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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찌 재무장 정책에 관한 연구

Title
나찌 재무장 정책에 관한 연구
Other Titles
Die Aufru¨stungspolitik im Dritten Reich : unter besonderer Beru¨cksichtigung von dem Argument fu¨r Dlitzkrieg und Totalkrieg
Authors
朴敏英
Issue Date
1994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회생활학과
Keywords
나찌 재무장 정책전쟁사학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dvisors
강철구
Abstract
본 논문은 나찌정부의 재무장 정책을 電擊戰 論爭과 全面戰 論爭을 중심으로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고자 하였다. 나찌정부는 1935년 국민개병제에 의한 징집령을 발동, 평화시에 이미 장차의 전쟁을 위한 재무장준비에 임했던 것으로 생각되어진다. 이러한 나찌의 재무장정책을 둘러싼 학자들의 관심은 독일이 이러한 재무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까지 경제를 동원하려 하였던가 하는 점에 집중되었으며, 이것이 독일의 재무장에 관한 전격전과 전면전 논쟁의 쟁점이 되었다. 우선 전격전 주장자들은, 독일은 1939년 당시 국내의 정치, 경제적 위기상황 때문에 대규모 전쟁준비를 할 수가 없었고, 히틀러 자신도 대규모 재무장 준비로 인한 국민들의 사기저하를 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따라서 독일경제는 군수생산과 재정동원 및 지출, 그리고 노동력 동원에 있어서 극히 제한적이었으며, 민간분야의 생산도 감축됨이 없이, 그대로 유지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패배한 이후, 명령되어진 「軍備 1942」를 계기로, 독일은 이런 전격전 전략을 바꾸었고, 1942년 이후에야 대규모 전면전을 준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반해서 전면전 주장자들은, 히틀러의 원래 의도는 동부 유럽에서의 생활권 확장을 바탕으로, 유럽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히틀러는 1939년 이전부터 이러한 그의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서, 경제전반에 대규모 군사동원을 명령했으며, 이로써 평화시에 이미 완전동원을 하려는 노력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나찌정부는 이와 같은 대규모 군사동원을 위해서, 국민생활 전반에 강력한 통제와 규제를 가하였고, 선전방법을 동원해서, 국민들에게 애국주의를 불러 일으키고자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원의 비효율적인 이용과, 군수경제의 비합리성등은, 1942년 이전의 군수생산을 방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했고, 따라서 1942년 이전의 군수 생산은 1939-44년사이의 동일한 자원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증가될 수 없었다고 본다. 그리고 1942년이전 군수 생산이 1942년 이후보다 낮았던 것에는, 전쟁이 기대했던 것보다 일찍 일어났던 것도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한다. 본 논문에서는 이와 같은 전면전 입장을 수용해서 1933-1942년 독일의 재무장정책을 살펴볼 것이며, 이를 통해서 당시 독일경제의 본질과 특성을 이해하고자 한다.;Es handelt sich in dieser Aufsatz um die Aufru¨stungspolitik im Dritten Reich. Es heiß im Overall Report, die Deutschen hatte einen langen Krieg weder geplant, noch sich darauf vorbereitet: Gemessen an Standard der anderenKriegfiirenden Ma¨chte hatte es keine totale Mobilmachung gegeben. Die Produktion nichtmitarischer Gu¨ter war nur in bescheidenem Ausmaß eingeschra¨nkt. Es kam nicht zu einer weiteren Mobilisierung von Frauen und zu keinem gro¨ßeren Arbeitskra¨fte-Transfer von den nicht-kriegswichtigen zu den kriegswichtigen Industrien. Eine diese Analyse ist aber, so plausible sie im Hinblick auf das NS-System auch zu sein scheint, doch in nahezu jeder Hinsicht irrefuhrend. Es ist der Zweck dieser Studie, durch die Kritisierung der drei wichtigsten Elemente der Argumentation fur Blitzkrieg - Produktion und Finanzierung des Krieges, Bescha¨ftigung der Arbeitskra¨fte in kriegswichtigen Sektoren, Rolle der Frauen in der deutschen Kriegswirtschaft - die wahre Aufru¨stungspolitik, die von Hitlers Regime gefu¨hrt wurde. zu erkla¨ren Zwischen 1939 und 1941 war die Auswirkung des Krieges auf die deutschen Verbraucher keineswegs geringfu¨gig. Die zivile Konsumstandard wurde erheblich sta¨rker beschnitten als in Großbritannien. Die Arbeitskra¨fte waren schon eine gute Weile vor der A¨ra Speer zu kriegswichtigen Aufgaben dirigiert worden. Im Sommer 1941 standen bereits fast zwei Drittel der Industriearbeiten im Dienste der milita¨rischen Versorgung und kriegsbedingter Vorhaben. Der Anteil von Frauen an der Arbeiterschaft blieb in Deutschland wa¨rend des ganzen Krieges ho¨her als in Großbritannien. Infolge dieser Untersuchungen ist es anzunehmen, sich in Deutschland in den Jahren zwischen 1939 und 1941 auf einen totalen Krieg vorbereitet zu hab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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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사회과교육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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