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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 소설의 악마성 연구

Title
이청준 소설의 악마성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Devilishness of Cheongjun Lee's Novels
Authors
김소륜
Issue Date
2013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김미현
Abstract
이청준은 인간의 내면에 자리하는 ‘악’에 관한 본능적인 이끌림에 대해 주목한 작가이다. 따라서 그의 소설 속에는 인간 내면에 숨겨진 파괴 욕망, 가학적 폭력, 숨기고 싶은 치부(恥部)들이 산재한다. 작가는 ‘선’과 ‘악’의 이분화된 대립구도 속에서 언제나 제거되어야 할, 그러나 그럴 수 없기에 숨겨놓을 수밖에 없던 ‘악’의 문제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때의 ‘악’은 ‘선’의 대립항으로 한정되지 않는다. 이청준은 ‘선’과 ‘악’의 이분법이 아닌, 끊임없이 분기하는 ‘악’과 ‘악’ 사이의 투쟁에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악’은 ‘선’에 의해 극복되지 않는다. 이는 작품 안에서 어떠한 해답도 제시하지 않는 작가의 ‘글쓰기’를 통해 표출된다. 이청준의 소설은 명확한 정답을 제시하는 대신, 끊임없는 질문을 제기함으로써 ‘사유’를 지속해나간다. 이는 철학이란 끊임없는 사유의 연속이라고 보았던 ‘들뢰즈’의 이론을 통해 구체화된다. 따라서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악’은 인과성의 차원에서 논의될 수 없다. 작가는 ‘악’을 극복하기 위한 어떤 해결책도 제시하지 않으며, 오로지 ‘탐색의 과정’만을 제공하는 까닭이다. 이러한 ‘사유의 연속’은 텍스트의 분열을 초래한다는 점에서 ‘악마성’을 드러낸다. 본 논문은 이청준의 ‘글쓰기’를 ‘사유’의 문제와 연결 짓는다. 이때 ‘사유의 지속’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측면에서 ‘악마적’이라고 규정된다. 그런데 문제는 ‘사유하지 않음’이 ‘선’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다시 말해서 이청준이 제기하는 진정한 문제는 ‘선’과 ‘악’의 자리교체에 있지 않다. ‘선’은 ‘악’의 자리로 옮겨갈 수 있으나, ‘악’은 결코 ‘선’의 자리로 옮겨갈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사유의 무능성(inability)’ 또한 ‘악’으로 간주된다. 그리고 이러한 사유의 ‘지속’과 ‘정지’라는 경계 위에, 사유의 ‘유보’에 관한 문제가 추가된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본 논문은 이청준 소설에 나타난 ‘사유’의 정지・ 유보・ 지속이라는 문제를 각각 ‘악의 평범성’・ ‘악의 불가해성’・ ‘악의 파괴성’으로 명명한다. 이는 본론의 Ⅱ, Ⅲ, Ⅳ장을 구성하는 핵심 주제로, 작품 안에서 각각 사유의 무능성, 환상의 가능성, 창조의 역능성이라는 구체적인 창작원리를 도출하는 역할을 맡는다. 이러한 ‘악’의 문제는 인물들의 말하기를 통해 표출되고, 그들이 몸담고 있는 공간을 통해 상징화되며, 반복되는 모티프를 통해 표상된다는 점에서 보다 실체화된 ‘악마성’으로 정의한다. 우선 Ⅱ장에서는 ‘악의 평범성’을 드러내는 ‘사유의 무능성’을 분석한다. 아렌트(Hannah Arendt)는 ‘악’이란 오늘날 현대인 누구에게나 열려있음을 언급하며, 그 원인으로 ‘사유의 결핍’을 제시한 바 있다. 이때 ‘사유의 무능성’이란 “자신의 행위가 옳고 그른가에 대한 반성을 포기한” 상태를 의미한다. 인간은 악하기 때문에 악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하는 행위에 대한 사유를 거부했기 때문에 악한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악’이 인간적 실재임을 뒷받침한다. 능동적인 사유를 포기한 채, 지배질서의 요구에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선’이야말로 잔혹한 ‘악’이 될 수 있음을 폭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의 무능성’은 작품 안에서 주로 ‘발화’되지 못한 말, 즉 ‘유예된 말’로 가시화된다. 이는 상대방에게 일방적인 진술을 요구하는 타자의 강요로 인해 발생하고, 인물들은 강요된 고백 앞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스스로를 고발해야 할 상황에 놓인다. 이때 인물이 느끼는 고립감은 작품 안에서 사방이 가로막힌 ‘방(房)’ 공간으로 가시화된다. 방 안에 갇힌 인물들은 출구를 찾고자 욕망하지만 매번 실패하며, 급기야 방에서 벗어나겠다는 욕망조차 포기해버린다. 고립된 방 안에서 스스로를 학대하는 이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몰두하는 ‘나르시시스트’와 다름없다. 이청준은 이러한 ‘악의 평범성’에 관한 문제를 소외의 모티프를 통해 형상화해낸다. 이어지는 Ⅲ장에서는 ‘악의 불가해성’을 통한 ‘환상의 가능성’을 분석한다. 바우만(Zygmunt Bauman)은 악을 “우리가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영원히 알 수 없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이청준은 이러한 ‘악’의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작품 속으로 ‘환상’을 끌어들인다. 설명할 수 없는 ‘악’의 ‘불가해성’이 ‘환상의 가능성’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악’은 환상과 마찬가지로 설명되거나 이해될 수 없다. 불확정적이며 모호한 환상은 ‘악’을 발생시키는 원인이며, 환상은 ‘악’의 속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알 수 없다는 것’으로서의 환상은 사람들을 불안으로 몰아넣는다. 이러한 불안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소통되지 않는, 변형된 말인 ‘소문’을 통해 형상화된다. 이때 소문은 지배 수단에 의해 세계를 불안으로 몰아가지만, 동시에 지배 질서를 교란시키는 민중의 저항 수단으로도 활용된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은 작품 안에서 에로티시즘의 무대를 구성하는 역할을 맡는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현실과 환상과의 대립은 물론, 환상과 환상 사이의 분열을 경험한다. 분열된 세계가 주는 혼란 속에서 자신이 서야 할 자리를 찾고자 방황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이 선택하는 자리가 하나같이 진짜가 아닌 가짜, 현실이 아닌 환상 공간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확인될 수 없는 세계를 바라보는 ‘환영(幻影)’의 모티프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가시화된다. 이로써 작가는 고정불변의 선을 ‘부정(否定)’하는 ‘부정(不定)’의 세계관을 드러내는데 성공한다. 마지막으로 Ⅳ장에서는 ‘창조의 역능성’을 바탕으로 ‘악의 파괴성’을 분석한다. 이때 창조와 파괴의 문제는 ‘새로운 이야기(新話)’이자, ‘원초적 이야기(神話)’라는 측면에서 다루어진다. 이러한 신화는 우주의 본질과 연결된다. 인간은 ‘언어’를 통해 세계와의 소통을 시도하지만, 침묵의 형태로 존재하는 우주의 본질은 결코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다. 이에 이청준의 인물들은 ‘말’을 대신해서 ‘노래’를 부르거나, ‘소리’를 한다. 이때 ‘노래’와 ‘소리’는 끊임없는 탈영토화의 흐름, 즉 생성과 고착화의 영원한 투쟁을 통해 파괴와 창조라는 상반된 의미를 포괄한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이야기로서의 ‘신화(新話)’를 통해 스스로의 ‘신화(神話)’를 구축해나가는 동력이 된다. 새로움을 가능케 하는 원동력으로서의 ‘악’은 ‘선’과 ‘악’의 대립, ‘더’한 악과 ‘덜’한 악 사이의 갈등으로부터 벗어나서 주체를 절대적인 위치에 세우는 것이다. 따라서 보편적 근거가 와해된, 순수하고 텅 빈 형식으로서의 시간이 구성된다. 그 속에서 인물들은 자신이 원하는 곳에 구멍을 뚫고, 수많은 타자들과 관계를 맺어 나간다. 이와 같은 탈주는 인물들이 몸담고 있는 세계를 전복한다는 의미에서 카니발적이다. 이에 고정된 시원(始原)은 해체되고, 주체들은 스스로의 세계를 구축할 근거를 제공받는다. 파괴를 통해 창조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는 작품 속에서 미완의 모티프를 통해 가시화된다. ‘불완(不完)’이 아닌 ‘미완(未完)’의 서사를 구축함으로써, 이야기는 늘 새로운 시작을 맞이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본 논문은 ‘악’에 대한 하나의 고정된 개념을 확립하는 대신, 지속적인 문제 제기를 통한 사유를 시도하였다. 문학 작품 내에서 ‘악’이 어떠한 식으로 형상화되고 있으며, 그것을 통해 작가가 문제 삼고 있는 주제가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작업이야말로 문학 연구의 첫 걸음이라고 이해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청준에게 있어 ‘악’은 기존 체제를 위협하고, 숨겨진 실재를 탐구하며, 독자와 작가, 그리고 텍스트 간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실존적 행위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더불어 ‘악’은 정답을 제시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유를 요구하는 이청준의 독특한 작가 세계를 지탱하는 창조적 동력이라는 사실도 발견하였다. 이는 ‘선’에 대한 대립항으로서의 ‘악’이 아닌, ‘악 그 자체’의 고유성에 주목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본 연구는 단순히 ‘이청준’이라는 한 작가의 작품 세계를 고찰한다는 것에 머물지 않는다. 이는 1990년대 이후 대두되었던 세기말의 ‘종말론적 세계관’을 내포하는 문학 작품들의 원류(原流)를 드러내는 작업으로 확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문학의 창조적 원동력이 되는 ‘악’에 대한 탐구는 일제강점기로부터 2000년대 문학에 이르기까지, 한국 문학의 새로운 문학사 정립을 가능하게 해줄 중요한 주제의식으로도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문학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Lee Cheongjun is the writer who focused on instinctive inclination towards ‘Devilishness’ of human being, which explains so many dark features in his writings, such as destructive desire, sadistic violence, and darkness that are hidden deeply in one’s mind. Lee exposes ‘the evil’ which must be eliminated, but also must be kept hidden at the same time, from the viewpoint which is built on the spiral of ‘the good’ and ‘the evil’. ‘The evil’ is not just the other side of ‘the good’ in his viewpoint. He focuses on the ever-growing conflict amongst ‘the evil’, rather than the dichotomous separation between ‘the good’ and ‘the evil’. Therefore ‘the evil’ does not be overcome by ‘the good’, and this is explained throughout his ‘writing’ that does not provide the specific answers. Lee’s novels keep on sustaining the ‘Thought’ by unceasingly asking numerous questions rather than showing us the answers, and this becomes substantialized and supported by the Gilles Deleuze’s theory that defines philosophy as an everlasting continuance of thoughts. ‘The evil’ which is described in Lee’s novels cannot be explained from the viewpoint of causality. He doesn’t show us the way to overcome ‘the evil’, however he only does provide the ‘exploratory procedures’ that can help us. This kind of ‘continuance of thoughts’ is defined as ‘devilishness’, since it brings about the disorientation of context. In this study, we connect Lee’s ‘writings’ with the domain of ‘thoughts’, and this ‘continuance of thoughts’ is ‘devilish’ from the viewpoint that it does not provide us any specific answers in any situation. The problems are brought about from the fact that this ‘unthinking’ does not necessarily mean the ‘the good’, which emphasizes that the real questions that Lee asks to ourselves are not for the displacement of ‘the evil’ with ‘the good’. ‘The good’ can move to the position of ‘the evil’, however ‘the evil’ can never move to the position of ‘the good’. Therefore the ‘inability of thoughts’ is regarded ‘evil’ as well. And on the boundary between the continuance and the emptiness of ‘thoughts’, additional problem on ‘postponement of thoughts’ is appended. In this study, we review these ‘thoughts’-related issues that can be found in Lee’s writings, and define its features of emptiness, postponement, and continuance as banality, incomprehensibility, and destructiveness of evil respectively. These are the main themes of chapter II, III, and IV, and they are playing the role of creating the specific writing principals, such as inability of thoughts, possibility of fantasm, and enthusiasm for creation. In chapter II, we focus on the ‘banality of the evil’ which is brought about by the ‘inability of thoughts’. According to Hannah Arendt, ‘the evil’ is open to everyone in modern society, and she suggests that the cause of this phenomenon might be ‘the lack of thoughts’. In this context, the ‘inability of thoughts’ means the mental status that “one gives up making decisions on what is right and wrong in his or her own activities”. This theory implies that evil behaviors are caused by the refusal of decision-makings on one’s own behaviors, not by the evil in him or her. This supports the notion that ‘the evil’ is the very human-upholding form of existence. Lee is pointing out the possibility that ‘the good’ which blindly follows the order of ruling power can be the most radical ‘evil’ itself. This ‘inability of thoughts’ is normally visualized by those ‘words that do not flash’ or the ‘postponed statements’ in his creations. This kind of situation is created by the character that forces the other one’s unilateral statements, and those forced characters are made to accuse themselves within an environment where their feeling of isolation is visualized with the blocked space – ‘room’. Those characters want to find a way out from that blocked space. However, by the repeated failures, they just give up their desire to get out of the room. Those who abuse themselves in an isolated space are not different from ‘narcissist’ who just only concentrate on themselves. Lee substantializes those issues that are related to the ‘banality of evil’ through the motif of isolation. In chapter III, we analyze the ‘possibility of fantasm’ through the incomprehensibility of evil. Zygmunt Bauman explains the evil as a “certain being we do not know, and cannot understand forever”. Lee adopts the ‘fantasy’ in his writings as a tool to show us the evil-related issues. The identity of unexplainable ‘incomprehensibility of evil’ is revealed through the ‘possibility of fantasm’. The evil, along with fantasm, cannot be explained, nor can be understood. The uncertain and ambiguous fantasy is the very reason that causes the creation of evil, and also is the attribute of evil at the same time. Therefore this fantasy which is ‘unknowable’ makes people feel unstable and worried. This kind of uneasiness is substantialized through a ‘rumor’ which is the metamorphic form of text that does not be directly communicated among people. And this rumor is significant in a sense that it is used by the ruling power as a tool to spread fear and uneasiness to the world, and at the same time, it can be used by the resisting people as a tool to disturb the ruling orders and systems. This opposing situation constitutes the stage for the eroticism in Lee’s creation. On this stage, characters watch the conflict between the real world and the fantasy, and experience the diversion in fantasy. They are searching for their own places in the chaos which is caused by the divided world. However, the real problem is that those places they found, every one of them, are not the real ones, and only the fantasized spaces. This is substantialized by the ‘illusion’ motif through which one watches the unidentifiable world. It also is the way by which a viewpoint can be revealed that denies the existence of everlasting and unchangeable goodness, which can be depicted as a viewpoint that is based on the ‘unstableness’ of world. In chapter IV, based on the ‘enthusiasm for creation’, we review the issues on the ‘destructiveness of evil’. The issues on creation and destruction are treated from the viewpoint based on ‘novel context’ and ‘instinctive context or myth’. They are connected with the very core of the universe. We, human being, are trying to communicate with the world through ‘languages’, however, the silent characteristic of core universe cannot be explained, nor can be understood with those languages. Therefore, in Lee’s creation, characters express themselves with a ‘song’ or ‘Namdo Sori’ instead of using verbal ‘languages’. These ‘songs’ and ‘Soris’ encompass the two opposing concepts of creation and destruction through the endless trend of breaking boundaries that basically is the forever conflicting spiral of the creation and the stabilization. And this plays the role of new engine to construct its own ‘myth’ through ‘novel context’ with a brand-new story. This ‘evil’, as a driving force of a new creation, overcomes the conflicting status with ‘the good’, or amongst the much ‘severer’ or ‘less’ evil, and makes an object to get its absolute identity and position. Therefore the pure and empty form of time can be organized where no more general causes exist. Those characters created by Lee dig holes in it and coordinate relationship among them. This form of escaping is carnivallike in a sense that they overturn the world where they are in. The fixed origin is disassembled, and each identity is provided with the cause for creating his or her own world. The destruction enables the creation, and this is visualized through the uncompleted motif in Lee’s creation. By constructing the uncompleted context, rather than the imperfect context, the whole new and novel story begins. This study aims to find out Lee’s unique creation principals that transpass over his own entire creations, focusing on the ‘devilishness’ related issues, and provides the stepstone that can help understand and establish the creation methodology of him who devoted himself in writing more than 4 decades. Furthermore, in the history of modern Korean literatures, we suppose we are providing an opportunity to valuate and to reestablish the position of ‘Lee Cheongj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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