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雲峴宮 木家具 硏究

Title
雲峴宮 木家具 硏究
Authors
이춘일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의 주제인 운현궁의 목가구는 고종황제의 潛邸地이며 19세기말 시대적 전환기의 중심에 위치한 운현궁에서 사용하였던 목제가구들을 말한다. 지금까지의 한국 가구사 연구는 대부분 조선후기와 현대에 집중되어서 전통가구양식이 개항이후 어떠한 변화를 거쳐 근대가구로 이행되었는지에 대한 연구가 미비한 형편이었고 특히 목가구에 대한 편년자료가 없어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운현궁에 대한 연구는 1990년 이후 건축학계에서 주로 운현궁 영역의 형성과정, 실내공간구성 특성에 대해 이루어져왔고 운현궁 목가구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이루어지지가 못했다. 따라서 본 본문에서는 운현궁 목가구를 시간적, 공간적, 조형적면에서 연구하고자 하였고 이를 통해 조선후기부터 일제침략기까지 목가구 양식의 변천과정을 어느 정도 밝혀낼 수 있었다. 그리고 미약하지만 10여점의 운현궁 목가구 유물에 墨書와 刻 되어있는 언문을 분석하여 제작 시기를 알 수 있었다. 우선 운현궁 목가구 유물의 공간적 배치형식을 살펴보았다. 이는 목가구의 사용 장소와 사용방식에 따라 결정됨으로 운현궁 각 채의 특성과 각 채의 거주인의 이용행태를 추적하였다. 1864년 9월에 낙성된 老樂堂은 집안 행사와 안살림공간으로서의 기능과 형식적인 규범을 갖춘 안채 건물로 이용되었지만 1866년 고종의 가례준비를 위한 별궁으로 지정된 이후에는 궁중에서 파견 나온 상궁과 내인들이 명성황후를 위한 궁중 교육과 몸 수발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되었으며 동온돌의 상방에서는 대원군의 집정전성기동안 어린 고종의 잦은 왕래 시 신하들과의 講論이 행하여지기도 하였다. 따라서 노락당에 배치되었던 목가구들은 일반민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朱漆三層欌>, <衣巨里>, <朱漆函>, <螺鈿單層欌>등과 같은 화려한 왕실 하사품들이 많았다. 老安堂은 접객공간으로서의 사랑방과 흥선대원군의 개인생활공간으로 이용되어 사랑방 가구인 <冊欌>, <平床>, <書案>등이 있었으며 二老堂은 흥선대원군과 부대부인을 위한 별당채로서 안살림공간과 집안사람들의 기거공간으로 이용되어 안방가구와 주방가구가 사용되었고 근대식 건물인 洋館은 연회장소로 이용되어 서양식 목가구 유물들이 배치되어 있었다. 다음은 운현궁 목가구의 조형적 변천과정을 분석하기 위한 선행 연구과정인 운현궁 목가구의 시기적 분류 시도로서 우선 조선말기, 개화기, 일제식민지시기의 정치적, 문화적 상황을 살피고 특히 개화기에는 당시에 사용되었던 일본가구, 중국가구의 특성을, 그리고 일제식민지 시기에는 공업전습소를 통한 일제의 차별적 동화정책과 이에 대항한 전통문화 양식의 수구적 시도인 미술품제작소의 변천과정을 선행지식으로 파악하여 조선말기, 개화기, 일제식민지시기의 목가구 특징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조선말기의 목가구에는 융통성 있는 공간구성, 엄격한 대칭구조, 과장된 색채와 장식을 지양한 자연주의적 마감기법, 온돌문화에 의한 다리구조의 특징을, 개화기의 목가구에는 외래가구 영향으로 과도한 금속장식, 가구내부구획의 고정성, 조각·상감 등의 화려한 장식기법, 비대칭적 구조양식의 특징을, 일제식민지시기의 목가구에는 유리와 거울의 사용, 서랍이 많은 수납공간, 무늬목을 덧붙이는 마감기법, 다기능의 복합구조양식의 특징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운현궁 목가구 중 <사각쟁반>, <卓子>, <상자>류 등은 개화기에, <饌欌>, <裝飾欌>, <양식기장>등은 일제식민지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그 외의 유물은 조선말기 목가구로 추정된다. 사실상 개화기와 일제식민지시기에는 전통양식과 외래양식의 특징을 가진 목가구가 혼재되어 병존하였기 때문에 획일적으로 목가구를 시기적으로 분류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 이를 극복하기위해 편년자료에 의한 제작시기의 추적이 필요하지만 도자기연구와 달리 목가구에 대한 편년자료가 거의 전무한 상태였다. 본 연구에서는 운현궁 유물 중 언문으로 시기를 알 수 있는 목판과 함지 등 10여점이 존재하여 이를 분석 조사함으로 정확히 제작년도를 밝혀내었다. 필자의 조사연구에 따르면 목판바닥의 「긔□□하 운현궁고간 □즁소니 □십□」라는 음각명은 1869년 운현궁소유의 대중소의 크기를 가진 백 십개의 목판이 있다는 의미로, 주칠쟁반바닥의 「계유 운현고간 중소어듁」이라는 명문은 1873년 운현궁소유의 10개 수량의 같은 함지가 있다는 의미로, 함지바닥의 「임인츄 큰뎐고간」이라는 명문은 1902년에 궁중의 대전소유라는 의미로서 분석됨으로 각각 1869년, 1873년, 1902년에 제작된 것을 명확히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운현궁 목가구 유물을 전통적 목가구, 수입가구, 개화기식 가구로 양식 구분하여 개별적인 유물의 특징을 분석하여 운현궁 목가구의 조형적 변천과정을 살펴보았다. 먼저 전통가구양식의 목가구는 왕족사가의 특성상 일반민가의 목가구와는 달리 <朱漆三層欌>과 <四層冊欌>은 크기 및 주칠도료와 의장에서, <衣巨里>는 문받이턱의 크기와 횃대의 형태 및 측널의 쇠목 굵기에서, <小盤>은 높이와 주칠도료, 盤面에 1조의 음각선 등에서 차이를 나타냈다. 개화기식 목가구는 전통목가구와 달리 <饌欌>은 과다한 장식, 유리의 사용, 내부공간구획의 고정의 특징을, <四層三角卓子>는 볼트로 고정한 유리제 팔각꼭지의 사용, 양측널을 합판제작의 특징을, <中國式 案>은 중대의 존재흔적, 우리나라에 없는 큰 크기의 특징을 나타내어 전통양식의 목가구에서 개화기식 가구로의 조형적 변천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 외 수입가구는 중국가구와 일본가구, 서구가구가 있는데 <太師椅>는 굵고 육중한 다리와 前面하대의 굴곡특징을 나타내며 <方□>은 다리 끝을 회문 형태의 조각을 하여 청대가구의 특징을, 일본 <函>은 바닥에 바퀴를 달아 일본제품의 특징을 잘 나타내었다. 운현궁 목가구 유물은 그동안 개화기 가구를 연구함에 있어 유물의 희소성으로 인해 도록이나 신문, 잡지 등을 통해 연구되었던 것을 직접 실견하여 조사, 분석함으로 조선 후기 목가구 양식이 개화기를 거쳐 근대기에 이르기 까지 어떻게 변천해 갔는지를 추적할 수 있는 소중한 목가구 유물이라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개인소유로 인해 이번 연구에서 제외된 운현궁의 일부분인 永老堂의 많은 목가구 유물에 대한 추가적 조사, 분석을 통해 보다 정확한 운현궁 유물의 시기적 분류와 조형적 변천과정이 앞으로 밝혀져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The theme of my thesis is wooden furniture at Unhyeongung Palace(雲峴宮) where King Gojong had spent his boyhood before ascending throne. Unhyeongung is also important to understand what the late 19th century, so-called a historical turning point, was like. As studies on the history of Korean furnishings so far have been focused on the later period of Josun Dynasty or modern times, there is insufficient research on how the traditional furniture had changed through transitional period, that is, from when Joseon Dynasty opened its ports to when modern times had come. In addition, it was hard to know when exactly each ancient wooden furniture was produced since there is no chronicle for it. Though architectural community has studied on how Unhyeongung had built up since 1990, research on the wooden furniture itself was never carried out. In this research, however, I discovered how wooden furniture had changed from the later period of Joseon Dynasty to Japanese colonial era by doing research on wooden furniture at Unhyeongung in respects of space, time, and style. First of all, I tried to understand how the wooden furniture at this small compound is arranged by closely reviewing characteristics of each building and the using pattern of residents. Norakdang(老樂堂), which was completed in 1864, is the inner house of the palace where parties and ceremonies were held. After designated as a palace for a new bride queen Min(Myeongseong) in 1866, it had been used for educating the new bride about the royal court's rules. Therefore, most of the wooden furniture placed at Norakdang is splendid gifts bestowed by the court such as three-story red lacquered cabinet, wardrobe, red lacquered box. Noandang(老安堂), which had been used as a guest room called Sarangbang and a private room, is equipped with book cabinets, bedsteads(pyeongsang), and whatnots(sabangtakja). Irodang(二老堂), a detached house for women to live and do household chores, is arranged by furniture for women's quarters and kitchen. Yanggwan(洋館), a modern style building, had been used as a banquet hall and arranged by western style wooden furniture. Secondly, I reviewed the unique characteristics of wooden furniture made during the later period of Joseon Dynasty, the flowering time of civilization, and era of Japanese colonialism by observing political and cultural circumstances of each period. To capture the distinctive features of the flowering time of civilization, in particular, I reviewed Japanese and Chinese furniture which had significant influences on Korean one. I also tried to understand how places to teach industry and their rival places to produce artifacts had changed during Japanese imperialism period so as to grasp the unique traits of wooden furniture made under the rule of Japanese imperialism. As a result of those thorough reviews, I found out that wooden furniture created during the later period of Joseon Dynasty is characterized with having flexible arrangement, rigid symmetrical structure, and legs fostered by Korean heating system in which hot water circulated under floor. During the flowering time of the civilization, wooden furnishings was marked by excessive metal ornaments and rigid attitude for inner space division caused by the foreign countries' influence. The glasses, mirrors and multi-functional complex structures were found in those made under the rule of Japanese colonialism. Whatnots and tray presumable belong to the flowering time of the civilization, cupboard and secretaries to the Japanese imperial period, and the rest to the later period of Joseon Dynasty. It was hard to discern wooden furniture produced during the flowering time of the civilization from that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only by the pattern, since almost identical style was found among those two. So a chronicle for wooden furniture is extremely needed to know the exact time of each piece of furniture produced. Even though there was no such thing, I could find ten legacies of Unhyeongung including wooden boards and large scooped wooden bowls whose exact time can be tracked down by the written and spoken language. With those furnishings reviewed, I will explain when exactly each piece of furniture was manufactured. Lastly, I reviewed what process wooden furniture had gone through during each period by analyzing its unique characteristics and then divided it into three categories as traditional, imported and civilized style. The traditional wooden furniture at Unhyeongung was different from that at people's houses. The three-story red lacquered cabinets and the four-story book cabinets, in particular, have different traits in terms of size, wardrobe, and paints, while meal tables have unique features in respects of height, paint, a negative angle line on the upper side. The cupboard made during the flowering time of the civilization have differences from traditional ones in terms of excessive decoration, the use of glasses, and rigid attitude for inner space division. The four-story open-sided cabinets reveal transitional period's features with each board made of plywood. Chairs among imported ones show features of the Qing dynasty's furnishings, while boxes indicate Japanese artifacts' styles. The wooden furniture at Unhyeongung has its historical significance in helping researchers recognize how wooden furnishings had transformed through the later period of Joseon Dynasty to modern times by closely reviewing and analyzing the legacy with their own eyes, instead of using the traditional way of doing research based on books, newspapers, and magazines caused by the scarcity of the rel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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