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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작품에 나타난 3.1운동의 영향고

Title
소설작품에 나타난 3.1운동의 영향고
Authors
나봉호
Issue Date
1974
Department/Major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The influence of March Ist Movement upon the fictions was reviewed in this article. In Korean history, the March Ist Movement is a grand and ardent uprising of Korean people. As a result that we struggled bravely in order to get Independence, Temporary Korean Government was established in Sanghai and in case of culture, the policy of Japaness Imperial Government was all eviated and it was changed to cultural policy. But as for Korean people, they could not succeed their purpose, with hot tears. Under the freedom, to some extent, Dong-A Ilbo, Chosum Ilbo as daily news papers, and etc. were issued. Literature reflects the life and society, and further more Kim Boong Ku said, "Prose literature experesses sensitive responses against current and political issues, " so if artists in literature were controlled the liberty, they would not stand with none-emotion. In this respect, through this article, recognizing the influence on magazines Changjo, Peho and Packjo which were issued at that time, in turn we conducted the works of Lee, Kwang Su, Kim, Dong In and Yom, Sang Sop who were the leading novelists of the Ist period (up to 1923). Changjo magazine was being turned to natural literature, that is to say, by Kim, Dong In and in which a man without right view was erected and he wandered in his mental state, and at last, through the human nature to be conscious and then indirectly, it revealed that he would not be weak. In peho magazine, novels were seldom carried and it was conducted by the name represented ruin itself, and was edited concentrated on preface, which desired New Spring, and statements-after-editered. Paekjo magazine was made, by the poets and writers who were sensitive and young, and its leading role was to seek deploration and roaming. According to writers respectively, in the first-period works of Lee, Kwang Su indealistic enlightening was seen in chief, and in works of Kim, Dong In sickness was done, inditectly to avoid the confrontation with reality. Among them, writer Yom, Sang Sop depicted completely the pain and frustration in the period of Japaness Colonization. Through his works of blue frog of laboratory, and Mansejon, he depicted it well, however, he described realistic agony, not to creat new human image, to my regret. Any novels, at that time, reflected reality, but Yom, Sang Sop described positively the situations and indicted as a writer. So in this article, I reviewed the works of Yom, Sang Sop in chief.;본 논문은 한국의 현대문학 초기에 있었던 3·1운동을 시대배경으로 하여 소설 작품에 그 경향이 어떻게 나타났는가를 살펴 보았다. 3·1 운동은 한국 민족의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집약적이며 열렬했던 민중의 봉기였다. 자주와 독립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많은 애국자들이 만세를 부르면서 무자비한 총과 칼의 압제하에서 죽어갔다. 「밀」은 말하기를 “자유는 획득하는 것이요 회복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의 유명한 말을 했다. 이말이 아니드라도 인간에게는 자유와 독립에 대한 가장 열렬한 본능적인 욕망이 있다. 이 욕망이 억압당했을 때 우리는 반항하고 과감한 투쟁을 행한다. 1919년 3월 1일에 일어난 자유를 위한 이 투쟁은 한국민족의 용기와 의기 과시는 했으나 소기한 바대로 성공적인 결론을 얻지는 못하였다. 다만 그 결과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고 문화적인 면에서는 일제의 무단정치가 어느 정도 완화되어 문화정책으로 바뀌었을 뿐이었다. 이 어느 정도의 문화적인 자유가 주어지자 동아일보·조선일보 등 일간지를 비롯하여 많은 잡지가 쏟아져 나왔다. 문학이 생활과 사회의 반영이고 더구나 “산문 문학은 시사적·정치적 사건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여준다.”는 김 붕구의 말을 빌어 보드라도 문학인이 자유가 억압당했을 때 무감동하게 있었을 리는 없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3·1 운동 전후에 나온 소설에는 그 면이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났는가? 당시에 창간된 문예동인지 창조· 폐허·자조를 중심하여 거기에 나타난 소설을 보고, 다음에는 당시의 중요 작가로 꼽는 이 광수·김 동인·염상섭 등의 초기 작품(1923년경까지)을 살펴보았다. 창조지는 순수문학을 지향하는 김 동인이 주가 되었다. 약하고 무정관한 인물을 내세워서 심리적인 방황을 하다가 드디어는 자각해가는 인간상을 통해서 약한 자가 되지 않기를 간접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폐허지에는 소설이 별로 실리지 않았다. ‘폐허’라는 명칭의 동인지를 내게된 동기에 역점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한국의 폐허와 같은 현실 위에, 새 봄이 돌아오게 하고 싶다는 의지적인 내용의 서문과 편집후기가 인상적이다. 자조는 젊고 감수성이 예민한 시인 작가들이 모여서 만든 동인지다. 그러므로 가장 감상성이 농후하며 3·1 운동이 성공적인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데 대한 울분과 슬픔이 나타나 있다. 자조지에 실린 소설의 내용은 울고 산만하고, 방랑을 희구하는 것이 주로 차지한다. 작가별로 보면 이 광수는 애국을 부르짖었으나 현실감이 없는 공허하고 관념적인 개몽성을 띤 것으로서 공감을 불러 일으키지 못하게 되어 있다. 김 동인은 혈실과 정면충돌을 피하면서 그 나름대로의 아픔을 적었는데 겉으로 보면 현실을 도외시한 것 같은 인상이 든다. 그러나 식민지 시대를 살아 가는 고통과 아픔을 가장 적나라하게 파헤친 작가는 염 상섭이었다. 그는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만세전 두 작품을 통하여 자주와 독립이 없는 암담한 현실 속에서 <발광할 것 같고> <죽음의 생활(무덤)>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고민상을 그리고 있다. 3·1 운동이 성공적으로 수행되지 못한 당시에 있어서의 지성인의 고민, 발언을 나타낸 점에 있어서 어느 작가보다도 뛰어 난다. 그러나 아쉬운 점은 그 현실을 뛰어 넘는 새로운 인간상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회의하고 고민하는 것으로 끝나 버린 인간을 그렸다는 점이다. 당시에 나온 어느 소설에나 그때의 현실이 간접적으로 암시적으로 나타나고는 있지만 염 상섭처럼 투철하고 과감하게 현실을 파헤쳐서 고발한 작가는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염 상섭은 3·1 운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작가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영향관계를 보기 위하여 본 논문에서는 소설 작품의 부분을 인용하여 주로 그 모습을 보았으며 문예사조적인 면은 다루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 시기는 현대문학의 초창기로 아직 문예사조가 혼류된 상태였고 작가 자신들이 아직 미숙한 초기였기 때문에 뚜렷한 사조를 의식하고 작품을 쓰지도 않았으리라고 보기 때문이다. 이상이 본 논문의 개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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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국제사무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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