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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五倫行實圖'에 나타난 화풍 연구

Title
조선후기'五倫行實圖'에 나타난 화풍 연구
Authors
정붓샘
Issue Date
2004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조선왕조는 성리학을 통치이념으로 정립시키고자 개국 초부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이 중 대민교화정책의 일환으로 삼강오륜을 널리 알리는 유교 윤리 교화 서적을 조선 초기부터 말기까지 지속적으로 간행하게 된다. 행실도류 서적은 가장 대표적인 유교 윤리 교화서적으로서 개국한지 약 50년이 지난 시점부터 제작되기 시작하여 이후 450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간행되었다. 세종 16년(1434)에 간행된 『삼강행실도』는 행실도류 서적 가운데 최초로 만들어진 서적으로서 행실도류 판화 양식의 전형을 마련한 판화서이다. 뿐만 아니라 불교 판화와 함께 우리나라 판화사의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는 유교 판화의 탄생을 알리는 작품이기도 하다. 『삼강행실도』를 통해서 마련된 행실도류 판화의 전형적인 양식은 그 뒤를 이어 제작된 『속삼강행실도』(1514년 간행), 『이륜행실도』(1518년 간행), 『동국신속삼강행실도』(1617년 간행), 『동국속삼강행실도』(1617년 간행) 등을 통해서 그대로 계승되었다. 정조 21년(1797)에 간행된 『오륜행실도』는 내용적으로는 기존에 간행된 『삼강행실도』와 『이륜행실도』를 통합하면서, 기존의 행실도류 판화와는 전혀 다른 판화 양식으로 제작되었다는 점에는 서지학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 의의가 깊은 서적이다. 『오륜행실도』가 간행된 1790년대는 정조 재위 기간 중에서도 여러 가지 서적의 간행이 가장 활발하게 진행된 시기이다. 즉위 초부터 왕권강화와 문예부흥책에 심혈을 기울인 정조는 규장각을 통해서 사상적, 문화적 통치 기반을 조성하고자 했다. 규장각은 군왕의 각별한 비호아래 자비대령화원 등과 같은 효율적이고 체계적인 판화 제작과 도서 편찬의 기능을 갖추게 된다. 『오륜행실도』는 이러한 정조의 문화적 의지와 정책의 일환으로서 규장각의 효율적인 체제를 통해서 우수한 판화를 지니고 탄생된 서적이다. 『오륜행실도』판화는 기존의 행실도류 판화와는 완전히 다른 형식을 제시했다. 가장 눈에 띠는 차이점은 한 화면에 한 가지 장면만을 묘사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는 줄거리 전달 중심인 기존의 행실도류 판화 형식에서 과감하게 탈피한 형식이다. 이러한 변화를 토대로 『오륜행실도』판화에서는 이름표식도 사라지고 회화성이 풍부한 판화로 새롭게 변모했다. 기존의 행실도류 판화의 도상을 적극 활용하는 한편, 기존 판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구도와 산수표현법 등이 등장하게 되었다. 여기에는 당대 일반 화단의 뛰어난 회화 수준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 다량으로 유입, 유통되고 있던 중국 서적의 다양하고 뛰어난 삽화들의 영향이 매우 컸다는 흥미로운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이를 토대로 볼 때 『오륜행실도』판화는 윤리 교화서라는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당시 사람들의 시각적 변화상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오륜행실도』판화가 새로운 화풍으로 제작될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이러한 판화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유기적으로 결합된 수평적 관계가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조선시대 최초의 윤리 교화서적인 『삼강행실도』판화의 제작 시에도 그대로 확인되는 바이다. 『오륜행실도』에서 새롭게 등장한 양식들이 이후 민화외 일반회화 등을 통해서 더욱 확대 재생산되었다는 점은 당시의 소비자들 사이에 이러한 양식이 얼마나 인기 있었나 하는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본고에서 시도한『오륜행실도』판화의 양식 분석은 원화 제작자 규명에도 상당히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당시의 문헌에는 제작자가 기록된 바가 없기 때문에 기존의 여러 가지 연구에서 막연하게 김홍도를 제작자로 추측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오륜행실도』의 원화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김홍도가 제작한 것이 확인되는 당시의 관판본 판화들의 양식과 비교 분석해 보는 것이 우선이다. 그 다음으로는 김홍도의 진작인 일반 회화와의 양식 비교를 통해서 그 가능성을 살펴보는 것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러한 비교를 토대로 필자가 살펴 본 바로는 『오륜행실도』원화의 실질적인 제작에는 당시 자비대령화원으로 재직하고 있던 화원들 가운데 몇몇으로 압축하여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륜행실도』가 서지학적 측면에서 뛰어난 서적으로 인정받아 온 것과 판화의 우수성으로도 주목받았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이에 앞서 판화는 어디까지나 서적의 부수적인 것으로 취급되었고, 일반 고서화에 비해 그 희귀성이 떨어진다는 이유에서 미술사 연구에서 상당히 오랫동안 외면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오륜행실도』의 판화도 기존의 행실도류 판화를 포함한 한국 판화사 전체의 맥락에서 파악된 바는 드물다고 하겠다. 본고에서는 미약하나마 조선시대 행실도류 판화라는 통시적인 맥락에서 그 양식적 특징을 파악해 보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역시 불교 판화와의 비교나 한국 판화사 전체의 맥락에서 이를 살피지 못한 아쉬움이 남았다. 앞으로는 불교 판화와 유교 판화의 통합을 통해 한국 판화사라는 거시적인 안목에서 행실도류 판화의 가치를 연구해 볼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The Chosun Dynasty started its ongoing strenuous works from the beginning in order to establish Neo-Confucianism as the ruling ideology. Part of the policies to enlighten people, the ethics enlightening books based on Confucianism and particularly the three bonds(Samgang) and the five moral rules(Oryun) in human relations were never out of stock from the early days of the regime to the end. Such kind of books were the most representative of the books written and published to show the nation the right manners and attitudes in behaving themselves. The first books of the category were published 50 years since the foundation of the dynasty and succeeded one after another for 450 years. Being published in the 16th year of King Sejong's reign(1434), Samganghaengshildo was the very first behavior corrections book and laid out the typical prints used in such books. The canonic styles of the illustrated prints were passed down in later books in the same category such as SokSamganghaengshildo(1514), Iryunhaengshildo(1518), Dongguk-shinsokSamganghaengshildo(1617), and DonggukshokSamgang-haengshildo(1617). Published in the 21st year of King Jeongjo's rule(1797), the Oryunhaengshildo is very significant in that it integrated Samganghaengshildo and Iryunhaengshildo from the aspect of contents and that it adopted a totally different printing style from the predecessors in the aspect of bibliography and art history. King Jeongjo poured his heart and soul on making the royal power strong and setting up the policies for the revival of learning. His major means for those efforts was Gyujanggak, where he thought the ideological and cultural ruling foundation should be established first. Under the particular patronage of the king, Gyujanggak increasingly equipped itself with the capacities to make prints and publish books. The Jabidaeryeonghwawon is one good example of the increased capacities, which was efficient and systematic at the same time. The Oryunhaengshildo truthfully reflects the king's will and policies to enliven the national culture, being a gorgeous book published through the effective system of the Gyujanggak and containing spectacular prints. It is very noteworthy that the Oryunhaengshildo suggested virtually new print styles that had never been ran in the old ethics and enlightening books. One of the most eye-catching differences is that it describes only one scene in one page, which was a bold step out of the conventional style focusing on delivering the stories and morals. Starting with that innovation, the book got rid of the name marks from the prints and instilled plenty of artistic features into them. At the same time it was active in making use of the icons used in the older prints of such books, the book introduced refreshingly new compositions and landscape techniques that were not known to the nation before. The high level of the artists of the times was the most responsible for those changes. In addition, it was confirmed that those small but meaningful reforms were caused by the diverse, splendid illustrations of the books that were brought into and circulated in Chosun in such great numbers. Thus, it becomes evident that the prints of Oryunhaengshildo very actively accepted the changes to the ways people viewed things in order to maximize their goals and effects. It was the organically connected and horizontal relationships between the producers and consumers of the prints that the prints of Oryunhaengshildo were successfully set as the new dominant styles in those days. The new styles first witnessed in the Oryunhaengshildo were more extended and reproduced through folk paintings and general pictures, which proves that such new styles were extremely popular among the consumers. By analyzing the styles of the prints of Oryunhaengshildo, this study also provided some crucial clues to identifying the artists of original paintings. Since there were no records of the artists in the documents, they have roughly regarded the old great artist Kim Hong-do was the real painter of those illustrations. In an attempt to deal with the artist issues of Oryunhaengshildo, it's first necessary to compare the illustration with the prints found in the books published by the public or government agencies whose artist was Kim Hong-do. Then it should be carried out to compare them with his general paintings in terms of styles. Through those actions, the investigator estimated that a few of the artists working at the Jabdaeryeonghwawon must have painted the illustration. It's been long since the Oryunhaengshildo was recognized for the excellent illustrations. But it's been also the usual case that it's neglected for so long time in the researches of art history because of its abundance. The study tried a diachronic perspective on the prints of the ethics and enlightenment books to understand their features. It's unfortunate that it didn't compare with Buddhist prints and wasn't examined in the entire complex of the Korean prints history. The future studies should indicate what kind of values the prints of the books had from the microscopic viewpoints called the history of Korean prints by integrating the Buddhist prints and Confucian o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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