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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美術展覽會」의 화조화 연구

Title
「朝鮮美術展覽會」의 화조화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f Flower and bird paintings of the 「Chosun Art Exhibition」: Focusing on the Korean Painters’ Works
Authors
황정현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선표
Abstract
This article will investigate how “flower and bird painting” exhibited in Chosun Art Exhibition held under Japanese occupation has brought great progress of flower and bird painting in Korea. Chosun Art Exhibition was founded as a part of Japanese colonial policy, of which composition or regulations are taken from those of Japanese Governmental Art Exhibition. Therefore comparison with Japanese flower bird paintings sent to governmental art exhibition is inevitable in order to understand the nature of Korean flower bird paintings. For Japanese artists, Korean art exhibition was the exit to Japanese Central Art Exhibition and for Korean artists, it was the debut chanel to modern artists’ societary. The official title of the Chosun Art Exhibition was ‘East West Painting’ and it was divided into two categories: landscape in ink and portrait or flower bird painting in color. Less number of paintings were submitted to flower bird painting area than to portraits, but flower and bird painting was more influenced by modern Japanese art and has developed constantly. This trend was already found in Chosun Industrial Exhibition. Japanese style of painting was first introduced to public by Chosun Product Exhibition, and was developed by Chosun Art Exhibition. Flower and bird painting shown in Chosun Industrial Exhibition inherited realistic and decorative style from Tosha, Maruyama group. Conservative Japanese Art Association conflicted with westernized Japanese Art Communitym and this characteristic developed into “worship of tradition or creativity” Along with this trend of governmental flower and bird painting, traditional way of drawing objects on each side of the screen was later changed into drawing exotic objects concentrated mainly in the center of the screen. This change was reflected in Chosun Art Exhibition 1922 through 1944 as well. Development of flower bird painting was divided into two stages: 1920's and 1930's based on number of exhibitions and its characteristics. In 1920's, realistic and specific objects were usually adopted as realism was the mainstream of art and culture, but new objects such as an owl have appeared gradually. Foreground began to be filled with objects and tree branches began cut the canvas vertically. Branches were expressed differently by Japanese artists and Korean artists. In 1930, due to the overflow of oriental nationalism, traditional objects became popular again. However nationalism was more prevalent in portraits and landscape paintings than Flower bird painting. Within this trend, 1930's Flower and bird painting adopted more variety of objects than in 1920, and especially Japanese painters favored small and splendid kind of flowers and birds, in pursuit of decorative beauty. In regard to its composition, Japanese artists preferred landscape like composition whereas Chosun painters preferred small garden like composition.'Morotai'prevalent in early days was stabilized into more westernized style. Some of Chosun artists has maintained Japanese art style, and the reason for this is thought that korean artists wanted accustom themselves to Japanese style in order to be preferred by Japanese judges. In turn, Japanese judges selected more Japanese style paintings favorably. But when governmental style became too prevalent, judges has recommended korean traditional way of painting. By this, some of korean artists showed unique composition with creative object, but most of Chosun artists still imitated Japanese Governmental Exhibition paintings. In conclusion, flower and bird painting shown in Chosun Art Exhibition was a part of colonial art of modern Japanese art, it was a corner stone of modern korean art which differed from Chosun traditional flower bird painting.;본 논문은 일제 강점 하에「朝鮮美術展覽會」에 출품되었던 ‘화조화’가 일본 「官設美術展覽會」를 통해 어떻게 조선시대 화조화를 변화, 발전시켰는지 유형별로 나누어 고찰한 것이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일본의 식민지 문화정책의 하나로 개최된 것으로 전람회 의 제도와 전시의 구성, 형식 등 일본 관전의 것을 그대로 적용하였다. 그러므로 조선미전 화조화의 성격을 파악하기 위해 일본 관전 화조화와의 비교, 분석이 필요했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일본인 화가에게 식민지 본국인 일본의 중앙 「官設美術展覽會」로 나가기 위한 출구가 되었고, 조선인 화가에게는 근대 화단의 등용문으로서의 역할을 하였다. 조선미술전람회는 조선화와 일본화가 공존한다는 의미로 ‘東洋畵’라는 공식명칭을 채택하였고 크게 水墨山水와 彩色人物花鳥 분야로 나뉘어 전개되었다. 彩色花鳥畵는 彩色人物畵에 비해 출품된 작품 수는 적었으나 소재의 특성상 근대적 일본화풍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으며 지속적으로 출품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조선미전이 개최되기 전「朝鮮物産共進會」를 통하여 이미 일본화풍이 수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朝鮮物産共進會」를 통해 일본화풍은 본격적으로 일반대중에게 공개되고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하여 심화, 발전되었다. 「朝鮮物産共進會」에 나타난 화조화는 사실적이고 장식적인 특징을 잘 보여주는 토사파(土佐派), 마루야마파(円山派)를 잇는 작품이었다. 이들 전통 일본화파의 기법은「文部省美術展覽會」에 舊派로 상징되는 ‘日本美術協會’와 양화의 영향으로 신일본화 운동을 과감히 추진한 新派인 ‘日本美術院’을 통하여 전통 일본화 기법과 서양화 기법이 서로 대립하면서 전개되었다. 이러한 특징은 명치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전통의 계승’과 ‘창조’로 심화ㆍ발전된다. 이와 같은 흐름에 따라 관전 화조화는 병풍의 좌우 끝부분에 전통적인 소재를 그리다, 차츰 소형화된 구도 속에서 외래종 화조를 그렸다. 주제는 화면의 중앙에 집중시키면서 사실적이고 화려한 묘사와 추상적인 표현을 시도하였다. 일본 관전의 변화는 1922년부터 1944년까지 개최된 조선미술전람회에도 반영되었다.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된 화조화의 출품작 수와 변화한 작품의 특성에 따라 크게 1920년대와 1930년대로 나누어 고찰해보았다. 1920년대는 문화예술계의 리얼리즘 경향을 바탕으로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소재가 유행함에 따라 미술계도 사실적이고 화려한 채색이 조선미전에 혼재하게 된다. 이 시대 화조화는 전통적 소재가 주로 출품되다가 점차 珍禽소재였던 부엉이와 같은 새로운 소재가 등장하게 된다. 또한 주제가 근경으로 확대되면서 여백이 가득 채워지고, 折枝된 가지가 수직을 이루어 화면을 구성한다. 折枝된 가지의 화면구성은 조선인 화가와 일본인 화가의 작품에 서로 다른 특징을 보인다. 이런 가운데 일본화의 몽롱체 기법을 구사하고 있다. 1930년대가 되면 동양주의적 내셔널리즘이 팽배하여 향토적인 소재의 작품들이 유행하게 되었다. 조선색과 향토색은 산수화나 인물화 부문에서는 잘 보이나 화조화는 소재의 특성상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1930년대 조선미전 화조화의 특징은 1920년대보다 전반적으로 다양해진다. 특히 조선인 화가는 큰 새와 맹금류를 그렸고 일본인 화가는 화려하고 작은 종류의 꽃과 새를 주로 그려 여유롭고 아름다운 장식미를 추구하였다. 또한 구도에 있어서 일본인 화가들은 풍경화적 구도를 그린 반면 조선인화가들은 작은 규모의 정원화적 구도를 더 선호하였다. 전반기인 1920년대에 성행하였던 몽롱체기법은 점차 안정되고 보다 입체적인 서양화법을 추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경향 속에서 대부분의 조선인 화가들은 꾸준히 일본화풍을 유지시켜 나갔는데, 그 원인은 일본인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이 선호하는 화풍에 맞게 근대적 일본화풍인 ‘官展風’을 추종해 나갔기 때문이다. 일본화풍을 추구한 조선인 화가의 작품들에 대해 심사위원들은 초기에 긍정적인 평으로 문화통치에 의한 동화를 유도하고자 하였다. 관전풍 양식이 성행하자 심사위원들은 부정적인 평을 하고 조선의 향토색, 지방색을 권장하며 이를 위해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이 결과 일부 조선인 화가들이 나름의 작가적 개성을 발휘하여 일본 관전에서는 등장하지 않던 신소재를 차용하고 개성있는 구도를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선인 화가는 일본 관전의 작품을 그대로 모방하는 경향을 보였다. 결국 조선미전에 나타난 화조화는 일본에 의한 근대화의 신부국민의 차원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였다. 그러나 조선시대 화조화와는 다른 근대적 면모를 보인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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