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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종대 경연에 대한 연구

Title
효종대 경연에 대한 연구
Authors
노하중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회생활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聖人의 理想政治를 실현하기 위해 학문을 하고 賢臣의 도움도 받기 위한 제도로서 사림은 經筵의 실시를 중시하였다. 그러나 경연은 왕에게 경사의 원칙과 실례를 가르쳐 왕이 이를 따르도록 하는 제도였기 때문에 교육적인 역할과 더불어 왕의 전제권 행사를 제약한다는 정치적인 역할도 수행하였다. 그러므로 사림의 정치이념인 修身論, 그것이 제도화된 경연은 사림의 정권 장악이라는 정치적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이었음을 알 수 있다. 효종대는 대표적인 사림 정치 시기로서, 당시 효종은 왕권의 강화를 위해 북벌 등의 논리로써 군비를 확충하는 등 정치적인 입지의 강화를 추구하지만 金自點 등 주화파 세력을 정계에서 내쫓고 정국의 주도 세력이 된 反淸 사림 세력은 왕권을 견제하면서 정권을 장악하고자 했기 때문에 효종대의 정치 상황은 君權과 사림 臣權이 대립적이었다. 효종대는 군주와 사림 신료 간에 갈등이 많은 시기이고, 경연은 사림에 의해 정치적인 도구로서 중시되었으므로 효종대의 경연은 당시의 정치 상황을 민감하게 반영할 뿐 아니라 경연 운영의 대표적인 모습을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효종대 경연에 대한 고찰은 사림 정치 시기 경연 운영의 특징을 파악함과 동시에 경연을 통해 효종대를 이해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줄 수 있다. 효종대 경연 운영의 특징을 살펴보면 신료들은 경연을 빨리 실시할 것을 건의했지만 효종은 반대하였고, 경연에 참석하는 자세도 소극적이었다. 효종이 군비를 확장하는 등 왕권을 강화하는 시기의 경연은 효종에 의해 중단되기도 하였다. 이는 효종의 왕권 강화 정책에 대해 신료들의 비판이 잇따르자 신료들과의 만남의 장인 경연에 대해 효종이 부담을 느낀 것으로 경연의 운영은 이처럼 정치 상황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반면 효종대 후반 宋時烈 등 山林에게 정치를 위임한 후부터는 경연에 대해 유연한 태도를 보이는 것으로 변화하였고, 이 시기의 경연은 왕권의 견제라는 정치적인 의도가 더욱 두드러져서 史官과 注書의 양 사관이 모두 입시하고 臺諫이 朝講뿐만 아니라 晝講·夕講에 모두 참여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효종대 후반 경연의 정치성이 강화되었다는 같은 입장에서 효종대 후반 정국의 혼란에 대해 군주의 '수신'이 부족함을 원인으로 들어 도덕성 함양을 위해 모든 경연 석상에서 『心經』만이 강론되는데, 이는 정국 혼란의 책임을 왕에게 지움으로써 사림이 정국을 장악하고자 하는 정치적인 의도로써 이루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효종대의 강의 내용을 살펴보면 사림의 정치이념인 수신의 논리가 이상정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현명한 신하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현신을 등용하는 것과 이들을 믿고 政事를 나누어 다스리게 하면 된다는 논리로까지 확대되었다. 이러한 사림 중심의 경연에 대해 소극적이던 효종에 대해서는 언로를 막지 말고 신하들의 비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諫諍의 논리, 나라의 계속되는 災異는 군주의 恐懼修省하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논리 등으로 군주를 압박하면서 권력을 장악하려고 하였으므로 효종대의 경연은 사림 신료들이 군권을 견제하고 신권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는 권력 장악의 수단으로서 파악된다. 또한 경연에서는 경연관, 특진관 등으로부터 현실 문제가 제기되고 이에 대해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한 논의가 이루어지고 방법이 제시되었으므로 현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토론의 場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경연은 각 왕조별로 정치 세력의 성격, 정국에서 차지하는 비중 등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지만, 효종대의 경연에서는 사림은 개최에 적극적이고 왕권 제약의 논리를 효과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반면 군주는 경연의 실시에 소극적이고 사림의 발언에 비판적이어서 사림이 주도하는 대표적인 경연 운영의 특징을 보여주었다. 뿐만 아니라 당시의 대립적인 정치 상황이 잘 반영되어 있어서 본 연구를 통해서 효종대의 정국을 경연이라는 새로운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었다. ; This study presents an investigation of the royal lecture given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A royal lecture was an academic meeting where the king and the subjects gathered together to read about the ruling principles and examples in the books of Chinese classics and history and discuss the issues of the times. During the Chosun Dynasty, the royal lecture was valued by the Sarims(the political party in the Chosun Dynasty), whose thoughts and philosophy were based on Neo-Confucianism. As they advanced to the central politics, they regarded the royal lecture as a tool with which to accomplish their political goals. As a matter of fact, there were some periods when the survival or failure of a king and his reign was dependent upon 'the cultivation of the self,' which was the political idea of the Sarims and also a moral standard. As time went by, this was developed into a political logic, which argued that a king should be assisted by wise subjects since it was impossible for him to fulfill 'the cultivation of the self' by himself in reality however hard he would try in learning and ruling. Accordingly, in addition to the original role of helping the king be educated, the royal lecture had another obvious cause to restrict the king's autocratic powers in politics.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there were many conflicts between the king and the Sarim subjects, and the royal lecture was regarded as of great importance as a political instrument. Thus, by looking into the royal lecture given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we can have an idea of how they carefully reflected the political situations of the times and how they were operated.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The subjects suggested that a royal lecture should be given soon, while King Hyojong disapproved the idea and were passive in participating in one. The lectures were investigated in terms of contents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The cultivation of the self that was the political idea of the Sarims was expanded to cover the arguments that the king should appoint wise subjects and entrust them with the politics. That is, the royal lecture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were used as a system or tool to hold the kingship in check and to increase the power of the subjects by the Sarim subjects. In addition, they were carrying out another role as a discussion place where practical issues were raised, and discussions were done to suggest resolutions. Throughout the history of the Chosun Dynasty, the royal lecture took various forms according to the nature of the political powers and their importance in politics. Those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showed the representative characteristics of the Sarim-led royal lectures as the Sarims were active about them and made effective use of them to restrict the kingship, while the king was passive about them and critical of the Sarims' ideas. Further, they provide a clear picture of the confronting politics of the times. Thus the political situations during the reign of King Hyojong were considered from a new fresh point of view called the royal lec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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