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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宿衛外交의 性格 : 新羅, 渤海 宿衛 比較를 中心으로

Title
신라 宿衛外交의 性格 : 新羅, 渤海 宿衛 比較를 中心으로
Authors
수흔
Issue Date
1999
Department/Major
대학원 한국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고는 신라 숙위외교의 성격에 대해 연구하였다. 이 논문은 기존의 연구와는 달리 비교의 방법을 이용해서 쓰려고 한다. 이 논문을 쓰는 목적은 신라와 발해의 숙위를 비교해서 唐代 新羅 宿衛의 성격을 구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서론·숙위 발생의 배경·신라와 발해의 숙위·결론으로 구성된다. 그 중에서 서론 부분을 연구의 목적과 선행연구의 검토의 두부분으로 나누었다. 연구목적에서는 신라가 한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을 설명하면서 신라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 바로 신라와 당의 관계라고 보고 있다. 그런데 중국에서 양국의 고대 관계사에 대한 연구 성과는 대부분 나열식이고 중국 중심의 中華觀으로부터 시작한다. 따라서 필자는 일반적으로 조공이라는 통념 속에서 양국관계를 평면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니라, 그 속의 다양한 교섭과정을 심층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서 宿衛外交의 성격을 재조명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양국관계의 새로운 이해에 큰 계기가 되리라고 믿는다. 선행연구에서는 숙위외교에 대한 중국의 연구와 한국의 연구가 지니고 있는 장단점을 검토한다. 분석 결과는 중국에서 이루어지는 연구는 거의 나열식으로 이루어졌으며 한국의 경우 즉, 변린석의 연구는 나열식인 반면, 신형식은 사회의 변천에 따라서 신라 숙위외교를 고찰하였음을 알게 되었다. 唐이 숙위제도를 택하게 된 배경에는 주변 나라에게 자국 문화를 전파하는 목적 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를 견제하려는 정치적 목적도 있었다. 신라는 삼국통일을 하려고 하면서 신구세력 경쟁은 통치체계를 확립하기 어려웠으므로 당과 군사동맹을 꾀할 수 있기 위해서 최초의 宿衛 文王은 당전으로 파견되었다. 발해 건국 초기에 당은 주동적인 친선에 수락하기 위해서 최초의 숙위 대문예를 당전으로 보내었다. 신라와 발해 숙위는 신라와 발해 두 부분으로 나누었다. 신라의 숙위는 통일전쟁기의 숙위, 당문화 수용기의 숙위, 그리고 당과 冷却期의 숙위로 나누었다. 신라 숙위를 세 시기로 구분한 시점은 신라와 당 사이가 변하였던 시점과 일치한다. 이것은 신형식의 사회발전에 따라 구분한 방법과는 차이점을 보인다. 본 고는 신라의 숙위를 쓸 때 단지 원시 사료만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이루어지는 연구도 상당부분 참고하였다. 한국의 숙위외교에 대한 연구를 주목하면서 여기서는 신형식의 연구를 재고찰하려 한다. 발해의 숙위는 주로 사회변천에 따라 12명의 숙위를 세 부분으로 나누었다. 고왕대의 숙위, 무왕대의 숙위, 문왕대의 숙위였다. 이들 12명의 숙위를 원시 사료를 통해 분석하였다. 그 중에서 가장 번성하였던 시기는 문왕대의 숙위였다. 이 시대의 숙위는 수적으로 상당히 많을 뿐만 아니라 발해 사회의 발전에 중대한 역할을 행사하였다. 발해 숙위의 성격과 역할을 분석하면서 신라와 발해의 숙위를 비교하였다. 결론에서는 신라와 발해의 숙위의 異同点을 정리하면서 신라 숙위외교의 성격을 새롭게 조명하고자 했다. 신라의 숙위는 단지 당과 신라사이의 특수한 외교사절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라의 숙위는 자국 필요에 따라 당에 와서 뒷받침을 요구한 외교사절이라고 한다. 숙위는 오랫동안 당에 머물렀기 때문에 당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당과의 정치·경제·문화 교류의 중개인이 되었다. 그들의 이러한 많은 역할들 중에서, 특히 본 고는 신라 숙위의 문화적 작용을 더 중요하다고 보는 입장이다. 발해가 당으로 파견한 숙위의 수는 두 번째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발해가 최초 당으로 숙위를 파견한 동기는 신라와 달리 단지 당의 주동적 친선에 대한 承諾이었다. 신라 숙위의 동기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주체적이지 못하였다. 발해의 숙위는 신라와 달리 당과 분쟁을 일으켰을 때에는 친당세력이 되었다. 발해 숙위를 고찰할 때 주목할 만한 점도 있었다. 즉, 발해의 숙위자에는 王弟가 많이 차지하고 있었다. 발해는 왕제를 숙위로 파견한 것을 통해 왕권 강화에 뒷받침이 되었다. 발해 숙위가 신라보다 자주성은 어느 정도 없지만 그래도 발해가 당으로부터 문화 방면에서 영향을 많이 흡수하였기 때문에 발해의 制度·道德規範 등은 당과 비슷하게 발전할 수 있었다. 신라와 발해의 숙위는 같은 對唐的 외교사절이었다. 똑같이 숙위를 통해서 당의 문화를 흡수하고 자국의 발전을 도모하였고 東亞秩序를 통해 아시아 평화를 구축하였다. 신라·발해 숙위의 과정을 보면 그 두 나라가 당에 처음에 숙위를 보냈던 동기와 역할은 달랐지만 똑같이 자국의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당을 懷柔한 것이었다. 이런 숙위를 통해 신라·발해와 당의 관계는 원활할 수 있었다. 따라서 신라·발해는 숙위외교를 통해 당과의 친선을 도모할 수 있었고, 東亞世界形成에 참여할 수 있었다. ; 爲了對新羅宿衛外交的性格有更深層次, 更客觀的理解, 筆者將借此論文對此問題進行再考察. 本論文在現存硏究的基礎上, 利用不同的硏究方法, 利圖從新的角度對此問題進行剖析. 換言之, 不但對新羅宿衛外交進行硏究, 幷裝通過與渤海宿衛的比較, 發掘出新羅宿衛外交性格的獨特之處. 本論文是由四個部分構成. 卽, 序論, 宿衛發生的背景, 新羅·渤海宿衛的比較, 結論部分. 第一部分爲序論. 在此部分中又分爲兩部分, 卽硏究的目的和現存硏究的檢討兩部分. 在硏究的目的部分中主要對此硏究的可行性及必要性進行敍述. 在現存硏究檢討部分中, 對于中韓兩國現有硏究方法和硏究結果的長短點進行評術, 以求發掘出更客觀有效的硏究方法. 總而言之, 在序論部分中, 主要對本硏究的必要性及現存硏究的分析, 同時提出作者對此硏究的期待, 及本硏究與前硏究不同將採用比較的硏究方法, 通過新羅渤海宿衛的比較, 接近宿衛性格的眞相. 本論文的第二部分爲宿衛發生的背景. 在此部分中分別對唐的對周邊國家實施的羈靡政策的歷史背景, 及唐代羈靡政策的大體情況. 新羅爲了實現三國統一, 强化王權企圖通過與唐結好, 來實現自己的願望. 在高句麗滅亡后, 渤海也成爲了一個獨立的國家. 爲了對唐主動的交好, 表明友好的態度, 以取得唐的認可, 也向唐派送了第一名宿衛大門藝. 本論文中最重要的部分是, 新羅·渤海宿衛的比較. 在此部分中分別對新羅·渤海宿衛的過程進行詳細的考證, 考證是以中韓兩國的古籍爲依據的. 以史料考證爲基礎, 通過比較硏究發見他們之間的異同点. 借此對宿衛的性格作出客觀的認識. 在結論部分中, 總結了前三部分的內容. 借而得出宿衛有似於人質, 但通過對宿衛活動的 考察, 我們容易發見宿衛具有多面性, 卽綜合性的外交使節. 在新羅與渤海宿衛比較的過程中, 我們可以知道, 新羅的宿衛要比渤海目的性强. 新羅·渤海通過宿衛積極的從唐吸收着先進的文化, 對兩國的發展起到重要的作用, 增進交流, 也爲東亞的繁榮和穩定作出了不可忽視的作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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