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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世紀 前半期 渤海 中興에 관한 考察

Title
9世紀 前半期 渤海 中興에 관한 考察
Other Titles
A STUDY ON REHABILITATION OF PALHAE(渤海) IN THE FIRST HALF OF THE 9'TH CENTURY
Authors
高銀卿
Issue Date
1995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申瀅植
Abstract
They have much interest in the history of Palhae which existed in the North of the Peninsula and Manju area from 698 to 926. Till now the researches in Palhae history have been conducted in several countries-china occupying most of Palhae territory, Russia taking Yeonhaeju, Japan having had active relations with Palhae, and Korea considering Palhae as a state in succession to Kogurye and insisting on "the theory of the Souh & the North Age" and so forth. But these researches have different perspectives one another. Because they have progressed then on their own places. Therefore the present paper puts the 9th century in Palhae as the subject of investigation. And it attempts to inquiry into this period which is, generally speaking, called "Rehabilitation Age" to chase the development process of Palhae socity itself. First, this study deals with the age under the reign of Sunwang(Taeinsu) and Taeijin which is named "the first half of 9th century". This divergence of age has no relation with that of Palhae's whole history but simply it is for convinience. The term "Haedongseongguk" would be called under the reign of Sunwang or the reign of Taeijin which symbolizes the rehabilitation of Palhae. So this divergence of age is to investigate what is the actual condition of Palhae. Chapter Ⅱ deals with the trend of domestic power that is regarded the internal factor of Palhae rehabilitation from the latter of the 8'th century. As a result, this fact is clarified that there was a power struggle among the ruling class called "Kugin" surrounding the accession to the throne of Sunwang. After the accession, Sunwang saved the situation and made a great expansion of territory through the conquest war to arrange the foothold of the royal authority. On the other hand, it is inferred in comparison with the case of Silla how the new powers showed activities who came back after studying at Tang. ChapterⅢ pursued the power extending of Palhae through the foreign relation as well as internal reform in the first half of 9th century. Palhae carried Sunwang's conquest war out successfully from this period and showed his confidence in competition with Shilla. Palhae brought more regullar tribute to Tang than Shilla and led active diplomatic relation with Japan having persisted isolation policy. All these facts were derived from its superior power and make us judge the international stand of Palhae. Chapter Ⅳ examines the expansion of territory under the reign Sunwang to clear reality of Haedongseongguk definitely and then inspects the central & local ruling system which is considered as a political reform in the first half of the 9th century. Especially the local ruling system of Palhae can be an important index explaining the feature of Haedongseongguk in this period. In addition, Suryongje(the local chief ruling system) supports the duality of established Palhae socity. Through this study, the fact was proved that the central govement organization was consolidated under the reign of Sunwang or at latest the reign of Taeijin. Particularly, it can't be adopted to all 15 district that local ruling system in Palhae is the indirect goverment through the existing head. The area belonged in Koguryo or the original Palhae area and the area absorbed after the conquest war had different ruling system each other. It is thought that in the former area, there could be an intensification of central ruling system. On the other hand, the lacal chief's power weakened. It is also inferred that in the latter area their own line was lasted to secede from the structure of Palhae gradually same as the existing view. In conclusion, right after the accession of Sunwang 9th century expanded the great territory through the successful conquest war and intensified the sovereign powers. Besides in the most of territory central ruling was achieved. This fact shows that we can't perceive Palhae history duality of people or an equality; ruling class=Koguryo people, ruled class=Malgal people. As it shows, Palhae was called "Haedongseongguk" in this period through the internal successful and active foreign relations. Haedongseongguk in this period was at the stage when they gradually progressed intensification of sovereign powers and central ruling system. Therefore, the significance of Palhae history cannot be reduced for its sudden collapse.;698년에서 926년까지 한반도 북부와 만주지역에 존재했던 발해의 역사는 최근 들어 통일논의가 본격화됨에 따라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이제까지의 발해사 연구는 발해의 영토를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중국을 비롯 연해주를 차지하고 있는 러시아, 발해와 활발한 교섭을 했던 일본 그리고 발해를 고구려를 계승한 국가로 보고 적극적으로 '남북국시대'론을 주창하고 있는 남북한 모두가 자국의 입장에서만 논의를 진행시켜 서로의 시각차가 무척 크다고 할 수 있다. 본고는 보다 발해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해서 발해사 연구에서 공백기로 남아 있던 발해의 9세기를 연구대상으로 삼고 일반적으로 발해의 '중흥기'로 설명되는 이시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고찰하여 발해사회 자체의 발전과정을 추적해 보고자 한다. 먼저 본고의 대상시기는 대대적인 영토확장을 이룬 선왕 대인수대에서 그 다음 왕인 대이진대까지로 하여 9세기 전반기로 설정하였다. 이러한 구분은 발해사 전체의 시기구분과는 관계없으며 단지 연구의 편의상 구분임을 밝혀둔다. 발해의 중흥을 상징하는 '해동성국'이라는 용어가 선왕대 이후 늦어도 대이진대에는 불리워졌을 것이므로 당시 해동성국의 실체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고자 하는 목적에서 이런 구분을 하였다. 2장에서는 우선 발해 중흥의 내적요인이라고 볼 수 있는 국내세력들의 동향을 8세기 후반부터 추출하여 다루어 보았다. 그 결과 선왕의 즉위에는 국인이라고 불리는 귀족=지배층의 세력다툼이 있었고 선왕은 즉위 이후 이를 수습하고 대대적인 정복전쟁을 통한 영토확장을 이루어 왕권을 강화시킬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개혁의 새로운 세력으로 도당유학생들의 귀국 후의 활동을 신라의 경우와 비교하여 추측해 보았다. 3장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9세기 전반기 발해의 정치적 개혁이라고 볼 수 있는 중앙 및 지방통치체제의 정비에 관해 살펴보았다. 특히 발해의 지방통치체제는 9세기 전반기 해동성국 발해의 성격을 규명하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는 점에서 기존의 발해사회 이원성을 뒷받침하는 '수령제'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발해 선왕 대를 기점으로 해서 늦어도 대이진대까지 발해의 중앙 관제가 정비 및 확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특히 발해의 지방통치체제에서는 기존의 수령을 통한 간접통치라는 설명은 일률적으로 발해 15부 모두에 해당될 수 없으며 옛 고구려의 영토였거나 발해 건국 초부터 영토였던 지역과 9세기 이후의 대규모 정복전쟁을 통해 영토로 병합된 지역과는 큰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전자에는 상당 정도 중앙집권화가 강화되었음을 수령층의 지위 저하를 통해 유추해 보았고 후자의 경우 기존의 설대로 비교적 그들 집단의 독자성이 유지되어 발해 멸망 직전부터 이탈해간 것을 알 수 있었다. 4장에서는 발해 사회 내부의 개혁뿐만 아니라 발해의 대외관계를 통한 9세기 전반기 발해의 국력신장을 추적해 보았다. 9세기 초의 국제정세를 십분 이용한 선왕의 영토확장과 대당관계를 신라와 비교해 본 결과 정복전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한 발해는 이 시기부터는 신라와의 국력경쟁에서 이미 자신감을 보이고 있었다. 당으로의 조공도 신라보다 더 규칙적으로 하고 있고 쇄국정책을 고수하고 있던 일본과도 매우 적극적인 교류를 유도해 나가고 있음을 보았다. 이는 모두 국력의 자신감에서 나온 것으로 9세기 전반기 발해의 국제적 위치를 가늠하게 해 준다. 결론적으로 9세기 전반기 발해는 선왕의 즉위 직후 성공적인 정복전쟁의 수행으로 광활한 영토를 확장하고 이에 따른 왕권 강화가 이루어졌다. 발해는 기존의 설과는 달리 영토 대부분에서 상당 정도의 중앙집권화가 단행되었으며 이는 발해사를 일률적으로 민족의 이원성 즉 지배층=고구려인, 피지배층=말갈인 이라는 등식으로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발해는 성공적인 내부의 개혁과 적극적인 대외관계를 통해 9세기 전반기에는 해동성국으로 호칭되었다. 따라서 9세기 전반기 해동성국의 성격은 나름대로의 국가발전 단계에서 비교적 왕권강화와 중앙집권화가 착실히 진행되고 있었던 단계였고 그것이 이후 급작스런 멸망으로 이어진다고 해서 그 의의를 축소시킬 수는 없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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