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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삼에 관한 연구

Title
적삼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A Study on Jeoksam
Authors
박혜원
Issue Date
2009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홍나영
Abstract
본 논문은 조선시대 남녀가 상의의 가장 안에 입는 속옷인 적삼을 대상으로 하였다. 조선시대 문헌과 유물을 중심으로 적삼의 개념, 조선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해당되는 적삼의 종류와 시대별 양식적 차이, 바느질법을 고찰하였다. 적삼은 홑옷의 상의이며 형태는 저고리 모양이고, 여름에 입는 옷이라고도 하였다. 한삼은 긴 소매의 적삼, 소매 끝에 길게 덧대는 소매를 말한다. 삼아는 적삼을 의미하는 ‘衫’에 접미사 ‘兒’가 붙은 중국계 차용어이다. 조선시대의 궁중과 관련된 문헌을 보면 한삼, 적삼, 삼아의 소재는 녹비(鹿皮) ‧ 초(綃) ‧ 주(紬) ‧ 저포(苧布) ‧ 정주(鼎紬) ‧ 공단(貢緞)이다가 19세기에 와서 세저포(細苧布) ‧ 저항라(苧杭羅) ‧ 서양목(西洋木) ‧ 서양사(西洋紗) ‧ 옥양목(玉洋木) ‧ 순인문사(純仁紋紗) ‧ 공양사(貢洋紗) ‧ 정주(鼎紬)로 변화하였다. 색상도 마포(麻布)의 흑색을 제외하고는 백색이다가 19세기에 와서 분홍색 ‧ 백색 ‧ 다홍색으로 나타난다. 한삼과 삼아는 적삼보다 높은 신분의 착용자에게서 찾아 볼 수 있다. 삼아는 남 ․ 녀 모두에게 나타나는데 장삼아(長衫兒)와 단삼아(短衫兒)는 남자에게서만 볼 수 있고 정주를 사용하였다. 활한삼(闊汗衫)와 활삼아(闊衫兒)는 상대적으로 신분이 높은 여자가 착용한 것으로 보인다. ‘闊’이 붙은 것은 여자만 착용했으며 초 ‧ 숙초 ‧ 저포의 얇은 소재를 쓰고 있다. 삼아는 궁중에서만 사용하는 명칭이다. 궁중이 아닌 일반인의 복식을 찾아 볼 수 있는 기타 문헌에 의하면 적삼과 한삼의 명칭이 나온다. 적삼은 홑저고리 속옷이며 한삼은 상의의 가장 안에 입는 속옷으로 상의보다 긴 소매였다가 후에 소매 끝에 길게 덧대는 형태로 변화하였다. 16세기에서 20세기 초의 유물을 보면 소재는 16,17세기에는 모시 ․ 삼베 ․ 명주가 고루 쓰이고, 18세기 이후부터는 명주가 주로 사용하였다. 20세기에는 은조사(銀條紗) ‧ 뉴똥 ‧ 진주사(眞珠紗) ‧ 아사가 적삼의 소재로 사용되었다. 특히 삼팔주(三八紬) ․ 화문주(花紋紬) ․ 세주(細紬) ․ 면주(綿紬) ․ 공단(貢緞) ․ 진주사 ․ 은조사 ․ 뉴똥 등 다양한 종류의 견직물이 적삼의 소재로 쓰였다. 적삼의 구조를 보면, 무는 16세기와 17세기 초에 삼각형 ‧ 사다리꼴형 ‧ ㄱ자형 ‧ 삼각형+사다리꼴형이 보이고 그 이후는 무가 자연스럽게 퇴화되었다. 깃은 16세기와 17세기에 목판깃이 남녀 고르게 나타나며, 칼깃은 16세기 말 이후부터 나타나서 17,18,19세기에 걸쳐 남자 유물에서만 볼 수 있었다. 18세기에 와서 여자 유물에서 목판당코깃이 보이며, 동그래깃은 17,19세기 남자의 유물에서 보인다. 20세기에 와서 남·녀 깃이 동그래깃으로 그 중에서 동그래깃의 좌우 대칭형과 깃이 없는 것이 있었다. 그리고 깃궁둥이를 굴린 당코깃이 1900~1910년으로 추정되는 적삼에서 보였다. 섶은 16세기 유물에서 섶이 없는 것이 있었는데 같은 인물의 유물에서 섶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보면 없는 것은 있는 것보다 깃나비를 넓게 하였다. 바대는 어깨바대와 등바대, 고름바대 등이 있어 홑옷의 내구성을 강화시켜 주었다. 바느질법을 살펴보면, 길은 어깨를 골로 하고 앞뒤 이음선없이 직물의 온폭을 그대로 사용하였다. 등솔은 박음질, 홈질, 쌈솔, 가름솔 하여 갈라놓은 시접 끝을 접어박기의 기법을 사용하였다. 가름솔을 하기도 대부분이 입어서 오른쪽 방향의 시접이 나타났다 옆선은 박음질과 통솔, 곱솔, 쌈솔, 가름솔 후 시접을 두 번 접어 공그르기를 하였다. 도련은 말아감침, 감침, 공그르기의 방법을 사용하였다. 깃은 골을 이용하여 한 장으로 하는 마름질과, 두 장으로 마름질하는 방법이 있다. 깃의 바깥쪽은 박음질 ‧ 홈질, 깃의 안쪽은 감침 ‧ 공그르기를 하였으며 깃머리에 한 땀 상침을 한 것도 있다. 섶의 길과의 연결은 박음질, 홈질, 통솔, 쌈솔, 가름솔의 다양한 바느질법이 나타난다. 겉섶과 안섶의 시접 방향은 일정한 규칙이 없이 제각기 나타나다가 겉섶과 안섶의 시접이 길 쪽으로 나타나며 안섶의 시접은 길 쪽으로, 겉섶의 시접은 섶 쪽으로 나타난다. 진동은 전시기에 걸쳐 홈질, 박음질, 통솔, 가름솔, 쌈솔 등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였으며 주로 온폭을 사용하여 식서 그대로 바느질하였다. 솔기도 박음질 후 대부분 가름솔이지만 한쪽으로 꺾어진 솔기일 때는 길 방향으로 나타났다. 수구는 말아감침, 감침, 공그르기 기법을 사용하였고, 식서를 그대로 이용하여 바느질하지 않은 것도 있다. 배래는 통솔, 쌈솔, 옛쌈솔의 방법을 사용하였는데 시접은 뒤쪽으로 보냈다. 소매의 연결은 홈질, 박음질로 이루어지며 솔기 방향은 수구 쪽이나 가름솔을 한 경우는 양쪽방향으로 나타난다. 무는 옛쌈솔, 쌈솔, 통솔, 곱솔, 박음질을 하였다. 바대는 감침질, 공그르기 의 기법이 사용되었다. 고름은 전반적으로 겉고름이 없으며, 안고름이 보이고 있다. 겹의 경우 공그르기와 감침질이 사용되었고, 홑의 경우 양옆을 2번 접어 홈질로 시접 처리한 것과 한 쪽의 식서를 그대로 두고 다른 쪽을 홈질이나 감침질로 처리한 것이 있다. 안고름이 있고 겉고름이 없는 대신에 같은 감을 사용하여 말아 감쳐서 만든 매듭단추가 사용되는 것도 있었다. 이상으로 조선시대의 적삼에 관해 살펴보았다. 적삼은 겉옷의 자기표현과 형태를 도와주며 인체와 가장 밀접하게 닿아 있으므로 위생과 청결, 보온, 보호의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중요한 복식이다. 본 논문에서는 문헌자료, 유물 등을 통해 적삼을 분석하여 개념을 정리하고, 조선시대부터 20세기 초까지 해당되는 적삼의 유물을 고찰하여 그 종류와 특징을 알아보고 시대별 양식적 차이와 바느질법을 연구하고자 하였다. 궁중유물 적삼의 대부분이 기록에만 등장하고 형태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미흡하지만 본 연구가 앞으로의 적삼 연구에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해 본다.;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research for Jeoksam(赤衫), the innermost upper body underwear for males and females during Joseon dynasty and even in the early 20th century was to review the literature, historic remains from Joseon dynasty to examine the kinds of Jeoksam, its modal differences and its stitching methods. Jeoksam was the jacket for the unlined clothes, and it was formed like Jeogori. It is said that it was worn in summer. Hansam(汗衫) or a kind of Jeoksam with long sleeves was called Somae attached long to the end of the sleeves. The term 'Sama(衫兒)' was borrowed from a Chinese clothing; 'Sam(衫)' meant Jeoksam and 'a(兒)' was a suffix. The results of reviewing the literature from Joseon dynasty related to the court show that the materials for Hansam, Jeoksam or Sama had been deer skin, Cho(綃), Ju((紬), Jeongju(鼎紬)or Gongdan(貢緞)until the 19th century when the major materials for this underwear turned into Saejeopo(細苧布), Jeohangra(苧杭羅), Seoyangmok(西洋木), Seoyangsa(西洋紗), calico(玉洋木), Suninmunsa(純仁紋紗), Gongyangsa(貢洋紗) or Jeongju. The color tone had been white but the black Mapo(麻布) until the 19th century when pink, white or crimson appeared. Hansam and Sama were worn by those of higher class than those who wore Jeoksam. Sama were worn both by males and females, while Jangsama(長衫兒) and Dansama(短衫兒)both made of Jeongju were worn by males only. Hwalhansam(闊汗衫) and Hwalsama(闊衫兒) seem to have been worn by the women of relatively higher class. Those with the letter 'Hwal(闊)' attached were worn by women only. They were made of Cho, Sukcho(熟綃) or Jeopo(苧布). The term 'Sama' was used at the court only. The literature about the commoners' clothing shows the names Jeoksam and Hansam. Jeoksam was an underwear for the unlined Jeogori, while Hansam was the innermost upper body underwear. It had longer sleeves than the jacket, and later, turned into the form attached long to the ends of sleeves. Upon reviewing the historic remains for the period from 16th to 20th century, ramie, hemp and silk were evenly used in 16th and 17th centuries, and since 18th century, silk began to be used primarily. In the 20th century, Eunjosa(銀條紗), Newttong(뉴똥), Jinjusa(眞珠紗) and Asa(아사) were used primarily for Jeoksam. In particular, Sampalju(三八紬), Hwamuju(花紋紬), Saeju(細紬), Myeonju(綿紬), Gongdan, Jinjusa, Newttong, etc., were used for Jeoksam. In view of its structure, Moo(무) was triangular, trapezoidal, ㄱ-shaped or triangular + trapezoidal, and later, Moo would degenerate naturally. In 16th and 17th centuries, the Mokpan collars(목판깃) appeared evenly in both male and female clothes, but in contrast, sharpened collars which began to appear can be found in the male clothing remains from 17th, 18th and 19th centuries. The female clothing remains from the 18th century show Mokpandangko collars(목판당코깃), while Donggre collars(동그래깃) can be found in the male clothing remains from 17th ~ 19th century. By the 20th century, Donggre collars prevailed in both male and female clothes. Among them, horizontally symmetric Donggre collar clothes and collarless ones prevailed most. The collarless clothes had a 1cm wide race instead of collar. And Dangkko collars(당코깃) with their hips rolled up are found in Jeoksam remains from 1900~1910. Seop(섶) is not found in the remains from the 16th century, but both clothes with and without Seop are found in the same person's remain. Those without Seop had a wider collar than those with Seop. Badaes(바대) consisted of shoulder Badae(어깨바대), back Badae(등바대), Goreum Badae(고름바대), etc., any of which served to extend the life of the unlined clothes. In view of stitching methods, Gil(길) used the width of the fabric intact with no seams by setting the shoulder parts as Gol(골). Deungsol(등솔) folded and stitched the ends of the margin treated with back stitch, broad stitch, ssamsol(쌈솔) or gareumsol(가름솔). In most cases, gareumsol resulted in the ends of the margin oriented to the right. Yeopseon(옆선) used back stitch(박음질), tongsol(통솔), ssamsol and gareumsol to fold the ends of the margin twice for slip stitch. Doryeon(도련) used hemming(말아감침) and fladed stitch(감침), hemming stitch or slip stitch(공그르기). Collars(깃) were made by the single-tiered mareumjil(마름질) using the Gol or the double-tiered mareumjil. The outside of collar was subject to back stitch(박음질) or broad stitch(홈질), while the inside of collar was subject to fladed stitch or slip stitch. Some collar heads were subject to a single stitch (Sangchim). Seop was linked with Gil by such diverse stitches as back stitch, tongsol, ssamsol or gareumsol. The direction for the ends of the margin of outer and inner Seops was irregular; the ends of the margin of outer and inner Seops appeared toward Gil, or those of inner Seop appeared toward Gil, while those of outer Seop appeared toward Seop. Jindong(진동) used broad stitch, back stitch, tongsol, ssamsol, etc., through the whole period, stitching the sixer intact, and used the fabric width primarily to stitch the sixer intact. Seam(Solgi) used gareumsol after back stitch in most cases, but the Seam bent to either side appeared in the direction of Gil. Sugu(수구) used hemming and fladed stitch, fladed stitch and slip stitch, but in some cases, it did not use any stitch by using the sixer intact. Baerae(배래) used tongsol, ssamsol and yetssamsol(옛쌈솔), while pushing the ends of the margin backwards. Sleeves(소매) were lined with broad stitch or back stitch, and Seam was directed toward Sugu, but in case of gareumsol, Seam was directed to both sides. Moo used yetssamsol, ssamsol, tongsol, gobsol and back stitch. Badae used fladed stitch and slip stitch. In case of Goreum(고름), the outer Goreum prevailed, while the inner Goreum appeared sometimes. Gyeop(겹) used slip stitch and fladed stitch, while Hot used broad stitch by folding both sides twice for treatment of the ends of the margin or treated one sixer with broad stitch or fladed stitch, leaving the other sixer intact. Some clothes had only inner Goreum, while the same fabric was to hemming and fladed stitch to make the knotted buttons. So far, Jeoksam during Joseon dynasty has been reviewed. Jeoksam served to express the outfits and their forms. And since it was closest to the human body, it played a decisive role for hygiene, clean body, conservation of body temperature and protection of body. This study reviewed the literature and historic remains from Joseon dynasty and 20th century to analyze Jeoksam and define its concept, examined its kinds and characteristics as well as differences of its modes and stitching methods. It was regrettable that most of Jeoksams were recorded only and therefore, that their forms could not be identified precisely. It is hoped that this study will be used as some basic data for future studies about Jeok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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