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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udor 時代의 農民叛亂에 對한 一小考

Title
Tudor 時代의 農民叛亂에 對한 一小考
Authors
吳信玉
Issue Date
1965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李春蘭
Abstract
16世紀의 農業革命이란 英國 社會史上에 있어서 가장 重要한 農業上의 發展에 다름 없었다. 牧羊을 爲한 土地의 enclosure 小數人에 依한 土地의 集中化, 地代의 騰貴等 이 모두는 中世的 土地强迫 觀念에서 脫皮한 것이기에 말이다. 그러나 이에 附隨되는 經濟上의 個人主義도 擡頭되었고 아울러 農業이 營利本位의 對象으로 轉換되면서 換言하면 土地가 富의 源泉으로 登場하면서부터는 必然的으로 農村의 混亂이 거듭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라서 慣習에 依하여 生活全般이 支配되던 中世와는 달리 自己 疎外된 農民들의 不滿이란 漸次 高調되어 가고 있었음은 疑問의 餘地가 없는 일이었다. Tudor 時代에 發生하였던 數많은 農民叛亂이란 바로 이같은 當時의 混亂相을 暴露하여 주고 있다. 이러한 數많은 農民叛亂中에서도 “恩寵의 巡禮”와 “Ket 의 叛亂”은 Tudor 王朝가 直面하여야만 했던 最大의 것이었다. 前者는 小修道院의 解散을 契機로 하여 暴發하였고 後者는 Tudor 時代 全般에 걸쳐 가장 毛織物 輸出이 絶頂에 倒達하였을때 發生한 것이었다. 修道院 解散이란 Henry 八世의 財政難 解決을 위하여 斷行되었던 以上 修道院의 財源이었던 土地問題가 正面으로 登場할 것은 明白한 事實이었고 또 毛織物 輸出붐의 造成原因도 enclosure 에 依한 土地의 資本主義的 經營으로 惹起되었던 現象이었다. 叛亂의 共通된 特徵도 이 時代에 關한 限 窮極的으로는 土地問題에 歸結되는 것이었다. “恩寵의 巡禮”는 宗敎的인 껍질을 뒤집어 쓰고 나온 農民의 不滿 露出이었으나 “Ket의 叛亂”이란 이른바 Fisher 의 “貨幣의 換平價切下”에 依한 말하자면 當初부터 不安定을 內包한 輸出붐의 終局的 副産物에 다름 없는 것이었다. 安定性 없는 輸出붐에 呼應한 生産體制의 輸出體制로의 轉換은 必然的으로 農業上의 不滿을 惹起시키고야 말았고 이에 따라 絶對王朝의 對應策도 皮相的, 一時的 彌縫策만으로는 決코 解決되어질 수 없는 그 무엇을 內包한 것이었다. 卽 農業上의 問題이기는 하되 商業과도 相互連關 關係를 가진 것이요 그럼으로서 그 解決策도 多元的이면서도 多樣性을 띤 것일 수 밖에 없었다. 이에 첫째 Enclosure 禁止法을 根幹으로 하여 耕作地의 農業以外의 使用을 禁하였고 穀物政策 價格統制地代의 支拂規定을 아울러 施行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所期의 目的이 達成될 수는 없었고 職人條例에 依하여 商工業에서 就業規定을 强化시켜 反對로 農業面에서의 雇傭限界를 넓혀놓았고 救貧法을 通하여 浮浪을 防止하고 農業에의 就業을 强制함으로서 間接的인 解決을 試圖하지 않을 수 없었다. 要컨대 過渡期 變革이 지나치게 急激하여 絶對王朝는 相對的으로 保守的인 뒷걸음질을 칠 수 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이 保守性도 이것이 農業上의 問題라 하여 거기에만 局限시킬 수 없었고 그럼으로서 이것은 當時의 時代性格을 反映시켜주는 또 하나의 局面이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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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사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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