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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末期 壽福字文 靑畵白磁 硏究

Title
朝鮮末期 壽福字文 靑畵白磁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f Blue and white Porcelain with Subokjamun in Late Joseon
Authors
박혜원
Issue Date
2012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장남원
Abstract
수복자문 청화백자는 청화안료를 사용하여 ‘壽’, ‘福’자를 문양으로 시문한 자기로서 조선말기에 집중적으로 생산·소비되었다. 조선말기 수복자문 청화백자는 관요와 지방요에서 동시에 제작되었으며 궁궐, 관청, 일반 건물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 특히 의궤에 그 문양이 명시될 정도로 왕실에서 선호되어 광범위한 수요를 보여준다. 본 논문에서는 조선말기 수복자문 청화백자를 사회의 전반적인 분위기에 따른 길상적 표상으로서 이해하는데서 머무르지 않고 조선말기 수복자문 청화백자 유행의 다층적인 원인을 밝히고 양식적 특징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여 조형성과 더불어 공예적인 의미를 밝히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먼저 중국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전개 과정을 명대와 청대로 나누어 조사하고, 이 수복자문 청화백자가 조선으로 유입되는 시기와 과정 그리고 조선의 수용 양상을 파악하였다. 중국의 청화 수복자문은 크게 명대에 유행한 원권 내 수복자를 시문한 유형과 청대에 주류를 이룬 원형 및 장방형 도안의 수복자문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명대의 유형은 조선 전기에 유입되었으며, 청대의 유형은 조선 후기에 유입되어 청화백자에 사용되었다. 이처럼 시간적 차이를 두고 서로 다른 유형의 수복자문 청화백자가 조선말기에 동시에 유행할 수 있었던 배경을 당시 사회의 변화와 연관하여 고찰하였다. 한편, 조선말기의 생산 유적과 소비 유적에서 출토된 수복자문 청화백자에 대해 검토한 후 문양을 중심으로 한 양식분류를 통해 이 시기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사용양상 및 그 전개과정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먼저 관요와 지방요를 중심으로 생산 유적별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출토 현황과 궁궐, 관청, 일반 건물 유적을 중심으로 소비 유적별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출토 현황을 조사하였다. 관요 출토품은 다양한 형식의 수복자문을 거의 포괄하고 있어 다른 생산 유적을 포함한 전체적인 양상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 궁궐유적에서는 다른 유적보다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출토 비중이 높아 특히 왕실에서 선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조선말기 수복자문 청화백자는 대부분 반상기종이므로 기종보다는 문양을 중심으로 양식을 분석하였다. 시문 방법에 따라 원권 내 수복자문, 도안화된 수복자문, 교차 수복자문, 기타 유형으로 분류하였다. 지방요 가운데 양구 방산요에서는 일부 유형의 수복자문 청화백자를 생산하였으며, 그 밖의 경우에는 매우 간략하게 시문된 수복자문 유형만이 시문되었다. 마지막으로 조선말기 수복자문 청화백자가 유행하게 된 배경과 유행의 주요한 원인에 대해서 살펴보고, 이어서 분원 민영화 이후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확산 현상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조선말기 수복자문 청화백자는 새로운 소비계층과 함께 민간에서도 유행하였는데 이러한 유행의 바탕에는 조선 왕실의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사용이 주효하다. 따라서 왕실의 수복자문 청화백자 사용 증가의 원인과 종류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먼저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사용이 확대되는 시기는 고종대로 확인되는데 이는 고종과 신정왕후를 둘러싼 정치적인 정황과 연관지어 추론하였다. 신정왕후와 정치적인 모자 관계는 고종으로 하여금 신정왕후와 관련된 진찬, 진연의 규모를 확대하게 만들었다. 따라서 수복자문 청화백자는 이 같은 헌수 연례의 목적에 부합하여 사용이 확대되었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원인으로는 찬안의 확대로 인한 소용 자기의 증가에 있다. 조선말기 왕실은 성대한 연향을 통해 왕실의 존엄과 정치적 주권을 드러내고자 하였다. 이에 찬안의 규모는 확대되고 연향에 소용되는 자기의 수도 증가하였다. 왕실 기명 수요의 급증에 따라 분원에서는 비교적 단순하고 빠르게 대량 생산의 요구에 부합하고 고정적인 품질을 달성할 수 있는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생산을 선호하였다. 의궤에 따르면 증가한 왕실 소용 수복자문 청화백자는 왕실기명 가운데 갑번자기와 당사기로 분류될 수 있다. 특히 그동안 당사기는 낮은 질의 중국제 반상기 청화백자로 이해되었으나 고종대 어느 시점을 중심으로 당사기의 의미가 확대되어 국내 생산의 중국풍 청화백자까지도 포괄하는 의미로 통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복자문 청화백자 가운데 외면엔 중국 자기의 영향을 받은 문양이 시문되고 내저엔 수복자문이 선택적으로 시문된 일부 분원산 수복자문 청화백자들은 당사기로 불렸을 가능성도 있다. 분원의 민영화 이후 지방요를 중심으로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제작이 확산되고 그에 따라 사용범위도 확대되었다. 지방요 가운데 양구방산 출토품을 살펴보면 분원 생산품과 비교하여 문양과 조형적인 특징이 거의 유사하다. 이런 유사성은 고용에 따른 사기장의 기술력 이동이라는 제작 환경의 변화에 영향을 받았다. 특히 수복자문은 회화적인 문양에 비해 시문 기술의 이전이 비교적 용이하여 잦은 사기장들의 이동에도 일정한 패턴과 품질을 유지할 수 있는 문양으로 그 생산이 확대되었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한편 양구 방산요를 제외한 지방요에서 생산한 근대기 수복자문 청화백자는 그 문양의 양식에서 일본 산업자기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조선에 수입된 일본 근대 산업자기는 수복자문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조선 수출용 자기를 생산했던 일본 요지에서도 전사기법으로 시문된 수복자문 자기가 발견되었으며 국내 여러 소비 유적에서 발굴된 일본산 수복자문 자기 역시 전사기법으로 도안화된 수복자문이 시문되었다. 일부 지방요에서는 당시 일본 산업자기가 싼 값에 유통되어 설 자리를 잃자 대량생산을 통해 따라 하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선 공방 구조를 체계적으로 갖추고, 생산기종 제한하였으며, 포개구이 번조방법으로 대량생산을 추구한 것으로 보인다. 또 수복자문만을 집중적으로 생산하였으며 제작공정 단축을 위해 외면에만 시문하였다. 하지만 대량생산을 위해서 전통적인 자기 형식을 포기하고 생산한 자기의 질은 매우 낮았다. 충주 미륵리 요지에서는 일본 근대식으로 요를 개설하고, 전사기법의 활용한 것이 확인되며 늦은 시기 양구방산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비록 일부 지방요이지만 당시 조선 내 자기생산의 상황이 일본의 조선 수출용 자기에서 영향 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후 대량생산을 위해 도안화된 수복자문을 전사기법으로 시문하는 양식은 근대 자기산업과도 연관된다. 지금까지 조선말기 소비와 생산이 증가한 수복자문 청화백자에 대해서 살펴보았다. 급격하게 애호·확대된 수복자문 청화백자는 이 시기의 길상 선호 풍조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의 변화와 공예 전반의 양상을 반영한 중요한 표징이다. 본 논문에서는 수복자문 청화백자의 생산과 소비 급증에 주목하여 그 다층적인 원인을 보다 입체적으로 분석한 것에 의의를 둔다.;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blue and white porcelains with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were produced and used intensively in the late Joseon Dynasty.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of the late Joseon Dynasty were produced in Guanyao(official kilns) and Jibangyo(private klins) at the same time and excavated from palaces, government offices, and general buildings. In particular, those porcelains were very preferred by the royal family as much as the pattern was recorded in Uigwe. Therefore, it needs to examine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that were widely used during that time. This study aims to find out hierarchical reasons for the trend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in the late Joseon Dynasty and specifically arrange stylistic features rather than analyze them as a lucky sign according to the entire atmosphere of society. First of all, this study divided the development process of Chinese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into the Ming Dynasty and the Qing Dynasty and looked into the introduction time to Joseon, process, and acceptance aspects of Joseon. Chinese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are largely categorized into the type that was surrounded by Wonkwon of the Ming Dynasty and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were displaced in the internal bottom and the type that inscribed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designed as a circular or rectangular pattern in the Qing Dynasty. The type of the Ming Dynasty was introduced in the early Joseon Dynasty, and the type of the Qing Dynasty was introduced in the late Josen Dynasty and used in Cheongwha porcelains(blue and white porcelains). In addition, by connecting change in that society and increase in new user groups, this study investigated the background that the different types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adopted in the different time could be popular in the late Joseon Dynasty at the same time. After reviewing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excavated from production remains and consumption remains, this study looked into the usage patterns and the development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during that time. First of all, it investigated the current status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according to production remains by focusing on Guanyao(official kilns) and Jibangyo(private klins) as well as consumption remains by focusing on palaces, government offices, and general building remains. In case of consumption remains,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were excavated a lot from palace remains. In addition, excavated articles of Bunwonyo(kiln sites) include various kinds of Subokjamun('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so the fact that it shows the entire patterns including other remains' is worthy of notice.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of the late Joseon Dynasty that are analyzed in this study are normally tableware, and therefore classification by types is not so meaningful that this study analyzed the type by focusing on patterns. According to inscription methods of patterns, the porcelains were divided into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designed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crossed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and other types. In addition, Yanggu Bangsanyo among Jibangyo partially produced patterns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with Bunwon style, and other kilns produced Cheongwha porcelains with simple characters of ‘Su(longevity)’ and ‘Bok(luck)'. This phenomenon was connected to relations between Buwon and Jibangyo after privatization as well as expansion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Lastly, this study examined the background where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were popular during the Joseon Dynasty and the major reasons and accordingly looked into expansion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after privatization of Bunwon.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of the late Joseon Dynasty were popular among new consumption groups and civilians. The background for this popularity is based on the use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of the Joseon loyal family. Therefore, this study analyzed the reason for usage increase of the loyal family's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and the increased kinds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Firstly, the use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was expanded in the regime of King Gojong, which is related to political relations between King Gojong and Queen Sinjeong. Political mother-child relationship with Queen Sinjeong made King Gojoing expand the size of court banquets(Jinchan) and feasts(Jinyeon) related to Queen Sinjeong.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met the purposes of court rituals(Yeonrye) offering a toast to longevity so the use was expanded. Another reason for the expansion was that the used porcelains were increased by expanded Chanan(food table for the King during the court feast(Jinyeon)). The loyal family of the late Joseon Dynasty showed the dignity and political sovereignty through a magnificent Yeonghyang(banquent for state guests). Accordingly, the size of Chanan was expanded and the number of porcelains used for Yeonghyang was increased. Bunwon also produced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with less pictorial expressions that they could keep consistent quality even on a mass production basis and manufacture rapidly. Increased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used in the loyal family could be divided into Gapbeonjagi and Dangsagi among the loyal family tableware recorded in Uigwe. In particular, Dangsagi has been analyzed as low quality Chinese Bansanggi Cheongwha porcelains. However, the meaning of Dangsagi was expanded at a specific point of the regime of King Gojong so Dangsagi includes domestic Chinese Cheongwha porcelains. Some Buwon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that have patterns affected by China at an external surface and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selectively inscribed at the inner bottom might be Dangsagi. After privatization of Bunwon,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were more manufactured around Jibangyo and the range of use was also expanded. Yanggubangsan excavated articles among Jibangyo are almost similar to Bunwon objects in terms of the patters and design features. This similarity had a path of influence such as the transfer of public potters' techniques through the process of hiring according to public potters' needs. Besides, as mentioned above Subokjamun(Su(longevity)’and ‘Bok(luck)’letters) have less pictorial expressions, so the transfer of inscription techniques was relatively easy so that the patterns seem to keep the quality despite the often transfer of public potters. Meanwhile,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produced in Suok-ri of Jangseong, Piseo-ri of Muan, Deokheung-ri of Yeongkwang , and Mireuk-ri of Chungju except for Yanggu Bangsanyo were probably affected by Japan's modern industrial porcelains in terms of the pattern type. Japan's modern industrial porcelains imported to Joseon show lots of Subokjamun('Su(longevity)’and ‘Bok(luck)’ letters) suiting Joseon people's taste. In Japan's kiln sites that manufactured porcelains for export to Joseon, Subokjamun porcelains inscribed with transcription were excavated, and Japanese Subokjamun porcelains excavated from many domestic used remains were also designed by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designed by transcription. Those kiln sites were intended to follow mass-production as the Japan's industrial porcelains were sold at a giveaway and lost their footing. Firstly, they had a systematic workshop structure, limited the porcelain types for mass-production, and pursued mass production through up-piling burning. Also, they manufactured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intensively and inscribed them to an external surface to reduce production time. However, the quality of porcelains manufactured without a type of traditional porcelains for mass production was very low. Later, in Mireuk-ri of Chungju kilns, kilns were newly built as the Japan's modern style and transcription was used. Yanggu Bangsan also showed a similar pattern at this late time. Although the type was relevant to only some Jibangyo, the situation of porcelain production in Joseon was found to be affected by Japan's porcelains for export to Joseon. Later, the style with 'Su(longevity)’ and ‘Bok(luck)’ letters inscribed by transcription for mass production is also related to the modern porcelain industry. This study looked into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whose comsumption and production were increased in the late Joseon Dynasty.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whose preference was rapidly expanded are the important keyword reflecting a preference tendency for a lucky sign as well as changes of Joseon society. This study is meaningful because it aims to analyze hierarchical reasons more three-dimensionally by focusing on the production and consumption increase of Subokjamun Cheongwha porcela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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