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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 연구

Title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Koguryo Anak Tomb No.3 Ancient Mural Paintings
Authors
유호선
Issue Date
2012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선표
Abstract
This paper is the study of Goguryeo Anak no.3 tomb’s mural paintings. This ancient tomb has been registered in the international heritage in 2004. The mound also known as fellow called ‘Dong-su’s tomb’. This tomb was made in about A.D.357, and located in Ohgukri Aakgun Hwanghaenamdo, now there is North Korea. This mound have 5 rooms, entrance, frontroom(前室), westroom(西側室), eastroom(東側室), mainroom(玄室), coridor(回廊). It’s structure is burial stone chamber tomb(石室峯土墳) and it has Lentern roof(末角造井) from the west area(西域). Tomb’s master is Dong-su, from China and his identity is a refugee. The north korea’ scientists concider him to king, Mickoenwang or Kogukwenwang. But almost south korea’ scientists believe him chinese general of Dong-su, he and his wife are aristocratic, also governing class. Mentioned briefly in the tomb murals are as follows. Entering through an opening stone, the entrance has made with bricks and painted one side wall of guards with holding a buckler or shield to march depicted. The front room has many pictures 4side walls. The south wall has two space among a entrance. East side above wall painted a man blowing with large pipe. And the below wall depicted palying the music and dancing men with a drum. But we don’t see their heads because they are damaged unhappy. And the other side has six mans with banners and 4 mans with axes. The west wall is draw two gards(ganghadock) and chinse letters it’s so called muksoemeong, chinese letters. There is written about his life. The main room has a little paintings. East side wall depicted a musical performance as 4 person. They are so indistinct and the west wall almost disappeared. But ceiling has been a lotus flower. West side room has un important paintings, the master and his wife’s portraits and their commands, staff, servants and garde, his name is zanghadock. East side room has so many paintings, Mills, wells, jangdok, kitchen, butcher, garage, stables and there are murals. Does not seem to have a ceiling mural. And coridor of east wall has There are about 250 peoples. The west wall of the corridor has been damaged and is almost invisible, also north corrider. But east wall in a narrow corridor of the signs of hunting seems to have. And north corrider south half wall has barn(warehouse). Where the three pillars of the stigma seems to face a monster. This is a description of the tomb to tomb Anak No. 3, exit the same period (4-5th century), tomb murals, compared with other tomb murals, same subjects and same themes. For example, the tomb owner, lotus, and dancing, playing music, constellations, military armor, etc. Also in the tomb murals in China and was a comparative study with portrait of tomb masters and the image of playing music and dancing. In conclusion, Anak No.3 Tomb of the 357 years the great tombs of Koguryo early grave with a many pictures, Dong-su, the owner of the tomb is an immigrat from China nobility. Therefore the Chinese and Koguryo style tombs expression shows a mixed pattern Koguryo and Han, Wei, Jin period of China.;본 논문은 황해남도 안악군 오국리에 위치한 고구려 초기 벽화무덤의 하나인 안악3호분에 그려진 벽화에 대한 고찰 및 연구 검토이다. 일명 동수묘라고도 불리는데 이는 전실서벽에 쓰여진 묵서명에 근거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발견당시부터 지금까지 국내외 학계에서는 묘주의 신분 규명에 논란이 있어왔다. 그간의 연구사 정리는 1949년 처음 발굴된 이후 현재까지 남, 북한과 중국, 일본, 서구의 학자들의 발자취이다. 필자는 묘주공방을 떠나 이 무덤의 벽화를 구석구석 살피고 연구하여 빈 벽의 유추 복원을 하고자 하였다. 안악3호분의 중요성은 357년 이라는 절대년도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고, 이를 바탕으로 고구려 고분벽화의 기준점이 되어, 이후 생활풍속계 벽화연구의 지표가 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 및 동북아시아 장의미술의 한 획을 긋는 초기벽화로 자리 잡으며 고구려 멸망까지 계속하여 발전하였다. 중국 측의 고구려 벽화에 대한 연구는 2000년대 초 중국의 동북공정 정책으로 인해 더욱 활기를 띠어 양국 간의 주목을 받았으며 연구에 박차를 가하여 대응논리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1958년에 북한에서 발굴보고서가 나왔고, 그 후 학계의 여러 분야에서 꾸준히 연구되어오고 있다. 문헌 자료와 유물자료가 부족한 우리현실에서 4세기 중엽의 삼국시대 벽화가 현재에 남아 전하는 일은 흔치 않으며 귀중한 문화유산으로써 보호해야할 일이다. 200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되어있으며 북한의 국보67호이다. 안악3호분의 묘주는 순수한 고구려인이 아니고 전연에서 망명해온 선비계 출신 무관(지방관)으로 벽화를 통해 묘주의 권세와 경제력 등을 엿볼 수 있다. 황해도지역은 한사군의 낙랑. 대방 지역으로 중국의 지배를 받던 곳으로 요동과 중원, 서역 문화와의 영향 관계에 있었다. 석실을 만들고 그 위에 벽화를 그리는 묘제는 중국에서 영향 받았지만 고구려에 수용되어 독자성을 띠며 전개되는데, 안악3호분의 건축구조는 석실봉토분으로 5방으로 구성된 다실묘이고, 말각조정방식의 천정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회랑과 반기둥 등의 특이하고 예외적인 고분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외래와의 영향 관계를 보여준다. 입구의 돌문을 열고 들어가 연실을 거쳐 거실 격인 전실과 전실 좌우의 서측실, 동측실, 현실, 동회랑과 북회랑이 있는 비대칭의 독특한 구조를 이룬다. 각 방의 입구에는 문은 없지만 2개의 실물기둥으로 장엄했고 벽화는 비교적 잘 남아있다. 벽화의 내용은 실로 흥미롭고 다양하며 그 주제는 생활풍속도로 4세기 중엽의 고구려의 생활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입구와 전실에는 서측실을 지키는 호위무사(장하독)가 각각 문 입구에 좌, 우로 서 있으며 남벽은 상하로 분리되어 윗부분에는 대각(큰 뿔피리)부는 남자와 아래의 무악 연주단이 입구의 우측 벽에 그려져 있는데 가운데 부분의 손상이 심하여 악단의 정확한 구성을 알기 힘들다. 그리고 남벽에는 의장기수, 4명의 부월수가 그려져 있고 동벽에는 상단에 수박희, 아랫단에 7명의 부월수 들이 서있다. 전실의 벽화는 묘주가 다스리던 지역에서 지방관으로서의 공적인 삶을 보여주고 있으며 제천의식이나 장례의식의 절차와 행렬의 준비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묘주부부의 관이 놓이는 현실은 입구의 4개의 8각기둥, 주두의 괴수면, 북벽의 반기둥과 주두의 괴수면 등이 각기 다른 모습으로 그려져 있으며, 주두의 동, 서 면에는 측면의 연화문이 그려져 있다. 이들은 벽사의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묘주인을 보호하고 있다. 현실 동벽에는 희미한 주악단과 무용수가 발을 꼰 춤을 추고 있다. 마주보는 서벽은 손상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천정 가운데에는 정면형의 연화로 장엄하였다. 서측실의 벽에는 가장 중요한 인물들이 그려져 있다. 묘주정사도, 묘주부인도, 호위무사가 있다. 북벽과 입구 우측의 동벽은 손상되어 그 실체를 잘 알 순 없다. 서측실의 묘주부부와 기타 인물도는 우리나라 초상화의 시원이라고 생각되며 그 유사점을 중국의 벽화묘에서 찾을 수 있었다. 천정의 마감돌과 장막 장식에서 연화문 장식을 볼 수 있다. 서측실의 북벽은 벽화가 확인되지 않지만 묘주의 출행도나 신하들의 배례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서벽 남측벽에는 또다른 장하독이 서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동측실은 생활풍속도로 분류되며 천정을 제외한 벽에 빈자리 없이 가득 그려져 있다. 그 내용은 순서대로 우측서벽에 방앗간, 북벽에 우물도, 동벽에 부엌도, 육고, 차고(수레와 가마), 남벽에 외양간, 서벽에 마구간 등이다. 이 방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여성으로 맡은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합리적인 동선을 고려하여 그려졌으며 반 이상이 식생활에 관한 내용이고 나머지는 기동력에 필요한 동물, 즉 가축들과 수레 등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살림살이를 엿볼 수 있다. 회랑의 구조는 좁고 긴 복도식으로, 동회랑에서 북회랑으로 꺾어진다. 동회랑 벽에는 거대한 대규묘의 행렬도가 그려져 있고, 끝으로 갈수록 벽화는 희미해지는데 행렬의 선두는 서쪽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최전방에서 우차를 타고 가는 젊은 시절의 묘주를 중심으로, 군악대와 무녀 중장기병, 보병, 창수, 부월수, 등롱수, 등 각종 다양한 역할을 하는 구성으로 모두 합해 약 250명의 인물들이 등장 한다. 이러한 다양한 구성과 질서정연한 대 행렬도는 독보적이며, 또한 동회랑 끝 벽의 희미한 수렵도를 확인하였다. 북 회랑의 끝부분에는 다층누각으로 보이는 부경도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것을 끝으로 안악3호분 벽화의 내용분석을 마쳤다. 이어서 연구의 범위를 확대하였는데, 초기 고구려 벽화고분들을 살펴 공통된 주제와 소재, 형식과 도상의 내용을 비교하여 고구려 초기 생활풍속계 벽화의 전개 상황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더 나아가 중국의 한, 위진 시대의 화상석(전)과 고분벽화를 살펴, 고구려 벽화와의 연원과 전개, 발전양상을 밝히고 비교해 보았다. 그중 주요 재제인 묘주도와 주악무도, 행렬도에 중점을 두고 살펴, 곳곳에 보이는 고구려 초기벽화와 유사한 요소들을 통해 고구려 고분문화의 대외교섭과 국제성을 검토해 보았다. 안악3호분은 중국 산동지역의 기남한묘와 비슷한 구조를 하고 있고 지리적으로 가까운 요동지방의 전연 선비계 고분벽화(원대자묘)와 많이 닮았음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다양한 서역과 동북아시아의 영향도 곳곳에서 보인다. 끝으로 필자는 이 무덤을 실견하지 못하고 화보나 도록 혹은 모사도를 통해 벽화를 연구하고 있음으로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특히 색채에 관하여는 각 도록이나 보고서 혹은 단행본 등에서는 각기 다른 상태와 색상을 보여 주어 혼란스럽다. 앞으로 실견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희망하며 더 이상의 손실이 없도록 벽화의 보존이나 유지 관리에 힘을 기우려 찬란한 세계문화유산을 잘 보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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