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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사회변화 속에서의 書堂의 역할

Title
18세기 사회변화 속에서의 書堂의 역할
Authors
서원경
Issue Date
2003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회생활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18세기는 사회 전반에 걸쳐 큰 변화가 나타났던 시기이다. 특히 농업생산력의 향상과 상품화폐경제의 진전, 신분이동과 사회구성원 사이의 분화가 가속되면서 신분상의 혼란이 있었다. 이러한 급격한 정치·사회·경제적 변화 속에서 특히 비양반사족층들은 신분을 상승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데 조선사회에서는 교육이 신분의 획득·유지·상승을 위한 수단적인 의미를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 후기 사회변동 속에서 일어난 이들의 동태와 당시 교육의 변화된 양상은 상호간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고, 그러한 가운데서 특히 민에 상응하는 가장 적합한 교육기구로서 書堂이 존재했다. 서당은 조선 전기에도 있었으나, 후기에는 더욱 확대되어 각 고을마다 대략 30여 개가 넘는 서당이 설치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16세기 이래로 사족들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확립하기 위해 서당 설립을 주도하였고, 17세기에 들어서도 여전히 사족들의 서당 설립이 이어지는 가운데, 사족의 재지 지반이 취약한 곳을 중심으로 사족과 수령과의 협력을 통한 서당 설립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즉, 서당의 보급이 확대되어 가는 과정에서 서당의 설립을 주도한 세력은 주로 양반사족층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서당은 향촌사회의 교화를 위한 지배층의 일정한 영향력의 범위 안에 있었으며, 유교적 덕목을 가르쳐 지배체제에 순응하게 하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었다. 또한 조선후기에 들어서 나타난 사회신분제도의 동요 현상에 체제붕괴의 위기감을 느낀 양반층은 서당에서의 유교적 강상윤리의 보급을 통해 기존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려는 보수적 반동 경향을 더욱 강화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서당교육을 통한 유교적 지식의 보급은 결국 기존의 가치체계와 사회질서에 포섭되어 가는 과정이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후반 사회 변화 속에서 서얼과 향리 그리고 요호부민층 및 평민층과 같은 비양반사족층의 사회경제적 성장이 이루어지면서 이들이 서당의 교육 대상과 설립 주체로서 등장하게 되었다. 이들은 교육을 자신들의 신분적 구속에서 해방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이용하고자 하였던 것이다. 특히 書堂契의 활용은 소규모의 자본으로도 서당의 설립·운영을 가능케 해줌으로서 보다 광범위하게 민들에게 교육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다. 한편 18세기 들어 향촌 사회에 민들이 세운 서당 설립이 늘어나게 되면서, 몰락 양반층을 비롯한 유랑 지식인들은 생계를 위해서 새로 생겨나는 서당의 훈장이 되어 농민층의 자제를 교육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들은 유교적 학식과 교양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차별 받던 비주류계층이었기 때문에 사회적 모순과 차별적 처우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이에 훈장이 서당을 근거지로 하여 逆謀를 도모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특히 전봉준과 같은 향촌서당의 훈장은 농민을 조직화하여 동학농민운동의 주도적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서당 설립과 운영을 위해 조직되었던 서당계가 변란을 도모하는 수단으로 이용되는 일도 발생하였다. 즉, 향촌 사회 내에서 향촌민을 유교적 가치 덕목에 따라 교화시키고 통제하기 위해 설립 및 운영되었던 서당과 그 소임의 대행자였던 훈장은 18세기 후반 봉건유교사회의 붕괴와 재편성을 요구함으로서 서당에서의 明倫교육은 변질되고 있었고, 오히려 사회변동에 일정한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서당의 확대를 둘러싸고 서당에서 일어났던 변화는 교육 내용에서의 변화를 수반하였다. 조선 중기 이후로 明心寶鑑, 童蒙先習, 擊蒙要訣 등과 같은 우리의 실정과 童蒙의 수준에 부합하는 교재가 우리 나라 학자에 의해서 만들어지는가 하면, 조선 후기에는 兒戱原覽과 같은 기존의 교재와는 다른 교재가 개발되었다. 특히 아희원람의 경우에는 조선 초부터 내내 강조되어 온 명륜, 경신, 입교 등의 전통적인 양반층 중심의 유교적 가치 배양에서 벗어나, 민들의 관심과 요구를 반영하고 그들의 생활상을 담고 있었기에 그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된다. 이와 같이 18세기 민들의 증가된 교육 욕구와 변화된 의식이 반영된 서당 교육의 확대와 민들의 서당 설립 참여는 조선시대 교육의 근본 목적인 유교적 綱常 倫理의 보급을 점차 약화시키는 동시에 오히려 봉건적 사회질서의 동요에 일정 부분 기여하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즉, 민들은 서당의 설립과 운영이라는 적극적인 행동을 통해 교육의 주권자가 됨으로서 보다 주체적인 삶을 위한 시도들을 실현시켜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role of Seodang(書堂) in the change of society in the eighteenth century Chosun Dynasty. Chosun society was greatly change in the eighteenth century when the development of productive force and commercial monetary economy appeared. And the education was greatly changed. The education in Chosun was very important. In an individual dimension, because the education was the means of status maintenance or status upgrading. When education was related to status maintenance or status upgrading, the other status groups as well as local gentry(在地士族) could not help taking much interests in education. The Seodang was one of the private educational institutions of the Chosun. It was founded mainly in rural communities and its primary aim was to teach basics of confucianism to local children. And it was generally a educational institution for the lower classes.(常民) Especially, Seodang can not be indifferent to the change of the society as a whole. And change of the eighteenth century Chosun society influenced the role of Seodang. In describing major change in Seodang, the state could not but acknowledge the influence of the local gentry because of financial difficulties and the crisis of feudalistic regime in the sixteenth century. The establish of Seodang was to strengthen the influence of the local gentry in the rural communities. But Seodang became to take the strong political characteristics in that it was a point of contact between central political circles and the local gentry in seventeenth century. So it became to be necessary for state to control Seodang in result. The state control to Seodang was connected with the policy that would recover the educational initiative of state or local magistrates(守令) in the rural communities. As the result, the system of the schoolmaster of a subcountry(面訓長制) became in the late seventeenth century. From the eighteenth century, the lower classes raised fund for Seodang s finance by organizing Seodang Gye(書堂契). These contributed to the weakening of the power of local gentry, instead strengthened the role of Seodang as means for status upgrading. This change was reflected in Seodang in difference ways. At first, changes in the role of schoolmasters(訓長) occurred. According to the Confucian tradition, they had engaged themselves to the moral rearmament or enlightenment for people. From the eighteenth century, however, they came to be more realistic, critical, and even radical. Later, this tendency of criticism developed into strong detestation against the existing status and some schoolmasters began to be related with civil riots. Another change in Seodang education took place in the content of its teaching material. Jang Hon(張混) compiled Aheewonram(兒戱原覽) as a typical new textbook for Seodang, introduces new criterion for value judgement. For example, it is the loosing of the previous rigid norms of Confucianism or abandonment of the sole confinement to the enlightenment of morality(明倫). As above, this changes in Seodang reflected what the whole society was experiencing at the time. Especially, are deeply connected with social disorder centering around the hierarchical status of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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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대학원 > 사회과교육학과 > Theses_Mas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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