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梅泉 黃玹의 時代認識 硏究

Title
梅泉 黃玹의 時代認識 硏究
Authors
김수옥
Issue Date
2001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회생활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梅泉 黃玹(1855~1910)은 19세기 한국역사의 격동기를 살면서 절개와 지조를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며 행동하는 지식인의 자세를 보여준, 한국근대사의 표본이 되는 유학자이다. 또한 그는 저서 「梅泉野錄」,「梧下記聞」등을 통해 뛰어난 역사의식을 보여주며 우리나라 最近世史 연구에 일조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의 황현 연구는 한말 시문학자나 우국지사로서의 모습에 치중되어 그의 역사성이 진지하게 다루어지지 못했다. 이에 본 연구는, 냉철한 비판정신을 가지고 시대의 변화에 적극적인 관심을 보였던 황현의 사유구조에 중점을 두고 그의 역사의식을 본격적으로 살펴보려 하였다. 황현은 1894년에 일어난 東學農民運動에 대해, 東匪들을 진압해야 한다는 <甲午平匪策>과 같은 견해로 말미암아 근대적 흐름에 반하는 보수적 사상을 지닌 衛正斥邪係의 유학자로 분류되기도 하였고, 반면 신학문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신식교육기관을 설립했다는 사실 등으로 開化思想을 지닌 근대지식의 선구자로 분류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조선말기 지식층의 사회사상을 이해하는 척도였던 衛正斥邪와 開化의 이분적 사고는, 황현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정확히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두 인식의 틀에 무리하게 끼워 맞추려는 노력들때문에 정작 황현이 당대의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가의 문제에 대한 올바른 해답은 제시되지 못하였던 것이다. 본고는 이와 같은 기존의 고착화된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보다 총체적인 검토를 하고자 황현의 사유구조에 대한 종합적인 접근을 시도하였다. 먼저 황현의 정치인식에서는, 당시 정국운영을 비판하는 황현의 기준이 무엇인가를 알아보았다. 정계에서 소외된 학자의 입장에서 당파에 대해 보다 자유롭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정치를 바라볼 수 있었다는 전제하에, 황현이 구한말 정치에 대해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는가를 살펴보았다. 더불어 황현의 대외인식까지 검토하여 그가 추구하고자 했던 정치상을 확인하였다. 경제부분에서는 전근대적 사회의 경제구조 속에 속한 황현이 근대적인 경제관념들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를 살펴보았다. 특히, 그가 농업위주의 경제구조에 불어닥친 상업경제의 세찬 바람을 어떻게 받아들이려 하였는가를 알아보았다. 황현이 경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대책을 강구하는 과정에서 그의 近代的 思惟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사회인식에서는 황현을 보수적 유학자로 규정짓는 데 일조했던 <甲午平匪策>의 재분석을 통해, 그의 사회의식이 봉건체제의 옹호에 고착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밝히려 하였다. 특히, 황현이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명분과 질서를 강조하였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당대 여러 사회적 이슈들을 통해 살펴 보고자 하였다. 마지막으로 문화부분에서는 황현의 개화의식에 대해 새로운 조명을 하였다. 황현은 분명 우리와 다른 외국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우리의 것을 보다 발전시키고자 하는 차원에서 외국의 문화와 문물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고, 그러한 사고방식은 결국 新學問 교육을 위한 학교의 설립에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외국의 문화양식을 섣불리 우리 실정에 도입함으로써 야기되는 혼란을 경계해 그 도입에 매우 신중했었다는 점에서, 황현은 당시 개화파와 구별되는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표면적으로만 판단하면 황현은 과거만을 고집하는 守舊主義者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원칙을 지키는 것과 옛 것을 고집하는 것은 엄연히 다르다. 사회의 운영체계로 유교질서를 선택하고, 그 가치를 추구하려 했던 점에서 황현은 原則主義者였다. 동시에, 그는 나름의 기준과 철학 안에서 융통성을 발휘할 줄도 알았던 合理主義者였다. 한마디로 황현은, 국가의 번영과 백성의 안위를 가장 소중히 여겼던 열정을 가진 애국자인 동시에, 난무하는 사상의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만의 사유체계를 정립시키면서 그 원칙에 충실하려고 했던 정직한 保守主義者였다고 할 수 있다 ; MaeChun Hwanghyun(梅泉 黃玹, 1855-1910) is a renowned Confucianist of modern history in Korea. Hwanghyun lived in the nineteenth century when Korea was undergoing hard times in history. He was an active intellectual who considered fidelity and integrity were very important. He wrote many books that represented his great historic senses. His great writings include MaeChunYaRok(梅泉野錄), OhaGiMun(梧下記聞) and so on. These books are very important for studying modern history in Korea. Studies on Hwanghyun thus far have not dealt earnestly with his historical view, mainly because they tend to lean towards the study of Chinese classics and patriotism. Therefore, this study will handle Hwanghyun s historic consciousness based on his speculation. Hwanghyun(黃玹) is classified as a WiJungChukSa(衛正斥邪), a Confucianist who makes a new group excluding foreign culture and has a conservative thoughts because he insisted to suppress Dongbi(東匪) who was the group of DongHak(東學). And he is also classified as GaeHwaPa(開化派), a reformer who has a new way of thinking, because he was interested in new learning and established a new type of educational institution. This classification as WiJungChukSa and GaeHwaPa has not gained him historical recognition. This consideration has not solved the problem how Hwanghyun recognized the society of those days because of fixed way of thinking, WiJungChukSa and GaeHwa . So in this article, Hwanghyun s way of thinking is studied in many ways. In Chapter 1, we examine the political recognition of Hwanghyun on the premise that he had an objective view of politics, as well as his understanding of diplomacy. In Chapter 2, we investigate the economic sense of Hwanqhyun, who lived in the middle ages, and how he coped with the emergence of a modern economy. In Chapter 3, we examine the social cognition through the analysis of GabOPyongBiChaek(甲午平匪策). Especially attention is paid to the meaning of his MyongBun(名分), that is one s moral duty. In Chapter 4, we analyze the consciousness of civilization through thoughts for the culture of Hwanghyun(黃玹) who was interested in foreign culture. He understood foreign culture as an affirmative influence on the development of his own culture, and that led to the construction of a school. Hwanghyun may be considered as a conservative who adhere to traditional customs, but keeping the rules and insisting on old ideas are different. He had his own criteria and philosophy and could adapt himself to changing circumstances. Hwanghyun was a honest rationalist who remained faithful to rules of Confucianis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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