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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服色에 關한 硏究

Title
우리나라 服色에 關한 硏究
Authors
全英淑.
Issue Date
1972
Department/Major
교육대학원 가정과교육전공
Keywords
복색복식의복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우리 나라 上古時代의 服色은 文獻과 資料가 稀貴하여 무슨 빛깔의 衣服을 즐겨 입었는지 그 자세한 것은 알 길이 없다. 또, 언제부터 衣生活을 營爲하기 시작하였는지 그 淵源도 더듬기 어려운 것이 事實이다. 다만, 우리 나라는 옛부터 白衣民族이라 불리어 왔고, 그만큼 흰옷을 崇尙하여 淸潔을 좋아 하는 겨레로 알리어져 왔다. 그러나, 織造技術의 발달과 變色 기술의 發見 發展과 더불어 色彩를 要求하게 되니 이것은 자기 몸을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하여서도 필요하겠거니와 身分階級의 差가 생기면서 上下 尊卑를 區別하는 데도 要求되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服飾自體에도 差別이 많았지만 服色이 이를 위하여 重要한 役割을 해온 것을 볼 수 있다. 上古時代의 服色을 보면 夫□에서는 흰옷을 숭상하여 白布로 만든 大抉袍에 바지를 입고 신은 華踏을 신었다고 하니 우리 民族을 白衣民族이라 함은 이러한 오랜 傳統에서 유래된 것이 아닌가 한다. 三國時代에 들어가 고구려의 服色을 보면 衣服에서는 그 服色을 찾기 힘드나 冠帽에서는 王은 白羅로 大臣級은 靑羅로 一般官人은 新羅를 使用하여 흰색 푸른색 붉은색의 區別로 等級을 나타냈고 발에서도 上流階級에서는 黑地나 紫色地에 各種紋이 있었고 下流層에서는 靑色地나 白色地에 無紋이었던 것을 볼 수 있다. 百濟에 와서는 第7代 古爾王 때부터 계급에 따라 品官制가 마련되어 冠飾과 衣帶色으로 그 尊卑가 等威를 가리게 되었으며 衣服은 官人은 緋色衣 平民은 王의 服色이던 紫色과 緋色衣를 못입게 하였다. 新羅에 있어서는 第23代 法興王은 紫 緋 靑 黃의 四色에 依한 公服制度를 볼 수 있고 第42代 興德王은 同王 9년에 女服의 服飾禁令을 내린바 眞骨層에서는 자黃色만을 禁하고 六頭品은 자黃 紫 紅 등을 禁했으며 五頭品以下는 緋色을 더 禁하고 있다. 高麗時代의 第4代 光宗11年3月에 官職官階의 官僚制度에 따라 四色公服制度를 制定한바 元尹·以上은 紫衫 中壇卿 以上은 丹衫都航卿以上은 緋衫 小주□以上은 綵衫으로 紫, 丹緋 綵의 色服階級을 發生하게 하였던 것이다. 「高麗圖經」에 나타난 服色을 보면 王의 常服은 窄袖상袍며 外國使臣을 接見할 때는 紫羅公服이고 蒸居時는 白苧袍를 着用하여 상 紫 白으로 區別되었고 婦女服의 服色은 公卿大夫에서 士民의 要와 技女에 이르기까지 차익 없이 白苧袍를 입었고 다만 王妃의 服色은 紅色에 繪絹을 놓았고 이를 國官·庶民服에는 禁했다고 하고 農工商에 屬한 一般庶民은 白苧袍를 입고 있었고 王이나 國官도 蒸居服에는 庶民服과 다름없었다. 하니 他民族에는 白衣民族의 인상을 주었을 것이다. 고려 後期의 服色은 약 1世紀 동안 元에 예속되어 蒙古式 頭髮과 冠 帽가 한때 風靡하였었고 관료나 官□들은 몽고복을 입었으나 蒙古化하기는 어려웠고 高麗史에서 보면 第31代 恭愍王은 司天少監干必興의 上靑에 의하여 服色을 五行에 맞추어 고친 바 있는데 (同王 6年□9月) 元의 滅亡이 급속화되자 恭愍王 18년 明에 使臣을 보내어서 祭服을 청하여 19년 5月에 明 太祖는 王을 책봉하고 여러차례의 請賜冠服이 있은 後 禑王 13년 3月에 비로서 胡服을 개혁하여 明制에 따르도록 하여 李朝時代에 들어가 그대로 繼承되어 갔다. 李朝時代의 服飾을 보면 □□事大主義가 中國 明의 制度를 따르기에 급급하였으며 혼잡성을 지녔던 고려제도를 이어받아 그야말로 服飾의 飽和狀態를 이루었다. 어느 時代보다도 禮儀 觀念이 엄격했던 李朝冠帽制度는 政治的 變遷에 따라 服色에 대한 禁令도 자주 있었으니 이에는 身分階級의 確立, 奢侈의 禁, 外□品단속등 여러가지 意味가 내포되었던 것이다. 階級에 나타난 服色을 보면 王服으로는 明의 親王禮를 쫓은 데서 黃色이 禁忌되고 深紅靑을 채택하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李朝末 高宗이 大韓帝國을 宣布하면서부터는 服色이 深紅아닌 □黃으로 바뀌게 된 것이다. 이것은 官僚的 集權이나 封建國家에서 흔히 볼 수 있는 上下 尊卑 貴賤을 가리기 위한 施葉이였고 또한 中國에 대한 事大의 禮를 갖추기 위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以上 槪括的으로 服色의 變遷을 略述하였거니와 歷史的으로 이를 體系化하기 위하여는 아직도 硏究의 餘地가 많다는 것을 附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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