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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後期 百子圖 硏究

Title
朝鮮後期 百子圖 硏究
Authors
김선정
Issue Date
2001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This thesis is a study of Baekjado(One Hundred Children at Play, 百子圖) paintings of the late Chosun dynasty. Brilliantly painted and decorated, Baejkado paintings depict many children peacefully at play in idealized Chinese palace gardens with pavilions, balustrades, trees, flowers, streams, ponds, and exotic rocks. The paintings which depicted hundred or so children at play, represented the wish for many children and their well-being. The paintings were produced mostly in the late Chosun dynasty for the court and the upper class as auspicious paintings and the origin can be traced to the Chinese painting tradition. In the East Asian tradition, little boys depicted with lotus flower or grapes which symbolized abundance were employed in various crafts as auspicious decorations. This auspicious image of little boys can be seen in Chinese paintings such as Palace Ladies Bathing Children(욕영도) , Painting of Children at Play(영희도) , and Knickknack Peddler(貨郞圖) . These were also produced for the court and the upper class. In the late Chosun dynasty, Baekjado paintings were used in Royal weddings and employed as themes in official painting examinations in order to judge the painters talent. This theme gradually spread to the common people and was used to decorate woman and children s rooms in folk painting style. The extant Baekjado paintings of the late Chosun dynasty differ from the Chinese version in that they were screen paintings. Each of the panels of a Baekjado screen usually depicted 6-18 children, giving a total of around 100 children in the whole set. The word Baek(百) which literally means one hundred , also bore an auspicious meaning for abundance. Thus, the number of children in the painting was not the primary concern. Screen paintings of Baekjado depicted in each panel, children at various play like, general game , chicken fight , picking lotus flower , monkey game , and picking plum blossoms . Such children s play activities would be composed in six, eight, or ten panels. The details and artistic elements of the play activities in each paintings reflect a repetitive production method by set patterns. The play activities and the various motifs in the paintings symbolize abundance, prosperity, successful careers, and longevity. Baekjado paintings can be divided into three groups; group A screen paintings consist of panels which depict individual stories and pavilions in each panel; group B screens do not depict pavilions; and group C screens are composed of panels which are inter-related and inter-connected. Group A and B which are divided by the presence of pavilions, display difference in brilliant and elaborate decoration. The difference seems to relate to the economical condition of the consumers. However, group C screen paintings were produced for the court. Their panoramic composition, and colorful, detailed motifs, correspond to the Kuo tzu-i s Banquet(郭汾陽行樂圖) paintings and the Taoist Immortal on Their way to Xi Wang Mu s Banquet(瑤池宴圖) paintings as impressive screen paintings for court. According to the shading and the coloring, these Baekjado paintings seem to have been produced in the 19th century. (Translated by Choi Moon-Jung) ; 童子文은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말기에 이르기까지 연꽃이나 포도와 같은 다산을 상징하는 문양들과 결합되어 여성들의 장신구나 각종 공예품에 즐겨 사용되어왔다. 이러한 아이들의 吉祥적 이미지를 기반으로 표현한 百子圖는 여러 명의 남자아이들을 화려한 채색과 장식적인 기법으로 그린 것으로 조선후기에 많이 제작되었다. 이 百子圖는 궁중이나 관아 및 富貴家에서 사용했던 吉祥裝飾畵로 그 연원을 중국회화의 전통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중국에서 남자아이의 형상은 전통적으로 多産을 상징하여 각종 공예품에 사람들의 길상적인 바램을 담는 문양으로 사용되었다. 이러한 아이들의 이미지는 회화에서도 욕영도나 영희도, 貨郞圖와 같은 다양한 화제로 다루어졌으며 이것들은 주로 황실이나 상류층의 수요에 따른 것이었다. 백 명의 아이들을 그린 百子圖 역시 南宋代의 궁정화가들에 의해 고급스런 취향을 반영하여 화려하고 정교한 院畵風으로 그려졌다. 그리고 明淸代에는 年畵로도 제작되어 民間에까지 수요가 확산되면서 자손을 많이 얻고자 하는 소망이 더욱 심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우리나라의 경우 조선후기 이전의 百子圖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러나 문헌자료에 의하면 1478년에 元子를 교육할 목적으로 圖畵署 화원으로 하여금 <宮中遊戱圖>를 제작하게 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7세기 중반 중국 화가 孟永光이 그린 <百童圖>가 孝宗에 의해 조선에 유입되었는데 그 題畵詩에는 현존하는 백자도와 매우 유사한 장면을 자세히 묘사하고 있어 주목된다. 그리고 百子圖는 19세기에 왕실의 嘉禮 의식에 사용되기도 하고 圖畵署 差備待令畵員들의 祿取才 畵科의 시험문제로 출제되어 화원들의 기량을 평가하는 화제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와 같은 내용의 기록들은 왕실에서 제도적으로 제작하고 화원들을 훈련시키는 과정을 통해 百子圖가 궁정회화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후 왕실이나 관아 및 富貴家에서 주로 수요되던 百子圖는 市井에까지 확산되어 혼례식에 의례용으로 쓰이거나 부녀자나 아이들의 방에 놓여 장식용으로 사용되어 소위 민화풍의 수많은 百子圖가 제작되었다. 현재 전하는 조선후기의 百子圖는 다양한 화폭형태 중국의 百子圖와는 달리 대부분 병풍형태로 제작된 경향을 보인다. 병풍형태의 百子圖는 그 폭 수에 따라 각각 장군놀이, 닭싸움, 연꽃따기, 행차놀이, 원숭이 놀이, 매화따기 등의 어린아이들의 놀이 장면 그림이 6, 8, 10점의 세트를 이루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더구나 작품마다 그려진 놀이의 내용은 물론 세부적인 구성과 조형요소들이 일치하여 일정하게 정형화된 畵本에 의한 반복적인 제작 방식을 취하였음을 알 수 있다. 화면에 그려진 놀이장면과 갖가지 모티프들은 자손의 번성뿐 아니라 높은 벼슬에 오르는 것과 부귀, 장수와 같은 現世祈福적인 상징성을 담고 있다. 이러한 병풍 형태의 百子圖는 화면의 구성에 따라, 各幅 형식에 전각을 배경으로 한 A형식과 각폭구성/전각이 그려지지 않는 B형식 그리고 連幅 형식의 C형식의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된다. 전각의 유무에 의거해 구분한 A와 B는 화려하고 정교한 화면구성과 바탕 재질에서 차이를 보여 주문자의 경제적인 조건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진다. 또한 C형식의 百子圖는 궁중에서 제작된 것으로 각폭 형식보다 장대한 구도와 다채로운 세부구성을 갖추고 있어 郭汾陽行樂圖, 瑤池宴圖 등과 같은 궁중의 장엄·의례용 병풍화들과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 형식분류에 따라 양식을 고찰한 결과 현존하는 백자도들의 제작시기는 그림에 표현된 음영법과 색채의 사용 등에 의거해 대개 19세기경으로 추정할 수 있다. 百子圖라는 畵題를 중국회화의 전통에서 검토하고 새로운 문헌자료들과 유물들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의 방법으로 조선후기의 百子圖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 중국에서 연원한 조선후기의 百子圖는 병풍형태로의 제작이 두드러졌으며 궁중에서 의례와 장식용으로 사용되기도 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百子圖에 대한 연구는 民畵의 개념에 대한 재검토와 궁궐회화에 대한 재조명을 환기시켜 준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닌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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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미술사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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