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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주체의학에 관한 연구

Title
북한의 주체의학에 관한 연구
Authors
최선주
Issue Date
2005
Department/Major
대학원 북한학협동과정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전우택
Abstract
본 논문은 북한 보건의료체계의 프리즘이라 할 수 있는 북한의 ‘주체의학’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 형성, 전개되었는지를 분석하는 일이다. 북한은 북한 사회주의 국가의 의료체계 역시 주체사상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기존의 동의학에 정치 이데올로기를 접목시켜 주체의학이라고 명명했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해 나갔다. 주체의학은 북한이 주체사상이라는 철학을 기반으로 유일체제를 정당화하고 인민을 통합하려던 발상에서 출발하였다. 1960년대 말 주체사상이 등장한 후 사회 각 분야에 주체를 접목시켜 나가면서 보건의료분야에서도 민족의학으로서의 고려의학이 국가정책의 뒷받침을 받으며 주체의학의 확립이라는 관점에서 크게 장려된 것이다. 주체의학은 “북한에서 주체사상에서 강조되는 북한의 사상적 독자성과 통합성을 의학 영역에서 적용하여, 기존의 고려의학의 전통을 강조하고 거기에 신의학적 지식과 개념을 수용하여 새롭게 통합된 북한적 의학 사상과 체계를 지칭하는 용어"로 개념화 할 수 있다. 1957년 제 1차 5개년 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한 북한은 동의학을 강조하고 동의 의료시설을 증가시키며 동의사들을 대량으로 배출하기 시작하였다. 무상치료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면서부터 의료 수요가 감당하기 힘들만큼 폭발적으로 늘어났기 때문이다. 동의사는 당시의 의료인력 부족문제를 더는데 일정한 몫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동의학은 정권 담당자들의 혁명 전통을 중요하게 부각시키고 정당화하는 간접적인 수단으로 활용되었고, 당국은 그 동안 동의학을 비하하던 사회분위기를 바꾸기 위한 활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이 때부터 동의학은 민족문화로서의 문화적 가치와 더불어 의학과학으로서의 가치 또한 뚜렷이 지닌 것으로 재평가되었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주체의학은 순조롭게 정착되지 못했다. 기존 의료인들이 전반적으로 의학분야의 기득권과 안정성을 우려하며 급격한 변동을 꺼렸기 때문이다. 초기의 주체의학 정책은 신의들이 주도하였다. 당시 중국으로 파견된 실습생 및 유학생들은 대개 서양의학을 전공한 사람들이었다. 이렇듯 초기 북한의 동의학 정책은 중국의 것을 서의의 입장에서 변형시켜 시행하려 한 것이었다. 즉 그 내용은 동의학을 신의학에 흡수하여 주로 신의들에 의해 신의학적 이론과 방법 등으로 재구성하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후 동의학의 제도적 정착은 때마침 불어닥친 사상투쟁을 통해 양쪽의 갈등과 불화를 잠재움으로써 실현되게 되었다. 이 때부터 동의학과 서의학의 관계는 양쪽의 독립성이 다소 인정되는 가운데 통합이 모색되는, 말 그대로 변증법이 발휘되어 갔다. 해방후 상당기간 북한에서는 동의학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채 간신히 명맥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1956년 4월 개최된 노동당 3차 대회를 계기로 김일성이 동약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부터 국가 보건사업의 중요한 일부분을 차지하며 그 위치가 새롭게 높아지게 되었다. 당시 북한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에 대한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추종보다는 자기 나름의 역사적 경험과 사회현실 조건을 고려해서 사회를 만들어 나가야함을 주장했고, 그 일환으로 의학계에서는 동의학이 새로운 조명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1971년부터 1990년까지의 시기는 사회주의의 물적 · 기술적 토대를 공고히 하기 위한 6개년 계획(1971-1976)과 인민경제의 주체화 · 현대화 · 과학화 기술혁명의 촉진을 위한 제2차 7개년 계획(1978-1984) 및 제3차 7개년 계획(1985-1992)이 이루어진 기간이다. 북한은 사회주의 의료제도를 실현하기에 역부족인 의료자원 상황을 개선하고 의사담당구역제를 전국적으로 정착시키고 낙후된 보건의료기술에서 주체적인 입장을 강조하기 위해 기존의 예방의학적 방침과 동의학을 더욱 강조하였다. 동의학은 1970년 초부터 활성화되어 1970년대 말까지 모든 의학대학에 동의학부가 설치되고, 약학대학과 의학대학의 약학부에 동약제약과가 설립되었다. 1979년 2월 ‘동의학을 발전시킬 데 대하여’에서 주체적 민족의학으로서 동의사 배출을 늘이는 동시에 그들의 수준을 향상시키고, 서양의학과 동의학의 결합을 통한 주체의학의 발전을 강조하고 약초재배 등을 기본방침으로 제시하였다. 이러한 현실적인 제도의 변화로 주체의학은 그 위치를 더욱 공고히 자리잡아가게 되었다. 1985년 4월 김정일의 연설문 ‘전국 보건일군대회 참가자들에게 보낸 서한’에서도 동의학과 서양의학을 옳게 배합하여 발전시키는 것을 중요한 과업으로 제시하였다. 1990년대 들어 북한은 두 차례의 대홍수와 김일성 주석 사망 등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극심한 경제난을 겪어야했다. 식량부족으로 인한 전체적인 보건 및 건강 수준의 악화와 경제난으로 인한 의료자원의 극심한 부족, 폐쇄적인 사회체제로 인해 북한의 보건의료체계는 사실상 위기를 맞이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려의학은 더욱 그 위치를 공고히 다지게 되었다. 경제상황의 악화로 의료장비와 의약품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서양의학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되자, 북한은 동의학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하며 서양의학의 지식과 개념을 수용하여 더욱 주체의학 연구에 매진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발전된 주체의학은 북한의료에 상당부분 제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고, 현재까지도 그 위상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이 철저한 계급사회라는데 주체의학의 한계가 있다. 주체의학이 아무리 발달했다고 해도 이는 기본적으로 당과 수령을 절대화하는 사상에 묶여 있을 뿐만 아니라, 북한의 보건의료정책을 통제하는 장수연구소는 기본적으로 김일성 부자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수의 인민은 의료 혜택에서 소외되었다. 장수연구소의 연구결과는 인민들에게 골고루 돌아가지 않고 김일성 부자 그리고 당 내 서열순으로 그 혜택이 돌아가기 때문에 소수 특권층에게만 의료혜택이 집중되어 다수 인민은 기본적인 것만 누릴 수 있었다. 북한이 나름대로 주체의학의 확립을 추구하고 있는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지만, 근본적인 경제난이 해결되지 않고서는 의료문제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This study is about how "Ju-Che medicine" has been formed and made progressed which reflect the N.K Medical systems. N.K's been combined both western medicine and oriental medicine insisting that the national medicine systems are also needed to bee rooted in the Ju-Che theory and called this medicine systems Ju-Che medicine and been using it politically. Ju-Che medicine got started with the concept to unify citizens and justify its unique political systems by considering Ju-Che theory as their principal. With Ju-Che theory starting in the late 1960s, Goryo Medicine as ethnic one got promoted to prevail supported by the national policies in order to intensify Ju-Che medicine connecting Ju-Che into several sectors in society. Ju-Che theory is defined as the term for the newly unified N.K styled medical theory and systems which accomodate new medical technologies and emphasize the traditional Goryo medicine and apply the N.K unique and unified theory to the medicine sector. N.K started to expand and increase the medical facilities and make many oriental doctors focusing the oriental medicin in order to push for the first 5 year long plan in 1957. That was because the number of doctors got short so much after adopting the medicine policy for free. The oriental medicine doctors were expected to play some roles at that time. As time went by, the politician used this medicine to emphasize on their revolution careers indirectly and the government worked on changing the atmosphere aggressively in which the oriental medicine tended to be ignored by the public. Since then on, the value of the oriental medicine in terms of medicine and culture as the traditional culture started being noticed and re-assessed. But Ju-Che medicine wasn't stabilized as expected because the existing medicine experts were reluctant to accept the drastic change in fear of losing their ground and vexed interest. The medical policies early at that period was under the great physicians. Most of interns and student studying in China usually majored in western medicine. Like we see so far, the oriental medicine related policy from N.K was borrowed and transformed from China's one in position of western medicine, in order word, the oriental medicine was assimilated into western medicine and the great physicians tried to develop into new medical theory. The stabilization of oriental medicine could be realized by easing the conflict and tension between western and oriental medicine through ideologic fighting at that time. Since that time, both of them started to admit other's existing and seek to find the new way to unify. It had been so long time that oriental medicine start drawing attention. It was April in 1956 when the 3rd great meeting of Labour party of N.K was held where Kim, Il-Sung was emphasizing on the importance of oriental medicine since which oriental medicine take up important position in the national healthcare policy and its status was getting higher and higher. N.K insisted that they should build its society by considering N.K own backgrounds such as experiences and society reality rather than accepting other communism nations' policies with which, the oriental medicine could be re-assessed. The period between 1971 and 1990 includes the 6year long plan(1971-1976) which aimed at intensifying the ground of technology and resources in communism society, the second 7year long plan(1978-1984) which aimed at promoting the technology revolutions, modernization and independence of the public economy and the 3rd 7year long plan(1985-1992). N.K was trying to do the policy to give the assigned area to doctors in order to improve the poor medical situation and emphasize on the oriental medicine and previously existing remedies in order to supporting the independent position in poor medical technology. The oriental medicine started to prevail early in the 1970th and have their own department in medical college such as pharmacy college and oriental medicine making department in the medical college. In "the suggestion on developing the oriental medicine in Febrary, 1979, improving the quality and increasing the number of oriental medicine doctors, growing herbs and focusing the development of Ju-Che medicine through the unification between the western and oriental medicine were suggested. Under that circumstance, Ju-Che medicine could take up good position gradually. In April, 1985, Kim, Jung-Il's speech of "the letter to nation wide healthcare worker" suggested significantly that western and oriental medicine be combined properly and develop themselves. Coming to 1990s, N.K had been going through extremely serious economic challenges caused by Kim Il-Sung's dying, the second times great floods with closed society system, which led to the crisis of healthcare system such as the lack of medicine equipments and the shortage of food. With that situation, Goryo medicine status could be more important. N.K sticked with Ju-Che medicine accepting the western medicine information and concept while emphasizing on the importance of oriental medicine. In this respect, Ju-Che medicine started serving as an important part in N.K healthcare system and keep maintaining its status so far. But there are certain limits of Ju-Che medicine in that N.K is communism based country. Even though this medicine would be develop a lot, it basically is confined within the N.K own theory aimed at making Kim Il Sung and Kim, Jung-Il God and the long expectance research institute which takes control of N.K medical policies is existing only for Kim Il-Sung and Kim, Jung-Il which lead to isolating the public from medical well fare system. The institute doesn't offer the chance of medical care to the public enough, instead, it mainly offer the benefit to high profile persons in N.K so that the ordinary people in N.K are only provided with the least healthcare. Though it can be positive that N.K seek to find their own medicine, Ju-Che medicine, it is so hard to solve N.K medicine problems without solving financial trou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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