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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국중대회'의 구성과 기능

Title
고구려 '국중대회'의 구성과 기능
Authors
류현희
Issue Date
1999
Department/Major
대학원 사학과
Publisher
이화여자대학교 대학원
Degree
Master
Abstract
본 논문에서는 3세기 후반 三國 중 政治體 통합이 진전되고 있던 사회인 高句麗·夫餘의 祭天行事가 『三國志』에 國中大會로 표현되고 있음에 착안하여, 제천행사가 시대에 따라 그 기능이 변화하였음을 살펴보고자 한다. 즉 제천행사는 국가형성기 이전에도 존재했었고, 그 사회를 유지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었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국가형성 이후 역사적 궤적이 왕권의 강화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볼 때, 제천행사의 기능은 공동체 유지라는 측면 뿐 아니라 왕권강화에 이바지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고 본다. 고대사회의 제천행사는 신화적 구성요소를 가지며, 제의 자체가 일정한 시기·순서 그리고 의미가 부여된 체계가 존재하였다. 때문에 제천행사의 구성과 건국신화를 비교하는 과정은 양자가 가진 사회적 기능의 동일성을 재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신화가 가진 神聖性, 즉 지배의 정당성 실현이라는 부분이 제천행사에서 재현된다. 3세기 단계에서 부여·고구려 두 나라에 대한 제천행사를 國中大會라고 표기하였는가 하는 점은 당시의 정치적 발전과정을 전제로 해야 할 것이다. 당시 고구려·부여는 三韓이나 東沃沮와 달리 王의 존재가 확인이 되고 있었으며, 王權을 중심으로 하는 일원적 정치체계가 형성되는 과정에 있었기 때문이다. 건국신화의 내용은 주인공의 신성한 출생과정과 혈통을 확인하고, 일정 시련을 거치면서, 신과의 관계를 재확인하고 국가를 형성하고 있다. 이것이 고구려 國中大會에는 狩獵大會를 통한 능력확인 작업과 祭天行事를 통한 신성한 혈통의 확인, 마지막으로 諸加會議를 통해 일련의 정치적 행위로 유사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각 단계별로 상징적 의미의 건국신화가 재현되고 있는 것이다. 즉 고구려전체에 왕의 統治力이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國中大會가 가지는 의미는 신화적 신성성의 관념 속에는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고 현실적으로 統治力을 구현하는 場으로서의역할을 하고 있다. 수렵대회는 國中大會의 출발점이며 인재선발을 하고, 수렵을 통해 획득한 동물로 하늘에 제사를 지내면서 한해의 수확이나 사냥감이 풍부하기를 기원한다. 다음으로는 제천행사를 지내는데 제사의 주체가 되는 포의 신성성에 대해서 공동체적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祭天에서 犧牲을 통해서 다음과정인 諸加會議의 결정사항에 神聖性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각 단계를 보면 참여계층이 일정 신분적 계선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말하자면 초기부터 지배신분층의 권리를 가진 大加계층보다는 수렵은 이들보다 하위집단에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는 고구려가 연맹체 단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읍락에서 성장하는 계층을 흡수하기 위한 방편으로, 간접적으로 지배되고 있던 5部에 대한 통제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즉 수렵대회에서 인물을 선발한다는 것은 神의 대리자인 왕에 의해 선택됨으로써 직접적으로 왕과의 관련을 가지게 하여 那部에 대한 간접적 통치방식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두 번째의 제천행사는 東國大穴에서 행해지고 있다. 전구성원이 참석한다고 하는 전제하에 지배집단만이 참여하고 있는데, 실제적으로 장소를 살펴보게 되면 상층지배집단 일부만이 제의에 참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諸加會議는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최고 의결기구로 서 여기서 결정되는 사항의 증요성으로 보아, 여기에 참석할 수 있는 인물들은 최상층 지배집단일 것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3단계 과정을 살펴본 결과 고구려 諸加會議는 외적으로는 전체 고구려인 들에게 공통시조로 인식되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서 공동체의식을 강화하고 있으면서도, 내적으로는 지배집단의 신분질서를 고착화하고 왕이 연맹초기의 那部세력을 해체시키기 위한 도구로 이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화의 권위를 이용하여 지배자의 지배질서를 합리화하고 있다. 즉 신적인 권위를 현실화시키는 과정이 바로 諸加會議의 3단계 구조라 할 수 있다. 이 논문에서는 高句麗 諸加會議의 구조를 확인하고 참여신분층을 살펴봄으로써 공동체 유지라는 측면과 더불어 집권화의 이중적 과제를 실현하고 있음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중앙집권화가 되면서 변화하게 되는데, 앞 시기의 기능들이 체제정비 과정을 통해서 국가제도 안으로 흡수된다. 즉 초기의 종합적 기능이 분화되면서 상징적인 의미만이 남게된다. 초기에 일정 자치력을 가지고 왕권을 견제하고 있었던 加세력이 역사적 기능을 다함으로써 이들의 견제수단이었던 國中大會가 의미를 상실하게 되어 상징적·관념적 의미만이 남게 되었다. 결국, 고구려 國中大會는 지배자의 지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실시되었으며, 신화적인 요소를 전제로 하여 신성한 권위를 갖추게 되었다. 고대사회의 지배자의 권위가 神으로부터 출발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일련의 고찰은 고대 사회의 정치권력의 정당성을 어떻게 확보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에서 비롯하였다. 즉 지배권력이 현실적으로 구현되는 場이 사회내부라는 것을 재인식하는 과정일 뿐 아니라, 한국사회에서 지배자에 대한 관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하는 점에서 본고는 출발하였다. ; In this study, the functional changes in various religious services to Heaven by the times are investigated as ancient religious rituals of Koguryo(高句麗) and Puyo(夫餘) are described as Kukjungdaehyoi(國中大會), in which talent persons were looked out, services to heaven were done with hunted animals to pray for abundant harvest and hunting. And then there usually came religious services to heaven through which the god-like authority of the king as a host was publically accepted. Also through sacrifices in those services, decisions in the next Jega(諸加) meeting were granted holiness. But we should pay attention to the fact that those participants in each steps of service or meeting were in a given social position. From the start, hunting has more meaning to Soga(小加) classes than Deaga(大加) classes. This was from the double combination of Soga classes desire for rise in position and king s centralization of power. The king needed to intensify his controlling power over five high classes indirectly ruled so far. That is, scouting talent persons in a hunting meeting meant king s appointment of them to higher social positions, thus directly involved in the relationship with the king. So an effort to overcome the indirect ruling upon Nadu(那部) classes. Second of all, all the religious services were held at Keukdongdaehyul(國東大穴). Actually the place only the upper ruling class could come to participate in the service. And finally, Jega(諸加) meeting was a king of deliberative assembly making decisions on important national matters at which only the uppermost class could be present. As a result of looking at those three stages, it is certain that Keukdongdaehyul of Koguryo externally consolidated community spirit in the process of making sacrifices to the founder of the kingdom, but internally, it was a tool to fix the class distinction of the ruling group and to break down the power of Nabu class. The ruler justified his rulership by using the mythological authority. This is, the three-stage structure of Kukjungdaehyoi is nothing but a process of realizing god-like authority. This study investigates the significance of Kukjungdaehyoi in the aspects of substantial composition and participant classes by the time when Koguryo developed into a unified nation. It was a formal event to acquire talent noblemen necessary for strengthening royal authority and admit Ga classes social privileges in the participant classes were gradually reduced. Therefore, Kukjungdaehyoi could carry out somewhat contradictory task of intensifying royal authority and social unifica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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