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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소설에 나타난 사상

Title
고대소설에 나타난 사상
Authors
정운화
Issue Date
1963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孫浩範
Abstract
우리 나라에 漢文이 들어온 것은 西紀前 二世紀부터이며 漢文의 輸入과 同時에 儒敎도 들어왔으니 儒敎思想이 朝鮮에 紹介된 그 年代에 있어서는 다른 어느 外來의 思想보다도 오래된 것은 事實이다. 新羅時代에 있어서는 思想과 文學의 主流가 恒常 佛敎에 있었던 關係로 일부 支流에 不過했던 儒學은 自然 不桭狀態로 繼續하여왔다. 이러한 것이 李朝에 와서 비로서 크게 행하게 된 것이다. 그理由는 우리民族이 上古時代에는 神敎를 遵奉하였고 三國以後로 高麗에 이르는 中古時代에는 佛敎를 信奉하다가 儒學을 尊崇한 것은 高麗末에서 李朝 初期의 일이다. 그러면 朝鮮의 儒學이라 하면 오로지 李朝儒學을 意味함이니 人文未開한 古代에서는 人民의 多數가 理解키 困難한 까닭에 發達하지 못한게 아닌가 한다. 朝鮮儒學의 主流와 中樞는 性理學에 있다. 이것을 世人들이 가르쳐 程朱學 혹은 朱子學이라고 말한다. 元來 儒學에는 여러 種類가 있으니 政治 經濟 法律 哲學 倫理 道德도 있고 文學도 禮樂도 있다. 이런 것을 紀錄한 經傳을 가지고 說明하면 「尙書」나 「春秋」나 「論孟」은 주로 政治, 經濟, 法律과 倫理, 道德을 論하였고, 「儒學」과 「周易」은 주로 哲學을 말하였으며 「禮記」「樂記」는 禮와 樂을 말한 것이며, 「詩書」「論孟」는 文章이 標本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學究的, 理智的, 倫理道德的인 敎로서 李氏 朝廷은 上下階級의 秩序를 바로잡고 人民을 敎導하며 社會의 混雜을 바로잡는데, 또, 文敎를 높이려고 이 敎를 積極勸?하게 되었다. 그래서 儒學은 活發하게 普及되어 全國到處에 絃誦의 소리와 讀書의 소리가 높았다. 그리하야 風敎와 倫理道德을 말하는 者는 四書五經을 根據로 삼지 않은지가 없었다. 그러므로, 李朝初期에 들어와서 부터는 三國時代나 高麗時代 있어서 저 佛敎가 가지고 있던 權威와 勢力 以上으로 全學界와 全思想界에 君臨하여 그 主流와 中樞가 피게 된 것이다. 즉 貴族專制國家社會인 李朝에 와서 歡迎받은 儒敎는 比較的 理智的, 貴族的, 學究的 理念이 內包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敎理나 儀式이 感情的이며 平民的인 新敎나 佛敎는 벌써 낡은 原始的인 人文未開한 上古의 것으로 돌려보내고 오직 儒敎思想 마니 近世 李朝社會의 性格을 變質 시킨 큰 役割을 했던 것이다. 儒敎思想은 世間的 現實的 理想을 代表하고 人倫道德을 바로 잡는데 가장 큰 關心을 가졌고, 人爲的 文化의 發展에 留意 하였다. 그리하여 文學에 對하여도 儒敎는 往往이 이것을 律함에 道德으로써 하고 여기에 힘을 勸?함에 實用 功利로써 하고, 空想을 경계한 것이었다. 이러므로 儒敎의 實用主義·功利主義 思想은 文學全般에 그 影響을 끼쳤으니 그 中에도 가장 그 思想이 뚜렸한 것이 鑑戒主義 思想이다. 그 淵源은 대략 漢代 儒者의 「詩經」에 對한 解釋이 道義的인 것에서 由來한 것인데 □來로 一般文學에 對하여 때때로 그 것ㅇ르 主張하고 是認하여왔다. 그런데 이 主義는 周濂溪가 宋代에 提唱한 性理學에서 由來한 道學思想과 符合되는바 많다. 實用主義와 功利主義의 端緖는 「論語」의 陽貨篇에 “詩可 以興 可以觀 可以怨 通元事父 遠元事 君 多識於鳥獸草木元名”이라 하여 孔子가 詩를 배우는데 利益을 說明한 詩觀에서 나왔다고 보겠다. 이것은 儒家的 文學思想의 眞髓라 할 수 있으며 필경 그것은 鑑戒와 功利와의 遵重, 非現實的 또는 無節操한 文辭를 排斥함이다. 非現實的 事蹟의 排斥은 「論語」에 “子不語 怪力亂臣” 이라 하였으나 古代小說에 나타난 儒敎들은 神을 믿어온 자취를 엿볼 수 있다. 儒家의 思想은 文學上에 많은 威壓을 加하고 積極的으로 그 길을 인도하여서. 그 逸脫을 牽制한 傾向이 있다. 儒學을 學問의 正道로 세운 □來 때로는 消長이 있었다고 할 수 있으나, 儒家는 國家의 庇護下에 壓倒的 勢力을 學界에 點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그때의 文學에 對하여 指導的 役割을 이룬 것은 當然한 일이다. 儒家의 道義란 것은 文學者에 對하여서는 束縛的이었다고 볼 수 있으며, 儒敎의 根本理念은 三綱五倫의 人倫道德의 思想으로 즉 君臣間의 忠愛, 父母에의 孝誠, 夫婦間의 節義, 兄弟間의 友愛, 朋友間의 親愛等, 이러한 五輪思想을 사람마다 집집마다 高調하였으니 風俗이 되고 習慣이 되어 비록 三尺童子에 이르기까지 事親 敬長의 道를 알고 愚夫 愚婦 일지라도 孝悌忠信을 힘썼기 때문에 外國人으로 하여금 東方禮義之國이라는 말을 이로해서 받았던 것이다. 이 思念으로 因하여 國家和睦과 社會의 秩序 整頓, 男女 風紀의 淨化 忠孝 烈女의 輩出等 國家와 社會에 多大한 貢獻을 남기게 되었다. 이외에도 儒學은 淸廉節義의 尊重에서 나온 安貧樂道와 立身揚名의 高調에서 나온 尙名主義思想, 그리고 女子에 對한 七去之惡이란 名稱을 붙여 두었으므로 그때의 女性들 머릿속엔 三從之道를 부르짖고 貞節을 强調 하였다. 그리하여 五倫思想의 道德觀念은 언제나 善惡의 對決에서 무조건 惡을 물리치고 盲目的 善만을 내세우는 勸善懲惡思想을 낳게 되었다. 또한 佛敎에서도 儒敎의 道德을 부르짖고 있으니 즉 사람은 누구나 肉身이 있는 同時에 心性이 있다 肉身을 사람답게 기르자면 倫理道德 三綱五倫等이 있어야 되는데 하물며 心性을 지키고 사람다운 마음을 기르자는 佛敎人도 儒敎의 道德을 알아야 한다고 했으며 印光大師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자의 儒敎를 잘아는 사람이라야, 석가의 佛敎를 잘 믿고 석가의 佛敎를 잘 믿는 사람이라야 공자의 儒敎를 잘 행한다. 왜냐 하면 사람은 누구나 肉身이 있어 立身揚名하려면 儒敎의 儒理道德을 알아야하고 누구나 心性이 있으니 明心見性하려면 佛敎라야 한다 肉身을 떠나서 心性이 따로 없고 心性 없이 肉身이 유지 못할뿐 아니라 心性이 밝지않고는 三綱五倫을 ?지못하고 倫理를 지키지 못하는 者는 心性이 바르지 못하므로 五戒十善도 行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儒敎의儒理를 잘 지키는 者는 佛敎의 戒律도 틀리지않고 佛敎의戒律을 잘지키는 者는 유교의 윤리를 따로 말할 거서이 없다” 하였으니 儒敎를 世間法이라고 하고 佛敎를 出世間法 이라하여 두가지가 다른 듯 하지마는 둘이 아니고 하나이다. 라고 하며 佛敎에서도 儒敎의 道德을 지키게 하였다. 이러한 것으로 보아 儒敎가 많은 人間에 널리 使用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 다음 各 項目에 따라 簡單한 說明을 붙이고 古代小說에 그 思想들이 어떻게 나타 났는가를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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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국어국문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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