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140 Download: 0

自강·獨立 思想 硏究

Title
自강·獨立 思想 硏究
Other Titles
A Study on Thoughts of National Empowerment and Independence : The Cases of Chang Jiyon, Park Eunsik, and Shin Chaeho
Authors
禹男淑
Issue Date
1994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Doctor
Advisors
朴忠錫
Abstract
本 論文은 1890년대 후반 이래 韓國이 日本의 植民地에로 轉落해 가는 과정에 있어 사상운동이라 할 수 있는, 이른바 「自强」·「獨立」思想의 이론적 구조를 그 대표적 思想家로 일컬어지고 있는 세 思想家, 즉 白巖 朴殷植(1859-1925) 韋庵 張志淵(1864-1920) 丹齊 申采浩(1880~1936)의 思考를 중심으로 검토하고 이들의 思想的 特徵을 比較 檢討한다. 1890년 후반에 이르러, 開化思想은 1896년 組織된 獨立協會를 중심으로 西歐的인 近代化를 지향하는 만민공동회를 개최하는 등 인민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 개혁운동으로 전환하게 된다. 이와 같은 정치 개혁의 사회화가 확산되는 과정에서 「自强」·「獨立」思想은 『獨立新聞』, 『帝國新聞』, 『皇城新聞』 등의 國漢文 新聞의 언론 매체를 통해서 성장하고 있다. 이 세 思想家는 거의 同時代의 인물로서, 現實 狀況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나, 外來思想의 影響에 있어서나 매우 유사한 思想的 狀況 속에서 자신들의 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그들은 1890년 후반의 對內外的 정치·사상적 상황 속에서 儒敎를 기반으로 성장하여 서구의 근대사상인 社會進化論과 國家有機體說의 영향을 받고 있다. 그들에게 수용된 社會進化論은 일본과 중국을 통해 수용되는 과정에서 西歐 社會進化論과 달리 ‘外競論’과 ‘優勝劣敗論’을 軸으로 하는 社會進化論의 이론적 특성을 지니게 된다. 한국의 社會進化論에서는 생존관계간의 관계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하고 生存競爭과 自然選擇을 外部에서만 適用한다는 意味로 「外競」이라 하였다. 이 「外競」은 국제사회에서의 국가, 민족, 인종간의 優勝劣敗, 弱肉强食의 원리가 강조되었다. 한국에 수용된 국가유기체설은 스위스의 國家學者로 독일에서 활동했던 불륜츄리 (J. K. Bluntschli : 1808-1881)의 國家理論이 중심이다. 특히 그가 國家를 國家精神과 國家體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 주장은 朴殷植, 申采浩에 있어 「國魂」「精神上國家」의 형태로 제시되고 있으며, 그의 國家主權說은 張志淵에 있어 「國家思想」과 「國體主義」, 그리고 신채호의 「國家主義」에 영향을 미친다. 이 세 사상가의 「自强」·「獨立」사상운동의 양식을 사고의 전개 과정을 중심으로 고찰해 보면 먼저 張志淵은 그의 「自强」·「獨立」사상의 발전 도정에 착안하여 1898년에서 1910년 까지의 시기를 세 단계로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그는 1898년 경의 국제 사회를 弱肉强食的 힘의 질서가 지배하는 「變局」적 상황이며, 국내 사회는 유교적 문명이 極에 달하여 衰의 단계에 이른 文明的 위기 상황임을 인식하고 그 대응적 사상으로 「變通」論에 근거한 東道西器論的인 「自主」的 文明開化論을 기점으로 하여 전개하고 있다. 즉 「常經」의 영역인 유교의 도덕의 영역은 保持하며, 「變通」의 영역으로 서구의 實業, 技術의 學問을 수용하여 국가의 문명화를 달성하고자 하였다. 그의 「變自主」的」 文明開化論은 사회진화론과 국가유기체설의 수용을 통해 1905년 경 국가의 점진적 「自强」을 통해 국가의 「獨立」을 달성하고자 하는 「自强主義」論의 성격을 띄게 된다. 그의 국제 사회에 대한 「變國」적 인식은 사회진화론의 수용을 통해 국제 사회가 병렬적 국가간의 경쟁에 의한 「弱肉强食」的 競爭 社會로 「民智」와 「術業」의 「明者」, 「優者」, 그리고 「團合者」는 국가의 「독립」을 유지할 수 있으나 「昧者」, 「劣者」, 「孤立者」는 劣敗하여 자연도태되어 국가의 독립을 상실하게 된다고 강조하고 이러한 한국을 둘러싼 국제 사회에서국가의 독립을 위한 점진적인 實踐的 論議로 「自强之義」와 「自强之術」을 제시하고 있다. 즉 「進取精神」, 「愛國의 熱性」, 「國家思想」으로 「自强之義」를 확립하고 「新敎育」과 「殖産興業」이란 「自强之術」로서 국가의 「自强」·「獨立」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그의 「自强主義」論는 1908년 경에 이르면 일제에 의해 「自强」·「獨立」運動이 탄압되던 정치적 상황 속에서 「大同敎」의 창건이라는 宗敎改革의 형태로 「自强」·「獨立」사상을 전개하고 있다. 張志淵은 이 단계에 이르면 국제 사회에 대한 약육강식과 우승열패적 경쟁적인 질서를 비판하고 상대화시켜 연합, 평화의 보편주의적 세계인 「大同社會」論을 전개한다. 朴殷植에 있어서는 「自强」·「獨立」사상의 이론적 구조를 그의 사상의 발전 도정에 착안하여 1898년에서 1910년 까지의 시기를 세 단계로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그는 당시의 국제 사회 속에서의 한국의 위치가 「天下의 弱國」,「天下의 劣種」이라는 자각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것과 연관하여 한국의 현실적 과제가 국가의 부강과 대외적 自主獨立이라 보고 그것을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기초적 조건이 학문이라 보았다. 따라서 학문 그것 자체를 융성하게 함으로서 부강과 자주독립을 달성하여야 한다는 「興學論」을 전개한다. 1905년 경에 이르면 朴殷植은 사회진화론의 수용으로 당시의 한국을 「優等의 지위를 상실한 노예 상태」로 규정하고, 국제 사회는 「公法」에 의한 規範主義的 질서가 아닌 列國간의 「民智」와 「物産」의 「優勝劣敗」的 勢力 競爭을 통해 「文明化」와 「種族 保存」이 가능한 사회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는 한국의 「自强」·「獨立」을 위해 「智識」과 「物産」의 경쟁에서 「優者」의 지위를 회복하기 위한 「敎育으로 지식을 啓發g고 殖産으로 勢力을 增進」하자는 勢力論으로 전개된다. 이 세력론은 1908년 이후에 이르면 陽明學을 통해 東道의 개혁을 주장하며, 우승열패와 약육강식이라는 경쟁의 원리가 극복되어 평화와 인류 공존의 원리가 지배하는 보편주의적 세계인 「大同社會」論을 전개하였다. 申采浩의 思想 활동은 그의 발표된 著述의 시기를 근거로 하여 1907년 이후에서 1910년까지를 살펴보았다. 그는 당시의 국제 사회가 「힘」에 의한 「弱肉强食」과 「優勝劣敗」的 경쟁 원리에 의한 우열적 질서라는 철저한 인식에서 출발하여 한국의 「自由 獨立國家의 보유」가 국가의 문명화 보다 우선하는 「國家獨立論」을 전개한다. 그의 「國家獨立論」은 국력강화책인 「自强」보다 한국의 「保種」과 「保國」을 동시적으로 실천하기 위한 「國家保全論」의 형태를 띄게 된다. 이 「國家保全論」은 「東·西·黃·白 兩種의 競爭時代」라는 황백인종 경쟁론과 결합한 東洋主義에 대해 國家競爭을 기초로 國家保全을 최우선으로 하는 國家主義를 제창한다. 이 國家主義는 일본에 대한 정치적 從屬性이 심화되면서 帝國主義에 대한 「民族主義」형태로 전개된다. 申采浩의 民族主義는 優勝劣敗의 淘汰과정에서 패배하지 않으려고 同族이 合하여 抗爭하는 것으로 주장하였다. 그의 이러한 民族主義論을 국가의 독립을 위한 정신적 기초로서, 민족주의에 의해 국민을 계몽시키기고자 「新歷史」論을 전개한다. 그리고 1910년 독립 후의 국가의 형태로서 「國民國家」論을 제시한다. 그러나 이 思想運動의 樣式에 있어 共通點을 가짐과 동시에 각기 特異한 領域을 開拓하고 있다. 그들의 「自强」·「獨立」思想에 있어 이론적 축이 되고 있다고 생각되는 네가지 축, 즉 社會進化論의 受容양식, 文明論, 歷史意識, 그리고 「自强」·「獨立」思想을 중심으로 사고의 공통점과 대조적인 思想的 特徵을 比較 檢討하였다. 張志淵과 朴殷植에 있어 사회진화론의 수용양식을 두 사상가의 인간관의 차이에서 출발하여 「自强」·「獨立」論의 이론적 특성에 차이를 보여준다. 장지연은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홀로 생존하기에는 짐승보다도 열등한 생존조건을 지닌 비자립적 존재이며, 인간은 그 열등한 생존 조건을 극복하기 위해 집단(群)를 이루려는 성향을 지닌다는 인간관에서 출발하고 있다. 따라서 경쟁이란 기본적으로 타인간, 타동물과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같은 民族·人種·國家내에서는 생존경쟁이 아니라 단합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즉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太平의 時」에는 서로 「分業」·「相扶」·「相助」하며 「患難之際」의 경우에는 「群策」·「群力」으로 대응하여야 생존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국가가 발생한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국민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 국가를 자신보다 우선시하는 국가사상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하여 朴殷植은 인간관은 인간과 禽獸의 구별을 張志淵의 주장인 집단을 이루려는 성향에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智」에 근거하여 인간과 禽獸를 구분하고 있다. 인간은 「智」에 의해 금수와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하였고 그 「智」에 의한 「機械」의 사용이 문명의 발전을 가져왔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인간관에 기초로 하여 국제 사회는 民族, 人種, 國家간의 「智」돠 「機械」의 경쟁이라 인식하였다. 따라서 경쟁에 승리하기 위한 인간의 「智力」을 발전시키기 위해 「敎育으로 지식을 啓發」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朴殷植의 경우는 경쟁의 적용 범위가 국제사회와 국내 사회 두 영역에 다 적용하고 있다. 朴殷植은 국내 사회에 적용될 경우, 개인의 차원에서는 경쟁을 통한 진보를 고무하지만, 「人群」의 경우에는 단합을 주장하고 있다. 단합의 이론적 근거는 인간은 生存, 榮華, 安樂, 尊貴, 福祉를 좋아하는 「大同之情」이 본연적으로 구비되어 있어 단합을 본성적으로 지향하게 된다고 보았다. 申采浩는 사회진화론의 이론적 차원의 논의는 없으며 다마 경쟁의 발생이 타 집단인 국가와의 「外競」이라 한정하고 그 외경의 원리는 약육강식과 우승열패의 원리를 강조하였다. 그리고 그는 외경력을 키우기 위해 외경력이 뛰어났던 한국의고대사를 강조하였다. 사회진화론의 영향으로 張志淵은 국가의 발생을 生存競爭이 지배하는 인간 세계에 있어 인간이 홀로 自存할 수 없어 자신들의 生存을 위해 결합한 단체라 인식하였다. 그리고 朴殷植은 국가를 민족의 단체 집합이라 정의하고 있다. 申采浩는 인간은 각자의 生存을 위해 국가를 維持시켜야 하며 국가의 生存을 위해 개인은 국가의 이익에 봉사하여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따라서 그들에 있어 人, 人民은 오직 국가라는 구성하는 단위로서 언급되고 人, 人民은 국가관념속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세 思想家는 「自强」·「獨立」의 달성을 위해서는 여하한 문명에 기초할 것인가에 대한 문명론에 있어 對照를 보이고 있다. 張志淵과 朴殷植은 儒敎的 文明에 커미트(commit)한 文明開化論을 전개한다. 두 思想家는 유교적 「循環」論에 근거하여 유교적 문명은 開化와 進步의 수준이 極에 도달하여 오늘날은 衰退한 단계라 하고 유교적 문명을 다시 부흥시켜 국가의 「自强」·「獨立」을 달성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서구문명의 受容은 그것의 절대화가 아니라 「器」의 영역인 實用的 技術學問의 영역에 머물러 있다. 두 思想家의 「器」의 영역에 한정된 新學問 受容은 「東道」의 改革을 주장하는 儒敎改革論의 시기까지 일관되게 관철하고 있다. 그러나 申采浩는 「國粹」를 기초로 하여 서구 문명의 수용을 주장하고 수용영역에 있어 제한은 두지 않았다. 그는 서구 국가의 강한 힘의 源泉은 서구의 道德이라 보고 自由·正義·平等·毅勇·公共의 新道德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서구 문명의 수용에 있어 同等的 사상의 模倣과 同化的 사상의 模倣으로 구분하고 同等的 사상의 모방만이 가능한 것이라 하였다. 이러한 문명론을 기초로 하여 세 思想家는 「國民」이 국가의 「自强」·「獨立」의 주체로서 자격을 갖추기 위해 계몽되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그 계몽의 내용을 여러 차원에서 전개되고 있다. 첫째로 張志淵과 朴殷植은 「弊習」과 「舊習」이 改良되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張志淵의 경우 특징적인 것은 국민의 弊習 中 단합을 저해하는 弊習에 주목하고 있다. 그 이유로 張志淵은 국가의 독립을 위해 국민의 團合과 自强團體의 결성을 중요한 기초로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朴殷植의 경우는, 국제 사회에서 「優者」의 위치는 民의 「智識」 수준과 「勢力」 수준에 의해 결정된다는 인식과 연관하여 「智識」과 연관한 弊習과 교육의 障碍를 가져오는 弊習, 그리고 세력의 增進에 장애를 가져오는 弊習에 주목하고 있다. 申采浩의 경우 국가관념과 연관하여 국가관념의 성장을 위해 「家族主義觀念」의 打破를 주장하였다. 둘째로, 세 思想家는 국민을 서양의 文明을 수용하는 주체로서 계몽해양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張志淵은 국민정신으로 「祖國精神」을 배양해야 한다고 하고 있다. 朴殷植은 ‘大韓精神’ 즉 ‘國魂’을 중시하였다. 그리고 申采浩는 「大我」, 「國民의 魂」의 보전과 不滅을 주장하였다. 마지마으로 세 思想家를 「殖産興業」論의 차원에서 비교해 보면 張志淵은 국제 사회에 있어서의 경쟁은 「術業」인 「工商實業」의 「優勝劣敗」라 인식하여 「殖産興業」論을 전개한다. 張志淵은 실천론으로서 전통적 경제사상에 입각하여 國富 增大의 방법이 勤儉과 함께 생산의 증대를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商工業의 발전에 힘써 富을 증대시켜야한다고 주장하며 경제주체의 차원에서는 政府와 官吏의 비판에 주목하고 있다. 朴殷植도 역시 국제 사회를 종족의 번성을 위한 「物産競爭」의 사회라 보고 그 실천론으로 학문적 영역에서의 實業學의 발전을 중시하였다. 그는 경제 주체의 차원에서 「民」의 「安逸怠慢의 習慣」을 비판하고 「勤勞」를 독려한다. 申采浩는 張志淵, 朴殷植등이 「獨立」의 전제로 제시하고 있는 敎育, 實業, 文明開化의 달성을 國家의 독립을 위한 전제로 강조하고 있는 것에 비해 국가의 문명화보다 국가의 도립 그것 자체를 우선시하여 구체적인 自强의 방법에 대한 논의는 하고 있지 않다. 그는 국가 독립을 위한 「民族主義」를 고취하고자 애국심을 유발할 수 있는 「완전한 역사」 교육에 비중을 두고 있다. 이상과 같이 申采浩는 張志淵, 朴殷植 세 思想家의 「自强」·「獨立」사상의 사상적 성격을 검토해 보면, 張志淵, 朴殷植은 19세기 후반의 한국을 둘러싼 국제사회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힘의 정치」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 그 대응양식으로서 유교적 보편주의에 의하여 「東道西器」論의 형태로 대응하였다. 이 유교적 보편주의의 성격은 사회진화론의 수용을 통해 「優」와 「强」을 지향하는 현실주의적 성격으로 전환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20세기 초에 이르면 「힘의 정치」를 비판하고 국제 사회의 聯合과 道德을 강조하는 규범주의적 성격에로 다시 전환하는 사상적 도정을 밟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하여 申采浩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의 한국을 둘러싼 국제사회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힘의 정치」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하여 한국의 대외적 자주독립을 위한 「强」과 「雄」 지향하는 현실주의의 성격의 도정을 지속적으로 밟고 있음을 알 수 있다.;Ⅰ. The Purpose of the Study This study is aimed at examining the conceptual framework of thoughts of national empowerment (‘chagang’ in Korean) and independence ('dongnip' in Korean). The thoughts evolved during the late 1890's when the Yi dynasty had declined into a Japanese colony. The chagang/dongnip thoughts appeared to have developed to overcome external crises during the 1890's as a countervailing perspective vis-?-vis the enlightenment ('Kaewha' in Korean) thought which had blossomed during the 1880's. Noting the importance of the chagang/dongnip thoughts in Korean political thoughts, this study focuses on three representative theorists-Chang Jiyon(1864-1920), Park Eunsik(1859-1925), and Shin Chaeho(1880-1936). Ⅱ. Political Thoughts of the Three Theorists The three political thinkers, acting nearly at the same period, seem to share commonalities in their thoughts. However, they display significant differences in that they developed their own areas and viewpoints of thought. A. The Thoughts of Chang Jiyon The political thoughts by Chang Jiyon, called the 'chagang' thought, had chronologically developed through three stages, during the first stage (1898-1905), he insisted that the eastern thoughts ('do' in Korean) and the western technologies ('ki' in Korean) be harmonized to empower the country. In the second stage(1905-1908), he proposed 'chagangism' as a way for accomplishing the superior, the empowered, or the united, thereby surviving international competitions with the world powers. In chagangism he suggested two practical ways for becoming the superior : chagang principles ('eui' in Korean) and chagang methods ('sool' in Korean). In the third stage (1908-1910), when the chagang/dongnip movement were cracked down by the Japanese authority, he proposed the chagang thought by urging transformation of the Confucianism. B. The Thoughts of Park Eunsik The period when Park Eunsik were active in developing his thoughts is nearly the same as that of Chang Jiyon. The period of Park's theory development can also be classified into three stages, In the first stage, he perceived Yi dynasty's realistic political issues as national enrichment and independence. As a way for the national enrichment and independence, he emphasized that learning should be encouraged, since he saw learning as a basic condition for it In the second stage, he recognized international competition in terms of knowledge and force. He thus offered the force view to gain a superior position ; the view stressed developing knowledge through education and increasing national wealth. During the third stage he suggested transformation of the Confucianism, when the Yi dynasty were driven into crises through political crackdown and the pro-Japanese policy executed toward the Confucianism. C. The Thoughts of Shin Chaeho Given his works published, Shin Chaeho were rigorous in his thought between 1907 and 1910. He argued that the nation should be independent in order to sustain a liberal, self-reliant state. The notion of 'independent state', based on the fact that only the superior can survive in international competitions, is associated with 'conservation of the state' to retain both the nation and the state. The notion, conservation of the state, is geared to 'stateism' in which nothing is more valuable than preserving the state in international competitions between the yellow east and the white west. Shin's stateism developed into nationalism as the Yi dynasty were increasingly more dependent upon the Japan. In his nationalism Shin Chaeho sustained that the nation be united to resist to external forces in order not to be defeated in international competition processes. In addition, he suggested a view of 'new history' to enlighten the people nationalism; in 1910 he also proposed the notion of 'citizen state' as a political form of the state after the nation is independent of Japan. Ⅲ. Comparison of the Theorists Based on the foregoing descriptions, commonalities and differences of the three thinkers could be summarized as follows. The three theorists shared two common denominators. First, they, grown up at nearly the same time period during the late 19th century, were greatly influenced by the confucianism. Second, their thoughts appear to have stemmed from the western 'social Darwinism' and the 'state organism', which were modified through the inflow process via china. More specifically, Chang Jiyon's thought of the state and collectivism seems to be related to the concept of state organism. Park Eunsik is deemed to be most cogent in delineating conceptual characteristics of the Korean social Darwinism. In addition, Shin Chaeho recommended acceptance of J.K. Bluntschli's theory of state to ensure development of the state. In accomodating the westerns thoughts, the three theorists viewed group rather than the individual as the unit of competition. The group, they suggested, take the forms such as nation, race, or state. Furthermore, they narrowly defined competition between the group as external competition on the ground that they applied the concepts of struggle for existence and natural selection to international competitions. The external competition, they argued, is based on the principle of the survival of the fittest ; the determinants of the competition are knowledge and force. Concerning the viewpoints toward the state, Chang Jiyon and Park Eunsik regarded the state as the biggest organization to ensure each individual's existence, since the individual cannot survive by him/herself in the world of competition for existence. They thus maintained that the individuals should be united to contribute to the national interest, conserving the state for their existence. Given the view of the state, they went on to insist that Korea is located in the center of imperial competition. As a natural consequence, they proposed that Korea positioned itself as the slave or the inferior. Therefore, they shared the notion on history that Korea should be empowered or become independent in order to acquire the end of the independent and the superior. However, the three theorists show striking contrasts in three ways, First of all, they disclose differences as to what kind of civilization is desired to attain nationa lempowerment (chagang). Chang Jiyon and Park Eunsik, commited to the Confucian tradition, offered a view of enlightened civilization. Based on the Confucian logic of circulation, Chang and Park posited that the Confucian civilization, in its decline stage, needs to be transformed to attain national empowerment. It should be noted, however, that these two thinkers suggested that import of the western civilization be confined to the realm of new knowledge or technology ('ki' in Korean) ; therefore the traditional, Confucian thoughts should not be discarded. In contrast, Shin Chaeho did not suggest selective disgestion of the western civilization. Rather, his position was that the strong power of the western nations derived from their morals such as liberty, justice, equality, courage, and public spirit which he called new morals desirous to be accomodated. Second, they showed considerable differences regarding the content of enlightenment. As mentioned above, the three theorists were of common opinion that citizens should be educated to take active roles in assuring national empowerment or independence. With respect to the content of enlightenment, Chang and Park believed that Korean bad habits and old practices should be changed. Chang Jiyon noted Korean bad habits had impeded national unification. Park Eunsik pointed out such bad habits that were associated with knowledge and were deterrent to both education and increase in force, In comparison, ShinChaeho did not address citizen's bad habits. Third, they also showed significant differences in ways for increasing national wealth. Chang Jiyon proposed a economic view that national wealth could be increased by both economy in consumption and increase in production. For increasing production he argued that commerce and industry be more developed. Park Eunsik, viewing international relations in terms of competition in goods and economy, emphasized advances in technology-related knowledge. He encouraged citizen's hard work. In the case of Shin Chaeho, he did not specifically mention about the ways for national empowerment. He rather focused on educatin of history for an avenue to encouraging nationalism which can be geared to patriotism.
Fulltext
Show the fulltext
Appears in Collections:
일반대학원 > 정치외교학과 > Theses_Ph.D
Files in This Item:
There are no files associated with this item.
Export
RIS (EndNote)
XLS (Excel)
XML


qrcode

Items in DSpace are protected by copyright, with all rights reserved, unless otherwise indicated.

BROW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