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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중인 복식 연구

Title
조선시대 중인 복식 연구
Authors
송혜주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의류직물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This study is regarding the clothing of' 'Middle Class Men(中人)' The term' Middle Class Men' means the concept including technical people, clerks in public agencies and children born of concubines, which was newly established in the late Chosun Dynasty (朝鮮) (17^(th) to 19^(th) century).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see their clothes in a society with a rigorous hierarchy. In the feud진 age, clothing was not a matter of economic capabilities but a matter of a combination of social status and class. Therefore, a clothing system that the central government established would be the index showing the status and class of the wearer. From this point of view, this article reviewed the clothes of 'Middle Class Men' an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ir political and socio-economical conditions and their clothes. The target period was throughout Chosun. We focused on the institutional aspects of the clothes of 'Middle Class Men' that were used to enforce the centralized control of the King and newly emerged nobility force and coerce the other classes. Dress codes were fixed at the time of 'Gyeonggukdaejeon(經國大典)' and succeeded to the end of Chosun. Since the establishment of Chosun, the newly emerged nobility class enforced their foundation and publicized small and medium estate owners in owners country as 'Ynagban'(nobility, 兩班). Those who helped the establishment of Chosun became Yangban(兩班) and others became public servants in the country. Yangbans who acquired authority and power tried to distinguish themselves trom 'Hagnri'(鄕吏)' or 'Noksa(綠事)' who were originally from the same class, which is 'Hojang(戶長)' in Goryo Dynasty(高麗). In case of Noksa, their 'Geon(巾)' were changed from' Geon' to 'Osamo(烏紗帽)' according to 'Sokdaejeon(續大典)'. It is related to the status restoration of Noksa. There is some literature implying that Noksas might have worn' Osamo' rather than 'Yugakpyeongjeongjeon(有角平頂巾)' before 'Gyeonggukdaejeon'. Additionally, there was a hierarchy in the group of Hyangri' and the sense of hierarchy was reflected in their clothing. In other words, only Hojang class that took the post of Hyangri could wear 'Danryeng(團領)', 'Samo(紗幅)' and 'Hol(笏)'. Official hats of 'Middle Class Men' were different to express their differentiated status from Yangban. According to law,'Gyeongajeon' (public servant in capital, 京□前) wore various kinds 'Geon(巾)'. 'Geon' has lower status than 'Mo(帽)' since south Jo(南朝) in China and general people wore it. Most of their of social hats were based on those in Goryo, which succeeded to the system of 'Yuan(元)' than 'Ming(明)'. 'Gyeongajeon' wore different 'Geons' according to their status. 'Noksa', high level clerks attached 'Gak(角)' to their 'Geon' to distinguish themselves from 'Geon'(書吏)'. It is guessed that 'Jogeon(조건)' of 'Najang(羅將)' might fix by adding 'Jam(簪)' like 'Chak(책)' in ancient times with double or multiple structures. Hyangri', who was an 'Oiajeon' (public servants in the country, 外위□前) wore 'Bangrip(方笠)' to distinguish themselves from other classes. However, it was not kept very well. 'Hojang' class rejected this regulation and accomplished their purposes through 'Sαngso' (letters to the King, 上訴). 'Byeonlgam(別監)' of 'Dugeon(King's palace, 大殿)'is similar to 'Jajeokdugeon(紫的頭巾)' of 'Akgong' (musicians, 樂工). Additionally, regarding the colors of' 'Geon', 'Byeonlgam' of the Prince's Palace wore the especially 야stinguished color 'Geons'. 'Middle Class Men' in Chosun had many classes in it because it included many vocations. Therefore, there was much difference in 'Middle Class Men'. Additionally, there was restraint from central government against the higher class of 'Middle Class Men' and they were trying continuously to be like Yangbans. In the case of head dresser, Gyeongajeon's head dresser were concentrated on 'Geon'. Geons that middle class used were diversified according to their vocations and they were developed into diversified shapes. Comparing to Geons, clothes were not much different from those of Yangban and prohibition according to their classes was imposed on the materials of clothing and accessories. In the Chosun era, hats were more closely related to the class specification than clothing and the change and development were conspicuous in hats rather than in clothes, which is eminent in the comparison between 'Middle Class Men' and Yangban.' The meaning of this study is that it expanded the scope of study regarding clothing to that of 'Middle Class Men' escaping from the restrictions to the royal family and Yangban. Further studies with supporting materials will be needed. ;본 연구는 조선시대 중인 남성 복식에 관한 연구이다. 엄격한 유교질서가 중시되던 조선의 중간계급으로서 이들이 어떠한 복식생활을 하였는지 연구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봉건사회에서 복식은 단순히 경제적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신분과 계급이 반영된 형석이었다. 따라서 중앙정부가 제정한 복제는 당시 사회에서 갖는 각 신분의 지위를 드러내는 지표이며 전체 권력 체계 안에서 그들이 갖는 지위를 드러낸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본 연구는 조선시대 중간계층인 중인의 복식 제도를 살펴보고 그들의 정치적 또는 사회경제적 조건과 복식과의 관계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왕과 신흥사대부 세력이 그들의 중앙집권체제를 강화시키며 그들 이외의 신분을 견제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중인 복식의 제도적 측면을 중점으로 연구하였다. 연구의 시기는 조선시대 전 기간이다. 법전으로 규정된 중인의 복식규범은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이르러 체계를 잡았으며 이것은 대체로 조선 말기까지 이어진다. 조선 건국 이후 집권사대부는 신왕조의 기반을 다지면서 자신들의 출신기반인 지방의 광범한 중소지주층을 조선왕조의 상급 지배신분인 양반으로 공인하였다. 이때 지방 중소지주 출신으로 조선건국에 일조한 부류는 양반(兩班)으로 그 나머지는 중인인 향리(鄕吏)로 나뉘게 된다. 조선 건국의 주체 세력인 집권사대부가 그들과 출신 성분이 같은 고려시대의 호장을 계승한 향리나 정직 품관이었던 녹사(祿仕)와 차별을 두어 그들의 위의(威儀)를 살리려는 시도는 복제에 드러나게 된다. 녹사의 경우 「속대전(續大典)』 에 이르러 그 관모가 건(巾)에서 오사모(烏紗帽)로 바뀌게 된다. 이것은 녹사의 지위 회복과 관련이 있다. 녹사의 경우 「경국대전』이 성립되기 이전에 유각평정건(有角平頂巾)이 아니라 오사모(烏紗帽)를 착용하였다는 것을 시사하는 실록의 문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흔히 향리라고 부르는 집단 안에서도 그들 간의 출신 성분에 따른 서열의식이 확실하게 존재하고 이것이 복제에 반영이 실행이 되고 있었다. 즉 대대로 향리를 하였던 가장 지위가 높은 호장(戶長)층만이 단령과 사모 홀을 들 수 있었으며 「경국대전」의 관복 체계 안에 말단으로 편입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조선시대 중인의 관모는 양반과 차별적인 신분 등위를 표현하기 위해 그들만의 독특한 제도를 가졌다. 법전의 규정에 있어서 경아전이 착용한 것은 다양한 종류의 건(巾)이다. 건은 중국의 남조 이래 모(帽)보다는 격이 낮은 것으로 일반 사서(土庶)의 쓰개였다. 이들의 관모는 대부분 고려시대의 제도를 전승한 것인데 명제(明制)라기보다는 원제(元制)를 많이 채용하고 있다. 경아전들은 각각의 직책에 맞추어 차등이 있는 건을 착용하였다. 상급 서리인 녹사(祿仕)의 건에는 각(角)을 달아 그보다 하급인 서리(書吏)와 분별을 주었다. 나장(羅將)의 조건(조건)은 고대의 책(책)과 같이 이중 혹은 다중 구조로 잠(簪)을 가식하여 고정시키는 형태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외아전인 향리(鄕吏)에 대해 중앙에서는 그들을 다른 신분과 구별하기 위해 방립(方笠)을 착용케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실제로 잘 지켜지지 않으며 향리 중에서도 격이 높은 호장층은 이를 거부하는 상소를 하여 그들의 요구를 관철시키기도 한다. 별감(別監)의 두건(頭巾)은 그 형태에 있어 악공이 착용하던 자적두건과 유사성이 확인된다. 또한 건의 색상에 있어 세자궁별감의 경우 특별하게 구분되는 건을 착용하였다. 그리고 별감의 초립 역시 세자궁 소속의 별감인 경우 흑색초립을 착용하여 구분한 것도 확인 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중인은 그들의 다양한 직역만큼이나 그 신분계층도 다양했다. 그러한 만큼 같은 중인 내에서도 그들의 복식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또한 그들 중 높은 신분에 속한 자에 대해서는 중앙의 견제가 있었으며, 이와 반대로 그들은 끊임없이 양반과 같아지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쓰개의 경우, 경아전의 관복용 쓰개는 양반의 것과 비교하였을 때 건(巾)에 집중되는 특징을 보인다. 중인층이 사용하였던 건은 직역별로 그 형태가 매우 다양하였으며 지금까지 알려진 단순한 형태와 달리 매우 다양하며 복잡한 형태로 발달하였던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에 비해 의복류는 그 품목이나 옷의 형태는 양반의 그것과 큰 차이가 없었고 다만 옷의 소재나 장신구 등에 신분별 금제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즉, 조선 시대 관모는 의복보다도 더 심각한 사회적 교섭관계를 가지며 그 변화와 발달이 현저한 것은 중인과 양반을 비교하였을 경우에도 확실하게 드러난다. 본 연구는 지금까지 연구되던 왕실과 양반의 복식 연구나 직역별 복식연구가 아닌 중인 복식에 관한 연구로서 복식사 연구의 대상을 넓혔다는데 의의가 있다. 이들에 대한 자료가 보충 되는대로 심도 깊은 후속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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