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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時代 佛頂道場 硏究

Title
高麗時代 佛頂道場 硏究
Authors
김수연
Issue Date
2004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고려시대의 불교는 '國家佛敎'라고 특징지어지며, 국가불교의 성립 조건 중 하나는 종교적 실천으로서 국가적 불교신앙의례의 실행이다. 실제로 고려시대에는 특정 尊格과 경전을 중심으로 83종, 1083회에 이르는 불교의례가 행해졌다. 그 중 佛頂道場은 尊勝佛頂과 관련된 의례로, 고려 宣宗년간부터 元宗년간까지 약 200여 년 간 총 37번 개설되었다. 불정도량은 신라시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佛頂信仰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의 불정신앙은 존승불정과 그 주경전인 『佛頂尊勝陀羅尼經』이 중심이었다. 이 신앙의 흔적은 惠通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으나, 그가 직접 이 경전을 유입했을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 경전 유입 가능성이 가장 큰 인물로는 惠日을 들 수 있다. 그는 不空의 孫弟子이면서 불공이 이 다라니경을 호국적으로 사용한 일을 간접 체험한 인물로, 고려에서 『불정존승다라니경』이 호국적으로 연결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할 수 있다. 또 이 다라니경은 唐ㆍ宋ㆍ遼의 왕성한 石幢 건립을 통해 중국에서도 널리 신앙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중국의 신앙 경향은 宋과 遼의 대장경 유입, 사신들을 통한 章疏 유입과 더불어 고려에 전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渤海에서도 이 다라니경의 寫經이 널리 행해졌는데, 발해의 불교전통이 고려로 이어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이 다라니경신앙의 고려 유입을 알 수 있다. 불정도량은 『불정존승다라니경』에 의거해 개설되었다. 존승불정은 다른 여러 종류의 佛頂尊보다 많이 신앙되었으며, 高麗大藏經 속에 다른 佛頂 관련 장소가 2, 3편인데 반해, 존승불정은 8편이나 수록되어 있다. 이는 또한 고려시대 '佛頂'이라는 명칭이 들어간 다른 의례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즉 大佛頂讀經은 白傘蓋佛頂을 중심으로 한 의례였고, 佛頂心道場은 『佛頂心觀世音菩薩?陀羅尼經』을, 大佛頂五星道場은 熾盛光佛頂을 중심으로 하였으며, 이를 통해 불정도량은 존승불정이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불정도량의 의례는 『불정존승다라니경』에 대한 의궤 중 不空의 『佛頂尊勝陀羅尼念誦儀軌法』에 의해 행해졌을 것으로 보인다. 불정도량은 인종대와 명종대에 8차례로 가장 많이 행해진다. 재위기간 중 개설한 전체 의례에서 불정도량이 차지하는 비중은 인종년간이 높다. 그러나 상례적 불교행사인 燃燈會와 八關會를 제외한 의례 개설 회수를 기준으로 보면 명종년간에 더 비중 있게 개설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이 도량은 6월을 제외한 모든 달에 개설되고 있으며, 그 중 10월에 가장 많이 열리고 있다. 불정도량은 기우와 대외문제의 해결, 그리고 내란을 진압하기 위해 개설되었다. 이 도량의 개설 기록을 살펴보았을 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고려 전시기가 아닌 선종 2년에 처음 개설되어 원종 10년 이후에는 개설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선종대에 처음 개설된 것은 文宗년간에 여러 차례에 걸친 대장경의 유입 및 송ㆍ요ㆍ발해 불교의 수용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또한 원종년간 이후에 개설되지 않은 이유는 원나라가 고려의 호국도량을 견제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불정도량은 경전의 가르침을 충실히 재현했다기보다는 현세이익적인 목적으로 경전을 응용하고 있다는 고려시대 불교의례의 특징도 공유하고 있다. 『불정존승다라니경』 자체는 지극히 개인적인 공덕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불공의 『불정존승다라니염송의궤법』의 四種 護魔法에 의거해 국가적 이익까지 공덕의 범위를 넓히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 백성들을 결집하려 하였을 것이다. 아울러 이 도량의 후원자는 국왕이었으며, 불정도량은 왕권을 뒷받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도 개설되었다. 그런데 고려시대에 빈도 높게 개설된 다른 불교의례의 기능을 살펴보았을 때, 불정도량의 개설 목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정도량을 중복 개설한 이유는 『불정존승다라니경』 자체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불정존승다라니경』이 지옥에 떨어질 罪障을 없애주고 장수와 치병이라는 공덕을 설하고 있다. 즉 국가의 질병과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는 기상재해나 전란을 『불정존승다라니경』의 공덕을 확장시켜 해결하고자 한 것이다. 아울러 교리에서 살생을 금지함에도 불구하고 살생을 하며, 자신의 목숨도 위태로운 전시에 지옥을 깨뜨리며 장수와 치병을 설하는 다라니의 공덕을 받고자 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불정도량은 고려시대의 여러 종파 중 摠持宗이 주관해서 개설된 것으로 보인다. 총지종은 혜통을 개조로 하는 종파로서, 『불정존승다라니경』에 의거한 신앙을 전개한 것으로 추정된다. 또 明宗 16년에 摠持寺에서 개설된 佛頂消災道場의 존재도 이를 뒷받침하는데, '佛頂'이라는 명칭이 들어갔기 때문에 이례적으로 총지사에서 개설했기 때문이다. ;The Buddhism of Koryeo(高麗) is characterized as 'national Buddhism', and one of the conditions of becoming national Buddhism is the practice of national Buddhist ceremonies as a religious act. In fact, there were 83 kinds and 1,083 times of Buddhist ceremonies chiefly by certain deities and Sutras in the Koryeo era. BulJeongDoryang(佛頂道場), among others, is a ceremony related to JonSeungBulJeong(尊勝佛頂), which had been held 37 times, in all, for about 200 years from King Seonjong(宣宗) to King Wonjong(元宗). BulJeongDoryang can be said to be a representative of the faith in BulJeong that had been handed down from the Shilla(新羅) period. The belief in BulJeong of Shilla centered around JonSeungBulJeong and its principal Sutra, BulJeongJonSeungDaraniGyeong(佛頂尊勝陀羅尼經). This belief can be traced back to Hyetong(惠通), who, however, is not presumed to be the one to have brought in the Sutra. Rather, Hyeil(惠日) is most likely to have introduced this Sutra. He was Bulgong's pupil and had an indirect experience of BulJeongJonSeungDaraniGyeong for the sake of the national defense. Therein, he can be regarded as having laid the foundations for the link between BulJeongJonSeungDaraniGyeong and its use of national defense. This sutra was also widely believed in China in that it was flourishing as a stone pole in Dang(唐), Song(宋), and Yo(遼). This religious trend of China seems to have been passed on to Koryeo along with an inflow of the Buddhist Sutras and the Confucian classics by envoys. In addition, the copying of that sutra in Balhae(渤海) was rampant, which again shows that the faith in this sutra had been flowed into Koryeo, when mirroring the fact that Koryeo followed the tradition of Balhae's Buddhism. BulJeongDoryang was held according to BulJeongJonSeungDaraniGyeong. JonSeungBulJeong was believed comparatively more than the many other kinds of BulJeongJons(佛頂尊). This is epitomized in the Koryeo collection of Buddhist Sutras where only two or three volumes were alloted to the other BulJeongs while JonSeungBulJeong was shown in eight volumes. BulJeongDoryang was carried out during the times of King Injong(仁宗) and King Myeongjong(明宗), which accounted for eight times altogether. The gravity of BulJeongDoryang out of the whole ceremonies is the greatest during the reign of King Injong, if compared with the other regimes. However, it is during the period of King Myongjong's reign that BulJeongDoryang was considered more significant if the number of ceremonies held is compared to one another, except for that of the regular Buddhist ceremonies like YeonDeungHoi(燃燈會) and PalgwanHoi(八關會). This Doryang was held in every month but June, and October had the most of it. BulJeongDoryang was held in order to pray for rain, resolve the foreign affairs, and suppress rebellion. Looking into the records of this ceremony, it is the most salient that the ceremony was held first in the second year of King Seonjong's reign and was never held after the tenth year of King Wonjong's reign, not the whole period of Koryeo. The fact that this ceremony was held first in the times of King Seonjong seems to have some bearings on many times of inflow of the Buddhist Sutras and acceptance of the Buddhism of Song, Yo, and Balhae in the reign of King Munjong(文宗). On the other hand, the fact that the ceremony was not performed after the times of King Wonjong is presumed to be because of Won(元)'s putting a restraint on Koryeo's Doryang for the purpose of national defense. The patron of this ceremony was the king himself, and BulJeongDoryang, in turn, was practiced in part to support the royal authority. Besides, BulJeongDoryang shares the characteristics of Koryeo's Buddhist rituals in that it utilized the Sutras for the sake of the present world rather than reproducing the teachings of the Sutras in a faithful way. BulJeongJonSeungDaraniGyeong, itself, mentions the very personal pious acts, but it expands its scope of deeds to the national interests due to the four-kind Homa in BulJeongJonSeungDaraniYeomSongEuiGweBeob(佛頂尊勝陀羅尼念誦儀軌法). Examining the functions of the other frequently held Buddhist rites in the era of Koryeo, we can learn that they are not that distinct from that of BulJeongDoryang's performance. The reason for holding BulJeongDoryang repetitively, despite this fact, should be sought in BulJeongJonSeungDaraniGyeong, itself. BulJeongJonSeungDaraniGyeong removes the obstacles of sins leading to the inferno, and preaches the deeds of longevity and cure. To put it another way, it attempts to settle the nation's disease and difficulty, i.e., weather disasters or wars, by extending the virtues of BulJeongJonSeungDaraniGyeong. By dint of this, taking life is performed in a war although it was prohibited in the doctrines. According to this sutra, no matter what acts one did during the war time, he destroys the hell and tries to obtain the virtues of longevity and cure by this sutra. Lastly, BulJeongDoryang seems to have been superintended by Chongjjong(摠持宗), among other sects existing in the period of Koryeo. Chongjijong is the sect founded by Hyetong, which seems to have developed its faith in accordance with BulJeongJonSeungDaraniGyeong. Moreover, BulJeongSoJaeDoryang, held in Chongjisa(摠持寺) in the sixteenth year of King Myongjong's reign, backed up this fact mentioned above. In other words, Chongjisa was exceptionally in charge of this event because 'BulJeong' was contained in its n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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