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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 협상과 한국의 이익 집단

Title
한미 FTA 협상과 한국의 이익 집단
Other Titles
KORUS FTA and Interest Groups in Korea : The Paradox of Resistance and Acceptance
Authors
한봉이
Issue Date
2013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최은봉
Abstract
이 연구는 한미 FTA 협상 과정을 통해 한국 내에서 일어난 저항이 미국과의 협상과정에 미친 영향을 규명해보려는 목적으로 시도되었다. 한미 FTA 협상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역대 통상 협정 사상 가장 극렬한 저항이 일어났다. 한미 FTA는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과의 포괄적 수준의 FTA이기 때문에 국내 일부 산업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하였다. 농업, 의약품, 전문직 서비스업 등 경쟁력이 취약한 분야의 종사자들은 협상에 강하게 반발하였다. 이해 당사자들의 입장 차이는 협상기간 내내 치열한 외교협상과 첨예한 국내 갈등을 불러왔다. 한미 FTA 협상은 국제 협상보다는 국내에서 수용되는 과정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었다. 역전된 제2이미지 이론의 시각에서 보자면 한미 FTA 협상으로 인해 한국 내 연합과 정책의 변화가 촉발되었다. 본 연구에서는 어떠한 변화가 어느 정도 발생하였는지를 규명하기 위해 양면 게임 이론(Two Level Game Theory)에서의 윈셋(Win set) 개념을 분석의 틀로 이용하였다. 양면 게임 이론은 부수적으로 한미 FTA 협상 과정에서 행위자들의 행동을 ‘전략’의 차원에서 새롭게 이해할 수 있는 시각도 제공하였다. 본 연구에서는 협상의 국내 수용 과정에 보다 주목하기 위하여 국내 행위자도 정책의 선호와 전략의 주체로 설정하였으며, 미디어의 영향도 중요한 외부효과(Externality)로 가정하였다. 아울러 국내 갈등이 협상력 제고에 기여할 수 있다고 추론하여 국내에서 일어난 저항과 국제 협상의 상관관계를 관찰, 규명하고자 노력하였다. 협상 전 한미 FTA 협상의 결렬비용은 미국보다 한국이 더 컸다. 왜냐하면 미국은 이미 관세 장벽이 한국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이고 내수 시장이 크기 때문에 한국 시장으로의 진출이 절박하지 않았다. 반면 한국은 무역의존도가 높은 경제구조를 지니고 있어 세계 시장에서 차별 받지 않는 지위를 얻는 것이 중요하였다. 또한 당시 북한에 대한 입장 차이와 전작권 환수 문제 등으로 인해 미국과 한국의 동맹 전선에 균열이 생기고 있었다는 점도 큰 변수로 작용하였다. 한국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동맹은 안보, 경제, 정치적인 면에서 매우 중요하였기 때문에, 한미 FTA라는 경제 동맹을 통해 관계를 회복하고 결속을 다져야 할 필요가 있었다. 한국은 미국이 요구한 4대 선결조건에 대해 성의를 보이기 위해 국내 저항까지 감수했다. 2006년 3월 28일 반대 성향을 가진 이익집단들은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을 중심으로 하는 우산 조직(umbrella organization)으로 연대하였다. 이들은 한미 FTA 협상을 정치 쟁점화하고 반대 여론을 주도하였다. 일부 미디어의 부정적인 방송 또한 반대 여론의 확산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의 주장은 협상 후 대책 마련, 협상 추진의 민주성 요구에서 시작하여 점차 개방 반대로 바뀌었다. 협상 기간 내내 밤낮으로 진행되었던 시위와 촛불 문화제, 파업 등은 한미 FTA 협상 자체를 쟁점화하였다. 미국에서는 한미 FTA 협상에 무관심한 사람이 대부분이었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국민들이 협상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처럼 한미 FTA 협상 내용과 결과가 국민의 관심 대상이 되자 정부로서는 협상의 재량권이 줄어들게 되었고 한국의 윈셋은 작아지게 되었다. 한국 국민은 협상 내용과 결과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했고 정부는 미국과 한국 국민의 경계(Boundary)에서 양면전을 치러야 했다. 미국과의 협상 결과에 우려를 갖는 국민들이 늘어나면서 한국 정부의 협상 결렬 비용은 오히려 감소하게 되었다. 실제로 마지막 통상장관급 협상에서 한국과 미국의 주요 쟁점 사항들로 인해 결렬의 위기까지 갔었고, 양측은 상대방의 양보를 기다리면서 맞섰다. 이 시점에서 협상 결렬비용이 더 컸었던 즉, 협상이 더 절실했던 한국이 양보하면서 협상을 쉽게 타결시킬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들이 협상 과정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한 분야도 쉽게 양보할 수 없었다. 국내 수용 과정에서의 거센 저항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한국의 협상 결렬비용이 낮아지면서, 한국 정부는 막판 협상에서 미국의 양보를 좀 더 받아낼 수 있었던 셈이다. 한미 FTA 협상 기간 동안 <한미 FTA 저지 범국민 운동본부>의 조직적인 활동으로 인해 국내의 선호도 변화하였다. 한국 정부는 FTA협상 반대 운동으로 인해 국론이 분열되고 정부의 협상력을 저하 시켰다고 비판하였다. 이 연구에서는 협상력을 자동차와 쇠고기 분야와 같은 주요 협상 분야에서 한국이 제시한 안이 더 많이 반영되었다는 점과 상대국인 미국의 반응을 핵심 변수로 추정하였다. 분석결과 이론적 귀결이나 한국 정부의 주장과는 달리 국내의 저항과 그로 인해 국민들이 협상 과정에 대해 관심이 높아 진 점 등이 한국의 협상력을 높이는데 기여하였다는 역설적이면서도 흥미 있는 결과를 제시하였다.; This research investigates how the influence of domestic opposition and conflicts on KORUS FTA affects the outcome of the negotiation. KORUS FTA caused the strongest opposition in the Korean history of trade agreements. Apart from international negotiation, Korea had to experience intensified conflicts in the domestic level. After completing negotiation with US, restructuring of some industries would be an inevitable consequence in Korea. Some noncompetitive industries such as farming and service industries resisted strongly against KORUS FTA. Thus, for Korean, the process of domestic negotiation between some industries and Korean government was more concerned than the negotiation with US. KORUS FTA affected the domestic coalition and preference in Korea. The concept of ‘win-set’ in two-level game is applied as an analysis tool. Win-set estimated the remaining portion of government concession as a consequence of KORUS FTA. The behavior of government and interest groups as the main actors affected the size of win-set. And some media provided an important externality effect to reduce the win–set on KORUS FTA. Before KORUS FTA, the win-set of Korea was believed to be larger than that of US since US had abroad domestic market and the lower tariff barriers than Korea. Simply, the US government and industries was not urgent to advance to Korean market. However, Korea was highly dependent on international trade. In addition, President Roh Moo-hyun’s government was holding different views with US with some issues such as taking over the war time control of Korean military. Interest groups united in opposition to KORUS FTA in Korea, May 2006. They gathered under the umbrella organization, The Korea Alliance against Korea-U.S. FTA. They maneuvered the public opinion against KORUS FTA and led FTA negotiation to an intense political issue. Some negative TV and news media led the public opinion to anti-KORUS FTA as well. Insistences of the Korea Alliance against Korea-U.S. FTA had been expended from pointing out undemocratic decision-making of Korea government to opposition against neo-liberal economic policy. Anti-KORUS FTA was incorporated with the mass demonstration such as a candle culture festival. It definitely exerted a harmful influence on KORUS FTA. At that time, most Korean people had a great attention on the process of FTA negotiation with US. However, the majority of American didn’t know about KORUS FTA. Due to the high expectation of negotiation benefit, the win-set of Korea had been reduced and Korean negotiators had little room. As Korean people were much concerned with KORUS FTA, the negotiation break-down cost of Korea was reduced. On May 2007, the negotiation of KORUS FTA was almost broken down in the talks of trade ministers. Korea had locked horns with U.S. However, the Korean government couldn’t yield easily in any part of negotiation because many people had kept eye on the negotiation. Finally Korean government could induce some yield of U.S on the negotiation with the fierce opposition of domestic level. The opposition strategies of the Korean Alliance against KOREA-U.S FTA changed domestic preference of KORUS FTA. Korean government blamed Korean Alliance to undermine negotiating power of Korea. However, contrary to expectations, the bargaining power of Korea seemed to be improved. In terms of bargaining power, Korea’s proposal on the area of car and beef were reflected more than US proposal. This thesis draws a surprising result. Effective or blind anti-KORUS FTA movement led by the Korea Alliance unexpectedly brought a high bargaining power of the Korean government and fruitful gains from KORUS FTA negoti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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