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37 Download: 0

李朝時代 燈燭器具에 關한 考察

Title
李朝時代 燈燭器具에 關한 考察
Authors
김삼대자
Issue Date
1968
Department/Major
대학원 회화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元來 本稿의 意圖는 우리나라 燈燭器具史를 上古, 中世, 近世로 가름하고 各時代의 燈燭器具의 造形形式과 그 變遷을 比較, 檢討하고자 함이 目的이었으나 그 時代를 規定짓는 몇가지 要素, 特히 現存하는 中世 以後 遺品의 稀少와 體系的으로 考察할 만한 이 方面 文獻資料의 不備때문에 結果的으로 本稿의 範圍는 李朝時代 燈燭器具에 中心을 둔 그 樣式考察에 그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나라 燈燭器具의 起源과 그 外來影響에 對하여 古代와 中世에 關한 現存 資料 및 文獻을 通해서 不充分 하나마 그 槪念도 設定하였다고 생각한다. 大體로 우리나라 燈燭器具의 歷史는 上古時代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며 이미 三國時代 中葉에는 樂浪工藝에서 影響을 받은 漢代式 燈燭器具가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 古代 韓國 燈器樣式 成立에 源泉的인 影響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三國時代는 아직도 燈燭器具의 普及이 普遍化되지 못하고 있었지만 中國樣式을 模倣한 高級 燈燭器具가 限定된 一部 上流階級과 寺院에 享有되었고 一般 庶民層은 들짐승의 脂肪이나 植物性기름을 利用한 素朴한 油燈을 使用함에 不過하였다. 統一新羅의 燈器는 質·量으로 發電해서 그 樣式도 國風化 되었으리라는 것은 이 時代에 屬하는 佛敎寺院의 石燈樣式의 整齊와 高麗初葉의 燈器樣式으로 보아 能히 짐작이 되나 現存遺品이 없다. 高麗時代는 佛敎의 隆盛으로 燃燈會, 八關會를 비롯한 各種 佛敎儀式에 刺戟되어 提燈의 發達은 最盛期를 이루었으며 이러한 遺習이 佛敎를 抑壓하던 李朝時代까지도 命脈을 이을 수 있을 만큼 燈燭器具에 對한 佛敎의 影響은 컸었다. 더우기 高麗時代에는 光明臺와 같은 竹節式 燭臺가 創案되어 우리나라 燈燭器具의 一般的인 形態는 이미 高麗時代에 그 基盤이 잡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高麗時代는 그 貴族社會的인 社會構造 때문에 工藝的인 燈燭器具가 普遍化되지 못하였고 따라서 形態 및 紋樣이 貴族工藝的인 性格을 띄운데 反하여 李朝前期는 內治와 外交의 成功으로 産業經濟가 勃興하였을 뿐만 아니라 經濟構造의 改革等을 通해서 工藝品의 普及이 이루어졌던 時代임으로 李朝時代의 燈燭器具는 實用的인 庶民工藝的 性格을 띄우게 되었으며 더구나 肅宗, 英祖, 正祖의 三代에 걸친 藝術復興期에 이르러서는 簡明하고도 洗練된 燈燭意匠이 本格化 되었다. 이러한 素朴하고도 簡潔한 意匠은 民藝的인 아름다움을 示顯할 뿐만 아니라 裝飾意匠은 勿論 불잡게를 비롯한 數많은 創意가 이루어져서 李朝美의 본바탕을 보여주게 되었다. 李朝時代 燈燭器具에 즐겨 使用된 紋樣은 나비, 박쥐, 花鳥, 四君子, 龍, 太極,卍字, □字等인데 이러한 紋樣들은 우리 周邊의 家具나 住宅意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으로서 한 層 生活化된 意匠임을 알 수 있다. 李朝時代의 燈燭器具들은 매우 近代的인 感覺을 보인 作品이 적지 않고 따라서 이를 電氣燈으로 改良해서 室內裝飾 兼 照明用으로 硏究, 開發할 餘地가 充分할 것이다. 이러한 可能性은 西歐風 電氣燈의 새물결에 忘却된 李朝時代 燈燭器具의 硏究開發에 걸려진 課題임에 비추어 앞으로 이에 대한 硏究가 集大成 된다면 韓國의 室內裝飾用 Design은 李朝時代 燈燭器具의 探求에서 새로운 分野를 開拓할 수 있을 것으로 믿어진다.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조형예술학부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