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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상대적 힘과 국제기구의 정치적 취약성

Title
국가의 상대적 힘과 국제기구의 정치적 취약성
Authors
이민정
Issue Date
2013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남궁곤
Abstract
This study analyzes the relevance between the nation's power and dependence to international organization through Corfu Channel case. Corfu Channel incident occurred on 22 October 1946, while British warships proceeding passage formation through a channel in the Corfu Straits, which was territorial waters of Albania. While passing Corfu Channel, British warships struck a mine and were heavily damaged. This incident was partly affected by the hostile image between Albania and United Kingdom(UK) that had been formed in the process of political system establishment. Albania felt anxiety about Britain's intervention after World War Ⅱ and its pro-nationalist characteristic. On the other hand, UK regarded Albania as threat toward Greek's political system. The hostile images between Albania and UK because of the different political system and ideological preference made both countries recognize Corfu Channel incident as the threat to each other. UK brought dispute to UN Security Council and Albanian government accepted invitation of Security Council even though Albania wasn't a member of UN. To get a membership of UN, Albania had to show the co-operative attitude to Security Council. And UK had a discretion of Albania's application to membership as UK is the permanent member of Security Council. Thus, Albania cannot help accepting UK's proposal. This case shows that Britain's position in 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 has worked as compulsory power to the Albania. After discussions, Security Council decided to put this dispute to the International Court of Justice(ICJ). While discussing, communist countries persistently took Albania's side and upheld a decision which was favorable to Albania. Assuming that Poland and USSR represented Albania's interest, their skeptical position to ICJ shows the Albania's negative attitude about putting dispute to international organization. ICJ had two merits in this case. The first question is about whether Albania was responsible for the explosions and had a duty to pay compensation and the second question dealt with Britain's violations of international law by acts in Albanians waters. for the first question, By 14 to 2, ICJ declared that UK did not violate Albanian sovereignty. For the second question, by 11 to 5 ICJ declared that Albania was responsible to the Britain's damage by a mine struck. the judgement biased by two group according to Judgement's nationality and its ideologies. Although Yugoslavia was a communist country at that time, the judge from Yugoslavia exceptionally made a decision that was favorable to UK. That was due to the international circumstance Yugoslavia faced at that time. as Yugoslavia split with USSR, Yugoslavia became more dependent to western countries. This exception shows that interests of the states also influence ICJ's judgement. Ambiguity and vulnerability of international law, and the cold war cleavages on United Nations as seen in Gareau's study helps explaining this exceptional case. On december 1949, ICJ made a judgement in favour of the claim of the UK condemned Albania to pay a total compensation of £843,947. Albania's denial of ICJ's jurisdiction and absence in the proceedings, however, show Albanian's repulsion to the judgement made by international organization. Then UK wrung compensation from Albania by another way. After the World War Ⅱ, United States, UK, and France organized 'Tripartite Commission for the Restitution of Monetary Gold'(TGC) to handle the issue of Nazi's gold which had been looted from other countries. Using its position on TGC, UK suspended delivery of the gold to Albania. TGC case shows Albanian's difficulty in pursuing its interest because of its accessibility to international organization. Consequently, the gap of accessibility and dependence to 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 between states originated from their gap of power shows the political vulnerability of the international organization.;이 연구는 콜푸해협 판례(Corfu channel case)에 대한 사례연구를 통해서, 국가의 상대적인 힘에 따른 국제기구의 활용 정도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을 분석하고자 한다. 콜푸해협 사건은 1946년 10월 22일 알바니아의 영해인 콜푸해협 부근을 통항하던 영국의 군함이 기뢰에 부딪혀 파손되고 이로 인해 사망자가 발생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당시 발칸반도 내 국가인 그리스와 알바니아의 정치체제 확립 과정에서 형성된 양 국가의 부정적인 인식과 관련이 있다. 알바니아는 2차 대전 이후 영국의 강압적인 태도와 알바니아 내 민족주의 세력 지원에 대해 불안감을 갖고 있었다. 반면 영국은 알바니아를 그리스의 정치체제에 위협을 가하는 국가로 간주하고 있었다. 냉전기 영국과 알바니아가 서로 선호하는 정치체제 및 진영의 차이로 인해 형성된 양 국간의 적대적인 이미지는, 콜푸해협에서의 사건을 서로 간의 정치체제에 대한 상대국가의 위협으로 인식하게 했다. 영국은 콜푸사건을 국제연합의 안전보장이사회에 제출하였고, 이에 따라 당시 알바니아가 국제연합 가입국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안전보장이사회의 요구에 응한다. 알바니아는 국제연합 가입을 위해서 분쟁 해결에 대한 국제연합의 요구에 성의 있는 자세를 취해야만 했다. 알바니아의 국제연합 가입과 관련해 영국이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서 결정권을 갖고 있다는 점 또한 알바니아가 안전보장이사회를 통한 분쟁 해결이라는 영국의 건의를 받아들일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이는 영국이 국제기구 내에서 점하고 있는 위치 자체가 알바니아에 대한 강제적인 영향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안전보장이사회는 일련의 토론과정을 통해 본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부탁한다. 토론과정에서 공산주의진영 국가는 일관되게 알바니아에게 유리한 주장과 투표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투표과정에서 소련과 폴란드는 본 사건을 국제사법재판소에 부탁하는 데에 대하여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는데, 양 국이 알바니아의 입장을 대변한다고 보았을 때, 이는 알바니아가 국제기구를 통한 분쟁해결을 꺼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판례에 대한 쟁점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쟁점은, 영국이 알바니아의 주권을 침해했는가에 관한 문제로, 사건 당시 알바니아 영해 내의 콜푸해협에 대한 영국의 무해통항권이 인정되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재판소는 찬성 14 대 반대 2로 영국의 무해통항권을 인정하고 주권침해가 아니라 결정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 영국의 일방적인 기뢰해소 작업에 대해서는 알바니아에 대한 주권 침해로써 알바니아 정부에 대해 영국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쟁점은, 46년 10월 기뢰 폭발로 인한 영국에 피해에 대해서 알바니아의 배상책임이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 재판소는 찬성 11대 반대 5로 알바니아가 기뢰 폭발로 인한 영국군함훼손과 인명피해에 책임이 있다고 결정했다. 이러한 투표과정에서 재판관들의 선택은 각 재판관의 출신 국가가 속한 진영에 따라 나뉘는 모습을 보여준다. 당시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재판관은 공산주의 국가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로 영국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데, 이는 당시 유고슬라비아가 처한 외교적인 상황이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다. 소련 및 알바니아와의 단절된 외교관계, 그에 따른 서구 국가에 대한 의존성 증가가 그 원인이다. 이는 재판소의 판결과정에서도 국가 간의 이해관계가 반영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국제법 자체가 갖는 모호성이라는 취약성, 그리고 Gareau의 연구에서 나타나는 당시 동∙서구진영으로 양분되던 국제연합 내의 투표행태는 이를 뒷받침한다. 이후 1949년 12월 재판소는 알바니아에게 영국에 대하여 £843,947의 배상금을 지급하라는 최종결론을 내렸으나 알바니아는 판결을 거부하고 배상금을 지불하지 않았다. 판결에 대한 알바니아의 재판 불참 및 판결 거부는, 자국에게 불리한 국제기구의 결정해 대한 알바니아의 자발적인 거부를 보여준다. 이에 대해 영국은 다른 방식을 통해 알바니아에게 강제적으로 배상금을 받아낸다. 2차 대전 이후 추축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강탈한 금괴의 처분과 관련하여 미국∙영국∙프랑스는 3국 위원회(Tripartite Commission for the Restitution of Monetary Gold)를 결성하여 금의 배분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영국은 위원회 내의 위치를 활용해 알바니아에 지급해야 할 금을 동결하였다. 삼국위원회는 영국과 알바니아 간의 국제기구 접근성의 차이로 인해 알바니아가 국가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국가 간의 힘의 차이는 국가의 국제기구에 대한 접근성과 적극성에 차이를 가지고 오며, 이에 따른 국제기구의 정치적 속성은 국제기구가 같는 취약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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