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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 初期 中央官制에 對하여

Title
高麗 初期 中央官制에 對하여
Authors
조영우
Issue Date
1966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李弘植
Abstract
지금까지 高麗 初期 成宗때까지의 中央官制 가운데 文班에 關한 全般的인 面을 살펴보았는데 여러 가지로 疑問스러운 點이 많았으나 다음과 같은 結言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가장 重要한 役割을 하였던 三省 六部 七寺에 關한 것만 要約해 본다면, 三省은 太祖元年 廣評省과 內奉省을 泰封의 制度를 承襲하여 設置하였고, 內議省은 豪族勢力의 强大로 太祖二年에 設置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 固有의 것이였다. 그러나 成宗元年에 中國의 三省制度를 輸入하여 그 一部의 名稱을 模倣하여 內史 門下 御事都省이 尙書都省으로 되어 中國 隋代의 三省名稱에 가까워져 갔는데 이때 內史 門下省의 高級官吏는 新羅系統의 文人이 많이 차지하였다. 六部는 太祖元年 兵部, 倉部와 刑部의 前身인 義刑臺만 設置하였는데, 成宗二年 비로소 中國 周의 古制와 後代의 六部를 混合한 六官인 兵官, 刑官, 禮官, 工官, 民官, 選官이 始置되었으며, 成宗十四年 再改編으로 尙書都省에 소속된 尙書 六部인 尙書吏部, 尙書戶部, 尙書禮部, 尙書工部, 尙書刑部, 尙書兵部가 設置되었다. 七寺는 成宗時 衛尉寺와 禮賓省의 二府 밖에 없었으므로 七寺의 完全한 成立은 文宗때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高麗 初期 官制에 對한 性格을 一般的으로 살펴보면, 太祖는 새로이 나라를 세워 官制를 開設하였으나 그 때의 國內外 社會情勢 즉 안으로는 豪族勢力의 强大로 일어나는 여러 가지 混亂과 밖으로는 後三國의 統一을 爲한 許多한 戰亂고 또 大陸에서는 自體의 混亂으로 高麗에 아무런 影響力을 주지 못하는것等 여러 가지 原因으로 泰封의 制度를 承襲하여 불편한 것은 新羅에 依據하여 是正하는 程度의 過渡期的 制度에 依하여 組織된 것이기 때문에 軍事的인 性格이 많고 軍事의 中心이 豪族이였기 때문에 豪族의 地位가 보장되는 방향으로 組織되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統一 뒤에는 점차 中央集權化 해나가는 情勢가 되어 光宗의 改革이 일어났으나 光宗은 미쳐 制度에 까지 손을 대지 못하고 말았다. 그리하여 成宗때는 光宗의 改革과 景宗이 田柴科를 制定하여 職·散官의 區分을 明白히 하여 官僚制度의 基礎를 確立시킨데 많은 도움을 받고 또 成宗 自身의 中儒主義 慕華主義的 性格과 科擧制의 實施로 등장한 文人貴族과의 結合으로 中國式 制度를 模倣한 官制改編을 이룩하였다. 그러나 成宗 初期는 完全한 中國制度의 輸入이 아니고 中國의 것과 高麗의 것을 混合하여 使用하였는데 成宗十年 宋의 樞密院을 본 딴 中樞院의 創設부터 시작하여, 成宗十四年의 官制改編으로 거의 全的인 中國官制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主로 唐制가 中心이 된 것 같다. 成宗 官制는 새로이 등장한 文臣·貴族勢力이 反映되는 방향으로 내용이 짜여졌다. 이러한 點은 특히 內史問下省의 組織에 잘 나타나 있으며 이것이 高麗初期 中央官制의 基礎를 이룬 것이다. 즉 高麗 初期 中央官制의 整備는 王權을 中心한 中央集權的 貴族政治의 强化와 연결됨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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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사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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