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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그레코(1541-1614) 종교화의 반종교개혁적 도상 연구

Title
엘 그레코(1541-1614) 종교화의 반종교개혁적 도상 연구
Authors
최경화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그리스의 크레타에서 태어나 비잔틴 화가로 교육을 받았던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베네치아와 로마에서 르네상스와 매너리즘 양식을 익혔으며 스페인으로 이주하여 톨레도에서 400점에 가까운 종교화와 초상화들을 제작하였다. 엘 그레코가 화가로서의 전성기를 보낸 스페인에서 가톨릭은 이교도들로부터 국가를 재정복한 정신적 원동력이었고, 종교개혁 이후 이에 대한 반동으로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의 법령은 스페인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졌다. 트리엔트 공의회의 목적은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권위가 약해질 위기에 처한 가톨릭 교리를 정리하고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종교개혁자들은 미술을 통하여 신심을 고취시키는 것을 우상숭배로 간주하였고 성모 마리아를 비롯한 성인 공경과 고해성사를 비롯한 가톨릭의 성사를 비난하였으며 인간은 선행으로 인하여 구원받을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공의회에서는 이러한 종교개혁자들의 공격에 맞서 가톨릭의 교리를 재정립하고자 하였는데 그 중 반종교개혁 시기의 가톨릭 미술과 관련하여 직접적인 영향을 준 부분은‘성인 유해의 공경과 성화상의 사용’에 대한 것이었다. 이 법령을 통해 미술을 종교에 활용하는 것이 합법화됨과 동시에 반종교개혁의 사상에 맞는 새로운 종교화들이 제작되었다. 또한 같은 시기에 스페인 가톨릭 내부에서는 교육을 중요시하고 자선을 베푸는 것을 장려하며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신비주의의 영향으로 신자 개인의 기도와 묵상을 권장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따라서 많은 자선 단체와 병원 등이 건설되었고 성직자들의 교육 수준은 높아졌으며 기도문을 외며 스스로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는 평신도들의 수가 증가하여 신자들의 기도와 묵상을 돕는 종교화가 제작되었다. 그리하여 엘 그레코는 마리아 공경과 성인 공경과 같은 트리엔트 공의회의 내용과 스페인 가톨릭 개혁의 정신을 담은 종교화들을 제작하였다. 성서만이 신앙의 원천이라고 한 프로테스탄트에 반박하여 가톨릭은 성서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가르침이나 성령으로 인하여 사도들에 의해 전해 내려온 전승 또한 신앙의 근거로서 권위를 가진다고 주장하였다. 성서에는 언급되어 있지 않으나 초기 가톨릭 교회로부터 전해 내려온 전승 중에는 마리아 공경을 비롯한 성인 공경이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반종교개혁 시기에는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이 더욱 강조되었고 이는 시각예술로 표면화되어 엘 그레코는 무염시태나 수태고지와 같은 마리아 공경을 주제로 한 작품을 그의 생애에 걸쳐 반복하여 제작하였다. <무염시태>는 성모 마리아가 어머니 안나의 몸에 아무런 죄의 흔적을 가지지 않고 잉태되었다는 믿음으로 여러 신학자들의 논쟁의 대상이었으나, 16세기에 미술을 통하여 가톨릭 교리를 천명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예수회가 이 믿음에 찬성함으로써 17세기 스페인 미술에 활발히 등장하게 되었다. 마리아가 두 손을 모으고 신비로운 구름과 케루빔, 천사들과 함께 천상에 있는 듯한 모습은 17세기 무염시태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정착되었으며 화면 하단의 풍경 부분에는 다윗의 탑, 천국의 문, 레바논의 삼나무, 담으로 둘러쳐진 정원, 장미, 떠오르는 태양, 구름 사이의 달 등 마리아의 순결함과 원죄 없음을 의미하는 모티브들이 포함되어 있다. 엘 그레코의 무염시태는 이후의 스페인 화가들에게도 영향을 주었다. 또한 엘 그레코는 기존과는 전혀 다른 화면구성을 가진 <수태고지>를 제작하였는데, 르네상스 시대의 수태고지가 자연주의적인 실내 배경과 풍경과 함께 나타났다면 엘 그레코의 수태고지는 마치 천상에서 일어나는 사건처럼 표현되었다. 베네치아와 비잔틴 문화권의 영향하에 화가는 환상적인 색채의 빛과 꿈틀대는 듯한 구름을 통하여 반종교개혁의 종교적 영성을 표현하였다. 한편 그의 수태고지는 점차 원근법적 공간묘사를 버리고 마리아와 가브리엘 대천사가 만나는 사건으로 집중되는 경향을 보이며 사실적인 배경 묘사가 사라진다. 특히 1590년대 후반의 수태고지는 예전의 작품과는 다른 표현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고 화면이 상하로 구분되어 천상의 부분을 강조하게 되며 도상학적인 관점에서도 독창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또한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확인된 성인 공경 사상 역시 엘 그레코의 회화에서 여러 가지 주제를 통해 나타난다. 그 중 자신의 죄를 참회하는 성인의 모습을 통하여 가톨릭에서 옹호한 고백성사의 주제를 시각화하였다. <참회하는 마리아 막달레나>는 광야에서 긴 머리에 지물인 향유병과 함께 나타나는데 배경의 아이비와 전경의 해골은 죽음을 상징하는 모티브로써 생명의 유한함을 깨닫고 신께 구원을 청하며 자신의 잘못을 뉘우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엘 그레코의 마리아 막달레나는 구성면에서 베네치아 르네상스의 영향을 받았으나 종교적 신비로움을 표현하는 금욕적인 마리아의 모습으로 변모하여 나타났다. 또한 화가는 <눈물을 흘리며 참회하는 베드로>를 통해서도 반종교개혁 시기의 특성인 내적인 영성을 표현하려는 시도를 계속하였다. 가톨릭에서 강조했던 선행과 함께 성인들의 중재를 통하여 구원에 가까이 가려는 노력은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으로 시각화되었다. 이 작품은 선행을 자주 베풀던 14세기의 귀족이 성인들의 중재를 받아 영혼의 구원을 받는다는 내용을 나타내기 위하여 마리아와 세례자 요한이 인간의 영혼을 위해 그리스도에게 간청하는 데이시스 모티브를 사용하였다. 데이시스는 중세 비잔틴과 서유럽의 미술에서부터 나타나던 모티브로써 중개자로서의 성인의 역할을 강조한 반종교개혁에 의해 더욱 강조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성인 공경 사상은 기도하고 묵상하거나 종교적인 환영을 체험하는 성인의 모습으로도 나타났다. 엘 그레코는 성 프란시스코가 홀로 기도하거나 해골이나 십자가를 바라보며 기도, 묵상하는 작품을 자주 제작하였고 그의 작품은 신앙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미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반종교개혁의 사상과 일치하게 되었다. 반종교개혁이 가시화된 트리엔트 공의회의 법령에서 종교화의 사용이 합법화되면서 반종교개혁의 기준에 맞는 종교화들이 새롭게 제작되었다. 그리고 엘 그레코는 무염시태, 수태고지 도상 등을 통해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강조된 마리아 공경 사상을, 중재자로서의 성인, 신앙의 모범이 되는 성인의 모습 등을 통해 성인 공경 사상을 그만의 독창적인 방법으로 시각화하였다. 그러므로 엘 그레코의 종교화에 나타난 양식적, 도상적 변화는 가톨릭의 반종교개혁과 밀접한 영향관계에 있었으며 반종교개혁의 정신은 그의 종교화를 통하여 더욱 강조되었다. ;After the Council of Trent(1545-1563), many religious paintings were made to spread the Counter Reformatory doctrine through the art. El Greco(1541-1614) painted religious paintings with new Christian iconography and in case of painting with the traditional Christian iconography, he made a new composition. El Greco was born in Crete and trained as a Byzantine painter. He went to Venice and Rome, there he learned Italian Renaissance and Mannerism. After moving to Toledo where he lived until his death, El Greco painted approximately 400 religious paintings and portraits. In Spain Catholic was mental standard of the nation and people so Decrees of th Council of Trent was accepted generally. The purpose of the Council of Trent was confirmation and arrangement of catholic catechism. In the twenty-fifth session of the Council, there was 'decree on the invocation and veneration of saints, on the relics of saints, and on sacred images' that influenced directly on the christian art of the sixteenth and seventeenth centuries. Through this decree, use of the art to the christian religion got the legitimacy. Against the Protestants, catholic church and the Council of Trent insisted that both of the Scripture and the Tradition have authority of the christian faith. One of the Tradition from early christian church is veneration of the Virgin Mary and Saints. Therefore El Greco painted about the veneration of the Virgin like 'Immaculate Conception', 'Annunciation', 'Coronation of the Virgin' and about saints in penitence, in meditation, doing a good deed, etc. Immaculate Conception is totally Counter-Reformatory subject and El Greco painted the Virgin with mystic clouds, cherubs, angels and symbols of Mary like tower of David, cypress of Lebanon, enclosed garden, roses, rising sun, moon in the clouds, etc. His Immaculate Conception influenced to the spanish painters in the seventeenth century like Vela´zquez, Zurbara´n and Murillo. Also El Greco painted the Annunciation with new composition in contrast with Italian Renaissance Annunciation. Fifteenth century's Annunciation was painted with natural interior and landscape but El Greco's Annunciation was depicted like an event in the heaven influenced by Byzantine and Venetian paintings. Gradually El Greco's Annunciation abandoned perspective depiction of the space and concentrated to the Virgin and the Archangel. Especially in the late 1950s, the canvas divided vertically so it was possible to accentuate the heavenly part with expressive character. Another Counter-Reformatory subject, the veneration of the saints was depicted of penitence, good deed, meditation and vision of the saints. El Greco painted lots of Mary Magdalene in penitence and St. Peter in Tears that typical saints in penitence during the age of the Counter-Reformation. The Burial of the Count of Orgaz represented the saints as mediators through the motif 'Deesis' and stressed the good work for the justification. Also he painted uncountable St. Francis in meditation and experiencing the religious vision or ecstasy. In Spain El Greco got his best days as the painter and there Counter-Reformation was powerful for Spanish church and people. So the religious paintings of El Greco represented directly the creed of Counter-Reformation of the catholic with his own typical manner that never had been appeared before. Therefore stylistic and iconographic changes of El Greco's religious painting were influenced by the Counter-Reformation of catholic church also the spirit of the Counter-Reformation was emphasized by El Greco's paint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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