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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이후 가정과교육의 사적고찰

Title
개화기이후 가정과교육의 사적고찰
Authors
양문식
Issue Date
1972
Department/Major
교육대학원 가정과교육전공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역사의 각시대에는 그 시대의 생활양식 및 경제체제 등 제 환경하에서 가능한 한의 행복한 가정 생활을 위하여 그 시대에 맞는 적절한 가정경영의 지도가 있었음은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가정과 교육은 여성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발전과정이 이루어졌다고 본다. 본 연구는 개화기 이후부터 해방전까지의 중등학교를 중심으로한 가정과 교육의 사적고찰을 통하여 현재의 가정과 교육의 방안 모색의 자료로 삼으려 한다. 제1기는 1890년대에서 을사보호조약 전까지로서 이시기는 여성교육의 대두와 함꼐 1896년 이화학당의 학과시간에 재봉, 수예를 넣은 것을 기점으로 가정과 교육의 창시기라 할 수 있다. 제2기는 1905년 을사보호조약 이후로부터 1908년 고등여학교령의 공포와 함께 이에 따른 가정과 교육의 변천과 고등여학교령을 중심으로 한 교수요지 및 학과목 설정, 가정과 교과서의 취급을 다루었다. 제3기는 1911년 조선교육령의 공포와 함께 일제 패망 36년간의 식민지 치하에서의 민족교육으로서의 가정과 교육을 살펴보았다. 이상의 3기로 나누어 고찰함에 있어 가정과 교육을 위한 사적고증의 자료가 극히 제한되더 있지만 여자 중고등학교의 역사와 조선여속고 한국여성사, 한국교육사, 한국신교육사, 조선연감 등을 중심으로 주로 문헌에 의한 방법과 다소의 면담을 토?여 이를 보충하였다. 연구 결과 가정과 교육의 변천과정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개화기 이전의 여성교육은 유교적 문화풍토와 이조전래의 봉건사회에서 남성의 예속물로써 가정의 일을 돌보며 혈통을 이어줄 후계자를 낳는 도우로서의 여성이었으며 여성을 위한 조직적인 교육은 받지 못하였다. 1890년대의 개화와 더불어 신교육의 도입은 기독교의 여선교사들에 의해서 여성교육의 시작을 가져왔으며 여성교육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진 학교교육으로서의 가정과 교육은 1896년 이화학당에서 처음 실시되었다. 1908년 고등여학교령의 공포와 함께 가정과 교수요지 및 교과목이 설정되었고 가정과 교과서도 편찬되었다. 1911년 조선교육령은 일제치하 교육의 목적을 보통교육과 실과 중심의 교육을 내세웠으며 가정과 교육은 실과중심의 교육을 부르짖은 일본의 교육정책에 의거하였고 중등학교의 가사 재봉 시간을 주당 10시간씩 넣었다. 일제치하의 가정과 교육은 한국의 풍습 및 가풍 등 예절교육을 목적으로 지식전달과 기술의 전승보다 민족교육으로 대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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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대학원 > 가정과교육전공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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