijo was known as a Pyeong-jo-man-dae-yeop(平調 慢大葉) . In the chapter Ⅴ, the meaning, which was revealed in the developmental process of Siga theory between 15C and 16C, is described. Siga made the nature inspired, illuminated the people, and was useful for ruling the world. The siga changed from governmental characteristics to self-controlling ones. Along with this, it transformed music theory into Korean Siga Theory. To define the real substance on Siga Theory during the early Chosun Dynasty, the virtual repercussion and limitation was diagnosed; In spite of popularization of Confucian Music Theory, it couldn t prevent the properties of emotional infectivity and entertainment. The 15C Sadaebu didn t make an issue of secular music. Although they denied lewd the popular music, the 16C Sarim didn t subdue any other properties of Siga. The regulation was feeble, and Siga induced just changes in private entertainment pattern by instructing the individuals. As a result, the Confucian Music Theory could coexist with other Siga pattern. Up to now the realistically applicated pattern of the 15C Yaeak Theory and the historical context of Korean Siga Theory, which have not been discovered in other studies, were argued. The study on transition of Siga Theory during the early Chosun Dynasty accelerated to comprehend the historical meaning of Siga formation and its position. And the succession and transformation of Korean Siga Theory was dealt with. The Confucian through of Korean Siga was accepted properly as a Sadaebu music theory until the 19th century. But Siga criticism by an ethical scale lost power gradually after the 17th century. That is, natural expression of human emotion, which had been restrained and latent in the Korean Siga, was valued highly. This study is expected to substantiate the characteristics and essence of Siga Theory during Chosun dynasty. ; 본고는 국문시가론 형성의 원천과 그 정립 양상을 밝히려는 목적에서 출발하였다. 그러므로 유교적 樂論이 조선전기의 음악문화 안에서 어떤 식으로 논리화되고 현실화되어 국문시가론으로 발전해갔는지 그 전개 과정에 관심을 두었다. 본 논의는 국문시가론을 형성시킨 중심 맥락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였기 때문에 유교적 악론의 원론적 측면보다는 그것의 현실적 수용 논리와 실제적 적용 양상을 검토하는 방향에서 진행되었다. Ⅱ장에서는 국문시가론 형성을 연구하기 위한 논점을 찾기 위해 기존의 연구 경향을 살펴보았다. 15세기 시가론 연구에서 중심 논의가 되었던 예악론 女樂 고려가요의 연구 경향을 살펴보고, 16세기 詩歌史에서 주목받았던 사림파 시가론의 연구 경향을 검토하였다. 그 결과 15세기에 전개된 예악론의 이념화와 실천이 16세기 국문시가론의 존재와는 전혀 별개의 자리에 놓인 것처럼 보았던 기존 연구의 경향을 극복하고, 국문시가론이 형성될 수 있었던 추동력을 15세기 예악론의 실천적 움직임에 둘 수 있었다. Ⅲ장에서는 15세기 예악론의 실천 논리와 그 현실적 적용 양상을 살펴보았다. 15세기 유교적 악론은 여말 신흥사대부들이 유교적 악론을 인지하고 궁중예악을 재고하는 발상으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15세기의 유교적 악론은 국가 이념화되었으나, 그 성격은 이념을 대외적으로 천명하고 명분을 살리기 위한 면에 국한된 것이었음을 구체적으로 살피었다. 음악이 정치의 盛衰를 판가름한다는 治世的 樂論에 입각하여 국가의 종묘 조정 연향의 음악을 정비하는 일로부터 유교적 악론의 현실화가 진행되었음을 밝혔다. 궁중악 정비의 실현 양상을 다룬 결과 15세기의 치세적 악론이 당위로서 적용된 영역은 궁중 공연이었으며 일반의 연향에까지 그 원칙을 지키려고 한 것은 아니었음이 명백해졌다. 더구나 궁중 공연에서조차 유교적 악론의 이상이 완벽하게 실현되지는 못했으며 유교적 악론이 전사회로 저변화되고 전면화되었던 것은 아니었다는 사실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조정에서는 치세적 악론을 국가의 의례로 실천하려는 명분화에 치중했고, 사대부는 유교적 악론의 효용성을 음악의 이상적 지향점으로 상정하였으되 실제의 음악향유에서는 현실에서 전개되는 속악의 다양한 성격을 자연스럽게 인정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음악 향유에서는 이원적인 시각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15세기에는 일반의 음악 풍속도를 고민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국문시가 즉 俗樂에 대한 자의식도 보여주지 않았음이 드러나게 되었다. Ⅳ장에서는 16세기 중종조 기묘사림에 의해 예악이 확대 적용되는 과정으로부터 국문시가론이 정립되는 양상까지를 서술하였다. 연산대의 폐정을 겪은 후 유교적 至治의 원칙을 절감했던 중종대의 사림이 궁중 음악의 폐습뿐만 아니라 여항에서 연행되는 女樂이나 음란한 속악의 풍속을 비판했던 현상에 주목하였다. 유교적 악론의 원칙을 일반에 적용하려는 의식의 진전에 의해서 樂敎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우리말 노래의 내용을 자각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음을 밝혀내었다. 그리고 이들의 국문시가에 대한 문제의식이 바로 16세기 중반의 사림들이 펼쳤던 修己的 樂論의 실천으로 이어졌다는 사실도 파악하였다. 16세기 사림들이 성정을 다스리는 일에는 음악의 효과가 무엇보다 크다고 인식하고 일상에서 향유되는 노래를 정화하기 위해 새로운 방향에서 국문시가를 모색했던 실천적 움직임을 탐색하였다. 그 결과 修己的 樂論의 시가적 전형을 보여주는 사림도 있었고, 성정함양의 효용을 유념하되 정감을 정화하는 역할을 노래의 1차적 기능으로 보는 사림도 존재함을 볼 수 있었다. 또한 16세기 유교적 악론을 실현했던 사림들이 선택한 시가 장르는 경기체가와 시조인데, 경기체가는 이미 사대부 장르로서 공신력을 잃었으며 시조 장르는 탕척소융하여 성정을 감발하는 군자의 음악으로 부상했던 평조 만대엽이었음을 밝힐 수 있었다. Ⅴ장에서는 조선전기 시가론의 문학사적 의미를 정리하였다. 조선전기 시가론 정립과정의 의미는 공적 담론이었던 유교적 악론을 내면화하여 문학적 실천으로 원칙화한 것이며, 국문시가의 문학적 위상을 확립해준 것임을 밝혔다. 동시에 조선전기 시가론의 위상을 정립하기 위해 그 문학적 성과와 한계를 진단하였다. 유교적 악론이 공론으로 확립되었지만 노래의 정감 발산과 오락성을 막기는 어려운 문제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국문시가의 미학적 기준과 미적 취향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고, 더구나 미학적 담론은 시가 문학의 현실적 취향을 강제로 제어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다른 축의 시가 경향은 열려있던 결과였다. 더불어 국문시가론을 주목했던 비평사 전체의 흐름 속에서 조선전기 시가론의 의미를 점검하였다. 국문시가론은 유교적 음악관을 공효로서 인지하는 경우 19세기까지 사대부 음악론으로 수용되었으나, 17세기 이후 국문시가론에서 억제되고 잠재되었던 인간 정감이 자연스럽게 표현되어야 한다는 논리가 중시되어 윤리적 잣대에 의한 시가의 비판 논리가 점차 약화되어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상과 같은 논의 전개를 바탕으로 조선조 시가론의 성격과 본질이 제대로 재구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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