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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말 중국인의 일본유학과 일본어학습

Title
청말 중국인의 일본유학과 일본어학습
Other Titles
清末における中国人の日本留学と日本語学習
Authors
양희정
Issue Date
2012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정혜중
Abstract
본 연구는 중국의 근대화 초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일본유학이 일본어의 습득을 전제로 하고 있었는지를 알기 위한 목적에서 시작된다. 1894년의 청일전쟁에서 동방의 소국이었던 일본에 패배하면서, 중국은 근대화가 가지는 힘을 비로소 이해하고, 일본으로부터 근대문물을 습득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일본어학습이 함께 시작되는데, 이를 위해 1896년에 최초의 관비유학생이 일본으로 파견되었으며, 국내에서도 각지에 관사립 일본어학교가 설립된다. 그러나 이권 침탈이 심화되어 가는 가운데 의화단 사건과 같은 국내적 혼란까지 계속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국내에서의 일본어교육은 제대로 성장을 이루어내지 못한다. 반면 꾸준히 그 규모를 키워나가며 일정의 성과를 가져온 것은 일본유학이었다. 그런데 이처럼 청말의 일본유학은 근대학문의 습득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유학생에 대한 교육은 주로 속성교육이 실시되고 있었다. 유학생들은 전근대적 유교 교육만을 받아왔기 때문에 이들이 고도의 전문지식과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기반이 되어줄 기초학문의 습득이 전제되어야 했다. 그러나 이와 같은 방법으로는 학업 기간이 길어지기 때문에, 당장의 근대화 인재가 절실히 필요하였던 청말의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여 단시간에 기술 습득만을 내세운 속성과가 다수 개설된 것이다. 이들 속성과에서 수업기한을 줄이기 위한 방법으로 많이 취하고 있던 것은 수업에 통역을 동석시켜 일본어를 몰라도 교수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 즉 언어 습득의 기간을 없애는 방법이었다. 이와 같은 교육 방법상의 특징 때문에 청말의 일본유학사에서 일본어학습은 그다지 주목 받지 못하였다. 중국과 일본은 한자라는 동일한 문자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언어를 몰라도 필담으로 간단한 의사소통은 가능하다는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수업 시간에는 통역이 동석하는 이외에, 방과 후에는 주로 기숙사에서 다른 중국인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유학생들의 학습 목표는 근대문물의 습득에 있었기 때문에, 학교 교재나 그 외의 출판물을 읽고 해석할 수만 있다면 목적 달성이 가능하였다. 유학생들에게 일본어 능력, 특히 말하고 듣는 능력은 절실히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교육기관의 과정상에서 일본어는 매우 큰 비중으로 실시되고 있었다. 학과 개설의 측면에서 볼 때, 당시의 유학생 교육기관은 크게 보통과와 전문과를 개설하고 있었다. 보통과는 일본의 관립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유학생들에게 부족한 일본어와 보통학을 교수하는 것을 목적으로 세워진 학과였다. 다시 말해 일본의 고등학교나 전문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은 대부분의 경우 이 보통과를 거쳤다고 할 수 있다. 이 보통과에서는 전체 수업 시수의 50% 가량을 일본어에 투자하고 있었다. 특히 첫 학기나 첫 학년에 일본어과목이 집중되어 있어, 학생들은 보통학 교수에 선행하여 언어 학습을 받을 수가 있었다. 전문과는 보통과와는 달리 특정 학과목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도록 구성된 학과였다. 특히 사범, 경무, 법정의 세 학과가 인기가 많았으며, 대부분의 전문과에서 속성교육이 실시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전문과가 일본어교육을 배제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학교에 따라 속성교육을 실시하고 있지 않은 전문과, 속성과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어과목을 개설하고 있는 전문과도 있었으며, 전문과 교육은 속성적으로 교수하되 그 이전에 반드시 예비교육단계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일본어학습이 선행되도록 한 학교도 있었다. 중국인의 일본어학습에 대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 것은 학교 과정뿐만은 아니다. 청말 시기에 제작된 일본어학습서를 통해서도 중국인 유학생들의 일본어학습을 엿볼 수 있다. 패전 전까지의 일본에서 발간된 일본어학습서 중 전체의 약 반 수가 중국인의 일본유학이 이루어지던 1900년대에 출간되었는데, 이는 곧 당시의 일본에 그만큼의 학습서 수요가 존재하였음을 의미한다. 특히 유학생 교육에 참여하였던 교육자들이 주축이 되어 학습서 제작이 이루어지면서, 학습서의 구성과 내용에는 중국인 유학생에 실시되었던 일본어교육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이들 학습서는 어휘, 구문, 문법, 독해 등 다양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초기에는 중국어 단어에 해당하는 일본어 단어를 대조하는 형태로 제시할 뿐인 단순한 형태였지만, 점차적으로 내용이 체계화되어 간다. 무엇보다도 이들 학습서는 철저하게 구어 중심으로 제작되고 있었다. 각 학습서에 가장 많은 교수 형태는 구문을 통한 학습이다. 다시 말해 생활 속에서 많이 쓰이는 구문들을 반복적으로 제시함으로써 표현을 외우고 어법을 익히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서적류를 읽고 해석하는 능력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일본인과 교류할 때 필요한 말하기 능력을 우선시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상과 같이 청말에 일본으로 파견된 중국인 유학생들은 그들의 근대문물 습득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먼저 일본어를 학습하고 있었다. 유학생을 대상으로 세워진 교육기관에서 학생들은 보통학이나 근대학문과 더불어 일본어과목을 교수 받고 있었다. 학과마다 차이는 있으나 최종적인 학업 수준이 높을수록 일본어의 학습 기간도 길었다고 볼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일본어학습에 이용한 학습서를 통해서, 한자가 주는 이점에도 불구하고 음성교육과 문자교육이 병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일본어학습을 바탕으로 근대문물을 익히고 귀국한 학생들은 곧 중국 근대화의 주역이 된다. 다시 말해 중국의 근대화 초기에 일본어 능력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1894年の日清戦争で日本に敗北したことを皮切りに、中国は近代化の持つ力を思い知り、日本から‘近代’を学ぼうとする。その際必然的に求められる日本語の人材を養成するため、日本語教育が始まる。1896年、近代中国初めての日本留学生が派遣され、中国内でも数々の日本語学校が登場する。しかし列強の侵略や反清運動など、不安定な状況が続く中で国内での教育は成長できず、日本留学だけが成果をもたらすことになる。 ところで、清末の日本留学は近代の学問を身につけることに焦点が置かれていたため、中国人留日学生に対しては主に速成教育が行われていた。留学生には儒教教育の経験しかなかったため、数学や物理、化学など基礎学問の知識がなく、目的している高等な技術などを得るためには長年の学習が必要であった。しかし近代化を進めようとする清朝からみると、良質の教育とともに短期間で学業を終え政策の実行を担ってくれる人材を養成することも重要な課題であった。そこで生まれたのが速成科である。そしてその速成科では教授期限を短縮ために主に言語修得の期間を削る方法が取り入られていた。  速成教育の特徴から、清末の日本留学史で日本語学習はあまり注目されて来なかった。筆談という漢字を媒介にしたコミュニケーションが可能であったことや、多くの場合学生たちは通訳を通じて授業を受け、放課後は寄宿舎で同じ留学生とともに生活をしていたことからみれば、日本語の学習がなくても中国人の留学生活は成立できたのではないかと考えられるのである。 しかし彼ら留学生を教えていた日本の教育機関では念を入れ日本語を教授していた。当時の学科は普通科と専門科に分けられる。普通科は日本の高等専門学校へ入学するため、普通学と日本語を教えることを目的に設けられたものである。したがって普通科での教育経験はより高等な教育を受けるための基盤となっていたのである。そしてその普通科の教育の中では全体の半分ほどの時数が日本語教育に使われていた。特に1年目に日本語の授業を集中させることで日本語が普通学より先に学ばれるようにしていた。 専門科は文字通り普通科より専門的な内容を教授する学科であった。留学生に最も人気があったのは師範、警務、法政の学科で、速成教育は多くの場合これら専門科に用いられていた。しかしすべての専門科が日本語教育を行っていなかった訳ではない。学校によって修業年限3年以上の速成ではない専門科を設けていたり、また速成科でも日本語が教授されていた例もある。専門科教育は速成で教授するが、その予備教育として普通科過程を必ず卒業するように定められていた学校もあった。すなわち専門科の中でも一部は日本語の教育が行われていたのである。 中国人留日学生の日本語学習を覗けるのは学校の過程上のみではない。清末に制作された日本語学習書からも留日学生の日本語学習をみる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戦前の日本において刊行された日本語学習書の多くは中国人の日本留学がブームになっていた時期に刊行されたものである。このことは当時中国人留学生による学習書の需要が相当なものであったことを意味する。そしてその学習書の多くが留学生教育機関などで中国人留学生を教えた経験のある者によって書かれたものである。つまりこの時期に刊行された学習書から中国人留日学生に行われた日本語教育の方法や内容を見出すことができるのである。 これらの学習書は語彙、構文、文法、読解の内容から日本語を説明していた。初めは中国語の語彙にあたる日本語語彙を並べるような単純なものであったが、留学生の急増に従って学習書もその教授法や内容を進展させて行く。また学習書のほとんどが話し言葉に基づいて構成されていたことも注目すべきである。このことは中国人留学生たちが日本語を学ぶにおいて、書籍類の翻訳に役立つ読解力のみではなく日常で用いられる会話力も身に付けていたことを知らせてくれるている。 以上のように清末の中国人留日学生は速成教育が行われているなかで、速成ではない日本語教育を受けていた。教育機関では普通学や専門科目とともに日本語をも教授されていた。彼らの学んだ日本語は、漢字からなる利点にも関わらず文と語の両方に対する日本語であった。そしてそのように日本語を学んだ留学生は日本語能力を素に近代学問を修得し、帰国後は様々な分野で中国の近代化を率いる主役として活躍したのであ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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