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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트의 「판단력비판」과 비개념적 사유의 가능성

Title
칸트의 「판단력비판」과 비개념적 사유의 가능성
Authors
조미영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철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서양철학에서 근대는 빛의 메타포가 지배하던 시대였다. 인식의 대상을 주체의 인식 능력과 그 외연이 같은 것으로 파악했던 근대철학은 자연의 빛(lumen naturale)과 이성의 빛에 따라 세계를 능동적으로 인식할 수 있다고 여겼으며 따라서 인간 인식의 가능성의 조건을 철학의 일차 과제로 삼았다. 칸트의「순수이성비판」역시 이러한 탐구의 한가운데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근대 이후의 철학, 즉 철학에서의 현대성을 표현하는 것은 빛, 가시성, 이해가능성이 아닌 어둠, 비가시성, 인식불가능성이다. 우리는 개념과 지성을 통해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소유할 수 없다. 개념작용은 인간의 지각 작용의 불충분성을 대리하기 위해 차선으로 고안된 방법일 뿐 그 자체로 세계에 대한 완전한 인식을 보증해 줄 수는 없는 것이다. 지성의 빛이 비추이는 개념적 인식의 이면에는 개념에 의해 인식될 수 없는 어두운 심연이 존재한다. 이, 빛이 아닌 어둠, 가시성이 아닌 맹목성(blindness)의 메타포를 통해 현대적 사유의 면모를 그려보이고 있는 것이 바로 칸트의 「판단력 비판」이다. 제일비판에서 칸트는 인식 일반이, 특수자인 자연 사물을 인식에 앞서 인식 주관에 미리 마련되어 있는 보편적인 것 즉 개념에 포섭함으로써만 가능하다고 선언한다. 그러나 공통된 표징을 써서 대상과 간접적으로 관계 맺을 수밖에 없는 개념들은 실재에 비해 너무 일반적이고 너무 넓기 때문에 대상일반이라는 동일성의 형식 속에 끌어 담을 수 없는 사물의 고유한 두께와 다양한 질적 차이들은 사상되고 제거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렇듯 칸트의 제일비판 안에서 재현 일반의 형식과 규정적 사유로 포착되지 않고 남은 개념의 타자들, 혹은 차이들은 비록 명시적으로는 아닐지라도, 칸트를 비판하는 이후의 다른 그 어느 철학보다도 바로 칸트 자신의 제삼비판 안에서 내재적으로 극복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논문은 제삼비판을, 제일비판에서 남겨진 사유의 한계에 관한 극복이 진지하게 고려되고 있는, 개념적 사유의 타자들에 관한 기록으로 볼 수 있음을 제안하고자 한다. 칸트에게서 근본적으로 모든 미적 체험은 오성의 개념적 사유로 포착될 수 없고 언어로 표현 불가능한 감성적 다양성이 일으키는‘균열’의 체험이다. 그런데 개념을 넘어서고 재현을 거부하는 이 예술적 표상의 초월성을 가장 적절히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칸트가 말한 <미감적 이념>(aesthetic idea)이다. 칸트에 따르면 미감적 이념은‘어떠한 개념도 충분히 감당할 수 없는 상상력의 표상’으로, 이 표상은 상상력으로 하여금 개념과의 합치를 넘어서서,‘언표할 수 없는 많은 것을 개념에 덧붙여 사유케’하고, 따라서‘개념 그 자체를 무제한적으로 미감적으로 확장’하도록 한다. 미감적 이념은 어떤 단일한 개념에 의한 이해도 거부하는 무제한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미감적 이념이 암시하는 이 제한없는 풍부함은 상상력의 포착 능력을 압도하고 능가한다. 그런데 개념에 의한 포착을 거부하는 이러한 균열의 체험이 가장 극단화되는 경우가 <숭고>의 체험이다. 상상력의 이해의 최대치를 벗어남으로써 사유를 확장한다는 점에서 숭고는 근본적으로 미감적 이념과 궤를 같이 한다. 숭고 체험의 핵심은 상상력이 아무리 최대의 노력을 기울여도 총체성의 이념을 현시하라는 이성의 요구에 적절히 부응할 수 없다는 한계 상황에 직면하여 표현 불가능성 혹은 재현 불가능성의 문제를 제기하게 된다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제삼비판에서 숭고에 관해 다루고 있는 부분들은 재현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현대성의 페이지들인 것이다. 숭고의 대상은 인식능력이 그 압도적인 힘 혹은 크기를 적절히 현시해낼 수 없다는 불가능성을 통해서만 자신을 현시할 수 있는 이념의 존재를 역설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볼 수 없다는 사실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는 것, 인식능력이 감당할 수 없는 일종의‘폭력’을 통해서만 우연히 자신을 드러낸다는 이 역설 속에서 들뢰즈는 칸트의 숭고로부터 새로운 비개념적 사유의 모델을 발견한다. 들뢰즈는 숭고 체험을 가능케 하는 대상이야말로 우리 현시능력으로 포착 불가능한 폭력성과 이질성을 띠고 있기에 동일자의 개념으로부터 추방된‘차이’들을 사유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칸트의 숭고 이론에 대한 재해석을 바탕으로 하여 들뢰즈는 재현의 자리에 숭고를, 재인식 대신에‘기호 해독’으로서의 사유를 대체하며 새로운 사유이론을 모색하고 있다. 분명 우리가 말할 수 있고,‘가능한 경험’을 통해 소유할 수 있는 것만이 사유의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 언표 불가능하고 재현 불가능한 것의 존재, 즉 맹목성의 가장 극명한 경우를 지시하는 것이 바로 칸트가 말하는‘숭고’이며, 우리는 들뢰즈의 사유 이론을 따라, 숭고로부터 사유 불가능한 어둠, 폭력, 맹목성을 통해 비로소 동일한 것의 재생산으로서의 사유를 극복하게 되는 현대적 사유의 모델을 구상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It might be appropriately said that the modern times in Western philosophy was the age dominated by the metaphor of 'light'. Modern philosophy which regarded the extension of epistemological object as identical with that of human epistemological faculty thought that our mind could positively recognize the world through the 'light' of nature and reason. And thus it became to set the primary goal of philosophy as an investigation into our general conditions of possible experiences. In the center of such an inquiry, exists Kant's Critique of Pure Reason. However what could express the post-modernity in Western philosophy is not 'light', visiblity, comprehensibility any more. Rather, it is 'darkness', blindness, invisibility and irrecognizability. We cannot possess a perfect knowledge through the light of our intelligence and concepts. Our concepts are originally a mere secondary expedience devised in order to supplement the insufficiency of our perception, and, in itself, cannot guarantee a perfect recognition about the world. In the dark side of the conceptual recognition where the light of Logos gliters, there exists an invisible dark abyss which cannot be grasped. It is very Kant's Critique of Judgment that by such a metaphor of blindness, portrays the aspects of post-modern thinking. In the first Critique, Kant claims that our recognition in general is possible only by subsuming the particulars into the universal, namely concepts which prepared in the Subject, in advance of recognition. But the concepts which can relate with things only indirectly by using common marks are too general and wide as compared with reality. So they cannot avoid abstracting and removing many qualitative differences which cannot be grasped by the form of identity, "Things in general=X". But it seems that those diversities or differences which has remained as not being subsumed by determinant thought and in the form of general representation, are intrinsically recovered in Kant's third Critique, though not explicitly mentioned. Therefore, I would like to suppose we see the third Critique as the book about the restoration of 'the outside' of concepts. For Kant, all the aesthetic experiences are fundamently those of a 'crack' caused by the sensible diversity which cannot be captured by any conceptual thinking of the Understanding and cannot be expressible by language. And it is Kant's "aesthetic idea" which can most properly express such a transcendence of artistic presentation. According to Kant, the aesthetic idea, as "the presentation of imagination which any determinant concept cannot manage", allows imagination to go beyond the correspondence with concepts and think many unutterable things in addition to concepts, thus aesthetically expand the concept itself in an unlimited way. It contains limitless matters, and the richness and fertility it implies surpass and overwhelm the apprehensibility of imagination. The extreme case among those experiences of 'crack' which reject any conceptual grasp is the experience of the sublime. The essence of the sublime experience is that it can raise such questions as inexpressibility or unrepresentability faced with the limitation that imagination cannot answer to the demand of reason to exhibit an idea of totality. At this point, we can encounter Deleuze's thinking theory as an interpretation of 'Signes',the objects of 'sublime' experience. Deleuze asserts that such object that cause the sublime experiences can be the ways in which we are able to think the 'differences' expelled by concepts of the identity because of their oddness and 'violences' exceeding our representative power. Substituting thought as an interpretation of 'Signes' for the thought as a 're-cognition'-which only can reproduce the same things- and the sublime experience for representation, Deleuze suggests a new vision about 'thin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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