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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의 칭의론 이해

Title
마틴 루터의 칭의론 이해
Authors
박연주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신학대학원 신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신학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정용석
Abstract
This paper understands the point of Luther's doctrine of justification as "faith which acts through love". First of all this displays the strong confutation about Roman Catholicism's doctrine of justification that concentrates on human's meritorious righteousness upon the foundation of "faith formed by love". Roman Catholicism does not give up the cooperation of human's free will in the justification. The justification is possible by human's participation and cooperation as well as by God's work. Luther explains doctrine of the justification as the basic structure that speaks 'Only Christ', 'Only grace', 'Only faith' about this, and he defines human being as the existence that lives in front of God or in God's actual existence while God becomes as s/he is. This comprehension is not the objective knowledge about God, but it is the experience to meet God alive on the basis of Jesus Christ's event "for me" and it explains the recovery of relation between God and human. With this, the understanding of doctrine of justification as "faith which constructs by love" proves that it is not right to criticize Luther as he grasped love and faith by the antagonistic relationship while he selected and emphasized faith only enough to ready the foundation of Christian ethical vulnerability finally by minimizing and despising Love. Luther excepted love perfectly in the thread of justification. Talking love in the aspect of justification is to refuse God's voluntary love, and it only means human's meritorious love. To Luther, Love is God her/himself who appears inside God's all kinds of services, and justly this love is connected to enable our free love for neighborhood. Only faith in Christ keeps human righteous in front of God, and now the faith appears by love for neighborhood actively in Christian's specific life. In the life of Christian, faith and love move to other direction, then God and neighborhood are two different foci. While Christian has the relation with God, s/he has also the relation with neighborhood. To Luther, faith which does not exist love and good deed is just the dead faith. Faith is only existed in love and it executes as the action of love. That is, it is not something that love is added in belief, but it is the life of faith and the actual existence. Such comprehension about Luther's doctrine of justification is not only establishing the right relationship between God and human, but also presenting the new paradigm about the duty and the responsibility of Christian about neighborhood and society. It clears that the life of Christian's faith should be run to the life in the very middle of the world following after Christ essentially. Now, the person who receives the righteousness is free existence that is not enfettered to any law and action. But, the freedom is the liberty as the servant for neighborhood that moves in love justly. Love is taking the servant's form that serves oneself for neighborhood in freedom instead of compulsion. These freedom and love are embodied within the daily job life , that is, within the life of calling. As it were, Christians who experience God's righteousness now live their lives as the new existences participating voluntarily for the figures of Christ's trouble. It means that Christian lives as a Christ in the relation with neighborhood through the action of love by denying himself as the responsible existence ' In front of God'. This is the mystery of God that Christian's living figure 'indwelling me' copies just as Christian's figure who lives 'in Christ and neighborhoods' and also it images one body between Christ and me.;본 논문은 루터의 칭의론의 핵심을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fides quae est efficax per charitatem)으로 이해한다. 이것은 무엇보다도 은총의 주입을 강조하며 “사랑에 의해 형성되는 믿음”(fides caritate formata)이라는 토대 위에 인간의 공로적 의, 선행적 의가 중심이 되는 로마 가톨릭의 칭의론에 대한 루터의 강한 반박을 나타낸다. 로마 가톨릭은 칭의에 있어서 인간의 자유의지의 협력을 포기하지 않는다. 칭의는 하나님의 행동으로만 성립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참여와 협력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로마 가톨릭의 이러한 입장은 루터의 칭의론의 빛에서 볼 때, 복음 자체를 위협하며 신학을 인간학으로 변질시키는 위험성을 내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루터는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믿음으로 은총에 의한 칭의”, 즉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오직 은총에 의해서, 오직 믿음으로 라고 하는 기본 구조로서 칭의론을 설명하며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인간 존재를 하나님 앞, 혹은 하나님의 현존 안에 살아가는 존재로 규정한다. 이러한 칭의론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에 관한 객관적인 지식이 아니라 ‘나를 위한’ 예수그리스도의 사건을 바탕으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며 그것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회복을 설명한다. 이와 함께,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서의 칭의론 이해는 사랑과 믿음을 대립관계로 파악하여 루터는 믿음만을 선택하고 강조하였으며 사랑을 극소화함으로써 마침내 기독교의 윤리 의식을 약화시키는 토대를 마련하였다는 비난은 정당하지 못한 것임을 증명한다. 실제적으로 로마 가톨릭이 주장하였던 ‘사랑의 종교’를 ‘믿음의 종교’로 대체, 극복하고자 한 루터의 사랑에 관한 입장은 그의 사상의 최대약점으로 간주되어 왔다. 루터는 칭의의 맥락에서 사랑을 완전히 제외시켰다. 그러나 루터에게 있어서, 칭의의 자리에서 논의되는 사랑은 근본적으로 기독교적인 사랑이 아니었다. 인간 안에서 발견되어지는 사랑이 하나님과의 교제의 토대에 어떤 자리를 가진다면 이것은 하나님의 자발적인 사랑의 의미를 거부하는 것이다. 또한 칭의의 자리에서 논의되는 사랑은 인간적 관점에서 볼 때, 더 이상 그 순수성을 유지하지 못하며 곧 공로적이 되어, 그 목적에 의해서 지배되는 수단이 되고 만다. 루터에게 사랑은 하나님의 모든 은혜의 사역들 안에 나타난 하나님 그분 자신이다. 루터에게는 바로 이러한 사랑이 이웃을 위한 우리의 자유로운 사랑을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음만이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의롭게 하며 그 믿음은 그리스도인의 구체적인 삶 가운데서 이제 이웃을 위한 적극적인 사랑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하나님과 관계를 맺는 동시에 사랑으로 이웃과 관계를 가진다. 폴 틸리히의 말을 빌리면, 하나님과 인관관계에 있어서 믿음은 초월적 일치에 “사로잡혀 있음의 상태”를 말하며 사랑은 그것에 의하여 “수용되어져 있음의 상태”를 이웃과의 관계에서 적극적으로 표현한다. 루터에게 있어서 사랑이 없는 믿음은 곧 죽은 믿음이다. 믿음은 사랑 안에서만 실존하며 사랑의 행위로서 집행된다. 사랑은 믿음에 추가되는 그 무엇이 아니라 믿음의 삶이요, 현존이다. 이러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서의 루터의 칭의론에 대한 이해는 하나님과 인간의 바른 관계를 설정할 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 책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모든 선행을 이미 포함하고 있음을 밝힌다. 루터에게 있어서는 “믿음을 통해 의롭게 됨”, 즉 존재론적으로 선한 나무가 되는 것과, “사랑에 의해 형성되는 믿음”, 선행을 통해 선한 열매를 맺는 것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었다. 선한 나무는 선한 열매를 맺지 않고는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여기에서 견지되는 것은 칭의에 있어서의 인간의 수동성, 그리스도의 ‘외적 의’의 전가이다. 그러한 믿음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이 세상 한가운데서 삶으로 영위되어져야 한다. 이제 칭의를 받은 자는 어떠한 율법과 행위에도 속박되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그리스도인을 속박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자유는 바로 사랑 안에서 움직이는, 이웃을 위한 종으로서의 자유이다. 사랑은 강제가 아닌 자유 속에서 이웃을 위하여 스스로를 내어주는 종의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 이러한 자유와 사랑은 일상의 직업 생활 속에서, 소명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되어진다. 말하자면, 칭의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경험한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리에 자발적으로 참여함으로서 새로운 존재로서의 삶을 산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적 존재로서 자기를 부정하고 사랑의 행위를 통해 이웃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하나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내 안에 사는’ 그리스도의 모습이 ‘그리스도와 이웃 안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그대로 모사되는 것, 나와 그리스도가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신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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