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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노동당과 노동조합의 관계 연구, 1945-1979

Title
영국노동당과 노동조합의 관계 연구, 1945-1979
Authors
김성림
Issue Date
2001
Department/Major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부터 대처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영국의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를 살펴보고 역사적, 구조적으로 긴밀히 결합되어 있는 노동당과 노조의 관계가 효과적으로 운영되지 못한 요인을 분석한다. 영국의 노동조합은 자신이 후원하는 노동자 정당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노동당은 노동조합으로부터 단기적인 협력밖에 얻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영국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는 태생상의 한계가 있었다. 영국 노동조합의 정치화는 1830년대부터 있어 왔고, 차티스트의 활동이 끝난 이후에도 런던노동자협회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의회에 노동자 대표를 내보내고 있었다. 하지만 노동계급의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을 만들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 이것은 영국의 부르조아 세력이 노동자의 요구를 수용하고 있어 갈등을 완화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유당은 노동자에 우호적인 정책을 추진하였고 노동자 대표는 의회에서 자유당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나 독자적인 노동자 정당의 형성에 무관심하던 노동조합세력은 1890년대에 일어난 잇따른 파업의 실패와 고용자들의 조직적이고 강경한 대응, 재판부의 불리한 판결, 자-로 연대의 한계, 그리고 사회주의자들과 독립노동당의 요구 등의 요인으로 인해 위협을 느끼고 그동안 부정적이었던 정치세력화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노동조합이 필요에 의해 참여하게 되었지만 노동당 창당 과정에서의 노동조합의 역할은 소극적이고 미진한 것이었으며 창당이후에도 오랫동안 논란이 계속될 만큼 갈등의 소지를 가지고 있었다. 노조가 노동당을 효과적으로 활용하지 못하고 노동당은 노조로부터 지속적인 협력을 얻지 못한 원인은 제 2차 대전 이후 세 차례의 노동당 정부 시기의 구체적인 정책 현안과 요인들을 살펴봄으로써 분석할 수 있다. 이 시기에는 영국의 경제적 제약과 노동조합의 한계로 인해 노동당과 노조의 외형상의 협조적 관계가 좌절을 반복하게 되었다. 먼저 전쟁 중 합의된 케인즈의 완전고용정책와 베버리지의 복지국가건설을 시행하려는 전후 애틀리 노동당 정부에서의 노동당과 노조의 관계는 앞으로 나타날 모든 갈등사항을 보여주었다. 국가가 경제에 개입하기 시작하면서 노동조합의 지위가 상승하여 내각을 비롯하여 많은 정부 요직에 노조에서 추천한 인사들이 배치되었다. 동시에 계속되는 경제위기로 노동당은 노동조합에 자발적인 임금인상제한을 요구하였다. 그리고 마샬플랜의 명목으로 미국의 경제적 도움을 받게 되면서 경제운영에 제한을 받았다. 전반적으로 이 시기의 노동조합은 계속되는 경제어려움과 긴축재정에도 책임감 있게 노동당 정부에 협조하였으나 총선결과에 대한 실망과 한국전쟁으로 인한 가격상승으로 정부에서 요구하는 임금제한정책은 거부되었다. 정서적으로 노동당 정부에 협조적이었지만 노동당으로부터 계속적인 보상이 없을 경우 평노조원의 협력은 지속되지 않았다. 1964년 두번째 노동당 정부는 노동조합 진영에게 있어 한층 더 부정적 경험을 남긴 정부였다. 막대한 국제수지적자의 부담을 안고 시작한 노동당 정부는 평가절하의 처방대신 엄격한 긴축재정과 노동자의 임금제한 정책을 강행함으로써 노동조합진영과의 갈등은 심화되었고 이과정에서 노동당이 영국노동조합의 전통적인 자율성을 개혁하여 법적으로 규제하려 한 시도로 인해 노동조합과의 관계는 더욱 악화되었다. 윌슨정부는 집권직후부터 임금제한 조치로부터 시작하여 산업관계에서의 조기경고제도의 도입, 방대한 디플레 정책과 임금동결, 평가절하와 간접세 인상 등 매년 파운드 위기를 겪으면서 긴축재정과 임금제한을 반복하였다. 윌슨 정부는 1966년 이래 12개의 외교, 경제 분야에서 핵심적 정책 사안들에서 노조세력이 주도하는 전당대회의 지지를 얻지 못할 정도로 노조와의 관계는 우호적이지 않았다. 더욱이 노동당 정부 진영에서는 영국노동조합의 산업관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이를 개혁하고자 시도하였다. 이 문제를 의뢰하였던 도노반이 주도한 왕립위원회의 보고서에서는 영국 산업관계에서의 공식적 성격과 비공식적 성격을 구분하여, 노조와 고용자들이 집단적으로 협상하여 산업전반의 합의에 따라 명문화된 것이 공식적인 제도이고 작업현장과 경영자들의 관습과 관행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 비공식적 제도로서 두가지 성격을 모두 인정하고 비공식적 제도를 효과적이고 질서에 맞는 방법으로 규정하여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진단하였다. 하지만 노동당은 도노반의 진단에 만족하지 못하고 보고서의 무기력한 수동성을 극복하기 위해 캐슬의 보고서를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조합을 법적으로 규정하려 하였다. 하지만 노조 진영은 "산업분쟁과 관련하여 노조의 기본권을 축소하려는 어떠한 입법적 기도도 결코 용납될 수 없다"는 결의안을 채택하고 백서에 대항하였으므로 백서가 발표된지 5개월만에 법안 포기를 선언하였다. 1974년 노동당 정부는 이전 윌슨정부에서의 노조와의 관계악화로 인한 어려움을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하여 노조와의 협력을 기반으로 출발하였다. 노동조합과 사회계약 이라는 일종의 거래에서 노조의 자발적 임금제한을 대가로 노조가 원하는 임금 외의 부수적인 혜택을 약속하였다. 1972년 1월 노동당은 TUC와 연락위원회를 설치하였다. 연락위원회는 노동당과 노동조합간의 최초의 공식적 연결조직으로서 당내 정책결정에서 중요한 조직으로 성장하여 1973년에는 당과 노조 간에 사회계약을 체결하였다. 집권 직후 노동당 정부는 노조에게 입법적 보상을 하였으나 소득정책이 4차 걸쳐 3년 이상 계속되면서 노조와의 관계는 다시 악화되기 시작하였다. 1차와 2차에서는 노조가 주도하여 임금제한정도를 결정하였으나 3차부터는 노조와의 논의없이 임금제한선이 정부에 의해 제시되었고 제4차 소득정책은 노조의 강력한 반대속에서 강행되었다. 결국 노조는 불만의 겨울이라 불리는 파국적인 파업으로 노동당 정부를 실권시켰다. 사회계약 시기에는 노동조합이 과도한 권력을 남용하였다는 대중적인 이미지와 노조 영향력의 약화라는 현실간에 차이가 있었다. 이 시기 노조지도자들이 즐긴 것은 실질적인 정책안을 결정하는 권력이 아니라 정책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절차적 권리로서 이미 결론이 난 정책방향에 영향력을 끼쳤다는 느낌을 갖게 되는 정도였다. 오히려 공개적인 정부와의 협조로 인해 노조의 지도부가 정부의 소득정책을 수행하기 위한 감시자의 역할을 감당함으로써 평노조원과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위와같이 전후 세번의 노동당 정부 모두 경제적 위기 상황에서 노조와 협조적 관계를 지속할 수 없었다. 그리고 노조는 정부의 소득정책이 단순한 임금제한을 넘어선 공정한 소득분배를 위한 포괄적 정책으로 발전시키지 못하고 노동당에 효과적이고 건설적인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였다. 이 요인은 앞에서 살펴본 태생상의 한계외에 영국노동조합자체의 문제가 있었다. 둘째, 영국 노동조합의 최상단체인 TUC는 전후 코포라티즘 국가에서 요구되는 책임감 있고 효율적인 조직으로서의 역할에 부족하였다. TUC는 제2차 대전 이후 집산주의 정치에서 지위가 격상하여 정부와의 협상대상자가 되었으며 산업영역 이외의 다양한 영역에 참여하게 되었다. 하지만 노동조합 운동의 대변자 조직으로서의 역할은 수행했으나 정부 협상 대상으로서의 권위있는 기관이 되지는 못하였다. TUC의 최고기관인 총평의회와 의장도 권위있는 권력을 보유하고 있지 않았다. TUC는 훈련된 회원들이 지도부에 순응하는 중앙집권적 관료조직의 형태가 아니었으며, 노동운동내의 정책결정기관이었지만 집행기관은 아니었다. 1920년대부터 좀 더 중앙집권화된 조직으로 개혁하려는 시도가 있어왔으나 TUC는 1970년대 말까지 분권화된 느슨한 연합체 형태로 남아있었다. 또한 TUC는 재정, 조직면에서도 열악한 상태였다. 따라서 평노조원의 반발이 있었을 때 이를 통제할 수 없었고 노동당에 효과적으로 정책제안을 할 수 없었다. 세번째, 노조가 노동당에 단기적인 협조밖에 하지 못했던 요인은 영국노동조합의 전통적인 자발주의 성격 때문이었다. 자발주의는 사회주의 이념이나 정당의 활동보다 훨씬 앞선 역사를 가진 영국의 노동조합운동이 전통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특성으로서 산업관계에서 국가의 간섭을 배척하고 각 노조가 고용자들과의 직접적인 협상을 통해서 스스로 노동자의 이익을 지키려는 성격이었다. 영국노조는 자발적 조직과 자구책만을 신뢰하고 법에 의한 조정을 거부하여 왔다. 하지만 2차대전 이후 노조의 자발주의 전통은 비판의 대상이었고 노조의 단체협상이 인플레이션을 초래하는 요인으로 비난 받았다. 전후 계속되는 소득정책에서도 노조는 자발적인 임금제한을 고수하고자 하였고 단기간의 헙조후에 반드시 자율적인 단체협상방식으로 되돌아 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노조의 행위가 인플레의 중요한 원인이었다는 증거는 미약하고 소득정책의 결과도 만족스럽지 못한 것이었다. 노동조합의 법에 대한 태도는 기본적으로 노조에 적대적인 영국 관습법에 대항해 자발주의 원칙을 보장받기 위해서와 단체협상 방식으로 야기된 산업관계에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기 위해서만 진행되었다. 네번째,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조직상의 긴밀한 결합기제가 효과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노조가 노동당을 효과적으로 이용하지 못한 요인은 노조세력이 노동당의 최고결정기관인 전당대회와 NEC에서 확실한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노조의 영향력은 제한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노동조합진영은 전당대회에서 블록투표를 사용하여 대회의 결과를 노조의 뜻대로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NEC에서 27명의 구성원 중 노조의 직접 지분이 12명이고 5명의 여성대표와 재무의원은 노조가 블록투표를 행사하는 전당대회에서 선출하므로 27명 중 18명이 노조의 세력을 반영하고 있었다. 하지만 전당대회와 NEC는 영향력 이상의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였다. 전당대회와 NEC의 결정이 당지도부의 의도와 대립되었을 경우 노동당 지도부는 그 결정을 무시하거나 희석시킬 수 있었다. 또한 노동조합은 노동당에 전체 당 재정의 50%를 후원하고 있었고 노동당 의원 중 노조가 후원하는 의원은 30-40%를 차지하였다. 하지만 재정적인 후원만큼 노동당 또는 노조가 후원하는 의원에 대한 영향력이 강했던 것은 아니었다. 노조는 실질적으로 후원하고 있는 의원들과의 접촉조차 소극적으로 이루어졌고,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의 경우 노조가 후원노조에게 노조의 입장을 대표해줄 것을 강요하는 것은 의원의 자율성 문제로 반대되었으므로 노조후원 의원들이 노조로부터 부적절한 압력을 받은 경우는 예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영국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는 태생상의 한계를 보유하고 있는 가운데 제 2차 대전 이후 경제적 위기속에서 영국 노동조합의 조직적 문제와 전통적 성격의 제한, 그리고 노동당 정책과정에서 노조의 영향력이 제한되는 상황으로 인해 역사적, 외형상의 긴밀한 관계는 좌절되었던 것이다. ; This study aims to find the factors of the unsatisfactory relationship that developed between British Labour Party and the Trade Union from 1945 to the 1979 general election even though Labour Party was created by trade union and they are connected intimately in many ways. Trade unions had not make the most of their own party they had been in considerable sponsorship and Labour Party could not get trade unions cooperation for the long run. In this study to analyze the reasons of the ineffective relationship between Labour Party and trade unions concrete policies around industrial relationship in three times Governments that the Labour Party conducted(1945-1951,1964-1970, 1974-1979) are examined. What trade union leaders enjoyed under the Labour Government was not so much the power to determine the substantive policy as a set of procedural rights. There were gap between the image and the reality of trade union power. This study starts with the view that from the origin of the Labour Party few British workers had not wanted their own labour party because Lib-Labism gave them a measure of confidence that undermined working-class politics. Since the second World War much more cooperation was needed between Labour Party and trade unions but the relationship got more aggravated. First, Trades Union Trades (TUC) has the limit. Trade union ‘problem stemmed from the TUC s fundamental weakness. The TUC suffered from its construction as a loose federation which grew more apparent under condition of high inflation and dominant workplace bargaining in the private manufacturing sector. The TUC and its affiliated unions lacked the strength to come to terms with the workplace challenge as power and responsibility in a period of full employment Second, another major problem for unsatisfactory relationship is in the traditional voluntarist system of industrial relations in Britain. Free voluntary collective bargaining was preferred to legal enactment and compulsory arbitration. Under a essentially decentralized collective bargaining based on voluntarist principles and little legal enforcement, Labour Government s creation of industrial stability and consensus through a jointly agreed national economic policy such like wage restraint was difficult. Third, though the trade unions had a crucial role in Annual Conference and National Executive Committee (NEC) they did not use their prerogative position neither constructively nor actively. The unions dominated 18 of 29 seats on the NEC and they could effect on the Labour Party through their collective voting strength in the party conference. Besides trade unions were the chief paymasters of the party. In 1979 the number of union-sponsored MPs was 133 of the total of 269 Labour M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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