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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朝時代의 室內裝飾

Title
李朝時代의 室內裝飾
Authors
李淑妊
Issue Date
1958
Department/Major
대학원 가정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閔泳珪
Abstract
東部亞細亞大陸의 比較的 溫帶區域에 位置하고 있으나 南北으로 길게 자리잡은 우리나라는 地勢氣候가 고르지 못한 原因으로 建築材의 木材를 産出하는 自然界에 대한 影響이 좋지 못하였으므로 發育이 신통치 못한 木材로서 住宅을 이루기에는 木材의 기리를 最大로 利用해서 6尺4角原則의 한 間을 기둥으로 버티고 이어 나가는 木造構式을 取할 수 밖에 없었으며 當時의 儒敎至上主義가 가지고온 倫理制度는 안방과 사랑방의 區別과 또한 坐式으로 一貫한 生活樣式등은 今日에 와서 볼 수 있는 住宅構造形式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차차로 여유있는 모든 條件으로 因해서 방을 채로 그 規模의 擴張을 要求했으며 古代 老人만이 使用하던 溫?房도 生活進步와 함께 大廳中心生活로부터 溫?中心의 生活로 變해 갔던 것이다. 그러나 儒敎를 崇尙했던 李朝에 있어서는 그 室內의 裝飾도 極히 素朴한 것이었으며 宮闕과 佛殿에만 丹靑을 許容하고 民家에 있어 上流階級에 옷칠을 할 程度로 制約함과 同時에 朱漆이나 螺鈿用具는 宮殿內 極히 上流階級住宅內에만 허락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素地品이나 金屬金具로 裝飾한 程度의 家具 其他 素朴한 物品등으로 室內를 치장한 庶民住宅이란 裝飾했다고 보기 어려울 地境이며 宮殿內나 上流階級住宅內에서 使用한 華麗한 것만이 지금와서 裝飾品이라 指摘하게 되는 것이다. 李朝時代의 特色이 되는 裝飾品으로 獨立된 物件이 없음을 들 수 있으며 그 대신 그 個個의 用途를 지닌 物品에는 圖案, 色등을 彫刻, 染附 其他 여러 優秀한 手法으로 裝飾을 施巧하고 있으며 手工業이니 만치 精誠어린 作品으로 今日에 이르러 裝飾品으로서 價値를 發揮하고 있다. 儒敎의 影響으로 詩句의 書畵등을 壁體, 문짝에 즐겨 使用했으며 무게 있고 調和가 되는 裝飾을 擇하였다. 이와 같이 古朴, 溫潤, 雅趣, 渾沌등의 民族性은 他國의 企劃이 미치치 못할 情味를 保有하면서 今日에 이르고 있으며 이 特性은 아무러한 外國의 재빠른 近代感覺이 導入되어 風靡하더라도 永久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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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소비자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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