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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과 中國의 傳統婚禮服飾에 관한 연구

Title
韓國과 中國의 傳統婚禮服飾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Traditional Wedding Costume in Korea and China - During the 18th Century to the Early 20th Century -
Authors
신혜성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
Abstract
한국과 중국은 공통적으로 중국 古代 禮書에서 유래한 ‘婚姻六禮’를 혼인의례의 규범으로 여겼으며, 양국의 婚禮服飾에 반영된 유교의 영향은 ‘혼례에서 만큼은 大夫의 성대함을 빈다’는 仮借·攝盛, 또는 借吉 意識이었다. 이러한 仮借·攝盛·借吉의 풍습은 양국 모두 혼례에서만은 일반인도 신랑의 혼례복으로 官服을, 신부의 혼례복으로는 命婦服을 사용하는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양국의 혼인에서 나타나는 가장 뚜렷한 차이점은 고대부터 전해온 중국의 親迎禮와 한국의 壻留婦家라는 婚姻 習俗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전통적인 서류부가의 혼인 풍속을 중국에서 비롯된 유교적인 親迎禮로 바꾸려는 조선의 유학자와 조정의 지속적인 노력에도 불구하고, 신랑이 신부 집에 가서 혼례를 치렀던 壻留婦家의 풍속은 지속되었으며 18세기 이후 조선의 일반적인 혼인의례는 三日于歸나 半親迎의 형식이었다. 이러한 조선의 혼속은 신부예복에도 영향을 주어 신부는 大禮시와 見舅姑禮시에 모두 盛服, 즉 예복을 입어야만 했다. 大禮와 見舅姑禮에 착용하는 혼례복에 대한 특별한 규정은 없었으나, 大禮에는 圓衫이나 활옷을 입었고 見舅姑禮에는 원삼이나 활옷, 또는 당의를 입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18세기 이후 청의 혼례복식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여자 혼례복식이 漢族과 滿洲族의 양식으로 독립적으로 발전하였다는 점이다. 청대 여자 혼례복이 한족과 만주족의 양식으로 이분화된 것은 한족 여자 복식에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 않았던 청조의 복식정책 때문이었다. 반면에 남자 복식에서는 明代 양식의 복식을 허용하지 않았던 청조의 정책으로 인하여, 청대 남자 혼례복은 만주족의 복식 양식이 漢族과 滿洲族 공통의 남자 혼례복으로 사용되었다. 18세기 이후 양국의 전통혼례복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조선의 남자 혼례복으로는 흉배가 없는 紅團領과 黑團領이 竝用되었으나, 紅團領이 더 일반적이었다. 이러한 신랑의 대례복은 19세기 말에는 흉배 달린 藍色 團領으로 바뀌었는데, 이것은 黑團領으로 예복을 통일한 당시의 복제개혁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단령과 함께 사모를 썼으며 이것을 속칭 사모관대라 하며 현재에도 신랑의 전통혼례복으로 사용되고 있다. 청대의 남자 혼례복은 만주족과 한족 모두 청조의 官服에서 기원한 吉服을 착용하였다. 吉服은 용무늬가 전체적으로 수놓인 蟒袍와, 가슴과 등에 품계를 나타내는 補를 단 補服으로 구성되었다. 蟒袍라는 명칭은 옷에 수놓인 용무늬에 기원한 것으로, 망포는 신분에 따라 용의 무늬와 색상과 포의 트임을 달리한 것이 특징이었다. 길복차림에는 만주족의 고유한 冠帽인 吉服冠을 착용하였다. 한족 남성들 중에는 평상시의 예복인 長衫과 長괘를 혼례복으로 사용하기도 하였다. 長衫은 만주 귀족의 常服에서 발전한 것으로 초기에는 만주복식의 특징인 馬蹄袖가 달렸으나 후대에는 일자소매로 변하였다. 혼례용 관모로는 길복관과 비슷한 형태의 禮帽를 착용하였다. 조선의 여자 혼례복으로는 紅長衫·圓衫·염衣·唐衣가 있었다. 唐衣는 주로 見舅姑禮에 착용된 것으로 보이며, 염衣는 실제 예복으로 착용되었기 보다는 유학자들에 의해서 혼례복의 이상형으로 제시된 것이다. 당시의 문헌에는 활옷의 명칭은 나타나고 있지 않으나 꽃을 수놓은 百花袍나 연꽃을 수놓은 紅長衫에 대한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명칭이 나타나지 않았을 뿐 실제로는 착용되었던 것으로 본다. 또한 禮冠의 사용이 중요시 되어 평상복인 치마·저고리 차림으로 혼례를 올릴 때에도 화관이나 족두리와 같은 예관을 반드시 사용하였다. 청의 여자 혼례복에서 만주족 여자는 청의 명부복의 일종인 吉服을 착용하였고, 한족 여자는 明代 명부예복에서 기원한 鳳冠·霞피를 착용하였다. 후대로 갈수록 한족 여자의 혼례복이 만주족 여자 혼례복에 영향을 주어 만주족 여자의 혼례용 예관으로는 한족의 鳳冠과 유사한 형태의 鳳鈿이 사용되었고, 蟒袍 대신에 중국 고유의 꽃무늬나 길상무늬로 장식된 붉은색 袍를 혼례복으로 착용하였다. 이러한 변형된 형태의 혼례용 길복을 八團이라 하였다. 한족 여자의 혼례복은 明代 命婦服에서 기원한 鳳冠·霞피를 기본으로 하였다. 霞피 아래에는 용무늬가 수놓인 蟒襖를 입었으며, 머리에는 명대 命婦服에서 기원한 鳳冠을 썼다. 때로는 남성의 長衫·長괘와 유사하게 霞피가 없는 차림으로 혼례를 올리는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경우에도 鳳冠만은 꼭 사용하고 있어,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의 혼례에서도 禮冠이 중시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는 18세기 이후의 혼례복식연구를 통하여 현재 통용되고 있는 한국과 중국의 전통혼인 의례의 형성과정 및 현재 통용되고 있는 전통혼례복의 원형을 살펴보려 하였다. 그러한 과정을 통하여 양국 혼례복의 외형적 특성뿐만 아니라, 혼례복의 외형과 양식에 영향을 미친 전반적인 복식문화의 특징을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그러나 다양한 종류의 복식과 다양한 장신구로 구성되는 혼례복식의 특성상, 각각의 세부 항목에 대한 연구는 개괄적이고 표면적인 연구에 머물렀다는 한계점을 갖는다. 따라서 앞으로 전체 혼례복을 구성하고 있는 개별 복식의 원형과 양식적 변천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본 연구에서는 신랑·신부에게 착용된 혼례복만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으나, 전체 혼인문화와 복식양식을 좀 더 총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랑·신부의 혼례복 외에 다른 참석자들의 복식연구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본 연구에서 나타난 양국의 혼인 풍속과 혼례복식에 관한 내용들이 한국과 중국의 복식 및 혼인 연구에 대한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하며 또한 양국의 전통복식의 비교연구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There were some common features in the wedding custom in Korea and China. As an example, the bridegroom's garments came from an official uniforms and the bride's wedding garment from Myeongbubok (命婦服, court dress). These had reflected the consciousness of Gacha(仮借) or Chagil(借吉) hat meaned 'wish for the prosperity of the noble man in the wedding ceremony'. There was a significant difference between China and Korea in their wedding custom. In China, the wedding ceremony was held at the bridegroom's house, while in Korea at the bride's house. Korean ceremony was called Dae-rye (大禮). There was another official wedding ceremony in korea, called Gyeon-gu-go-rye (見舅姑禮). It was a first official meeting between the bride and her father-in-law and mother-in-law in the bridegroom's house. It goes without saying that the bride had to wear the wedding garments not only in Daerye but also in Gyeon-gu-go-rye. Wedding dresses for men in the Chosun Dynasty were Red Dallyeong (紅團領) or Black Dallyeong (黑團領) without hungbae (胸背, the court insignia badges on the breast and on the back of official uniforms), and Red Dallyeong was more popular. They changed to Black Dallyeong with hungbae on the breast and the back at the end of the 19th century. This seems to have been related to the changes of official uniform system in those days. Women's wedding dresses in the Chosun Dynasty of the 18th century include Red Jang-sam (紅長衫), Won-sam (圓衫), Yeom-eui (염衣) and Dang-ui (唐衣). Dang-ui was worn in Gyeon-gu-go-rye rather than in Dae-rye. Yeom-eui seems to have been just proposed as an ideal wedding garment by Confucianists in those days rather than to have been actually worn in the wedding ceremony. Although nowadays Hwal-ot is usually worn as a traditional women's wedding dress. The term is not found in the literatures of those eras. But, Hwal-ot's characteristics such as Baek-hwa-po (百花袍) embroidered with flowers and Red Jang-sam embroidered with lotus flowers were described. This suggests that Hwal-ot was actually worn. As noble people continued to wear splendid Hwal-ot originated from Red Jang-sam, Red Jang-sam had been replaced by Hwal-ot over time. The common people preferred Won-sam that was easy to make. The most characteristic feature in the women's wedding dresses of the Qing Dynasty period was that the Chinese and the Manchurian wedding dress styles existed independently. It was possible that the Qing Dynasty did not prohibit the styles of the Ming Dynasty in women. But, the styles of the Ming Dynastyin men were prohibited, so, men's wedding dresses were unified into the Manchurian one. Men's wedding dress in the Qing Dynasty was Jí-fú (吉服). Jí-fú was a kind of official uniform in the Qing Dynasty. It was composed of Mang-p'ao (蟒袍, dragon robe) and Bǔ-fú (補服, the court insignia badges on surcoats). Mang-p'ao was embroidered with dragon patterns. Its color and figure of the dragon were different according to the social status. Bǔ-fú as an overcoat of official uniform had the courts insignia badges on the breast and on the back Bǔ-fú included the Manchurian traditional ceremonial hat Jí-fú-kuan (吉服冠). In addition to Jí-fú, Chinese men sometimes used Cháng-shān (長衫, long robe) and Cháng-kua (長괘). Cháng-shān came from the ordinary dress of Manchurian nobles. Initially, it had a Manchurian characteristic sleeve, Mǎ tí xiù (馬蹄袖, sleeve after the shape of horse's hoop). But, the Manchurian characteristic sleeve changed to a straight sleeve. Cháng-kua, worn over Cháng-shān, was one of Manchurian garments. The shape of Cháng-kua was similar to Bǔ-fú except that the courts insignia badges are not attached. A ceremonial hat like Jí-fú-kuan was put on the he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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