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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無影論

Title
李無影論
Authors
이성
Issue Date
1967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金永德
Abstract
“可憐한 에고이스트여! 人間은 나를 비웃으리라 그러나 中庸을 잃지않은 嘲笑요 □揄라면 그 또한 甘受할만한 勇氣는 있다. 아니 난 「에고이스트」다 나는 民族主義者가 되고싶지도않다. 나는 藝術家 되기보다 爲先 人間되기를 願하는者다 한 自由의 人間으로서의 藝術家! 그것이 나의 所願이다.” 젊은날의 無影의 이러한 告白은 그의 初期作品을 가장 正確하게 말해주는 이야기지만 이말은 또한 그의 全體生涯를 通한 그의 文學觀이라고 말할 수 있을것이다. 나는 序論의 첫머리에 이말을 引用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結論을 代身할 수 있음을 미리 말하려한다. 李無影은 本名이 龍九이고 1908年 1月 4日에 忠北 隱城에서 出生하였다. 때마침 東學亂이 波及하여 오리골山 避難中에 出生했던 것이다. 그는 徽文中學을 마친後 成城高等學校에 進學하였다가 中退하고 十七歲부터 加藤武雄의 門下에서 4年間小說을 修業하였다. 그때에 盧子泳이 主宰하던 靑鳥社를 通하여 19歲때인 1925年에 「依支없는 靑春」을 그 다음해에 「廢墟의 울음」을 出刊했다. 22歲때 歸國하여 敎員, 雜誌記者, 新聞記者等의 生活을 하면서 創作에 全心하다가 1936年頃에 느끼는바있어 新聞社를 그만두고 시골로 歸農해서 農村文學을 했다 解放後에 다시 敎育界에 나와서 서울大學에서 小說創作을 敎授하였고 最近에는 檀國大學에서 敎鞭을잡는 一方, 文總中央委員으로 活動하면서 如前히 創作을 했다. 그러나 1959年 뜻하지않은 심장마비로 別世하고 말았다. 내가 알기로는 無影에對한 硏究發表는 거의 없었다고 생각한다. 實際로 그가 世上을 떠난지 이미 6年이 되었으나 그의 作品은 全集으로도 整理되지 못한 채로이다. 나는 無影의 作家論을 쓰기로 했을때 그일은 單純히 그의 生涯와 作品을 分析硏究하는 것 에 그치는 일이 아니라, 散在해있는 그의 作品을 찾아내고 整理하는 일이 먼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1928年 그가 처음으로 「依支없는 靈魂」 (原名 : 依支없는 청춘」을 가지고 文壇에 데뷰한 이래의 雜誌에실린作品, 단행본等을 可能한限, 時代的인 順序로 읽어갔다. 그의 作品의 所在는 後에 다시 無影을 硏究할 분이나 그의 全集을 내려는 분들을 爲하여 자세히 밝혀두려고 한다. 나는 無影의 作品을 살피면서 時代的인 영향을 많이 받은 作家라는 것 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의 作品을 차례에서 밝힌바와같이 1.初期作品 ( 1928年 - 1936 年 ) 즉 그가 데뷰한後부터 歸農하기까지, 2.農民文學 ( 1937 年 ~ 1945 年까지 ) 그의 歸農後부터 해방까지, 3.解放後의 作品 ( 1945 年 ~ 1959 年까지 ) 해방후부터 6.25 前 까지, 4.그의 後期作品 ( 1950 年 ~ 1960 年 까지 ) 6.25동란부터 그가 別世하기까지의 四期로 나누어 보았다. 各 Chapter 마다 그 時代區分에 해당되는 時代的 背景을 論하고 그의 生涯와 結付시켜 硏究하는 方法을 擇했으나 무엇보다도 作品 그 自體에 中點을 두어 硏究하려는 것 을 밝혀둔다. 그리고 文章이나 作品의 主題, 構成에 對한 評은 그때그때 하기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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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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