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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자화상 연구

Title
한국 근대 자화상 연구
Authors
안희정
Issue Date
2001
Department/Major
대학원 미술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동아시아의 근대 회화는 서양화의 유입 속에서 人間像을 상위에 두는 서양식 장르 위계를 따르게 되면서 실내나 야외를 배경으로 하는 좌상이나 입상, 누드와 함께 자화상을 많이 제작하였다. 이런 인물화들은 전람회를 통해 공공에 개방되면서 서양화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는데, 특히 자화상은 근대적인 미술교육기관인 東京美術學校 西洋畵科에서 졸업제작이라는 제도의 하나로 채택하면서 부각되었다. 그러나 자화상은 화가의 초상일 뿐만 아니라 거울을 통해 자신을 관찰하여 캔버스에 재현하는 작업과정이 반영되는 장르이기도 하다. 따라서 서양미술사에서 개성적이고 창조적인 예술가로 변화해 가는 화가의 의식과 사회적 위상이 반영되는 지표로 주목되어 왔다. 한국 근대 자화상은 이와 같이 근대기 洋畵家들의 달라진 사회적 위상과 의식을 반영했다는 측면에서 주목되어야 한다. 최초의 東京美術學校 西洋畵科 졸업생인 高犧東을 미술계의 선구 로 대서특필한 것에서 보듯 양화가는 서구 미술의 유입으로 재편된 미술계에서 선두적인 역할을 맡게 되었다. 이는 근대 초기 일본에서 서양화 가 일본화 와 상대적인 개념으로 성립되어 근대화와 국제화를 진행하는 일본에 있어 배워야 하는 대상이고 전제가 될만한 가치기준이라는 인식이 식민지 조선에도 파급되었기 때문이다. 미술가 라는 용어는 이런 새로운 범주의 미술 의 제작자를 지칭할 뿐만 아니라 환쟁이(畵工) 라는 쟁이(工) 에서 서구의 예술가 (artist)로 "昇格"되어 가는 근대화가들의 인식 변모를 대변하고 있다. 근대 이전의 미술 제작은 향유, 창작과 비평 등 회화 활동의 전반에 걸쳐 관여하여 당대 회화의 성격 형성과 전개를 주도하던 사대부 문인과 채색 위주의 실용물이나 원체풍의 공적 감상물의 제작을 담당했던 직업화가에 의한 차등적인 이원 구조로 진행되었다. 본 논문의 주제인 한국 근대 자화상에는 고희동을 필두로 한 양화가들이 전통시대의 화가들과 달리 개성에 기초한 개인으로서의 자기 표현을 중시하는 미술가(예술가) 로 진전해 가는 양상이 반영되어 있다. 현존하는 근대 자화상들은 다음과 같이 세 단계로 그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 제1기(1915-1920년대 중반)의 자화상들은 형식이나 모티프, 표정에서 기념이나 기록의 성격이 강하여 복식에서는 전통 시대의 사대부들이 입던 옷이나 단정한 양복이 주류를 이루었다. 이는 미술가에게 창작자보다는 계몽 지식인으로서의 역할이 강조된 근대초기의 양상이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제2기(1920년대 중후반-1930년대 중반)는 畵業과 관련된 소품이 주로 등장하고 얼굴의 표정 등으로 표현이 집중된다. 특히 반 고흐 등 서양의 천재적인 작가의 자화상에서 형식이나 소품, 화풍을 차용하는 양상이 두드러지는데, 이는 모자나 담배라는 모티프에 담긴 상징성을 차용하여 새로운 藝術家像을 표출하고자 하였기 때문이다. 천재적인 서구 화가를 典據로 하여 외형뿐만 아니라 생활 방식, 작화 태도를 모방함으로써 새로운 作家像에 대한 염원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의 자화상은 서구의 자화상 형식이나 모티프 차용에 그치면서 자아의식 표현하는 단계에 이르지는 못하였다. 자화상을 통해 작가의 자아의식을 표출하는 것은 제3기(1930년대 중후반-1950년대)에 들어서야 보이는데, 이쾌대, 배운성, 이인성 등의 작가들이 자화상 연작을 통해 자신의 독특한 창작세계를 반증하고 있다. 이렇게 신분에서 자아의식 의 표출로 옮겨가는 한국 근대 자화상의 전개 양상은 서양과 일본의 근대 자화상과 일치한다. 화가라는 직업의 사회적 위상을 드러내는데 집중되다가 내면이나 심리 표출이라는 자아의식 영역으로 이동하여 작가의 개성 표출에 주목하는 경향을 공유하고 있다. 자화상이 추구하는 자아 의식 과 내면의 표출이라는 근대적 인 성격은 미술뿐만 아니라 근대 문학에서도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즉 가라타니 고진이 지적한 대로 고백의 형식과 내면의 전도현상 을 한국 근대 자화상에서도 볼 수 있다. ; This thesis is a study on the visual self-representation of some Korean modern painters as embodied in their self-portraits. I argue that the Korean modern self-portraits projected the aspirations of their creator, the Korean modern painters for a change in the status of art and hence in their own personal social standing. At the time of being modernized and westernized, the western self-portraiture was introduced into Japan and Korea along with the another figure paintings such as nude painting and the women portrait in domestic place. The self-portraiture became spread by the new Western art school, the Tokyo School of Fine Arts in Japan. When the Western painting division was inaugurated in 1896 at that school, its curriculum required the students to produce a self-portrait along with graduation work in their fourth year. The first self-portrait in oil painting in Korea was made by Ko Hei Tong, the first Korean western style painter and first Korean student of that school in 1915. From that on, the self-portraits seem to have been increasingly regarded as training grounds for the Western painters in Korea. The modern Korean self-portraits show different characteristics through the times. Few of the self-portraits produced during the early years display originality in pose or technique. Those self-portraits seem to have had function as a record or a memorial. From the mid 1920s many self-portraits followed the examples of the Post-impressionist Van Gogh, Ce´zanne who produced many self-portraits as a sign of their introspective attitude. They appropriated the motifs such as pallette and canvas, hat or pipe from that self-portraits. From the late 1930s the self-portraits began to serve as a positive form of self-expression. Some modern painters show their own personality in their self-portraits. The development of the modern Korean self-portraits bears visual witness to their struggle for social acceptance and self-awareness as artist. The painting occupation had been evaluated socially on the basis of its proximity to physical labor(賤技, 雜技) and the painting makers as a artisan (畵工) with a concomitantly low standing in society. There was a considerable change in the definitions of art and those specialize in art during the modern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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