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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한국 출토 일본도자 연구

Title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한국 출토 일본도자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Korean artifact Japan ceramics in late 19th century - first half or 20th century
Authors
윤소라
Issue Date
2013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본 논문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한국출토 日本陶磁를 대상으로 수입배경 및수입양상, 출토현황을 토대로 일본도자의 종류와 특징, 국내에서의 소비양상과 의의를 파악하여 이 시기 일본에서 한국으로 수입된 도자의 실체를 규명하는데 목적이 있다. 일본도자는 17세기 중반부터 조선으로 유입된 것으로 확인되며, 1876년 개항을 기점으로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규모가 수입된 것으로 파악된다. 당시 조선의 요업은 늘어가는 도자수요를 생산이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던 반면, 일본의 요업상황은 메이지유신 이후 근대화의 성공을 기반으로 활발한 해외수출을 단행하면서 對조선 도자무역도 급격히 증가한 것으로 생각된다. 당시 일본도자의 국내 수입양상은 개항 이후 작성된 무역 통계자료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개항 직후부터 수입된 일본도자는 1910년 한일강제병합을 기점으로 더욱 비약적으로 증가하다가 1930년대에 이르러 감소한 것으로 확인된다. 수입주체는 한국과 일본의 상인으로 추정되며, 1920년대 이후에는 주로 일본 名古屋와 大阪항으로부터 사출되어 한국 부산과 인천항을 중심으로 수입된 것으로 파악되었다. 일본도자는 국내의 궁궐유적ㆍ분묘유적ㆍ폐기장 유적과 이를 제외한 기타유적에서 출토되었는데, 이 가운데 폐기장과 기타유적의 출토 비중이 높고, 전국적인 출토양상을 보이며 서울과 경기지방의 출토량이 우세한 양상을 보인다. 특히 폐기장유적은 국내 출토량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동대문운동장 유적에서 1908년-1925년, 서울 행당동 유적에서 1930-40년대 유물이 집중적으로 수습되어 일본 도자기 편년에 어느 정도의 기준을 제공하여 주목된다. 궁궐유적에서는 변기와 같은 특수기종이나 황실 문장인 오얏꽃이 시문된 자기편이 출토되어 왕실이라는 고급자기의 주 소비처답게 고급 일본 도자기가 사용되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분묘유적은 일본도자가 지석과 부장품으로 사용되었는데, 일본 수입도자와 인근지방에서 생산된 도자가 함께 매납 된 경우가 있어 수입자기와 국산자기를 구별 없이 사용한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일본에서 수입된 도자는 궁궐뿐만 아니라 일반 민가에서도 상당량 출토되어 국내에서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보편적으로 널리 소비되었던 양상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 국내출토 일본도자의 종류와 특징을 살펴보았다. 크게 조형적 특징에 따라 한국 수출용 도자와 일본 내수용 도자로 나누어 명문ㆍ상표, 생산지, 기종과 문양장식 등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이들 일본도자는 각각 분명한 경향성을 띠고 소비대상이 구분됨을 알 수 있었다. 한국 수출용 도자는 기존에 알려진 ‘大音精製’, ‘大野精製’ 이외에도 약 100여종 이상의 명문이 확인되고 다양한 명문표기형태 가운데 한글이 사용된 경우가 있어 주목된다. 이러한 한국 수출용 도자는 일본 肥前, 瀨戶ㆍ美濃지역을 중심으로 생산된 것이 확인되는데, 특히 개항 이후부터 1920년대까지는 히젠지역이 조선 수출 도자생산의 중심지였으나, 1930-40년대에는 세토ㆍ미노 등지로 그 중심지가 이동한 것으로 파악되었다. 기종은 발, 대접을 주력 생산하였고, 문양장식은 手描, 型紙接繪, 銅版轉寫, 고무인 기법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 형지접회의 비중이 높고 壽福字紋과 牧丹紋이 주로 시문된 것이 특징이다. 또, 한국 수출용 도자의 문양장식은 주로 1920년대 이전까지 히젠지역을 중심으로 형지접회 기법이 시문되다가, 1930-40년경에는 세토ㆍ미노지역에서 고무인 기법으로 변화된 양상이 확인되었다. 일본 내수용 도자는 현재까지 약 200여종의 명문이 확인되는데, 분석결과 생산지역은 肥前, 瀨戶ㆍ美濃,를 비롯해 東京, 京都, 石川, 名古屋 등으로 한국 수출용 도자보다 범위가 넓은 것으로 밝혀졌다. 매우 다양한 기종이 확인되지만 특히, 잔, 완, 접시의 출토량이 많다. 문양장식은 수묘, 형지접회, 동판인쇄 기법 등이 사용되었는데, 그 중 동판인쇄와 수묘의 비중이 높고, 문양의 종류도 한국 수출용에 비해 훨씬 다종다양한 점이 특징이다. 또 한국 수출용 도자와 다르게 형지접회 기법의 출토 비율은 높지 않으나, 완, 합 등의 저부에 시문된 도안화된 연판문은 한국 수출용 도자의 보조문양으로 빈번하게 확인된다. 즉, 히젠지역에서 한국 수출용 도자를 제작하였던 요장에서 일본 내수용 도자를 동시에 생산하였는데, 이때 보조문양을 공유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일본에서 출토 양상을 통해 이들의 주 소비대상을 추정해 볼 수 있는데, 한국 수출용 도자는 일본 내 생산유적에서만 출토되고 소비유적에서의 출토 예는 확인되지 않아 조선 수출을 목적으로 제작된 도자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더불어 일본 내수용 도자의 주 소비대상은 조선에 거주하던 일본인들로 추정되는데, 이는 개항 이후 국내로 상당수의 일본인들이 도래하였고, 당시 조선에 거주한 일본인들이 일본식 식문화를 지키며 살았던 것과 관련된 기록을 통해서 뒷받침된다.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한국으로 수입된 일본도자의 소비양상은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하여 살펴볼 수 있다. Ⅰ기는 1876년(개항)-1880년대까지로 본격적으로 일본도자가 수입되기 시작하는 시기로, 주로 개항장 근처를 중심으로 소비되어 아직 전국적으로 사용이 확산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Ⅱ기는 1890년대-1920년대이며 일본도자의 사용은 보다 확대되고 유통규모도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韓人은 조선 수출용 도자뿐만 아니라 일본 내수용 도자도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지만, 이때 한국인들은 일본 내수용 도자를 일본인과 다른 용도로 사용하였던 사실이 확인된다. Ⅲ기는 1930-1940년대까지로 한국인들의 일본 내수용 도자의 사용은 늘어갔지만 전반적인 일본요업이 쇠퇴하면서 일본도자의 수입이 감소한 것으로 추정된다. 마지막으로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한국으로 수입된 일본도자의 성격과 의의를 정리하면 첫째, 한국 수출용으로 제작된 일본도자 양식은 한국 전통적인 조형특징, 일본의 지역별 생산특징, 대량생산이 가능한 근대적인 제작기술이 더해진 결과로 만들어진 것임이 파악된다. 둘째, 이러한 수입 일본도자는 동시기 국내의 여러 요장과 이후 1930-1940년대 설립되는 산업도자회사에서도 모방·생산되면서, 해방 이후에까지 생산ㆍ소비되었음이 확인된다. 셋째, 일본도자를 통해 개항 이후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의 조류 속에서 전개된 도자산업의 면모를 확인 할 수 있고 넷째, 한국인은 개항 초기 한국 수출용 도자를 주로 소비하던 양상이 1890년대-1920년대 점차 일본 내수용 도자의 사용으로까지 확대되었는데 이를 통해 한국인의 도자취향과 미의식의 변화를 알 수 있으며 다섯째, 도자기의 유입에만 한정되지 않고 기술 및 자본의 유입도 동시에 이루어져 국내도자산업을 전통적인 수공업체제에서 근대적 생산체제로 이행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본 논문은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 한국 출토 일본도자를 다각도로 조명해 국내로 수입된 일본 도자의 실체를 파악해 보고자 하였다. 현재까지의 연구 성과에 더 나아가 일본도자의 시기별, 지역별 제작특징과 소비양상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다 체계적인 한국 근대도자 연구를 위한 기초를 마련한 점에 의의를 두고자 한다. ; This study, based on the Korean artifact (日本陶磁) in late 19th century and first half or 20th century, has purpose of examining the Japan-to-Korea imported ceramics during this time period; through the background and aspects of imports, and by understanding Japan ceramics's types and characteristics and domestic consuming conditions. It is known that Japan ceramics had inflow to Chosun since mid 17th century, and that large amounts were imported uncomparable to the 1876 open period. At that time, the Chosun ceramic industry couldn't handle the increasing demand for ceramics; but on the other hand, the industry situation in Japan executed global exports based on success in modern times after renovation, and it seems that their its trading among countries suddenly increased. The imports of Japanese ceramics were specifically understood through statistical data of trade which were made after its opening. Japanese ceramics, which are imported right after its opening, were more actively increasing during the period of Korea-Japan forced merge in 1910, and it decreased during the 1930s. The main group of imports seem to be the tradesman from Korean and Japan, and after the 1920s, it happened mostly through Japan 名古屋 and 大阪 harbor, and it seems that they were imported in the basis of Busan and Incheon harbors of Korea. Japanese were found in other vestiges in exception of royal palace vestigesㆍgrave vestigesㆍjunk place, where the junk place and other vestiges had high weight, and showed nationally found aspect and the leading aspect of being found in Seoul and Gyeonggi district. Especially, junk vestiges holds a large portion of domestic production, and 1908-1925 vestiges from East Door Stadium, 1930-40 vestiges from Seoul HaengDang, that it is given attention because it provides a level of standard to Japanese ceramics. Particular kind or plum flower designed vestiges from royal palace were found that Japanese luxurious ceramics were used as the royal household. The grave vestiges of Japan were used as memorial stones and grave goods; there were times where Japan-imported ceramics and its neighbor-produced ceramics had been brought together, and its usage conditions can be found without classifying imported ceramics and domestic ceramics. In other words, large amounts of Japan-imported ceramics haven't only come from royal palace but also from the general public, the aspect of being domestically speaking the rank and the fact that it were widely consumed can be known. Next, we looked into the types and characteristics of domestically founded Japanese ceramics. Largely according to its shaping characteristics, excellent compositionㆍtrademark, origin of production, types, and designs were studied by classifying into Korea-export-use ceramics and Japan-domestic ceramics. As result, it was known that Japanese ceramics each have clear tendency and classified as the consumable group. Besides the already known ‘大音精製’, ‘大野精製’, more than 100 types of Korea-export-use ceramics are found and attention is paid to the Korean-letter, Hangul, designed among diverse forms of excellently composed inscriptions. It is known that such ceramics are to be produced in the mid-area of Japanese 肥前, 瀨戶ㆍ美濃. Although HeeJen area was the main place for exporting ceramic production during the period between opening and 1920s, it seems that the main place had been moved to SetoㆍMino areas during the 1930-40s. They mainly produced the texture and bowl, 手描ㆍ型紙接繪ㆍ銅版轉寫 designs, and used Gomuin method. Among them, there were high weight on the paper pattern and it is unique that 壽福字紋 and 牧丹紋 were the frequent contemporary writings. Also, the designs for Korea-export-use were frequently used method mainly in HeeJen area before the 1920s, but it is known that the method was changed into the Gomuin method in the SetoㆍMino areas during the 1930-40s. There seems to be about 200 types of compositions for Japanese domestic ceramics until now, and from investigation, the location of production is 肥前, 瀨戶ㆍ美濃, and also 東京, 京都, 石川, 名古屋, that its range is broader than Korea-export-use ceramics. Many diverse types were found but especially, cups and dishes were mostly found. Sumyo, paper patterns, copperplate prints methods were used for designs, and among them, copperplate prints and sumyo had greater weight and the fact that types of designs are much more diverse compared with Korea-export-use ones is a distinctive feature. Also, unlike Korea-export-use ceramics, though the paper pattern method's weight isn't high, stereotypography seemed to be the assisting design for Korea-export-use ceramics. In other words, Japan-domestic-use ceramics were simultaneously produced with Korea-export-use ceramics in HeeJen area, at then, it seemed to share its assisting design. On one hand, through the finding aspects in Japan, the selected consuming group can be presumed that Korea-export-use ceramics are only found in the Japan-produced vestiges; also they seemed to be the ceramics produced in the purpose of Chosun exports due to the fact that examples of consumable vestiges were not verified. Indeed, it is presumed that the targeted consumable group for Japan-domestic-use ceramics are Japanese residing in Chosun; many Japanese crossed the sea into Korea after its opening, and this fact is supported with the record that Japanese residing in Chosun kept their culture. The aspects of Japanese ceramics, which are imported to Korea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and first half of 20th century, can be largely classified into three time periods. 'I' is the starting period where Japanese ceramics started to get imported during the 1876(open)-1880s, consumed mainly from the first opened place, and it doesn't seem to expand its use nationally. 'Ⅱ' is during the 1890s-1920s that the use of Japanese ceramics were expanded and its circulating size was extremely increased. 韓人 used not only Chosun-export-use ceramics but also Japan-domestic-use ceramics, but at then, Koreans seemed to use them in other purposes compared with Japanese. 'Ⅲ' is during the 1930s-1940s that, though the Koreans use of Japan-domestic-use ceramics was increased, the earnings from Japanese ceramics seemed to be decreased due to the decline in the overall Japanese ceramic industry. In conclusion, by summarizing Korea-imported Japanese ceramics' characteristics and its meaning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and first half of 20th century; first, the form of Japanese ceramics made for Korea-export use seemed to be made in result of having manufacturing technology which enables Korean cultural modeling characteristics, each Japan district's production characteristics, and large production. Second, such Japanese ceramics are being imitatedㆍproduced in its industry during the 1930s-1940s, and it is known that they are producedㆍconsumed after its release. Third, through the Japanese ceramics and after its opening, the features of ceramic industry were found in the trend of capitalism's market economy system. Fourth, at start of the opening, Korean's aspect of consuming for Korea-export-use ceramics gradually expanded its use for Japan-domestic-use ceramics during the 1890s-1920s; from this, Korean's preferences on ceramics and chances on esthetic sense were known. Fifth, not being limited on ceramic's inflow and by simultaneously accomplishing the inflow of technology and capital, it brought a result of changing the domestic ceramic industry from traditional handiwork system into modern manufacturing system. This research,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and first half of 20th century, tried to find out the realities in Japanese ceramics which were imported domestically by lighting the Korea-found Japanese ceramics in diverse ways. The current study will be expanded further in the fields of Japanese ceramic's periodical, geographical manufacturing characteristics and aspects on consumption. We try to put significance on providing the basis for a more systematic stud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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