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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년대 희곡 연구

Title
1940년대 희곡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the 1940's Play : Focused on HistoryㆍGeopoliticsㆍYouth
Authors
전지니
Issue Date
2012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정우숙
Abstract
본고는 해방 전후 ‘역동적 생산물’로서 문화 유통의 중심에 자리했던 연극을 읽어보고자 한다. 국민동원의 시대로 요약될 수 있는 1940년대, 당국과 담론 생산자의 입장에서는 효과적인 선전물이었으며, 대중에게는 흥미진진한 오락물이었던 연극의 의의를 조명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40년대 연극이 국민정체성을 구성하는 방식을 파악하는 동시에, 극 텍스트의 복합적 측면을 설명하려 한다. 이는 해방 전후 연극의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열어 놓는 것이며, 또한 합일될 수 없는 욕망들이 교차하는 당대 극장의 다층성을 확인하는 작업이 될 것이다. 그간 극문학 연구는 해방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기점으로 전과 후를 분리해서 이루어져 왔지만, 대동아와 신생국가 건설로 요약되는 해방 전후는 유사한 동원과 계몽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함께 고찰될 수 있다. 진정한 해방과 자주 독립을 내세웠던 해방 후 민족담론은 총력전시기 국민동원의 구조를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제국이 남북한을 점령한 상황에서, 담론생산자들의 식민지적 의식구조가 근본적으로 변화하지 않는 한 총체적 해방은 요원한 것이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연극은 여전히 동원의 정치를 뒷받침하는 문화 도구였으며, 연극인들 역시 해방 전후를 막론하고 정치논리에 적극적으로 호응했다. 식민지시기와 해방기를 주도했던 연극주체들의 면면이 대동소이하고, 해방 후에도 이들이 연극을 계몽 수단으로 인식하고 있는 이상 국민연극과의 차이보다는 연속성이 두드러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연극인들의 무의식에 자리잡은 식민적 세계관은 한국전쟁 이후인 50년대까지 계속됐다. 따라서 해방 전후 연극주체의 국가기획 과정은 함께 고찰돼야 하며, 연극사 안에서 ‘40년대’ 연극의 시대적 특성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주지할 것은 40년대 연극의 목표는 관객의 계몽과 동원이었으나, 관객을 포섭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선호하는 대중극의 특징-멜로드라마 요소가 적극적으로 활용됐다는 점이다. 즉 극작주체는 연극 창작에 있어 시국상황을 우선시할 수밖에 없었으나, 대중의 정서 또한 외면할 수 없었다. 따라서 국민연극의 경우 전시 이데올로기를 강화하기 위해 멜로드라마 요소를 차용했고, 해방기 연극은 좌우익의 이데올로기와 멜로드라마적 감상주의를 절충했다. 이처럼 40년대 극계를 파악할 때 프로파간다 전략과 대중성의 문제는 분리해서 간주할 수 없는 것으로, 두 가지 지향점이 한 편의 연극 안에서 합치되거나 혹은 다른 의미층위를 형성할 때 발생하는 다양한 효과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곧 프로파간다의 시대인 40년대 연극은 선전극으로 간주됐지만, 텍스트 안에서는 선전성, 예술성, 대중성이 길항하기에 그 효과를 일관적으로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당시 국민연극 경연대회 참가작이라도 국책을 소홀히 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해방 후 이념극 역시 이데올로기가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았던 것은 40년대 연극의 복합성을 보여주는 지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본론 3~5장에서는 이데올로기와 망탈리테를 동시에 반영하는 연극이 국민정체성을 구축하면서 식민성을 수용하는 양상 및 이를 전유하는 양상을 함께 논의하기로 한다. 이어 6장에서는 40년대 연극에서 선전성과 대중성이 맞물리며 발생하는 극적 효과를 종합적으로 짚어볼 것이다. 구체적으로 3장에서는 연극주체가 익숙한 역사를 호출하여 전환기의 사명을 인식하고, 이에 따른 국민정체성을 규정하는 양상을 확인한다. 40년대 연극은 소재 고갈을 극복하고 관객의 친숙감을 높인다는 의도로 역사를 소환해 집단표상을 구성하는데, 역사를 호출한다는 것은 국민국가 기획의 일환으로 관객을 계몽하기 위함이었다. A절에서는 역사를 소재로 한 국민연극이 내선일체 신화를 극화하는 경우를 읽어본다. 먼저 제국의 일부로서 조선을 다루거나 동양적 어머니상을 형상화한 국민연극을 통해 역사의 낙관적 재현과 동양적 보편성의 현현 양상을 살피려 한다. 이어 실패한 역사의 단면을 제시하는 국민연극에서 조선적 특수성이 동양적 보편성으로 수렴되지 못하고, 운명에 대한 좌절감만이 심화되면서 허무의식이 두드러지는 양상을 논의한다. B절에서는 항쟁사를 소재로 한 해방기 연극을 읽을 것인데, 좌우대립구도가 전면화되고 멜로드라마의 선정성이 두드러지는 텍스트와 파토스를 강화하는 동시에 역사를 객관적으로 재현하는 텍스트를 살피기로 한다. 4장에서는 국제관계에 대한 담론생산자의 관심이 급증하는 40년대, 연극이 당면한 국제질서 안에서 제국의 심상지리를 반영해 집단정체성을 구성하는 양상을 규명한다. 해방 전후 극작주체는 제국의 지정학에 입각해 각각 인종, 문명의 대결구도와 이념대결 구도를 생산했는데, 적을 타자화하여 재구성하는 문제가 국민정체성의 주조와 맞닿아 있었다. A절에서는 반서양주의의 극화방식을 확인한다. 엄격한 도덕적 이분구도에 입각한 국민연극은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되고, 전시체제 식민지 조선 현실을 낭만화하여 제국의 지정학을 확산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어 조선을 대동아의 중심이 아닌 제국의 식민지로 배치하고,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하게 두며, 식민지 조선의 상황을 탈낭만화하는 국민연극을 논한다. 이들 연극은 여성 주인공이 죽거나 좌절하는 결말을 보여주면서 30년대 대중극의 비극적 정서를 강화하는데, 당대 관객은 이 같은 멜로드라마의 통속적 요소에 환호했던 것으로 보인다. B절에서는 소소한 갈등과 화해로 마무리되는 해방기 연극에서 강대국에 대한 기대감을 표출하며 해방공간을 이념화하는 양상을 짚어본다. 이와 함께 가정 혹은 연애 문제를 극화한 텍스트를 통해 해방공간의 병폐를 객관적으로 직시하며 현실에 대한 불신을 표출하는 경우를 논의한다. 5장에서는 40년대 연극이 세대론에 입각해 집단 내부를 위계화함으로써 올바른 국민정체성을 형성하는 일면을 읽는다. 총력전시기 대두한 전사형 애국청년 이미지는 해방을 거쳐 남북한에 독립된 국가가 들어선 이후까지 재생산되는데, 이는 동원과 건설의 논리 하에 청년에게 부여된 시대적 사명이 그만큼 엄중하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A절에서는 청년의 출병으로 가족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명랑한 성장드라마의 측면을 확인한다. 또한 청년의 출병이 진정성을 갖지 못하거나, 아들-연인의 출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여성인물들의 존재가 성장드라마를 불온하게 만드는 지점을 주목한다. 관객이 가장 감정이입할 만한 여성인물의 눈물이 신성한 출병의 의미를 퇴색시키는 것이다. B절에서는 귀환한 청년이 일제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선구자가 되는 양상을 설명한다. 명징한 이분구도에 입각한 이들 연극은 주로 구세대의 죽음을 다루면서 비극적으로 마무리되는데, 이를 필연적인 수순으로 묘사하며 건국에 대한 확신을 드러낸다. 반면 자연주의 수법과 멜로드라마 요소가 공존하는 해방기 연극에서 청년은 끝까지 목표 없이 방황하고, 현실에 대한 패배의식은 결말부에 이르러 더욱 심화된다. 이상 본론 각 절 1항에서는 도덕적 양극화 및 유토피아에 대한 확신으로 요약되는 멜로드라마가 역시 이분법적 세계관과 현실도피적 특징을 지닌 프로파간다와 합치되는 양상을 살펴볼 것이다. 또한 각 절의 2항에서는 30년대 대중극의 정서를 반영하여 현실에 대한 비극적 인식을 심화시키는 지점들이 선전메시지와 이질적 층위를 형성하는 측면들을 읽어보려 한다. 관객의 정서를 반영한 멜로드라마 요소는 지배담론에 편승해 보수적 이데올로기를 생산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선전성을 잠식하고 전경화되거나 시국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감추는 기제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본고는 선전성과 대중성의 역학관계에 따른 극적 효과를 조명하면서, 관객을 고려한 멜로드라마 요소가 지배담론을 뒷받침하는 동시에 그 통속성이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화시키는 측면을 확인한다. 이와 함께 도덕적 양극화에 입각한 멜로드라마의 이분법이 시국과 맞물리기도 하지만, 이 이분구도가 명확하지 않을 경우 주체와 적대적 타자와의 관계 역시 모호해지는 양상을 짚어본다. 여기서 관객의 선택적 수용 여부까지 고려한다면, 극장에서 연극주체들이 의도했던 계몽효과가 반드시 성공적이었다고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해진다. 1940년대는 그간 연극사에서 의미있게 논의되지 못했던 시기지만, 급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극작 활동을 계속해야 했던 연극인들이 가장 절실하게 연극에 대해 고민했던 시기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같은 치열한 모색을 반영한 해방 전후 연극은, 한 지점으로 수렴될 수 없는 욕망들이 충돌하면서 창출된 혼종적 텍스트로 간주할 수 있다. 더불어 기획 의도와 희곡 텍스트, 그리고 공연된 텍스트와 관객 반응 사이에서 나타나는 엇갈림은 당대 연극 유통의 복합성을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질적 욕망들이 빚어낸 40년대 연극은 그만큼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갖고 있고, 앞으로 보다 여러 각도에서 검토됨으로써 의의가 부각될 수 있을 것이다.; This thesis aims to read drama that had been seated in the center of cultural distribution as ''dynamic product'' based on the position as saying of needing to consecutively grasp before and after independence from Japanese Colonization. The aim is to illuminate significance of drama, which had been effective propaganda from the position of the authority and discourse producer, and which had been the exciting entertainment to the masses, in the 1940s that can be summarized as the period of mobilizing nationals. This thesis aims to explain the complex aspect of drama text as well as grasping a method of forming the national identity in the drama of the 1940s. This is what opened possibility of diverse analyses on drama before and after liberation and will be a work of confirming multiple-layer in theater in those days that desires, which cannot be united, are mixed. A research on dramatic literature has been formed in the meantime by being separated before and after, based on historical event called liberation. However, the period before and after liberation, which is summarized as construction of Greater East Asia and as a new country, can be considered together in a sense of having been functioned the similar mobilization and the enlightening logic. In a situation that a new empire occupied South and North Korea soon, the overall liberation was distant as far as the discourse producers'' colonial mind-set wasn''t changed. In this situation, the drama was a cultural tool of still supporting the politics of mobilization. Even the theatrical people positively responded to political logic regardless of before and after liberation. As far as all sides of the main agents in drama, which had initiated the colonial period and the liberation era, were almost identical and still recognized drama as a means of enlightenment even after liberation, the continuity couldn''t help being remarkable rather than difference from national theatre. Accordingly, the process of the national planning in the main agent of drama before and after liberation needs to be considered. What will be known well is a point that a goal of drama in the 1940s included enlightenment and mobilization, but that the characteristic of the popular drama, namely, melodrama element, for which they prefer, was utilized positively in the process of embracing the audience. Accordingly, to reinforce ideology in a war footing, a case of national theatre borrowed the melodrama element. The drama in the era of liberation compromised the ideology in the left-and-right wing and the melodrama-based sentimentalism. In this way, when grasping the dramatic circles in the 1940s, a strategy for propaganda and a problem of popularity are those that cannot be regarded by being separated. Thus, there is a need of paying attention to diverse effects that occur when two orientations are resonated or collided within a piece of drama. The identity of drama in the 1940s that is just the era of propaganda can be summarized as propaganda drama, but is rivaled the propagandism, artistry, and popularity within text, thereby being impossible to consistently judge its effect. At that time, even if the drama was participatory work to the national theatre contest, it was criticized that it had not paid attention to the national policy. Even the ideological drama after liberation was indicated as saying of being not completely revealed the ideology. It will be able to be said that it is the point of time that shows complexity of drama in the 1940s. Accordingly, in Chapter 3~5 of the main subject, the aim is to discuss together the aspect that the drama, which reflects ideology and mentalitIJ at the same time, accepts political coloniality while implementing the national identity, and the aspect of exclusively possessing this. Continuously, Chapter 6 will look back generally on the dramatic effect, which is created with being engaged the propagandism and popularity in the drama of the 1940s. Chapter 3 examines that playwright recognizes mission of the turning point by calling up history and confirms the aspect of prescribing the national identity. The drama in the 1940s forms the collective symbol by recalling history with the intention of overcoming exhaustion of materials and of increasing a sense of familiarity in the audience. What calls up history aimed to enlighten the audience as a part of planning the nation state. Clause A tries to read a case that the national theatre dramatizes myth for the 內鮮一體, which had history as material. Article 1 aims to examine the incarnation aspect of optimistic reappearance and Oriental universality in history. Continuously, Article 2 discusses the aspect that the consciousness of futility is striking while the Joseon-based distinctiveness fails to be converged into the Oriental universality. A sense of frustration is deepened on destiny, which suggests a section of the failed history. Clause B will read the drama in the era of liberation, which has history of struggle as material. Article 1 looks back on the point of time that the left-right confrontational structure comes to be full-scale and that the propagandism of melodrama is intensified such as spectacle, thrill, and violence in order to reinforce popularity. Article 2 aims to examine text of objectively reproducing history by being loyal to a record at the same time. Maintaining the melodrama-based characteristic, which strengthens pathos through entries of 3.1 commemorative festival, in which the confrontational image of ideology was relatively weakened. Chapter 4 closely examines the aspect of forming the collective identity by reflecting the geopolitics of empire within the international order that a drama faced in the 1940s, when the discourse producer''s interest in international relations rapidly grows. The main agent of dramatic writing before and after liberation produced the confrontation of human race, civilization and the confrontation of ideology based on the geopolitics of empire. A problem of reconstructing by making enemy other-ness met with the main current of national identity. Article 1 of Clause A confirms the dramatization method in anti- Occidentalism through national theatre. These dramas based on the strictly moral binary structure are noted in a sense of being finished with the good triumphing over the evil and of expanding the geopolitics of empire by allowing the colonial Joseon reality in a war footing to be romantic. Article 2 discusses the national theatre, which distributes Joseon into colony of empire, not the center of Greater East Asia. It makes ambiguous in the boundary of good and evil, and that makes it deromanticization for a situation of colonial Joseon. These dramas reinforce tragic emotion of the popular drama in the 1930s while showing a conclusion that the heroin dies or gets frustrated. The audience at that time seems to have encouraged the popular element in melodrama like this. Article 1 of Clause B, which examines the drama in the era of liberation, looks back on the aspect of expressing expectation for powerful nation and of allowing the space of liberation to be ideology through era of liberation’s plays, which are finished with small conflict and reconciliation. Continuously, Clause 2 discusses a case of expressing distrust in reality with objectively looking squarely negative effects of the liberation space. Chapter 5 reads the aspect of drama in the 1940s which forms the right national identity by allowing the inside of group to be hierarchial based on the generational theory. The image of patriotic youth in the form of warrior, which appeared in the era of total war, is reproduced until the period after the independent nation entered the South and North Korea after passing through liberation. This reflects a fact as saying that the historical mission, which was given to the youth under the logic of mobilization and construction, is as strict as it. Article 1 of Clause A confirms the aspect of the cheerful growth drama, in which all problems of family are solved owing to a young man''s military expedition. On the other hand, Article 2 pays attention to the point of time that a youth''s military expedition fails to have authenticity or that the existence of female characters, who fail to accept military expedition of son and lover, makes growth drama rebellious. It is what a tear of female character enough for the audience to empathize the most discolors the significance of military expedition. Article 1 of Clause B explains the aspect that a youth, who returned, clears vestiges of Japanese imperialism and becomes a pioneer of a race. These dramas based on the pellucid binary structure are finished tragically with primarily addressing death of old generation, and reveal the conviction in founding a country with depicting this in the essential sequence. On the other hand, in the era of liberation''s plays that are coexisted the naturalism technique and the melodrama element, a youth wanders to the end without a goal and is more deepened the tragic consciousness of defeat on reality with entering the conclusion. Article 1 in each clause of the main subject in the above will examine the aspect that even the melodrama, which is summarized with conviction in moral polarization and utopia, is resonated with propaganda, which has the binary world view and the escapism-based characteristic. Also, Article 2 in each clause aims to read the aspects that the points of time, which deepen the tragic recognition on reality by reflecting emotion of the popular drama in the 1930s. It forms the propagandistic message and different layer. The melodrama element, which reflected emotion of the audience, produces conservative ideology by going along with the dominant discourse, but encroaches propagandism and is made panoramic sometimes, and also becomes the mechanism of concealing critical sight on a situation. The 1940s is the period of having failed to have been discussed significantly in the history of drama. In the meantime, it will be able to be regarded as the period about which the theatrical people were worried most desperately, who had needed to continue the activity of dramatic writing amid the rapidly changing situation. The drama before and after liberation, which reflected this fierce pursuit, can be regarded as the mixed text, which was created with being collided the desires that cannot be converged into one point of time. In addition, alternateness, which is caused between the planning intention & plays and the performed text & audience''s response, is also what proves complexity of the drama distribution in those days. Accordingly, the drama in the 1940s, which was created with being engaged the different desires, has possibility of diverse analyses as much as it and it will be able to be highlighted its significance by being examined from more several angles in the fu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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