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54 Download: 0

가야묘제의 연구

Title
가야묘제의 연구
Authors
전길희
Issue Date
1961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以上의 論攷에서 筆者는 伽耶의 墓制를 硏究함에 앞서 우선 이 古憤을 築造한 時代의 歷史的 흐름을 槪觀하고 다음에 墓制의 細部考察로 들어 갔다. 各論 第三章에서는 古憤을 그 築造方法에 따라 몇가지 形式으로 區分하고 그 分布를 살펴보았으며 먼저 封土와 石室의 配置를 基準하여 1). 一封土 一石室 2). 一封土 二石室 a. 主室과 副室의 石室 b. 各己一死體를 埋葬하고 있는 石室 3). 一封土 三石室 로 區分하고 다시 그 封土內의 主體를 이루고 있는 石室을 分類하여 A. 竪穴式 橫穴式의 영향을 받지 않은 幅과 高가 낮은 石室 a. 特殊形 b. 그 以外의 諸墳 2. 橫穴式의 영향을 받았다고 보는 幅과 高가 높은 石室 B. 橫穴式 1. 羨道가 없는 石室 2. 羨道가 있는 石室 a. 羨道가 있는 石室諸墳 b. 特殊形 으로 區分하였다. 그 結果 A式과 B_(2)式은 一封土 一石室形式으로 洛東江以西地域에 分布되고 있으며 B, 式은 一封土 二石室 乃至三石室 形式으로 洛東江以東地域과 星州地方에 分布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같은 對照的인 樣相은 伽耶古憤에 出土된 土器群의 樣相과 아울러 伽耶史 硏究上 하나의 興味있는 事實이라고 할 수 있다. 第四章에서는 이들 石室構造의 起源에 對하여 考察했으며 先學들이 推定해온바와 같이 竪穴式이 先行墓制에서 發展한 形式임을 밝혔고 橫穴式은 北으로 부터 傳來한 橫穴式墓制에서 나타난 地方的 特殊形式으로서 伽耶聠盟이 形成된 4世紀 末 乃至 5世紀 初로 부터 伽耶聠盟이 滅亡한 直後인 6世紀 末葉까지 A式을 時間的으로 앞세우며 B_(1) B_(2)式이 築造되었다고 推定하였다. 그中 A式과 B_(1)式은 同時期에 地域을 달리하여 築造되었으며 B_(2)式도 한때는 A 및 B_(1)式과 同時에 築造되었던 것으로 이것은 新羅古憤中 竪穴式에서 橫穴式으로 移行하는 過渡期에 築造한 普門里夫婦塚에서도 볼 수 있는 現象이다. 第五章에서는 韓國의 其他地域에 있는 古憤과 伽耶墓制를 比較하여 兩者間의 連關性을 찾아 보았다. 그 結果 洛東江以東地域의 古憤은 그 築造法에 있어 新羅의 古憤인 積石木槨憤과 類似点이 發見되었고 洛東江以西의 古憤은 新羅古憤에서 보다 오히려 百濟古憤과 많은 類似点이 있었다. 이같은 現象은 伽耶諸國이 그들과 國憤을 接하여 頻繁한 往來가 있었던 歷史的 事實을 明示하여 주는 하나의 證據이라고 할 수 있으며 더우기 洛東江以西 地方에 築造된 B_(2)式의 橫穴式石室이 百濟의 古憤에서 流入된 形式임을 알 수 있었던 것으로 이는 일찌기 洛東江以東 地域이 新羅의 支配下에 들어 갔음을 證明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伽耶古憤은 日本古代의 墓制인 竪穴式石室과 같은 系統을 보이고 있음에도 不拘하고 이 地方에 대한 資料蒐集의 不振으로 말미암아 日本의 墓制와 比較하지 못하고 다만 韓國內에 있는 古憤과 比較하여 보는 것만으로 그쳤음은 遺憾이다. 이번 論攷는 從來發掘 報告한 古憤을 들어 그 形式을 硏究 比較하는데 그쳤으며 序言에서 言及한바 古憤에서 出土되는 利番 裝身具等 여러 副葬品에 관하여는 거의 손을 대지 못하였다. 앞으로 이 地方의 古憤發掘과 아울러 新資料를 蒐集함에 따라 次次 訂正 補充을 하고저 하며 이 未備한 論攷가 歷史的 記錄이 稀少한 伽耶時代 硏究에 多少나마 도움이 된다면 以上 多幸한 일이 없겠다.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사학과 > Theses_Master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