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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시기의 한성전기회사에 관한 연구

Title
대한제국시기의 한성전기회사에 관한 연구
Authors
노인화
Issue Date
1978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The electric company which existed in the period of Empire of Korea was founded by the contract between Korea and America in 1898 (Kwangmu 2) and named Seoul Electric Co. The emperor Gojong had the initiative in founding it in order to make Korean industry develop, following the American advice in technique. It was reorganized as a limited partnership between Korea and America in 1904 and renamed American-Korean Electric Co. This American-Korean Electric Co. managed the business of electric cars, electric lights, and telephones till 1909.08. in which American sold it at his own will. The Emperor Gojong, who had the initiative in Seoul Electric Co. at the beginning of it, made contracts with an Amercian Collbran because there were not the ability of management, capital, and technique in Korea. In the course of these contracts it became American-Korean Electric Co., a limited partnership, for the benifit of America contrary to Gojong's will and was sold to Japan by America. In this thesis I tried to demonstrate positively the foundation and change of an electric company founded by the contract between Korea and America in consideration of political surroundings in the period of Empire of Korea. In the introduction I wrote about the consciousness of the subject, the electric company between Korea and America, and a new angle on the problem. In chapter Ⅱ 'The Social surroundings of the foundation of Seoul Electric Co., I wrote about the acceptance of electric machines and tools after the opening of ports and the economic relation between Korea and America in the period from the Treaty between America and Korea (朝美條約) to the foundation of Seoul Electric Co. The acceptance of electric machines and tools became realized in 1886. the first equipment of the electric light was made in Guen Chung Palace (乾淸宮) In chapter Ⅲ I wrote about the foundation of Seoul Electric Co. and its business. Gojong who was interested in the electric business thought of electric railway from his palace to Hong Mausoleum ( 洪陵 ) for the convenience of transportation. So he allowed Kim duseung ( 金斗昇 ) and Li keunbai ( 李根培) to found an electric company. Actually the capital of it, gold of 300,000 yen, was intended to be invested by him. As a result of this fact, it was wrong that Seoul Electric Co. had a limited partnership between Korea and America. It might be a Korean company. But it needed the acceptance of foreign technique because of the scantiness of capital, technique, and the ability to manage business. To consider the relation of various nations, the government of Korea made contracts with American Collbran and Bostwick whose country was neutral between Russia and Japan. But they deprived Korean government of rights for management in the realizatin of these contracts. One of the business it made was the building of electric railway. Korean government made a contract with Collbran to build electric railway from Namdaimoon ( 南 大 門) to Hong Mausoleum ( 洪陵 ) in 1898. It planned electric railway from Jongro (鐘路 ) to Yongsan ( 龍山 ) in 1899 and built electric railway from Seodaimoon ( 西 大 門) to Mapo ( 麻浦 ) by the contract with Collbran. Seoul Electric Co. did business in electric lights, too. To manage them it made a power plant at Dongdaimoon ( 東大門) and equipped electric lights at Gingogai ( 泥 峴 街) for the first time. Collbran put money on these businesses on the security of property and privilege of Seoul Electric Co. He asked 1,500,000 yen which was calculated without agreement of Korean government for the business. As Korean government could not pay it, he asked property and privilege of Seoul Electric Co. Korean government objected to his unfair claim. But to see the omen of war between Russia and Japan, Korean government gave him 750,000 yen, a half of the amount which Collbran has asked and privilege on a mine in order to ask America to the good office. In chapter Ⅳ I wrote the course of the change in which Seoul Electric Co. became American-Korean Electric Co. and the bargain in which American-Korean Electric Co. was sold to Japanese-Korean Gas Co. Seoul Electric Co. transferred its property to Collbran and Bostwick, and was renamed American-Korean Electric Co. in order to issue bonds 500,000 yen in America. It moved its head office to Conneticut State in America and was ruled by laws of the state. Eventually Collbran and Bostwick who had been contractors had the initiative in it, and Gojong who had had the initiative in it became a only investor. The amount of American Korean Electric Co.'s capital was 2,500,000 yen; Gojong invested 1,000,000 yen. Collbran and Bostwick 1,000,000 yen, and the bonds in America was 500,000 yen. In the respect of capital American-Korean Electric Co. may be said a limited partnership between Korea and America. When American-Korean Electric Co. was founded and worked, Japanese deprived Korea of the privilege. So collbran suggested to Japanese-Korean Gas Co. that he should sell American-Korean Electric Co. for fear of losing the benifit. As the result of this suggestion, American-Korean Electric Co. which was priced at 2,500,000 yen was sold at 1,200,000 yen. Collbran ruled out the Emperor Gojong in this bargain, and did not return even the capital which Gojong had invested, and handed Japan American-Korean Electric Co. at his own free will. In conclusion, a study on an electric company between Korea and America will be completed by a new interpretation on the Character of Kwangmu government in Empire of Korea and privilege itself.;대한제국 시기에 존속한 한미간의 전기회사를 단적으로 말하면 1898년(광무2년)에 대한제국정부의 이른바 산업진흥정책의 일환으로서 미국측의 기술지원을 얻어 대한황실의 주도 아래 설립된 한성전기회사와 그것이 1904년에 이르러 한미간의 합자회사로서 개편된 한미전기회사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 한미전기회사는 1909년 8월에, 미국측이 임의로 일본측에 매각할 때까지 존속되었으며, 이들 한성전기회사와 한미전기회사는 대한제국시기에 우리나라의 전차노선? 전등? 전화사업을 담당한 회사였다. 한성전기회사는 당초에 고종의 주도 아래 설립된 회사였지만, 그 운영능력 자본 및 기술의 부족 등으로 인해 미국인 Collbran과 Bostwick에 청부를 맡겨 사업을 추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설립당초의 주관적인 지향과는 달리 미국측의 이익을 대표하는 회사로 추이되어 나갔고 드디어 합자회사형태의 한미전기회사로 변모하고 그것이 또한 미국측에 의해 일본측에 매각되고 만 것이다. 본고는 대한제국 시기의 정치 상황과의 관련에서 한미간의 전기회사의 성립과 그 경과를 실증적으로 논증해 보고자 한 것이다. 먼저 서론에서 대한제국 시기의 한미간의 전기회사를 다루는 과제의식과 그 시각을 밝히고 제II장 「한성전기회사 성립의 사회적 배경」에서는 개항 이후의 전등 기기의 도입 경위와 한미수호통상조약 이후 한성전기회사가 성립되기 이전의 한미 경제 관계를 고찰하였다. 저등 기기의 도입은 1886년에 이르러 비로소 실현되어 고종이 거처하고 있던 건천궁에 전기가 점등됨으로서 이것이 우리나라에 있어서 전등의 효시를 이루게 된 것이다. 제삼장에서는 「한성전기회사의 성립과 그 운영사업의 실태」에 대해 고찰해 보았다. 이전부터 전기사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고종은 홍능행행시에 편리한 교통수단을 가질 생각에서도 전차 선로의 건설을 꾀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김 두승, 이 근배 2인을 청원인으로 한 전기회사의 설립을 인가하였으나 사실상 한성전기회사를 주도한 것은 왕실이며 자본금 30만원도 고종이 출자하기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한성전기회사는 한미간의 합자회사가 아니라 한국회사로 보아야 할 것 같다. 그러나 한성전기회사를 주도한 왕실의 자본과 기술 및 관리 능력의 부족으로 인해 선진적인 외국 기술과 운영면의 지원 등이 필요하게 되고, 특히 미국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러시아와 일본의 각축에서 비교적 중립을 지키고 있다는 상정 아래 미국의 환심을 얻기 위해 미국인 Collbran과 Eostwick에게 전기사업의 청부를 맡겼던 것이다. 그러나 사업추진 주체의 취약성과도 관련하여 사업을 추진시켜 나가는 과정에서 회사운영권은 미국인에게 박탈되었던 것이다. 한성전기회사에서 운영했던 사업으로는 전차노선의 부설, 운영과 선등사업, 전화의 가설 등을 들 수 있다. 전차선로의 가설은 1898년 2월 1일 Collbran과의 계약 아래 남대문? 홍릉간 전차선로를 가설하기로 한 것을 시초로 하여 1988년 4월 29일에는 종로? 용산간 전차선로의 부설을 계획하였고 1906년에는 서대문? 마포간 전차 선로를 가설 운행하였다. 다음으로 한성전기회사의 운영사업으로 전기점등사업을 들 수 있다. 전등 사업을 경영키 위해 동대문 발전소에 발전기를 증설하고 이현가에서 처음 점등함으로써 민간에 전기점등의 효시를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 Collbran은 전차개통 및 전기점등사업들을 운영할 때 한성전기회사의 재산과 이미 한국인에게 인가된 전기사업독점권을 담보로 하여 그들의 공사비용을 대체하고 그 공사비용을 터무니없이 150만원으로 임의로 책정하여 한국 정부에게 그 상환을 요구하는 것이었고 기일 내에 상환하지 못하자 전기회사의 재산과 전기사업독점권의 접수를 주장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는 이들의 부당한 요구에 강력히 항의하였지만 노일전쟁의 전운이 긴박해짐에 따라 미국측에 노일전쟁시 한국 중립문제에 관한 거중조정을 요청할 목적으로 Collbran의 요구액 150만원의 절반인 75만원과 그 위에 광산이권마저 양여하게 되었던 것이다. 제4장에서는 1904년 노일전쟁을 계기로 한성전기회사가 한미전기회사로 변천되는 과정을 고찰하고 이 한미전기회사가 한일 합병 직전인 1909년에 일본의 국책사회사인 일한와기회사로 매각되는 경위를 당시의 국제관계와 관련지어 살펴보았다. Collbran과 Bostwick는, 미국에서 사채 50만원을 도입한다는 구실아래 한성전기회사를 그들의 명의로 이전하고 회사 명칭도 한미전기회사로 변경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미 미국인 소유로 화한 한미전기회사의 본점을 미국 Conneticut주로 옮기고 미국 Conneticut주의 지배를 받는 미국회사로 둔갑된 것이다. 이에 따라 Collbran? Bostwick는 종래 일개 청구업자의 지위에서 이권 소유자 내지 회사소유권자로 상승되고, 상대적으로 고종은 한낱 투자자로 전락하게 된 것이었다. 당시의 기록에 의하면, 한미전기회사의 총자본금은 고종이 100만원, Collbran? Bostwick가 100만원을 출자했으며, 미국사채 50만원 등 총함 250만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자본 비율면에서 보면 한미전기회사는 한미간의 합자회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미전기회사로 전변된 후 미국인에 의해 일본측에 매각되기까지 시기는 바로 우리나라의 경우, 을사조약에 의해 사실상의 국가주권이 상실되고 또한 해아밀사사선을 계기로 일제에 의해 고종이 강제 퇴위하고 병합 직전의 국내정정이 몹시 험난하던 시기였다. 따라서 이러한 정정의 불안한 상황아래서 이익의 감소를 두려워 한 Collbran은 일한와기회사에 매각을 제의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자본금 250만원의 한미전기회사를 120만원이란 절반도 안되는 현금으로 매도한 것이다. 고종은 이 매각 과정에 있어서도 완전히 배제되었으며, Collbran의 비열한 수단에 의해 고종 자신의 투자금조차 회수하지 못한 채 부지중에 일본인의 수중에 전기회사를 넘겨주게 된 셈이었다. 끝으로 결론에서 대한제국 시기의 한미간의 전기회사에 관한 연구를 통해 「광무 정권의 성격과도 관련하여」 그 산업진흥정책의 허상과 실상이 무엇인가에 대해 일정한 조명을 가했으며 또한 열강들이 점탈코자 한 이권도 종래와 같이 단선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당시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도 관련하여 여러 가지 양태로 나타나고 있었다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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