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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의 종교사상 : 그의 전기(傳記)에 나타난 종교사상을 중심으로

Title
이광수의 종교사상 : 그의 전기(傳記)에 나타난 종교사상을 중심으로
Authors
이정심
Issue Date
2002
Department/Major
대학원 한국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이 연구는 한국 근대·식민지시대 지식인이었던 이광수의 종교사상에 관한 것이다. 근대의 문학가였던 이광수의 종교사상은 그의 문학사상의 배경으로 주로 연구되어왔고, 그것이 어떤 종교의 영향을 받아 문학적으로 형상화되었는지에 초점이 맞추어 있었다. 그러나 이 연구는 이광수의 종교사상이 그의 종교에 대한 독특한 이해를 기반으로 인생관·민족관·세계관·우주관이라는 종합·철학적 체계를 갖추고 있었음을 밝히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이 연구는 이광수의 종교사상을 하나의 고정된 사상으로 파악한 것이 아니라 변화하고 더욱 발전하는 것으로 보아 시기적으로 1920년대까지를 전기(前期)로, 1930-40년대를 중심으로 후기(後期)로 나누었고, 각각 그 종교사상의 특성을 이상주의 적 종교사상과 생의 원리 로서의 종교사상이라고 보았다. 이 종교사상들은 동학·기독교와 톨스토이주의·진화론·도산 안창호·불교 등의 영향으로 형성되었지만, 이광수는 이들 기존종교와 사상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 아닌 자신의 독특한 종교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선택적으로 수용하였다. 이로써 형성된 그의 종교사상 역시 어떤 종교적 범주로 나누어질 수 있는 소지의 것이 아니라 그 종교사상의 특성과 내용을 중심으로 고찰해야 하는 것이었다. 전기의 과도기적인 이상주의적 종교사상은 인생이 불행하다 는 인식에서 출발하여 그 원인이 사랑 의 결핍에 있다고 보고, 그 사랑 을 이상으로 추구하는 종교사상이었다. 그것에는 인간이 신 이고, 신의 본질은 사랑과 진리 라는 이광수의 종교인식이 기반하고 있었다. 그것은 동물적인 저차원적 인격에서 신의 완전함과 사랑이라는 최고의 인격으로 진화해간다는 것이 윤리적 진화론을 갖춘 종교사상이었다. 후기의 생의 원리 로서의 종교사상은 자신의 병으로 인해 고통과 죽음을 경험하며 생기기 시작한 종교사상이었다. 이광수는 죽음을 각오함으로써 무상(無常)을 깨닫고, 자식에 대한 사랑으로 생명의 신비를 깨달았으며, 그 자식의 죽음을 통해 인생과 우주의 궁극적 문제가 생사(生死)임을 깨달았다. 이광수는 그 생사의 무수한 반복 속에 결국은 생(生)하나만이 존재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였고, 그 생의 주체자가 생명 임을 깨달았다. 또한 생명의 사명은 자신의 생명을 다른 생명을 위해 바치는 것이며 그러한 희생정신 을 최종목표로 삼은 것이 생의 원리 로서의 종교사상이었다. 이러한 종교사상들은 작가, 민족주의자, 친일파로서의 그의 다양한 활동과 관련지어질 때야 비로소 그 역할과 본질이 드러나게 되었다. 즉 그의 종교사상들은 그 활동을 전개함에 있어 이광수 자신의 인생관·문학사상·민족관·세계관·우주관이 되었던 것이었다. 이 연구는 이러한 대략적 내용으로 이광수가 독특한 종교사상을 형성하고 있었으며, 그 종교사상이 그의 모든 활동에 관련되어 그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이 연구는 이광수라는 인물을 통해 당시 종교에 입각하여 시대의 문제를 진단하고, 그 방향을 모색하여 제 분야의 활동을 전개한 지식인들의 종교의식의 단면을 밝히고자 하였다. 독특한 종교적 신념이나 사상을 형성하고, 그것에 바탕 하여 민족운동을 모색하고 활동을 전개한 것은 비단 이광수만의 것이 아니라 윤치호, 한용운, 김교신, 박중빈 등의 지식인에게도 공통되는 것이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종교적 신념을 가진 식민지 시대의 지식인을 연구하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 Yi Kwangsu(1892-1950), well-known as a modern author in colonial Korea, was an intellectual who wrote novels and treatises in newspaper, launched an enlightenment- and national reconstruction movements, and was at last active as one of the pro-Japanese group. His religious thoughts have been studied as a background for his literary works focusing on what religions had influence on him and his religious thoughts. However, I saw that his religious thoughts were not merely his personal faith and a background for his literary works; rather, his religious thoughts and their significance have to be investigated in association with the situation in colonial Korea. It was my contention in this study that Yi had his own peculiar religious understanding, all of his activities were derived from his religious thoughts, and his activities involving nationalism, modernity, literature and colonialism were on the basis of his religious belief. Yi was influenced by various thoughts, teachings and persons like Tonghak(Eastern Teaching), Christianity, Tolstoyism, the evolutionary theory, Thought of An Changho and Buddhism. But it is noticeable that Yi understood all of them in his own way, and accepted them selectively, rather than followed the established interpretations. Therefore, his religious thoughts had to divided by the characteristic and content, rather than the category of religions. To my thinking, his religious thoughts were not fixed but transformed and developed. Hence, I divided them into two parts; Part I(-1920s): the "idealistic" thoughts and Part II(1930s-1940s): the religious thoughts as the "Fundamental of Life". Part I: The "idealistic" started with his awareness of "bitters of life" as a result of "lack of love". He set up love as an ideal, and tried to achieve the goal of human happiness. Here, the "idealistic" reflected his religious perception "Human being is God, and an intrinsic attribute of God is love." It was a religious thoughts with an ethic evolutionary theory: personality can evolve from a low-level into the most elevated divine love and divine perfection. Part II: The concept of "Fundamental of Life" was result of his own suffering of fatal diseases. After acknowledgement of his diseases and mortality, he realized the transitoriness of life. He perceived mysteries of life through his own love as a father for his children: sentient and insentient have Buddha-nature in themselves. His son s death led him to rang over an extensive literature concerning religion and philosophy. In the end of his deep consideration, he reached a conclusion: the ultimate of life is "production and annihilation", the repetition of life and death results in only life is in existence, and its supervisor is the "true self"(Saengmyoung). As a result of this he sought out the significance of devotion of life to others: spirit of self-sacrifice. His religious thoughts bore great significance when they were applied to his activities as a writer, a nationalist and one of pro-Japanese group. Namely, I showed that his activities were based on his religious thoughts; his religious thoughts worked as outlooks on life, nation, world, and universe. This study reveals a cross section of religious beliefs of the then intellectuals in colonial Korea, who grappled with Social Darwinism, invasion and colonialism, and unfolded their activism in education, economy, literature and religion on the basis of their religious beliefs. Yun Chiho, Han Yongun, Kim Gyosin, Pak Jungbin i.e. all represented these intellectuals. In this respect, I hope that this study may be a slight contribution to study religious beliefs of intellectuals in colonial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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